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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7주 하늘 지혜로 맞이하는 한가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9-18 13:51
조회
838
성령강림 후 제17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잠 31:10-31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 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 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 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 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응송 | 시 1:1, 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 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서신 | 약 3:13-4:3, 7-8a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 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 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복음 | 막 9:30-37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 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 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9:32-34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 한 제자들은 결국 어디에 관심을 두었습니까?
② 약 3:13-18을 묵상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위의 지혜는 각 각 그 열매에 있어 어떻게 다릅니까?
③ 잠 31:10, 30을 묵상하십시오. 현숙한 여인의 현숙함은 30절에 따르 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설교한 바 있습니다.
나무를 살펴보십시오. 높이 자라기 위해 우선 가장 낮은 자리를 찾고, 꼭지를 하늘로 뻗치기 위해 뿌리를 깊숙이 내립니다. 겸손에서 시작하지 않은 채 높이 오를 수 있겠습니까?(잠 18:12 참조) 그대는 사랑도 없이 드높은 것을 이해하려 하고, 뿌리도 없이 하늘 바람을 원합니까? 그것은 몰락이지 성장이 아닙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여러분은 허영심을 모르는 사람이 되십시오. 오히려 단순함과 조화로움과 정직함으로 공동체를 아우르십시오. 여러분 각자는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형제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보다 더 낮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갈 5:13-14 참조) 이것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마태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윗자리와 최고 영예를 사랑한다면 이제는 끝자리에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십시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것, 가장 낮은 것, 가장 작은 것을 추구하고, 그대 자신을 다른 사람들 뒤에 세우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이렇게 가치관이 바뀌고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실 때, 수치와 후회 속에서 침묵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가 되는 사람'으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을 나보다 지혜롭고 선하게 여길 뿐 아니라, 자신을 가장 끝자리, 낮은 자리에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첫 자리에 앉는다는 의미는 형제를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매어단다는 순교적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첫 자리를 복음적으로 지켜내셨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35절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훗날에는 자신의 십자가와 연관 지어서 다시 한 번 글자 그대로 반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3-45) 그리고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말씀대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데, 당신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행동을 죄를 씻어주시는 것과 연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요 13:7, 8) 그러니까 '겸손'은 인격의 열매가 아니라 복음적 결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의 이 마음을 모른다면 끝내 천박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말씀만으로 제자들을 깨닫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뒤에, 시각적으로 그 아이를 보게 하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빵집 주인이 자기가 공들여 만든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예약 손님에게 화가 나서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비아냥댔습니다. "댁 아드님에 대해 뭐 잊은 것 없수?" 하지만 그 아들은,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바로 그 날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고 끝내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어스름한 새벽녘에 빵집 문을 두드리고서 "그 애는 죽었다고. 이 못된 놈아"라며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 아빠는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빵집 주인은 너무 미안해서 "내가 한 일이 변명이 될 순 없겠지만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다"며 횡설수설 미안함을 전하다가 부부를 탁자에 앉게 하고 갓 구워낸 빵을 건넵니다. "내가 만든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을 레미먼드 카버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으며, 아이 엄마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서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우리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과 행동 하나에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말과 행동을 헤아려야 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어떻게 하시든 저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제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피조세계에서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저를 드리며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손에 저를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아멘.
