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한석문 담임목사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삼상 16:1-13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 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 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 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 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 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 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 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응송 | 시 2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서신 | 엡 5:8-14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복음 | 요 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대답하되예수라하는그사람이진흙을이겨내눈에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바리새인중에어떤사람은말하되이사람이안식일을지키지아 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17이에맹인되었던자에게다시묻되그사람이네눈을뜨게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유대인들이그가맹인으로있다가보게된것을믿지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이는너희말에맹인으로났다하는너희아들이냐그러면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그부모가대답하여이르되이사람이우리아들인것과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그러나지금어떻게해서보는지또는누가그눈을뜨게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30 그사람이대답하여이르되이상하다이사람이내눈을뜨게하 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 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 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 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 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40바리새인중에예수와함께있던자들이이말씀을듣고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묵상 나눔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이 날 이후로’ 다윗이
노자는 도덕경 제15장에서 ‘보차도자 불욕영(保此道者 不欲盈)’ 즉 “도 (道)를 체득한 사람은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노자 이야기’1)에서 이 말 뜻을 “낡지 않으면서 새것을 만들지 도 않는다”고 풀이해 줬는데, “낡아지지 않으니까 새것을 만들 까닭이 없 다”는 의미이겠습니다. 이 말은 우리 마음을 송구스럽게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모르는 까닭에 극단의 주장에 빠지거나, 자아가 낡아진 까닭에 자 꾸 새것을 채워 만회하려고 합니다. 오늘 성서일과는 그런 과거의 어리석 음을 버리고, 낡지 않는 새 자아에 눈뜬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구 약의 말씀은 우리에게 고대 이스라엘이 부족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오 는 과도기 때 일어난 한 일화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대표한 인물은 사무엘이라는 사람인데, 그는 제사장이자 선지자였고 또 사 사로서 고대 이스라엘의 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 엘의 장로들이 당시 라마에 있던 사무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 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 성경 은 이 때 사무엘이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나 그가 여 호와께 그 문제로 기도했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백성이 한 말을 다 들어주라”(삼상 5:7)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심사숙고 끝에 사울을 이 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이후로 사무엘은 종교를 대표하고, 사울은 정치를 대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무엘과 사울의 관계가 악화되는데, 그 갈등은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고, 종교적인 문제에 서 비롯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울에게 보내 아말렉을 쳐서 심판할 것을 명하십니다. 과거에 출애굽한 히브리들이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막 진입하려고 할 때, 아말렉이 그들을 공격한 일이 있었는데(출 17:8-13), 그 일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맡기신 것이었습니다. 사울 은 당연히 말씀에 순종해서 이 전쟁에 나서야 했고, 이 전쟁은 ‘침략 전쟁’ 과는 다른 ‘거룩한 전쟁’이었습니다. 거룩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전쟁의 승 리는 여호와의 것이어야 했고, 사울의 군대는 자기들을 위해 전리품을 챙 기지 말고 소나 양까지 철저하게 진멸해야만 했습니다.(삼상 15:3) 그러나 사울과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나 양 중에서 좋은 것은 남기고(삼상 15:9)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진멸합니다. 사울은 여호와께서 임명한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순종할 마음 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 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1)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사울에 게 보내 당신께서 그를 버렸음을 선언하게 하시는데(삼상 15:23), 그렇게 해서 사울이 폐위(廢位)된 것이 오늘 구약의 말씀이 있게 된 배경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폐위된 사울을 대신해서 새 왕을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사울은 아직 왕이었습 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이 있습니다. 비록 사울이 하나님의 명 령에 불순종했고,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다 할지라도 그건 어디까지 나 종교적인 영역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보았을 때, 다른 왕을 세 우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건 엄연히 역모에 해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사울 왕이 그 사실을 눈치 챈다면 사무엘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삼상 16:2a) 그러자 하나님께서 한 가지 묘책을 사무엘에게 알려주십니다.
