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6주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나는 강합니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5:1-5, 9-10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 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 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 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 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응송 | 시 48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서신 | 고후 12:2-10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 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 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 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 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 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 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 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 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 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복음 | 막 6:1-13
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3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4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 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 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 시며 가르치시더라 7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8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9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10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 지 거기 유하라 11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 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고후 12:9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자신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삼하 5:10을 묵상하십시오.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③ 막 6:2을 묵상하십시오. 목수의 아들이요 목수이신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 앞에서 보이신 지혜와 권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나는 강합니다
7월의 첫 주일인 오늘은 많은 교회들이 맥추감사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여름에 지키는 추수감사절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오늘 여러분은 무엇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이 결여된 채,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측면에서 고백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사는 자칫 스스로의 소외를 심화시키는 양상으로 변질될 수도 있습니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롭고, 스스로를 아는 자는 명철하다(知人者智 自知者明)'는 말이 있습니다. 도덕경 33장에 나오는 글귀인데, 여기에서는 명철이 지혜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여겨집니다. 다른 사람을 아는 상대적 분별의 앎이 지혜라면, 스스로를 아는 자각의 깨달음은 지혜의 차원을 뛰어넘는 명철함과 통찰의 차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에서 이러한 명철이 빛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그 명철이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먼저 서신서의 말씀을 읽노라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자랑에서 그 명철과 통찰을 보게 됩니다. 2절에서 그는 자신이 영적 하늘의 위계에서 세 번째에 자리한 하늘에까지 이끌려갔던 환상과 계시에 대해 진술합니다. 그런데 그는 '부득불'(고후 12:1) 자랑한다면서 셋째 하늘에까지 다녀온 자신의 영적 경험이 '무의미한 자기 자랑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혹은 "사람들이 내게서 보고 듣고 한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게 될까봐"(고후 12:6 공동번역)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고후 12:2) 혹은 '이런 사람(such a man, KJV)'이라고 3인칭으로 칭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적 경험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려는 그의 겸손이 엿보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 12:5)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 고후 12:9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 고후 12:10
만약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할 거리가 있었다면, 그것 역시 '자기의 약한 것들'에 대한 감사였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가장 약한 그 때, 주님의 능력이 자신에게 머물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약한 것은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약한 것이 자랑일 수 있습니까? 오히려 그것은 숨겨야 하는 약점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서슴지 않고 자기의 약한 것을 드러냅니다. 그는 아주 고질적이고 치명적인 병에 시달렸습니다. 어찌나 괴로웠던지 그는 그것을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병에 시달릴 때마다 하나님께 그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후 12:9)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가 오히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어떻게 육체의 가시가 하나님의 은혜일 수 있습니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고후 12:7
여기에서 바울은 앞에서 본 환상과 계시가 바울 자신의 것이었음을 비로소 밝힙니다. 우주의 모든 별들을 넘어 셋째 하늘에까지 다녀온 자신의 영적 경험과 계시가 너무 황홀하고 큰 것이어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육체에 가시 즉 사탄의 사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육체의 가시가 오히려 마음이 교만의 바다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기둥이었음을 깨달은 그의 성찰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 세상으로 들어오는 통로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내 약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이 내게 임하는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어떤 약함이 있으십니까? 오히려 그 약함 때문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약함 때문에 우리는 교만함을 피할 수 있고,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은 우리에게 왕위에 오른 다윗을 보여줍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전역을 장악하고 명실상부한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의 용맹함을 먼저 머릿속에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 구약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삼하 5:10
