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한석문 담임목사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미 6:1-8
1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는 일어나서 산을 향하여 변 론하여 작은 산들이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
2 너희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아 너희는 여호와의 변론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과 변론하시며 이스라엘과 변론하실 것이라
3 이르시기를내백성아내가무엇을네게행하였으며무슨일로너를 괴롭게 하였느냐 너는 내게 증언하라
4 내가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5 내 백성아 너는 모압왕 발락이 꾀한것과 브올의 아들 발람이 그에게 대답한 것을 기억하며 싯딤에서부터 길갈까지의 일을 기억하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공의롭게 행한 일을 알리라 하실 것이니라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응송 | 시 15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서신 | 고전 1:18-31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 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내가지혜있는자들의지혜를멸하고총명한자들의총 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것 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함이라
복음 | 마 5:1-12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여기는자는복이있나니그들이긍휼히여김을받을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묵상 나눔
삶이 빛이 된 사람
삶이 빛이 된 사람
오늘은 주현 후 제4주일입니다. 성탄절 이후로 지난 주일까지 계속해 서 우리는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묵상했습니다. 빛이란 궁극적 으로 구원과 생명 혹은 행복이나 기쁨 같은 하나님의 신비를 가리키는 것 으로서, 멸망과 죽음 혹은 불행이나 고통 같은 악마적 광태와 또렷하게 대 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멸망과 죽음, 불행이나 고통 같은 악마적 어둠의 세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를 우리에게 보내셨고, 우리를 그 빛 가운데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분의 빛을 받아, 우리 역시 빛이 될 뿐만 아니라, 빛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산상수훈 가운데 팔복인 데, 바로 이 팔복 속에 빛으로 살아가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가 선명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곰곰이 읽어가다 보면 왠지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낍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우리가 가능한 피하고 싶어 하는 생의 곤경이라든지 불유쾌한 상황들을 복이라고 말씀하시는 까닭일 것입 니다. 가난하고 애통할 뿐 아니라, 굶주리고 모욕당하고 박해 받는 삶을 좋아할 사람이 그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히려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배부 른 삶이 훨씬 대중적으로 인기 있고 매력적이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가 르침은 아무리 후하게 보려 해도 반문화적(counter-cultural)인 것 같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진정 한 행복, 지속적인 행복의 길이 바로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팔복은 ‘하나님과 접속된 사람’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팔복은 하나님의 빛이 예수라는 프리즘을 통해 굴절되어 나 타난여덟가지색깔들이라할수있습니다.바로그여덟가지복의색깔 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건 대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생의 조건 과 상관없이 자기의 약함과 작음을 인식하고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삶이 은총임을 알기에 하루하루를 감사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려 합니다. 바로 이것이 마음이 가 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또한 낯선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참 분명합니다. 지금 자기만족에 겨운 사람은 하늘의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스스 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의 작음을 자각합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쫓겨나 광야를 떠돌던 하갈은 엄습해오는 죽음을 느끼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이 그에게 다가가 위 로하시고 보호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 울음을 터뜨립니다.(마 26:75) 그 울음이 없었더라면 베드 로는 반석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서 자기 삶을 돌아보 며 애통해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연 약함을 알기에 이웃의 연약함을 헤아리고, 그 연약함과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마음을 모읍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 해야지” 했던 윤동주는 바로 그런 애통함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 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깊은 위로가 주어진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온유함은 사나움에 대비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제멋대로 날뛰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젊은 날의 모세는 성정이 급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히브리인을 박해하는 애굽 관리를 때려죽였습니 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40년 간 연단을 받으면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성경은 변화된 모세에 대해 “온유함이 지면 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3)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온유한 분이 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좋고 싫음으로 사람들을 편 가르지 않습니다. 모 두를 받아 안습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물리치지 않아 더 높아지고, 강
은작은물줄기하나도거부하지않아깊고넓은바다에이릅니다.온유한 사람은 스스로도 편안하지만 다른 사람도 편안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그가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든 평안합니다. 이런 복이 여러분에게 주어지 기를 기원합니다.
이말씀은일상에안주한채살아가는우리에게큰도전이됩니다.’주 림과 목마름’은 견디기 어려운 원초적 결핍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을 따르는 사람들이 의(義)의 결핍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 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무너진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가 무덤덤 한 이유는 그만큼 하늘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성서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 사상이 하나님의 의(義)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은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함석헌은 ‘오늘 다시 그리워지는 사람들’이라 는 책에서 이승훈 선생이 했던 말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도둑질은 의가 아니다. 간음은 의가 아니다. 이웃을 괴롭힘은 의가 아니다. 자기를 높이 고자기만잘살려는것은의가못된다.의(義)속에살리라.의(義)속에 살리라.” 바로 이런 의기(義氣)가 사라진 까닭에 오늘날의 기독교가 힘을 잃은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 이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우리가잊지말아야할것이있습니다.우리가추구해야할의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날카롭고 차가운 의로움이 아니라, 불의조차 안아 서 녹일 수 있는 부드럽고 따뜻한 의로움입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 영혼 은 든든해집니다.
