담임목사 글터
성서일과에서 시편의 위치
기고문
작성자
한석문
작성일
2018-01-24 16:36
조회
2593
성서일과에서 시편의 위치
최근 들어 성서일과(lectionary)를 따라 걷는 목회자가 많아지고 있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주일성서일과 뿐 아니라 매일성서일과를 따라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영성을 쇄신해 가는 목회자들을 보면 그저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그런 측면에서 강단과 목회의 집필을 맡은 한 사람으로서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다음 해 강단과 목회 집필 회의를 하면서 집필진은 하나의 고민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은 시편 주석의 필요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 고민은 교회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1. 성서일과의 유래
성서일과의 출발은 바벨론 포로 후기 유대의 회당예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회당예배에서는 안식일마다 선지자의 말씀이 봉독되었었다(눅 4:16-21;행 13:27). 사도행전에 의하면 초대교회 신자들 역시 회당예배의 전통을 이어받아 성전이나 회당의 말씀의 예배에 참여하고 있었는데(행 2:46), 그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의의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셨기 때문이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눅 24:27)하셨기 때문이다. 다만 초대교회 성서봉독은 회당예배 때와 달리 복음서의 봉독이 중심이 되고 구약성서의 중요한 구절을 골라 봉독하고 서신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사도의 예언서와 묵시록 등을 읽었다. 실제 2세기 말경 구약성서 본문 외에 사도들의 글과 복음서가 함께 읽혀졌던 근거가 남아있다(Justin Martyr, 1 Apology 67). 심지어 필립 캐링톤(Philip Carrington)은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내용자체가 절기를 따라 수집해 놓은 성구집이라고도 주장하기도 했는데, 공관복음의 기록 연대가 65년 전후였다는 사실과 그때가 예수님의 생애를 사건별로 정확히 구분하여 예전 행위를 가졌던 때라는 사실을 연결할 때 그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성서일과가 확정되어 특정한 규례와 절기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읽혔었다는 사실은 AD 388년경 성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의 안디옥 설교에 관한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요한복음 설교 11번에 이런 언급이 있다. “그러면 내가 여러분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 각자가 주(week)의 첫 날 또는 안식일에도 여러분들 사이에서 읽혀질 복음서의 그 부분을 손에 들고, 그 날이 되기 전에 집에 앉아서 읽어 내려가는 것입니다.” 5세기의 콘스탄티노플과 6세기 이후의 로마교회에서는 두 가지 본문만 읽은 관례가 생겨 서신서와 복음서를 읽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서신서 대신 구약성서가 대용되기도 했고, 구약성서와 서신서가 혼용되기도 하였다. 7세기 이후를 지나면서 성서일과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비잔틴 성서일과, 예루살렘 성서일과, 로마교회 성서일과, 보비오 미사경본, 룩쉘의 성서일과, 톨레도 성서일과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룩쉘의 성서일과를 살펴보면 선별된 구약과 서신서, 복음서, 계시록의 성구들에 연속적인 번호가 매겨져 있다. 이 같은 중세 초기의 성서일과들은 서양교회의 표준성서일과와 로마의 미사일과로 수정 계승되면서 예배와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적으로 봉독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종교개혁자들도 매 주일예배와 연중 축제에서 체계적인 성서일과를 따라 성서를 규칙적으로 읽을 것을 권장했다. 장로교 원조인 스코틀랜드교회도 20세기에 이르러 성서일과를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구약과 서신, 복음서로 구성을 선택했었다. 미국의 감독교회는 영국 국교회와 더불어 로마 가톨릭 교회가 새로 제정한 성서일과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독자적인 성서일과를 만들어 냈는데 이 역시 구약, 서신서, 복음서 등 세 본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루터교회는 1973년에 일차적인 성서일과를 만들어 사용하다가 1978년 로마 가톨릭 성서일과에 수정을 가한 성서일과를 그들의 예식서에 공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다. 1969년 이후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대한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착수했는데 여기에 많은 개신교 성서학자들이 참여한 까닭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한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에 따른 성서일과는 공동 유산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1978년 북미와 캐나다의 영어권 12교단 대표들은 공동본문협의회(Consultation on Common Texts)를 출범시켜 마침내 1986년에 새로운 성서일과를 출판해 사용하다가 1992년에 3년을 주기로, 첫째 주기는 마태복음, 둘째 주기는 마가복음, 셋째 주기는 누가복음을 사용하며, 요한복음은 사순절과 부활을 강조하면서 세 주기에 골고루 사용하는 개정판 공동성서일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를 만들어 냈다. 이 개정판은 현재 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채용하고 있으며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도 이 개정 공동성서일과를 사용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서일과의 발전 과정에서 시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다.
1. 성서일과에서 시편의 위치
성서일과에서 어느 책을 선택할 것인가는 감독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결정했는데,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역사적으로는 구약성서, 서신서, 복음서 등 세 본문으로 평준화되어 있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 중에서 시편은 엄밀하게 구약 본문에 대한 회중의 응송(Responsorial psalm)이지 또 다른 본문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다. 구약 본문이 주어진 경우, 특별히 오순절 후 주일들에는 응답 시편이나 기도서 성가(canticle)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물론 간혹 시편이 독립적인 구약의 본문으로 채택될 때도 있지만 이 역시 응답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성서일과에 대한 심층적인 개혁을 이루었는데, 4개 헌장 중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의 내용은 이렇다. "복음이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인류의 구원인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전하는 기쁨의 소식이다. 신약성서의 4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과 생애를 통해 행하신 구원 사업을 전하고, 사도행전과 사도서간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과 구원 사업을 계승한 사도의 활동과 가르침을 기록하고 있으며, 묵시록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의 종말적 완성을 말하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기록되어 있다. 전례는 성서봉독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전하지만 성서 전체를 그대로의 형태로 전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서 목록에 의해 각 장을 있는 그대로의 순서로 봉독하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관계있는 구절을 성서 전체에 걸쳐 읽는 것이다. 구원 역사는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중심으로 신구약을 통해 일관된 것으로 이 구원 역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 신비를 더욱 깊이 이해시키기 위해 구약성서와 사도서간과 복음이 봉독되고, 강론으로 그것이 설명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시편은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시편이 성서일과에서 아주 외면 받는 것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제3장 거룩한 전례의 개혁, 일반규정에서는 성경을 ‘봉독되고 설교에서 설명되는 글’과 ‘노래로 불리어지는 시편’으로 나누고 있다. 즉 시편을 ‘설교’가 아닌 구약 설교에 응답하는 노래 즉 ‘응송’의 차원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의회는 시편 외에도 전례 중의 간구와 기도 및 찬미가도 성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루터교회가 시편을 성서일과에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1. 맺는 말
이상과 같이 성서일과의 유래 및 성서일과에서 시편의 위치를 생각해보았다. 결론으로 시편은 성서일과 안에서 ‘설교를 위한 성경’이 아닌 ‘노래를 위한 성경’임을 알 수 있으며, 구약성서에 대한 응답송으로서 그 가치를 발휘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에 구약의 메시지를 보완하는 본문으로서 구약성서를 설교한 후에 그에 대한 응답으로 연관된 시편의 한 구절을 추가한다면 매우 감동적인 설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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