그리고 그가 떠난 '안식의 여정'은, 푸코의 이 기도문대로 마쳐졌습니다. 1996년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그가 40세에 쓴 기도문이 자신의 신앙의 흔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인생이 절반에 이른 시점에서 저는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주님께 재 헌신하고 싶습니다. 지난 40년간 주님은 저를 인도해 주셨고, 성숙한 믿음과 자신의 은사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도록 점차 이끌어 주셨습니다.(중략) 주님을 제 목자와 인도자로 맞아들입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 한 복판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권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게 하소서, 복수와 응징의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중략)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믿게 하시고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제 인생과 제 소명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신 이 소망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는 진지한 영적 사유(思惟)를 통해, 자기가 돌아갈 본향을 주목하며 하루의 삶에 성실했고, 1996년 9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자기 '인생의 여정'을 '안식의 여정'이라 칭할 수 있었던 것은,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고,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오고 가는 여정 위에서 우리 모두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치열한 세상살이에서 흐트러졌던 신앙과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 뜻을 따라가는 여정을 출발하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땅 위의 지혜로 시기와 다툼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위로부터 난 지혜로 화평하고 관용한 삶을 살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잠 31:10-31
10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11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12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 지 아니하느니라 13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14 상인의 배와 같아서 먼 데서 양식을 가져 오며 15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자기 집안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며 여종들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 16 밭을 살펴보고 사며 자기의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일구며 17 힘 있게 허리를 묶으며 자기의 팔을 강하게 하며 18 자기의 장사가 잘 되는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며 19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으며 20 그는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 21 자기 집 사람들은 다 홍색 옷을 입었으므로 눈이 와도 그는 자기 집 사람들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며 22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23 그의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과 함께 성문에 앉으며 사람들의 인정 을 받으며 24 그는 베로 옷을 지어 팔며 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맡기며 25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26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 27 자기의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 28 그의 자식들은 일어나 감사하며 그의 남편은 칭찬하기를 29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다 하느니라 30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 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31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 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응송 | 시 1:1, 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 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서신 | 약 3:13-4:3, 7-8a
13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 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 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복음 | 막 9:30-37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 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 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 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9:32-34을 묵상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 한 제자들은 결국 어디에 관심을 두었습니까?
② 약 3:13-18을 묵상하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땅위의 지혜는 각 각 그 열매에 있어 어떻게 다릅니까?
③ 잠 31:10, 30을 묵상하십시오. 현숙한 여인의 현숙함은 30절에 따르 면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늘 지혜로 맞이하는 한가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신비를 일깨워주시는 여정이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비에 대한 예수님 가르침의 시작은 당신에 관해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막 8:27),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a) 이 질문은 마침내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b)라는 베드로의 대답을 이끌어냄으로써, 이 고백이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의 초석이 되게 하였지만, 동시에 '고백'과 '삶의 지향'이 반드시 일치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삶의 한계와 과제를 드러나게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앙고백이 있고난 직후, 예수님께서 장차 당신이 받게 될 고통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자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다가 사탄이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복음서를 통해 이 장면을 보면서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마음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나머지 제자들 또한 베드로에게 있던 연약함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걸으신 공생애의 마지막 여정 중에 세 번에 거쳐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바대로, 베드로의 신앙고백(막 8:29)이 있은 후, 주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막 8:31;마 16:21;눅 9:21-23)가 있었고, 주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는 변화산 사건이 있은 후, 산에서 내려오던 중에 주어졌습니다(막 9:9;마 17:22, 23;눅 9:44). 그리고 세 번째 수난 예고는 예루살렘에 도착할 즈음에 주어졌습니다(막 10:32-34;마 20:17-19;눅 18:32-34). 주님은 이 예루살렘 길에서 집중적으로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을 예고하심으로서, 그리스도로서 당신께서 감당해야 할 수난과 죽음을 분명히 하셨고, 동시에 제자들 역시 당신의 고난과 희생에 내포된 진리를 깨닫고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의 첫 번째 수난 예고를 들었을 때, 메시아로서의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것처럼, 나머지 제자들 역시 주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 앞에서 당혹스러워 합니다. 마가는 당시의 제자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해줍니다.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막 9:32
우리는 제자들 내면의 이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고통을 거부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당하는 메시아 상(像)'은 그들의 오랜 희망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만일 메시아가 그렇게 나약하신 분이라면 지금껏 그분을 기다리며 위로를 갈망해온 제자들에게 쓸모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뭔가 석연치 않은 두려움이 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주님과 제자들은 가버나움의 한 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예수님께서 갑자기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막 9:33) 그리고 이때 제자들의 반응을 마가는 이렇게 전해줍니다.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제일 높은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 막 9:33 공동번역
우리는 이런 제자들을 보면서 새삼 하나님의 길과 인간의 길이 참 다르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재산다툼을 벌이는 철부지 형제들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예루살렘 길이 영광의 여정이 아닌 수난과 죽음의 길임을 이미 두 차례나 말씀하셨음에도 제자들은 철부지처럼 서열다툼에 여념이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타이르십니다.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 막 9:35
이 말씀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이 말씀의 성육신입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설교한 바 있습니다.
