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주일-삼위일체 하나님과 신화(Theosis)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창 1:1-2:4a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 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 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 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 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 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 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 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 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 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 하셨음이니라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응송 | 시 8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서신 | 고후 13:11-13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 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 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복음 | 마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 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28:19을 묵상하십시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베푸 는 세례는 누구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것입니까?
② 고후 13:13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누구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까?
③ 창 1:1-5을 묵상하십시오. 태초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각각 어떠한 분이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삼위일체 하나님과 신화(Theosis)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승천주일과 성령강림절을 지나 성령강림 후 첫 주일이자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 주일을 맞았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삼위일체 고백만큼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그러나 해석하기 어려운 교리도 없습니다. 인간 이성으로 볼 때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종교적 사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적당한 용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테는 '신곡' 천국편 제33곡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결합된 신비를 보았을 때, 찰나의 섬광에서 직관한 것에 대해 고백합니다. 그때, 숭고한 빛의 광선속으로 깊이 들어가 그가 뵈온 분은 언어를 초월한 모습, 기억으로 미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숭고하고 높은 빛의 깊고 밝은 실체 속에
세 가지 빛깔, 같은 나비의 세 개의 원이
하나의 차원으로 나타났다.
두 개의 무지개처럼 첫째 원은 둘째 원에 반사되어 보이고,
셋째 원은 그 둘에서 균등하게 발해지는 불처럼 보였다.
아아, 내 말은 생각에 비해 얼마나 약하고 모자라는가,
그리고 이 생각 또한 내가 본 것에 비하면
'조금'이라는 말조차도 못할 만큼 모자라는 것이다.
아아, 영원한 빛이시여, 당신은 당신 안에만 계시고,
당신만이 당신을 아시고, 당신에게만 알려지고,
당신을 알면서 사랑하고 웃으시는 도다!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세 분이면서 한 분이시고, 한 분이면서 세 분이심을 표현하는 문제는 문학에서든 미술에서든 고심할 수밖에 없는 신비의 영역이었습니다. 니케아 신조,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기반이 된 아타나시우스 삼위일체 신학의 약점도 '삼위'가 가진 다양성과 '일체'가 가진 통일성을 설명해줄 용어를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가파도기아의 교부인 바실리우스가 삼위일체를 '세 실체, 한 본질(treis hypostaseis, mia ousia)'이라고 표현한 것이 가장 탁월한 고백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장 알기 쉽게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요 14:11).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아들이신 당신과 아버지가 일체(一體)임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 사실을 확증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교통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과 일치의 능력은 성령님의 몫이겠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성자는 성부를 알고 믿었으며,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고 붙들고 계셨습니다. 성령은 성자와 성부께서 서로 교통하는 통로이자 결합하는 힘이셨던 것입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삼위일체 신비를 믿는다는 진정한 뜻은 우리 존재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구축한다는 뜻입니다. 성자께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와 하나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성자와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부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게 됩니다. 그것을 테오시스(Theosis) 즉 '신화'라 하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초대교회는 이 가르침을 따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의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라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삼위일체 교리를 정리해서 지켜내려 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노력 속에는 후세의 신앙을 보다 풍성한 영성생활로 이끌어 주고 싶은 진심이 가득 배어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들을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님, 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전 존재로 설 때, 참된 변화가 우리 내면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먼저 복음서를 보시겠습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 마 28:16, 17
여기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시던 갈릴리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했지만 '그러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마태는 증언합니다. 이 의심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여길 것은 아닙니다. 의심은 예수님께 다가가려는 또 하나의 몸부림이고, 깊고 성숙한 믿음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마 28:18
몇몇 제자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중요한 선언을 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라고 할 때, 이 권세는 지상의 권세 뿐 아니라 온 우주의 권세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이 권세는 예수님의 겸손에 대한 보상으로 성부께서 주신 것입니다(빌 2:5-11). 그러면 주님은 이 권세를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20
'그러므로'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므로' 너희는 그 권세를 들고 모든 민족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에게로 가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세례를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위로부터 오는 은총을 받기 전에는 영적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 한 자리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동시에 계시는 장면을 보았습니다(마 3:13-17). 그렇듯 우리도 세례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진리의 말씀이 내면으로 스며드는 것입니다. 신성에서 하나이신 성삼위께서, 당신들을 계시하심에 있어서도 하나이시도록 먼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성삼위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 이 얼마나 훌륭한 순서입니까? 뿐만 아니라 주님 말씀 안에는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 밖을 배회하지 말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안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하라는 당부도 담겨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견고히 머무를 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은혜를 현실로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작별 인사를 하는 장면입니다.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고후 13:11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첫 번째 당부가 무엇입니까? "기뻐하라"입니다. 기뻐하려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당부는 "온전하게 되라"입니다. 온전하려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 당부는 "위로를 받으라"입니다. 참되고 진정한 위로를 받으려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네 번째 당부는 "마음을 같이 하라"입니다. 주님은 요 17:21에서도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해 하나가 되도록, 성부께서 성자 안에, 성자께서 성부 안에 있는 것같이 저들도 하나가 되어 성부와 성자 안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신바 있습니다. 다섯 번째 당부는 "평안하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당부는 "거룩한 교제를 가지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가 거룩하려면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바울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고후 13:13
그러니까 사도 바울에 따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교통을 통해서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연약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기쁨과 온전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나 신학적인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참으로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안에 충만한 은혜와 사랑과 교통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는 것은 신학적인 이해와 그다지 관련이 없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에 전념하는 생활, 즉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꼭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교리와 지식으로 알아야만 신앙의 깊이가 더해지거나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삼위일체 논쟁 당시 신학자들은 거의 같은 고백을 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용어 때문에 대립하기도 했고, 심지어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용어의 차이로 서로를 이단으로 몰아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일본질'이라고 표현한 아타나시우스와, '유사본질'이라고 표현한 바실레우스의 갈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갈등 끝에 아타나시우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고백을 남깁니다.니케아에서 정의된 모든 신조를 인정하면서도 오직 '동일본질'이라는 용어만 거부하는 자들을 적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같은 고백을 가지고 있지만 용어를 두고 논쟁하는 이들을 형제를 대하듯 대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아들이 다른 위격이 아니라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존재하고, 그분이 피조물이나 지어진 것이 아니라 참된 본성으로부터 나신 자이며, 그분이 말씀과 지혜로 아버지와 영원히 함께 있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동일본질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다."
세 분이 한 분이라는 교리나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굳이 어려운 신학 이론을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듯이 우리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서 기쁨과 위로와 온전함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진정한 의미는 내 전 존재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성자께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와 하나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성자와 하나를 이룰 때, 자연스레 성부 안에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요 14:23). 구약의 말씀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창 1:1, 2a
천지가 창조되기 전,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절망을 봅니다. 그러나 태초의 이 장면은 우리에게 절망만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은 우리에게 오히려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 1:2b-4
우리는 태초의 이 한 장면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시에 만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수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 그리고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입니다. 요 1:1과 요 1:14을 통해서 우리는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적 절망의 상황 즉 혼돈과 공허 위로 성령께서 부드럽게 선회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는데, 빛을 창조하는 능력은 '빛이 있으라'는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였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물러가고 빛이 우주의 질서를 회복했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서 내 존재의 혼돈과 공허와 어둠도 물러가고 질서와 행복과 밝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전 존재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견고히 구축됨으로써, 참 기쁨과 온전함과 평화가 내면 가득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삼위일체 하나님 신비를 교리와 지식만으로 알려하지 않는가?
②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나의 존재도 견고히 세워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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