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글터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따른 설교 기획 3 성서일과를 따른 설교 기획 및 원고 작성
기고문
작성자
한석문
작성일
2018-01-24 16:18
조회
2258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따른 설교 기획 3
성서일과를 따른 설교 기획 및 원고 작성
한석문 목사|부산동 해운대교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오늘의 주제에 꼭 맞는 말이다. 교회력에 따라 성서일과를 묵상하는 것이 구슬을 모으는 노력이라면, 묵상된 성서일과를 토대로 설교를 기획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것은 구슬을 꿰는 노력이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과정이 좋아야 구슬이 보배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 '과정'을 위해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상과 같이 성서일과를 묵상하고 설교기획 및 원고를 작성할 때, 필자의 경우 묵상된 결과를 따라 주로 두 가지 유형으로 원고를 작성하는 편이다.
1) 해당 교회력의 성서일과에서 찾아낸 '통일된 주제'에 대한 구약성서와 서신서와 복음서 '각각의 증언을 서론으로' 원고 작성을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강림절이 시작되는 오늘 성서일과의 주제는 한결같이 기다림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상태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습니다.(사63:19)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세를 낮추고 애타게 주님의 강림을 호소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사64:1-8)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종들에게 각각 일거리를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난 주인의 비유'를 들어 기다리는 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합니다. 기다림의 지혜는 때를 분별하는 것(막13:28-29)이고, 기다리는 자의 자세는 “깨어 있는 것”(막13:35)이라는 말씀입니다.
서신서에서 우리는 바울의 감사를 봅니다. 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감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에 깊은 확신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고전1:4-7)"
이렇게 서론을 시작한 후 본론에서는 각 성서일과를 보다 심층적으로 설명하고 이어 통일된 주제에 맞추어 원고를 작성해 간다.
2) 구약성서와 서신서와 복음서 중 하나를 대표 본문으로 정해, 대표 본문을 중심으로 원고를 전개하고 나머지 두 개의 성서일과는 참고 본문으로 활용한다. 성서일과가 3년 주기로 반복되기 때문에 자칫 실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대표 본문을 적절하게 바꾸어 설교하면 3년 후 다시 같은 성서일과가 찾아온다 해도 새롭고 신선한 은혜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유형으로 설교할 경우에도 각각의 성서일과의 통일된 주제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된 주제 그 자체에 설교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통일된 주제 안에 머물러 있을 때만이 공교회적 질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된 주제에 충실하다 보면, 그 주제를 둘러 싼 각각의 성서일과가 마치 연재소설처럼 시리즈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성서일과에 충실한 설교가 결코 딱딱하거나 지루하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성서를 보는 시선에도 탐심이 스며들 수 있다. 자신이 정한 목적에 맞추어 성서를 해석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갈 때, 우리는 탐심 가득한 시선으로 성서를 탐닉하게 된다. 그 탐심을 떨치지 못한다면 우리 설교는 심각하게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것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쇄신과 개혁을 위한 신구교 신학자들의 노력은 1965년 마침내 '교회력과 성서일과 개혁'이라는 합의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마음을 정해야 한다. 그간의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설교를 떠나 공교회적 질서 안에서 겸손히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성서일과를 따른 설교 기획 및 원고 작성
한석문 목사|부산동 해운대교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오늘의 주제에 꼭 맞는 말이다. 교회력에 따라 성서일과를 묵상하는 것이 구슬을 모으는 노력이라면, 묵상된 성서일과를 토대로 설교를 기획하고 원고를 작성하는 것은 구슬을 꿰는 노력이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과정이 좋아야 구슬이 보배가 되는 것이다. 바로 그 '과정'을 위해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 해석하려고 서두르지 말고 묵상에 전념해야 한다.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이해하고 설교를 기획해야 한다.