나무를 살펴보십시오. 높이 자라기 위해 우선 가장 낮은 자리를 찾고, 꼭지를 하늘로 뻗치기 위해 뿌리를 깊숙이 내립니다. 겸손에서 시작하지 않은 채 높이 오를 수 있겠습니까?(잠 18:12 참조) 그대는 사랑도 없이 드높은 것을 이해하려 하고, 뿌리도 없이 하늘 바람을 원합니까? 그것은 몰락이지 성장이 아닙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여러분은 허영심을 모르는 사람이 되십시오. 오히려 단순함과 조화로움과 정직함으로 공동체를 아우르십시오. 여러분 각자는 자신과 더불어 살아가는 형제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보다 더 낮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갈 5:13-14 참조) 이것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마태복음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윗자리와 최고 영예를 사랑한다면 이제는 끝자리에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서십시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것, 가장 낮은 것, 가장 작은 것을 추구하고, 그대 자신을 다른 사람들 뒤에 세우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는 이렇게 가치관이 바뀌고 기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서 물으실 때, 수치와 후회 속에서 침묵하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첫째가 되는 사람'으로 가장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른 사람을 나보다 지혜롭고 선하게 여길 뿐 아니라, 자신을 가장 끝자리, 낮은 자리에 세우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첫 자리에 앉는다는 의미는 형제를 위해 가장 먼저 자신을 십자가에 매어단다는 순교적인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첫 자리를 복음적으로 지켜내셨습니다. 실제 예수님께서는 35절에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훗날에는 자신의 십자가와 연관 지어서 다시 한 번 글자 그대로 반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3-45) 그리고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에서 '말씀대로'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데, 당신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행동을 죄를 씻어주시는 것과 연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요 13:7, 8) 그러니까 '겸손'은 인격의 열매가 아니라 복음적 결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의 이 마음을 모른다면 끝내 천박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 말씀만으로 제자들을 깨닫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신 뒤에, 시각적으로 그 아이를 보게 하시며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 막 9:37
비잔틴 교부들이 사용했던 표현을 빌리자면 주님은 부정(否定)의 언어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어린 아이라는 표상을 보여줌으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순진한 어린 아이처럼 어떤 악도 마음에 일어나지 않고, 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순진무구한 마음을 가진 존재임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처럼 일생동안 순진무구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는 확실히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 약 3:13a
야고보는 이미 1장에서 이야기한 바 있는 지혜라는 주제를 여기에서 다시 꺼냅니다.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닮는 것에서 시작되는데, 무엇보다 하나님을 닮은 성품에서 우러납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에서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난다면, 자만과 시샘과 이기심에서는 악마적 지혜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지만, 그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믿는 이들 안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겸손함과 온유함이 예수님의 성품임을(마 11:29)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압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성품을 닮을 때,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평안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고 물은 후에 이렇게 간곡히 당부합니다.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약 3:13b
여기 지혜와 온유함이 함께 언급됩니다. 참된 지혜는 예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온유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주대학교의 이소영 교수가 쓴 '별 것 아닌 선의'라는 책이 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그녀의 칼럼 모음집인데, 책의 첫 번째 장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해 줍니다.빵집 주인이 자기가 공들여 만든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예약 손님에게 화가 나서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비아냥댔습니다. "댁 아드님에 대해 뭐 잊은 것 없수?" 하지만 그 아들은,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바로 그 날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고 끝내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어스름한 새벽녘에 빵집 문을 두드리고서 "그 애는 죽었다고. 이 못된 놈아"라며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 아빠는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빵집 주인은 너무 미안해서 "내가 한 일이 변명이 될 순 없겠지만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다"며 횡설수설 미안함을 전하다가 부부를 탁자에 앉게 하고 갓 구워낸 빵을 건넵니다. "내가 만든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을 레미먼드 카버는 이렇게 이어갑니다.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으며, 아이 엄마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서 빵집 주인을 기쁘게 했다."
