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한석문 담임목사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본문 | 딤후 3:12-17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 으리라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 도 하나니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일을 행할 능력 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묵상 나눔
오직 성경만으로 #1
1 오직 성경만으로종교개혁의 원음을 찾아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16세기로 접어들면서 서구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변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중세와 연결되었던 기독교 신앙의 양식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길 을 내주게 되는데, 무엇보다 매혹적이고 의미 있는 발전은, 교회의 믿음 체계와 도덕성의 구조를 좀 더 성서적인 근거로 되돌리고자 애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16세기 초에 발생한 이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을 교회 의 역사는 한 단어로 압축해 ‘종교개혁’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흔히 ‘ 종교개혁’ 하면, 그 결과로 프로테스탄트교회 즉 개신교의 탄생만 생각하 지만, 사실 종교개혁은 이후로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의미 있는 쇄신과 개 혁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사학자들은 이 시대에 일어난 중요 한 사건들로 ‘사회정치적으로 분화된 여러 종교개혁들, 특정 종파를 따라 나뉜 유럽의 탄생,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양쪽의 개혁 강화’를 꼽습니다. 게다가 종교개혁은 근대 기독교 신학이 발전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 는데, 종교개혁시대 후반에 이루어진 중요한 발전은 서구 기독교가 유럽이 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종 교개혁’이라고 말하지만 전통적으로 역사가와 신학자들은 유럽 전역에서 지리적 위치와 종교적 의제에 따라 다양한 개혁운동이 일어났던 사실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들’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1517년-1525년경까지 종교개혁은 독일 북동부지역에서 ‘마틴 루터 (Martin Luther)’와 비텐베르크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규범이요 척도(canon)이다”라는 루터의 이 외침 은 16세기 종교개혁가들, 아니 프로테스탄트 모든 교회들의 성경관을 대변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배제하고 또 다른 책들을 읽음으로 우리 는 무엇을 성취하는가? 다른 책들은 우리를 죽이는 힘을 가졌지만, 성경 을 제외한 그 어느 책도 우리에게 위안을 줄 힘을 가지지는 못한다.” 루터 는 성경이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주장하며, 하 나님 자신이 성경의 유일한 저자이심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교황을 비 롯해 그 누구도 성경을 점령하거나 관리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성경만이 우리를 관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1520년대 초반, 스위스 취리히에서도 종교개혁운동이 이 루어지게 되는데, 독일의 종교개혁이 주로 학문적인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면,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성경의 모범을 따라 교회의 도덕과 예배를 개혁 하려는 다양한 노력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개혁운동은 ‘울리히 츠빙글 리(Ulrich Zwingli)’와 ‘하인리히 블링거(Heinrich Bullinger)’가 시작합니 다. 츠빙글리는 ‘성경주의자’라 할 만큼 성경에 입각하여 설교를 하였었고, 성경에 근거하여 교회 안에 있는 인간적인 고안물들을 철거했습니다. 1550년대 개혁운동의 본거지가 제네바로 옮겨지면서 ‘장 칼뱅(John Calvin)’이 핵심대표자로 등장을 하고, 이 운동은 마침내 오늘날의 장로교 회인 개혁교회를 탄생시키게 됩니다. 칼뱅 역시 모든 교회의 전통보다 성경을 최고 우위에 두었고,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작품들보다 성경이 우선 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급진 종교개혁 세력인 ‘재세례파( Anabaptist)’도 있었습 니다. 재세례파란 문자적으로 ‘다시 세례를 주는 자’이고, 이들은 ‘공개적 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한 사람’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의 여파로 발생했지만, 츠빙글리가 자신이 내 건 개혁원리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콘라트 그레벨(Conrad Grebel)’을 중심으로 재세례파를 형성했습니다. 콘라트 그레벨은 츠빙글리 가 ‘오직 성서로만(sola scriptura)’이라는신학적 원리를 따른다고 고백하 면서도 세속정부와 결탁해서 행정관들에게 아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성경이 허용하거나 명령하지 않은 관례들을 존속시킨다고 보고 반발했습 니다. 그럼에도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성경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 신앙의 원천이요 규범’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루터나 츠빙글리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 덕분입니다. 