긍휼이라는 단어는 여성들의 경험과 관련된 말입니다. 여성들은 태중의 생명을 건강하게 돌보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침내 출산이 라는 고통을 감내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자식의 몸은 분리되지만 그 마음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외면할 수는 있어도 어머 니가 자식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병든 자식이라도, 못난 자식이라도 어 머니는 소중히 여기십니다. 어머니는 한없는 품이 되어 자식을 부둥켜안습 니다. 예수님도 모성적 사랑으로 병든 사람, 귀신 들린 사람, 소외된 사람 들을 품어 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관심 밖에 있는 사람은 없었습 니다. 소위 거룩하다는 사람들은 그런 예수를 두고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 고 비아냥댔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음이야말로 천국에 속한 마음입니다. 그 따뜻함이야말로 기적의 원천이 었습니다. 자비로움은 줄어들고 사나움이 증폭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 에서 자비로움으로 사는 것, 그것이 주님의 자비를 경험한 우리의 소명입니다. 이웃의 허물은 덮어주고 약한 부분은 북돋워주시기 바랍니다. 자비 로운 마음이 따뜻한 세상을 만듭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본래 마음에 불순물이 끼지 않 았다는 말일 겁니다. 그러나 세상에 티 한 점 없이 맑기만 한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욕망과 이기심의 찌꺼기가 억겁 이 되어서 우리 마음을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미움, 시기, 다툼, 교만, 악 의, 불손, 사나움, 오만함, 비겁, 이기심 등등 우리 마음은 나도 모르게 이런 것들로 뒤덮여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게 만듭니다. 가끔 눈이 부시도록 파란 하늘을 보거나 물빛이 투명한 호수를 보면울고싶어집니다.왜그럴까요?깨끗함에대한갈망이우리속에있 기때문이아닐까요?”나도한때는저하늘처럼,저호수처럼마음깨끗 했는데, 어쩌다 지금처럼 탐욕에 내어준 마음이 되었을까?” 하며 스스로 마음 슬퍼질 때가 있습니다. 새해에는 마음의 깨끗함을 회복하시기 바랍니 다.그러기위해서는자꾸닦아야합니다.잘닦인창문이바깥사물을왜 곡 없이 보여주듯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왜곡 없이 봅니다.
분쟁과 갈등이 끊일 새 없는 세상에 사느라 우리는 지쳤습니다. 하루라 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안식을 누리지 못하여 우리 영혼은 묵정밭으 로 변했습니다. 화평이란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동화작 가인 하마다 게이코는 ‘평화란 어떤 걸까?’라는 책에서 다름이 존중되는 세상이 평화의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평 화란내가태어나길잘했다고하는것.평화란네가태어나길잘했다고하 는것.그리고너와내가친구가될수있는것.”이념이다르다고편가 르지않고,존재를함께경축하는것이평화즉화평이라는말입니다.화 평을 만드는 사람은 누군가의 설 땅이 되어줍니다. 화평을 만드는 사람은 삶이 은총임을 상기시켜줍니다. 화평을 일구는 사람은 이런저런 분리의 담 을 허물어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도록 만듭니다. 수류화개(水流花開) 즉 물 은 흐름으로서 꽃이 피어날 조건을 만들어주듯이 화평을 위해 애쓰는 사 람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말은 이 세상이 불의하다는 사실을 전제 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세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려움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선지자들은 동시대 속에서 박해를 받거나 죽임을 당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큰 생명과 하나가 된 까닭에잘산사람들이라말할수있겠습니다.그렇게하나님이뜻을수행 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십 니다. 11절과 12절에서 주님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 니”라는 당신의 말씀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 주십니다.
결국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 사람은 주님과의 완벽한 일치 를 이룬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 그리스 도인인까닭에순교적삶을사는사람입니다.그는이미천국에사는사람 입니다. 행복이란, 무엇을 갖거나,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이루는 문제가 아닙니다. 행복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들여 그 빛이 내 삶이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미가 선지자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복을 누리려면 비움과 채움, 이 두 가지를 잘해야 합니다. 자기 를 비우고 하나님을 채우는 것 그것이 복 되게 사는 길입니다. 서신서의 말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미련하고 약하며 천한 사람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고 강하고 유력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십니까? 미련하고 약하며 천한 사람들의 가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드러나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에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우리의 가치’가 있습니 다. 나의 미련함과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강함이 돋보이지 않는다 면, 우리의 못남은 저들의 잘남보다 자랑스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바울은 더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여기 바울에 따르면 우리의 정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 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의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로 돌 아서야할그리고내심령이가난해야할좀더분명한이유를발견합니 다. 우리의 출생이 이미 ‘하나님께로부터’이고, 예수님만이 내 지혜와 의로 움과 거룩함과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새해에 여러분이 복 받기를 소망합 니다. 내 존재의 기원이시고, 내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이신 주께 서우리내면을온통채워주셔서,내심령의가난이오히려천국을담는 텃밭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