우리의 별 것 아닌 것 같은 말과 행동 하나에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말과 행동을 헤아려야 합니다. 사도 야고보는 말씀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 약 3:17
지혜의 온유함이 예수님께 속한 것이라면, 그 지혜는 성결함과 화평과 관용과 양순함 그리고 긍휼을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땅 위의 지혜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는 새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이신 그 지혜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가리켜 '위로부터 난다(born from above)'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노래합니다.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시 1:1, 2
시인의 고백에 의하면 '복 있는 사람'은 땅의 지혜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는 순수합니다. 순수한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지혜는 평화롭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현숙한 여인을 통해 일구어져 가는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 잠 31:10
이 '현숙한 여인을 생각할 때, 우리는 자연스레 룻기에 등장하는 '룻'이라는 여인을 떠올립니다. 실제 룻 3:11에 보면 보아스가 그녀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그런데 많은 성서학자들은 '현숙한 여인'이 '의인화 된 지혜'를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만일 현숙한 여인이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지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겠습니다. 여자들은 현숙한 여인 즉 지혜가 되어야 할 것이고, 남자들은 현숙한 여인 즉 지혜와 결혼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인의 현숙함이,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 잠 31:30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일제히 우리에게 땅의 가치관이 아닌 하늘의 가치관,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 땅의 지혜는 힘과 계략으로 욕망을 지향하지만, 하늘 지혜는 십자가를 통한 평화를 지향합니다. 땅의 지혜는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을 만들어내지만,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며 관용합니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우리는 모두 '길'을 고민하고 성찰하게 됩니다. 사사로이는 고향으로 가는 길을 고민하게 되고, 부모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는 인생의 길을 성찰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길, 어떠한 여정을 걷고자 하십니까? 헨리 나우웬이 쓴 '안식의 여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1996년 9월 21일 세상을 떠났는데, '안식의 여정'에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 한 해 동안 쓴 일기가 담겨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일기의 마지막 회를 마친 3주 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일기는 그의 유언과도 같은 것이고, 그가 걸어온 인생길의 결론과도 같은 것입니다. 1995년 9월 2일 안식년 첫 날, 그의 일기는 '샤를르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의 기도 시로 시작합니다.아버지, 아버지의 손에 저를 드립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제게 행하시옵소서. 어떻게 하시든 저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수용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제 안에서 아버지의 모든 피조세계에서 아버지의 뜻만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기에 저를 드리며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한 믿음으로 아버지의 손에 저를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아멘.
그리고 그가 떠난 '안식의 여정'은, 푸코의 이 기도문대로 마쳐졌습니다. 1996년 5월 1일 그의 일기에는, 그가 40세에 쓴 기도문이 자신의 신앙의 흔적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인생이 절반에 이른 시점에서 저는 주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자신을 주님께 재 헌신하고 싶습니다. 지난 40년간 주님은 저를 인도해 주셨고, 성숙한 믿음과 자신의 은사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서 영적으로 장성한 자가 되도록 점차 이끌어 주셨습니다.(중략) 주님을 제 목자와 인도자로 맞아들입니다. 야망으로 가득 찬 세상 한 복판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소서. 권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연약하게 살게 하소서, 복수와 응징의 고통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게 하소서.(중략)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를 믿게 하시고 위험도 마다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주님, 제 인생과 제 소명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신 이 소망을 인해 감사드립니다. 아멘.
그는 진지한 영적 사유(思惟)를 통해, 자기가 돌아갈 본향을 주목하며 하루의 삶에 성실했고, 1996년 9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자기 '인생의 여정'을 '안식의 여정'이라 칭할 수 있었던 것은,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고, 자기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오고 가는 여정 위에서 우리 모두 "땅의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로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치열한 세상살이에서 흐트러졌던 신앙과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 뜻을 따라가는 여정을 출발하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땅 위의 지혜로 시기와 다툼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위로부터 난 지혜로 화평하고 관용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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