특히 루터가 신구약성경을 자국어로 번 역해서출간하기전까지유럽의기독교신자들은성경을직접읽을수있 는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루터 역시 1505년 수도원 입회 이후에 처음으로 성경을 받아볼 정도였습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성경 을읽을수없었던이유는성경이단순히각나라말로번역되지못해서 만이 아니고, 고대교회로부터 종교개혁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직접 파 피루스와양피지에필사한성경이보관도이동도힘들뿐아니라워낙고 가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교부들이나 감독들 그리고 일 부의부유한귀족층들외에는감히소유할수없었습니다.그러고보면오 늘날 우리가 성경책을 흔하게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참 복인데, 그럼에도 잘 들고 다니지 않는 이유는 너무 흔해서 귀한 줄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성경이 대중들에게 읽혀질 수있었던건종이가유럽 사회에 전해져서 막 제지술 이 발달되기 시작하던 13세 기경입니다. 제지술이 발달 되고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 쇄술이 발명되면서부터 일 반 신자들도 성경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구텐베르크 라틴어 성경(1456)’을 비롯해서 ‘취리히 성경(1527-30)’, ‘제네바 성경(1560)’ 등 유럽의 각 나라 교회들마다 성경을 봇물처럼 출판하고 보 급했습니다. 루터가 1522년 신구약의 일부를 번역해서 ‘9월 성경 (September Bible)’을 출판하자 무려 110번의 추가 인쇄가 이루어졌고, 문 자를 읽을 수 있는 독일인 중 3분의 1이 성경책을 소유할 정도로 독자층이 넓어졌습니다. 당시 필사본 1권의 가격이 500 굴덴, 우리나라 돈으로 약 5억 원이었다면, 루터가 인쇄해서 출판한 성경책은 1.5 굴덴 즉 우리나 라 돈으로 약 150만 원이었습니다. 필사본에 비하면 많이 싸지긴 했지만, 그래도한달월급을줘야구입할수있는금액이었습니다.그럼에도그들 은 기꺼이 성경책을 사서 읽었고, 개혁자들은 힘을 다해 성경을 만들어내 었습니다. 왜 그토록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을 중시하고, 성경읽기의 중요 성을 강조했을까요? 그들은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 안에서 교회의 본질적 인 성격을 규명하려고 노력을 한 것입니다.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내세운 구호는 ‘아드 폰테스(ad fontes)’ 즉 ‘원천으로 돌아가자’였습니다. 그들은 고전에 대한 탐구를 통해 당대의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 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은 성경과 초대 교부들의 문헌들을 탐구했습니다. 그들은 당대 학문 방법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법칙이 성경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교황도 교회도 아닌 그리스도께서 직접 가르치고 의도한 기독교가 무엇인지를 찾 으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모두가 성경을 소유할 수 있 을 때, 기독교가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봅시다. 그 들은 바로 평범한 대중들이 아니었습니까?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화를 내실까요? 저는 농사꾼은 물론이고 대장장이와 석 공,심지어창녀나포주,투르크인도성경을읽을수있도록허용해야한 다고봅니다.그리스도가이런사람들을거부하지않는이상저역시그들 이 성경을 읽는 것을 거부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은 성경을 기반으로 출발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이 ‘바이블클라스’가 되기를 원하했고, 칼 뱅은 제네바가 최고의 ‘바이블학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루터와 칼뱅 모 두성경번역과성경주해,성경강의,성경강해설교에서타의추종을불 허했습니다. 루터의 책이나 칼뱅의 저서인 기독교강요를 보더라도 그들이 성경에 얼마나 정통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츠빙글리 역시 취리히 대성 당 사제로 취임했을 때, 마태복음 1장부터 강해설교를 한 것은 유명합니 다.오늘함께읽은본문은사도바울이믿음의아들디모데에게보낸편 지입니다.이편지를기록한사도바울은당시로마의감옥에갇힌상태였 습니다. 그럼에도 이 편지는 바울의 서신들 가운데 가장 사적인 편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영적인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친밀감 이 편지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 그대로 직역하면 “그러나 너는 네가 배웠고 확신하게 되었던 것들 가운데 머물라”입니다. 이 말씀은 굳이 어떤 상황을 전제하지 않아도그자체로공감이가는말씀이지만,그러나어떤상황에서,또어 떤목적으로사도바울이이말씀을했는지를알면더큰공감을느끼게 됩니다. 14절에서 한 절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 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딤후 3:13)라며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말씀을 하고, 한 절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고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디모데는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에 의해 박해를 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상황에 대한 해법으로 바울은 “그러나 너는 네가 배웠고 확신하게 되었던 것들 가 운데 머물라”며 당시의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과 대조되는 삶을 디모 데에게 당부한 것입니다. 그러면 디모데가 배웠고 확신하게 되었던 것들이 란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말씀합니다.