마침내 그 묘책을 들고 사무엘이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베들레헴은 예루 살렘 부근에 있는 마을인데, 예수님의 출생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훗 날 누가는 눅 2:11에서 이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불렀습니다. 사무 엘은 그곳에 가서 이새의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하고, 이새의 아들들은 장남 부터 차례대로 사무엘 앞에 섭니다. 그 장면으로 한 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새의 큰 아들 엘리압이 가장 먼저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엘리압은 히브리어로 ‘엘리아브’ 즉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그 는 이름도 은혜로운 데다가 용모마저 준수했던 것 같습니다. 엘리압의 잘 생긴 외모에 반한 사무엘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 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시며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비주얼(visual)’ 즉 외 모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 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 을 보느니라” 사람은 드러난 용모와 출신과 배경을 보지만 하나님은 감춰 진 내면을 보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깨달아야 하고, 이 차이를 좁힐 수 있어야합니다.이새가데리고온일곱명의아들들을다보았 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중 아무도 선택하시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들이 없느냐고 묻자 이새가 사무엘에게 말합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며, “그가 오기까지 는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합니다. 마침내 다윗이 왔습니다. 양을 지 키다 급히 왔으니 복장도 초라했을 텐데, 그런데 사무엘의 눈에는 다윗이 빛나 보였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천해 보이 기도 하고, 아무런 꾸밈이 없어도 빛나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 씀에서 중요한 건, 사무엘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 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은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붓습니다. 즉석에서 왕위 즉위식을 가 진 겁니다. 이로써 사무엘은 자기 역할을 다 끝냈습니다. 그는 라마로 돌 아갔고, 이후로 이스라엘 역사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스라 엘 역사의 주도권은 다윗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생각해 봅니다. 이후 로 다윗의 인생이 행복했을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는 이후로 돌이킬 수 없는 간음과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역 으로 부자간에 목숨을 건 권력투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성경과 초기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그가 위대한 인물 로 평가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 말 씀의 마지막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이 날 이후로”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한 순간이 아니라 이후로 평생을 계속해서 여호와의 영이 다윗과 함께 하셨다는 뜻 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윗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전쟁 전문가로서, 혹은 정치의 대가로서, 혹은 다윗 궁을 지은 위대한 건축가이거나 예수 그리스 도의 조상이어서가 아닙니다. 양을 지키는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 “이 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는 말은 그의 평생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입니다. 바로 그 삶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인해 우리는 다윗에 게 호감을 갖는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은 다윗처럼 쓰러질 때도 있고, 또 어느 순간은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시키셔서 인격과 행위 전체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이러한삶의여정가운데서중요한건,내한계와가능성모두를 인정하는 겁니다. 시인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이렇게 자신 의 나약함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또 태조의 아침)
이러한 시를 두고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했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서 정시에 우수했던 것이라고 추측도 해보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뼈가 강해 서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내 어느 순간 슬프고 아름 답기 한이 없는 이런 시를 남깁니다.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어떻게 내 인생 가운데서 약하거나 추한 생각과 삶의 영역을 줄이고, 십자가가 허락된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지금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한 순간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을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성경의 이 증언처럼 ‘이 날 이후로’ 저 와 여러분도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된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 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전혀 앞을 보지 못하던 맹인이 ‘이 날 이후로’ 눈 을 떠서, 처음에는 사람만을 알아보다가, 점점 예수님을 주님으로 알아보 는 과정을 매우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제자들은이맹인을보았을때”랍비여이사람이맹인으로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 하 고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차원의 대답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맹인에게 다가가셔서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발라주십니다.(요 9:6)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습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된 사건을 두 고 마을에는 일대 소란이 벌어집니다.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요 9:8)고 놀라워하며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를 고쳐주신 예수님을 향해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 라”(요 9:16)며 냉소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 서는 우리에게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는 어떠하든지 묵묵히 ‘그 날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날 때부터 맹 인이었던’ 그 사람은 모든 사람들과 대립되는 입장에 서 있었지만, 그러나 그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십시오.
사람들이 그를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물 으십니다.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 9:35) 그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요 9:36) 주님께서 말씀하십 니다.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요 9:37) 그리고 그는 마침내 “피스튜오 퀴리에(πιστεύω κύριε)”,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 9:38) 하며 땅에 엎드립니다. ‘πιστεύω κύριε’라는 표현은 완 전한 신앙고백인 동시에 예배의 언어입니다. 여기에서 그의 시선은 완전해 집니다. 그리고 그의 존재마저 완전해집니다. 그는 육제적인 시력을 얻었 을 뿐 아니라 영광의 주님을 알아볼 수 있는 영(靈)의 눈도 뜨게 되었습니 다. 예수님께서는 주변에 있는 바리새인들을 둘러보시며 의미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라 심판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택함 받은 이후, 오히려 영적 맹 인의 삶을 살고 만 안타깝고 비극적인 사람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어떤 절기입니까? 주 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스스로 본다고 착각하고 살아가던 우리 가 나의 소경됨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절기입니다. 육의 눈을 감으면 영의 눈이 뜨입니다. 영의 눈을 뜨고 앞에 엎드려서 “주여 내 가 믿나이다” 하고 고백할 때,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듯, 이 날 이후로 우리도 성령에 감동된 삶을 살 것입니다. 다메섹 으로 가던 사울은 스스로 ‘본다’는 자부심에 가득 찼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의 빛 앞에서 소경이 되었을 때, 그 날 이후로 바울은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은총을 체험한 사도 바울이 서신서에서 이렇게 촉구합니다.
자기가 어두움임을 깨달은 사람만이 빛이 되려고 몸부림 칠 것입니다.그 리스도안에서빛의자녀가된사람은빛의열매를맺는삶을살아갈것입 니다. 그렇게 어둠을 이기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은, ‘낡아지지 않기 에’ 새것을 만들 까닭도 없게 됩니다. ‘그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 게 감동되듯, ‘그 날 이후’ 소경이 성령에 감동된 삶을 살아가듯, ‘그 날 이 후’ 바울이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아가듯, 우리 또한 성령에 감동된 사람이 되어 빛의 자녀로서,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