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 한석문 담임목사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49:1-7
1. 섬들아내게들으라먼곳백성들아귀를기울이라여호와께서태 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 하셨으며
2. 내입을날카로운칼같이만드시고나를그의손그늘에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3. 내게이르시되너는나의종이요내영광을네속에나타낼이스라 엘이라 하셨느니라
4. 그러나 나는 말하기를 내가 헛되이 수고하였으며 무익하게 공연히 내힘을다하였다하였도다참으로나에대한판단이여호와께있 고 나의 보응이 나의 하나님께 있느니라
5.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는 태에서부터 나를 그의 종으로 지으신 이시요 야곱을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시는 이시니 이스라엘 이 그에게로 모이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 보시기에 영화롭게 되었으며 나의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셨도다
6. 그가이르시되네가나의종이되어야곱의지파들을일으키며이 스라엘중에보전된자를돌아오게할것은매우쉬운일이라내가 또너를이방의빛으로삼아나의구원을베풀어서땅끝까지이르 게 하리라
7.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 게멸시를당하는자,백성에게미움을받는자,관원들에게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 리니이는이스라엘의거룩하신이신실하신여호와그가너를택 하였음이니라
응송 | 시편 40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서신 | 고전 1:1-9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안에서 모든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복음 | 요 1:29-42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 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것은 그 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 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 을보거든그가곧성령으로세례를베푸는 이인 줄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중 두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말을듣고예수를따르는두사람중의하나는시몬베드 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 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 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 로라)
■ 묵상 나눔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꽃향기는 바람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만, 향기로운 말은 사람 들을 끌어 모은다고 합니다. 때와 장소 그리고 상대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다른 것이 말인데, 그래서 조선조 초기의 시인인 ‘애월당 김시습’은 “언어 에 법도가 없으면 허물과 근심이 생긴다”고 말하기도 했었습니다. 꽃향기 보다 아름답게 말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미학적(美學的) 인간’이라고 합 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 안에서 바로 그런 사람을 봅니다. 그는 다름 아 닌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오늘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해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미학적 인간은 비단 요한에게서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시 대를 한참이나 거슬러 BC 550년 경 이사야라는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는 법도가 있으며 절제된 언어를 봅니다. 그는 먼 훗날 이루어질 예수 그리스 도의 사역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마치 오늘 응송의 시편 기자가 고백처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라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 수님의 사역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하나님께 대한 순명(順命)과 희생입니 다. 그 분은 마치 도살장으로 가는 순한 어린 양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그 어린 양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복음서에 서 뚜렷하게 회상되고 있고, 세례 요한 증언의 구심점이 되고 있습니다. 요한은 자기를 향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요단강 가에 서 있다가, 예수님께서 강가를 거니시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제자 들을 향해 증언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예수님께 부여된 이 아이콘은 오늘 복음 서에서 뿐 아니라 사도 요한에 의해 폭넓게 사용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계 5:6에 보면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 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증언하고 있고, 계 6:1에서 도 ‘일곱 봉인에 담긴 심판자’로서 어린 양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님께 이 ‘어린 양’이라는 아이콘을 부여함으로서 정확하게 무엇 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던 전야(前夜) 즉 여호와께서 애굽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시던 밤에 히브리 자손들이 자기 집 문설주와 인방마다에 발 랐던 어린 양의 피(출 12:21-30)와 관련해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 들은 바로 그 어린 양의 피를 기념하기 위해 매해 유월절마다 봉헌 제물로 희생되었던 유월절 어린 양(출 29:38-43)과 관련시켜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이나,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했던 어린 양처럼, 온갖 괴롭힘과 굴욕을 당하면서도 그 입을 열지 않 았던 ‘고난 받는 종’과 관련해 해석하기도 했습니다.(사 53:7) 하지만 이러 한 해석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의 해석이 옳다기보다는, 정작 요한복음 저 자는 이 세 가지 모두를 상기시켜주기 위해 어린 양이라는 상징을 예수님 께 적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번의 희생으로 우리 모두에게 ‘빠스카’ 즉 ‘해방’을 실현시켜주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서를 읽으면서 ‘어린 양’이라 는상징을통해세례요한이정말말하고싶어한예수님의’사명’이무엇 인지 묵상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작업이겠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소개에앞서그분의사명이’세상죄를지고가는’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여 기에서 세상 죄를 졌다는 표현은 ‘자기의 어깨로 짊어지다’라는 의미도 있 지만, ‘죄를 없애다’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그 죄를 없애주심으로서, 세상 죄를 지고 희생당하 는 어린 양으로서의 당신의 책임을 다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추론이 아니라 실제로 요한이 자신의 첫째 편지인 요일 3:5, 6에서 그렇게 증언한바있습니다.”그가우리죄를없애려고나타나신것을너희가아 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그리고 오래전에이사야선지자는사53:12의’고난받는종의노래’에서이사실 을 매우 감격스럽게 예언했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하며강한자와함께탈취한것을나누게하리니이는그가자기영 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의 ‘사명’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버려 스스로 죽었는데, 스스로를 범죄자의 하나로 여겨 범죄자들 속에 끼여 죽어가면서 그 범죄자들이 용서받도록 기 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 복음서에서 보았던 주님의 모습 기억 하십니까? 