- 설교 기획의 예
설 교 기 획 | 연월일: 2014년 11월30일 |
교회력: 강림절 제1주 |
성서일과 및 개요 | |||||
구약성서 : 사 64:1-9 | 서신서 : 고전 1:3-9 | 복음서 : 막 13:24-37 | |||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며,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위해 강림해주시기를 고대하고 있다. |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말씀에 대한 확신으로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었다.(고전1:4-7) | 주님은 각각 두 개의 비유를 예로 기다리는 자의 자세와 기다림의 지혜에 대해 말씀하신다.(막13:28-35 | |||
주석 및 설교를 위한 힌트 | |||||
현재 그들의 사정은 앞 장에 슬프고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사63:19)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시작된 본문은,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실 주님께 대한 기대(사64:3-4), 저지른 죄악에 대한 부끄러움(사64:5-7),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낮추는 고백(사64:8)으로 이어진다. | 바울의 감사는 두 가지이다. ①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리스 도에 관한 말씀과 지식이 풍족한 것 (고전1:5) ②말씀이 그들안에서 이미 견고 하게 되어 있는 것 (고전1:6) ③그로 인해 여러 은사를 부족 함이 없이 받은 것 (고전1:7) ④그들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을 고대하고 있는것(고전1:8) |
주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주님을 '기다리는 자의 자세'로서 '때를 분별할 것'(막13:28-29)을 요청하신다. '종들에게 각각 일거리를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난 주인의 비유'를 통해서는 '기다림의 지혜'을 말씀하신다. 그것은 '깨어 있는 것'(막13:35)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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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과의 관계에서 본 본문들의 통합적 요점 | |||||
강림절은 기다림의 절기이다.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오실 아기예수님, 혹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내면의 여행을 떠나는 시기이다. 그러한 절기를 맞아 오늘의 성서일과는 각각 '기다림'에 관한 말씀들로 이루어져 있다. | |||||
제목: 기다림의 영성 | 목표: 기다림의 자세와 기다림의 지혜를 얻게 한다. | ||||
서론 | 헨리 나우웬은 ‘영원한 계절’에서 ‘신뢰와 기다림은 두려움과 자기 의심의 해독제가 된다’고 말했다. ‘기다림’의 다른 말은 ‘그리움’이다. 무엇인가가 그립기에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 그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 그리움의 뿌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에 닿아 있다. | 비고 '영원한 계절' 헨리 나우웬 그루터기 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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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 구약 : 유다 백성들은 기대와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과 고백을 거치면서 비로소 회복의 새 기운을 맞이하고 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사64:1, 2) 하는 이사야의 호소는 그보다 더 절절할 수 없다. 복음 : 무화과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되듯이, 우리 역시 계절과 풍경의 변화를 보면서 주님께서 가까이 오심을 알 수 있다. 나의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분의 말씀인 성경으로 내 영혼을 다듬어 간다면 무화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는 것이 어찌 설레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서신 :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 예수님에 관한 말씀과 지식이 내게 풍부하고, 내 안에 견고하게 되어 그 분을 향한 그리움이 날마다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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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강림절은 어두움을 통과하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절기이다. 앞으로 4주간의 강림절이 우리 모두에게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대와 설렘과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복된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1) 해당 교회력의 성서일과에서 찾아낸 '통일된 주제'에 대한 구약성서와 서신서와 복음서 '각각의 증언을 서론으로' 원고 작성을 시작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강림절이 시작되는 오늘 성서일과의 주제는 한결같이 기다림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상태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습니다.(사63:19)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세를 낮추고 애타게 주님의 강림을 호소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사64:1-8)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종들에게 각각 일거리를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난 주인의 비유'를 들어 기다리는 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합니다. 기다림의 지혜는 때를 분별하는 것(막13:28-29)이고, 기다리는 자의 자세는 “깨어 있는 것”(막13:35)이라는 말씀입니다.
서신서에서 우리는 바울의 감사를 봅니다. 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감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에 깊은 확신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고전1:4-7)"
이렇게 서론을 시작한 후 본론에서는 각 성서일과를 보다 심층적으로 설명하고 이어 통일된 주제에 맞추어 원고를 작성해 간다.
2) 구약성서와 서신서와 복음서 중 하나를 대표 본문으로 정해, 대표 본문을 중심으로 원고를 전개하고 나머지 두 개의 성서일과는 참고 본문으로 활용한다. 성서일과가 3년 주기로 반복되기 때문에 자칫 실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 대표 본문을 적절하게 바꾸어 설교하면 3년 후 다시 같은 성서일과가 찾아온다 해도 새롭고 신선한 은혜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유형으로 설교할 경우에도 각각의 성서일과의 통일된 주제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된 주제 그 자체에 설교의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통일된 주제 안에 머물러 있을 때만이 공교회적 질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된 주제에 충실하다 보면, 그 주제를 둘러 싼 각각의 성서일과가 마치 연재소설처럼 시리즈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성서일과에 충실한 설교가 결코 딱딱하거나 지루하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성서를 보는 시선에도 탐심이 스며들 수 있다. 자신이 정한 목적에 맞추어 성서를 해석하고 싶은 유혹에 넘어갈 때, 우리는 탐심 가득한 시선으로 성서를 탐닉하게 된다. 그 탐심을 떨치지 못한다면 우리 설교는 심각하게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것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쇄신과 개혁을 위한 신구교 신학자들의 노력은 1965년 마침내 '교회력과 성서일과 개혁'이라는 합의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마음을 정해야 한다. 그간의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설교를 떠나 공교회적 질서 안에서 겸손히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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