다윗이 왕으로서 강성하여 간 것은 그가 지혜롭거나 용맹해서가 아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그가 점점 강성하여 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합니다. 처음 사무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새 왕을 찾아 자기 집을 찾아 왔을 때, 그의 아버지 이새는 그를 사무엘 선지자 앞에 당당하게 내놓지 못하고 오히려 형들만 사무엘에게 보여줬었습니다. 그것은 어린 다윗이 아버지 이새에게 조차 배제된 존재였음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들이 모두 자기 앞을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무도 선택을 하시지 않자 사무엘이 이상하게 여겨서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고 물을 때, 이새가 대답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삼상 16:11)여기에서 막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하가탄(הקטן)' 즉 '가장 작은 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새에게 다윗은 '가장 작은 자'였고, '양을 지키는 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것 중에 하나는 다윗의 어머니의 이름이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모든 왕들의 어머니를 기록하는 것이 신명기 사가의 습관입니다. 그런데 유독 다윗의 어머니만은 그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어머니의 신분이 왕으로서의 다윗과 걸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줍니다. 따라서 성서학자들은 다윗이 다른 형제들과 다른 이복 형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도 합니다. 다윗은 이렇게 아버지 이새에게 있어서나 형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나 왕이 될 만한 위치에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약함을 보호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외모로 판단하는 시선으로부터 보호하셨고, 장남을 위주로 형성된 가족질서로부터도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구약성경은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로부터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세움을 받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으로 인정받는 이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장로들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는 것에 대해 두 가지로 정당성을 말합니다. 첫째는 혈연(血緣)입니다.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 삼하 5:1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그들의 이 말을 직역하면 "우리는 당신의 뼈 그리고 당신의 살입니다.(we are thy bone and thy flesh, KJV)"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것보다 더 혈육관계를 분명히 표현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들의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우리가 너를 왕으로 인정해 주는 건, 네가 우리의 골육이기 때문이야" 그런 뜻입니다. 그 동안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광야에서, 또 블레셋 땅에서 비참하게 숨어 다닐 때, 다윗을 살갑게 대하지 않았던 그들로서는 정말 이례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는 두 번째 정당성은 정치적인 이유였습니다.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 삼하 5:2
직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전에 사울이 우리의 왕이었을 때에도 우리를 거느리고 지휘하신 것은 당신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혈연과 정치적인' 두 가지 정당성을 내세워서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삼하 5:3) 자기들 손으로 다윗을 전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주장과 달리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 삼하 5:10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내 미래를 열어 가시는 분은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이십니다. 내 골육도 내 미래를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정치적 동지도 내 미래를 책임질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약함을 보호하실 수 있고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강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지혜롭고 용맹스러워서 왕이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는 '하가탄(הקטן)' 즉 '가장 작은 자'였으며 초라한 도망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에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감사해야 하는 것 역시 자신의 의로움이나 지혜나 용맹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강성하게 하신 것을 그는 자랑해야 했고 감사해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고향에서 배척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 막 6:1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셨다고 말하면서, 이 고향이 나사렛을 뜻하는지 베들레헴을 뜻하는지를 마가는 굳이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마 2:23에서는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라고 했는데, 정작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이었습니다.(마 2:1) 오리게네스는 마태복음 주해에서 복음서 저자들이 "그 분은 베들레헴에 가셨다"든지 "그 분은 나사렛에 가셨다"라고 말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고향'이라고 표현한 까닭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마 13:57;막 6:4;눅 4:24)는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유대지방 전체에서 무시당하실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 막 6:2-3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그 지혜와 권능에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뿐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 기억 속의 예수는 그저 '목수 요셉의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들 목수'일 뿐이었고,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일 뿐이었습니다. 그 친숙함 때문에 오히려 예수님은 거절당하고, 자기 고향에서 아무 권능도 행하시지 못합니다. 그저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해서 병을 고쳐주신 것뿐이었습니다.(막 6:6) 그러나 동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똑똑하고 강하고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미련하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초라한 십자가에서 구원을 꽃피우셨고, 어둡고 음침한 무덤에서 생명을 꽃피우셨습니다. 이렇게 역설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역사는 우리의 약함에 대한 따뜻한 위로이기도 합니다. 한해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감사하고 계십니까? 이런저런 가시에 시달리며 혹시 감사를 잃고 계시지는 않으십니까? 가시는 제거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닙니다. 지금 나를 찌르고 있는 가시는 어쩌면 더 큰 은혜의 세계로 나를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장인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더 좋은 생의 조건을 갖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믿음을 갖추는 것입니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더 온전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바라보며, 도리어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겨 감사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기를 진정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나는 강합니다 | 고후 12:10, 표준 새번역
바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남은 반년도 감사함으로 채워가고,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로 수놓아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나의 강함과 지혜로움을 자랑하며 내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② 나의 약함을 자랑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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