디모데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누구로부터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 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 성경’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녀에게 성 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에 대해 가르쳤는데, 그 가르침의 방법 과 원리와 내용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의 주제 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잠 1:7;9:10)과 ‘부모의 훈계를 따르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출 21:15-17;잠 1:8;엡 6:1-3) 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들은 자녀들을 사랑의 정신으로 양육하고(시 103:13), 자녀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수 24:15)이렇게 유대인들의 어릴 때 자녀교 육은 부모에 의해 이루어졌고, 성장하면서부터는 제사장이나 레위인 혹은 선지자나 랍비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대상 27:32) “성경을 알았나니” 에서 성경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디모데가 어렸을 땐 신약성경이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 성경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했습니 다. 그러니까 ‘구원에 이르는 지혜’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첫 번 째 목적이었습니다. 시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 시 19:7, 8
바울은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배 우고 확신한 일’ 즉 ‘말씀 가운데’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하는 겁니다. 이제 바울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성경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설명을 덧붙입니다.
여기에서의 ‘모든 성경’이란 구약성경을 의미하고, 또 각각의 개별 성경 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뜻입니다. 마치 흙으로 빚어져 흑에 지나지 않 던 인간이 하나님의 호흡 즉 생기에 의해 ‘생령(生靈)’이 되었듯이, 사람의 손으로만 기록한 글이라면 그저 글에 지나지 않고, 생명 없는 낱말이나 문 장에 지나지 않는 것들인데, 그러나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靈)’이 임하고, 그 감동에 의해 기록된 글인 까닭에 이 말씀은 그대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계시하실 때, 계시가 정확하게 보 존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시를 기록하라고 명하셨고(출 17:4;렘 30:2; 합 2:2), 삼위일체, 성육신, 속죄 사역 등과 같은 중요하고 심오한 진리들이 오류가 없이 정확하게 표현되고 보존되며 전달되도록 하 기 위해 거기에 성령의 감동을 더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선지자들이 하나 님의 대리자임을 밝힘으로써(신 18:18), 그리고 사도의 편지가 주의 명령 임을 주장함으로써(고전 14:37), 선지자와 사도들의 기록이 그들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 혹은 ‘주를 힘입은(살전 5:27)’ 기록임을 분명히 하 고 있습니다. 성경은 소설이나 우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과 영광과 인간의 구원에 대해 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권위 를가집니다.하나님의권위를가진성경인까닭에참되고신뢰할수있는 기록이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유일한 기 준이 되는 것입니다.(시 19:7) 뿐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씀합 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첫 번째 목적이 ‘구원에 이르는 지혜’라고 15 절에서말씀한바울은 17절에와서성경을주신두번째목적을밝힙니 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온전케 될 수 있습 니까? 성경을 통하여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씀은 헬 라어로 ‘아로티오스(ἅρτιος)”완전히 적합하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완전히 적합하게 만들어주는 말씀입니다. 중 세교회가 왜 타락했을까요? 성경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고위성직자들이 성경을 독점하고, 바르게 말씀을 가르쳐주지 않을 까닭에 그들은 교회의 타락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무엇이 다를까요? ‘헬무트 틸 리케(Helmut Thielicke)’는 현대교회가 말씀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우리 는 점점 더 말씀으로부터 물러 나와서 의식 안에 있는 쓰레기들을 말하고 있다. 설교가 마치 수다처럼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 되었다”고 경고하며, 설교를 ‘잡문’으로 만드는 교회의 행태를 규탄했습니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1923년 9월 독일 ‘엠덴’에서 열린 개혁교회연맹총회 주제 강연에 서,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개혁’임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이 말씀 하신다.(Deo dixit)”라는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고백과 ‘성령의 말씀으로서 의 성서’가 개혁교회의기본원리이자 정체성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마틴 루 터는 크나 큰 신앙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가 번역한 신구약성경은 독일 어의 표준이 됐습니다. 당시 가톨릭교회도 각국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독일에서만 17개 판본의 독일어 성경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무지와 미신과 부도덕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성경을 바르게 ‘읽고’ ‘묵 상하고’ ‘깨달음으로써’만 가능합니다. 교회가 바로 서느냐, 넘어지느냐의 운명은 ‘성경’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기독교 역사에서 종교 개혁자들이 ‘성경만으로’라고 외친 것은 신앙의 유산으로 소중하게 받아들 이고 계승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교회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따른 말씀 묵상’은 ‘성경의 사적(私的) 이해’를 경계하고, 공교 회적 질서 안에서 성경을 보자는 것에 그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애정을 가득 담아 ‘사적 (私的)’ 편지를 보냈듯이,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인 여러분에게 애정 을 가득 담아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성경입니다. 잠을 자 다가도 일어나 편지를 읽는 연인처럼, 늘 설렘이 가득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쳐 읽으며, 성경에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 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우리 모 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