회개의 세례를 기다리는 죄인들 틈에 끼어 조용히 순서를 기다 리시던 예수님의 모습, 예수님께서 그 자복하는 사람들 가운데 끼어 그들 과 똑같이 회개의 의식에 참여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그들과 똑같이 여기셨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과 요한 사이 에 이루어진 짤막한 대화는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들, 자복하는 자들 속에 끼어 그들과 똑같이 회개의 의 식에 참여하심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겸손은 ‘하나님의 모든 의’를 위한 겸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 님의 의(義)’란 천국만큼이나 막연한 단어입니다. 작금의 한국 교회를 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막연하니 방향을 잃게 되고, 하나님의 의가 막연하니 보이는 세계에 집착합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던 날, 그 겸손하심이 일구어낸 하나님의 의가 우리 가슴을 지배하기를 소망 합니다. 그런데 ‘고난 받는 종의 노래’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려 는 주님의 모습은 요단강에서 죄인들과 함께 서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보 다더극적입니다.그분은스스로를범죄자의하나로여겨서범죄자들속 에 끼여 자기 목숨을 버리시며 범죄자들이 용서받도록 기도했다는 것입니 다.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의 아들마저 죄인의 자리에 서시게 했고, 그럼에 도 회개하지 않았던 인간의 완고함은 끝내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죽음 을결심하게만들었습니다.주님은기꺼이세상죄를지고가는어린양이 되셔서 죄인들 속에 끼어 죽음을 맞으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자신의 죽 음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 니다.인간들을향한주님의그희생과구원사역은한번만으로그친것 이아닙니다.주님께서는당신의구원사역이역사의매순간마다모든사 람에게 실현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부 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세례를 베풀어주심으로서 우리를 당신 안에 잠기게 하십니다. 이에 관해 세례 요한은 굉장히 실증적이고 황홀한 증언 을 합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요한 자신도 처음 에는 누가 그 분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 분이 나타나게 된 다는 것입니다. 물로 세례를 주는 가운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 드러 나기 때문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요한이 정말 예 수님을 몰랐을까요? 요한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친척이었고, 출생할 때 있었던 놀라 운 일들을 생각한다면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러 오셨을 때,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내가 당신 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하 며 말렸던 것을 보면 요한은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앎’이 란 그저 머리로만 알 뿐 확신으로 차오르지는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 늘이열리고,하나님의성령이비둘기모양으로그분위에내려오시는것 이 보였습니다. 그때 비로소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분명히알게되었습니다.우리는언제예수님을나의구주로알아볼수있을 까요? 성령께서 임재하실 때, 그 때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봅니 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한의 고백 을 다시 곱씹어 보십시오.
이제부터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실 성령세례는 요한이 주는 물세례를 능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주는 세례는 물로 주는 세례요, 회개를 표현하 는 낮은 차원의 의식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으로 주시는 세례이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세례였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부활하 신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시는 항구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 7:37-39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 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 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 니하시더라)” 결국 이 성령이 우리에게 넘쳐흐르게 하시기 위해서는 어린 양이 반드시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는 요한복음 전체를 통해 집요할 만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의 희생을 발굴해냅니다. 요 19:33, 34을 보십시오.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 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 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그리고 한 절 건너 36절을 보십시오. ”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출 12:46에 의하면 유월절 식탁에서 어린 양을 먹을 때, 뼈를 꺾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요한복음 의이증언을통해우리가알수있는것은, 요한복음저자의눈에비친예 수님은 십자가에 희생되셔서, 모든 사람에게 하염없이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죄와 죽음의 사슬로부터 끊임없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분명 세례 요한이 우리에게 제시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 그리스도론’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저자 자신이 자기의 그리스도론을 세 례 요한을 통해 제시함으로서,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로 이끌 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고난 받는 종의 노 래’ 중에서 두 번째 노래의 일부를 들려줍니다.
이 말씀으로 보면 고난 받는 종의 활동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는 것으 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희생을 통한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당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매달 아 어린 양의 희생을 담당시키신 하나님은 그의 희생을 통해 다시 성령이 임재하게 하심으로 그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 런 면에서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는 얼마나 감격스러운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바울의 인사에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리고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 이들을 향한 바울의 경외감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자유자와 노예의 구분도 없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의 생명이 있는 곳,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 내면에 가득한 성도는 그가 누구이든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받 아들일 수 있도록 자아(自我)를 활짝 열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의 사역에 우리를 참여시키고, 그 사역을 통해 주님과 일치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응송에서의 시인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소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