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6주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잠 1:20-33
20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21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 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31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32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 하리라
응송 | 시 19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서신 | 약 3:1-12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 생이 많이 되지 말라 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3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 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 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 이 가득한 것이라 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복음 | 막 8:27-38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 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 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 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 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 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 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 람을 부끄러워하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8:33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이라고 말 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잠 1:23-25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에 대한 사람들 의 태도는 어떠하였습니까?
③ 약 3:1-2을 묵상하십시오. 사도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 선생이 되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 '노자 이야기'에서 도덕경 62장을 흥미 있게 풀어주었습니다. "도자(道者)는 만물지오(萬物之奧)니 선인지오(善人之寶)요 불선인소보(不善人之所保)니라". 도(道)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인데, "도자(道者)는 만물지오(萬物之奧)니"는 '도(道)란 만물의 가장 깊숙한 아랫목이라는 뜻이고, "선인지오(善人之寶)요 불선인소보(不善人之所保)니라"는 착한 사람의 보물이요 착하지 못한 사람을 지탱해주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풀어서 설명해 드리면 이런 뜻이겠습니다. 도(道)는 마치 아랫목처럼 만물이 흘러드는 근원이어서, 道를 알아 모시는 자에게는 보물(인생의 목적)이 되지만, 혹 미처 알아 모시지 못한 자라고 해서 그에게 道가 아니 계신 게 아니라, 그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인생의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만물의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알아 모시는 자에게는 보물이 되지만, 혹 미처 알아 모시지 못한 자라고 해서 그에게 말씀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소보(所保)' 즉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을 봅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말씀이 나에게 있어 보물 즉 '인생의 목적'일까요? 아니면 나를 지탱해주는 '인생의 수단' 정도일까요? 그런데 도덕경 18장을 보면, 바로 이 지점에서 미묘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대도(大道)가 폐(廢)하여 유인의(有仁義) 하고, 지혜(智慧)가 출(出)하며 유대위(有大僞) 한다." 큰 도(道)가 무너지니까 인(仁)과 의(義)가 생겨나고, 사람의 지혜가 존중받으니 큰 거짓이 생겨난다는 겁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고, 하나님 말씀을 보물 삼고 있으면 따로 '인(仁)과 의(義)' 즉 어질음과 정의를 내세워 자신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인데, 말씀보다 사람의 지혜를 존중하다 보니 자신을 드러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큰 거짓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서에 비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바로 그런 위험성이 감지되는 것을 봅니다. 그의 겉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예수님 말씀보다 자신의 지혜를 더 신뢰하는 모습입니다. 아무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할 때, 베드로가 어떤 고백을 했었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막 8:29)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이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이시라고 고백했었고, 그로 인해 주님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라고 영광스러운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는 분명 다른 제자들에 비해 영(靈)이 열려 있었고,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예수는 그리스도'이심을 알게(막 8:29, 마 16:17)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 8:33)라고 치욕적인 꾸중을 듣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도덕경의 교훈 안에서 이해한다면 그가 말씀보다 자신의 지혜를 더 신뢰하고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즉 그 순간의 베드로에게 있어서 '말씀'은 보물이 아닌 자신의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잠언 기자는 그런 현상이 비단 베드로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잠 1:24-26) 듣기 싫어하고 책망 받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 때문에 우리는 종종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으로부터 밀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서신서에서 사도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라고 당부합니다. 선생이 되려 하는 마음, 그 마음 때문에 말씀을 떠나면 온전함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말의 실수가 발생할 것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성서일과의 공통된 교훈은 자신의 지혜를 더 신뢰하는 마음 때문에, 혹은 듣기 싫어하고 책망 받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혹은 선생이 되려 하는 마음 때문에 '큰 도(道)' 즉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 하면 온전함을 잃고 거짓에 휩싸일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에 있다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철저하게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언어를 도구로 삼아서 당신의 마음과 뜻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즉 성경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마음이고 뜻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은 모름지기 성경에서 우러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복음서의 베드로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 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막 8:27
이 물음은 비록 단순하지만 고도의 극적인 긴장감 속에서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때 제자들은, 그 시기와 예수님의 물음 속에 담긴 긴장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뭇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전해드립니다.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 막 8:28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의 하나' 제자들의 대답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에 대한 세간의 평가이거나 분분한 소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세간의 평가나 소문이 아닌 제자들 자신의 믿음과 고백이 담긴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대답을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 8:29) 그리고 우리는 베드로의 놀라운 대답을 듣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 막 8:29
헬라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로 '메시아'라는 뜻이고, 라틴어로는 '크리스마'인데 '기름부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는 "주는 기름부음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베드로의 고백은 다른 제자들처럼 세간의 평가나 분분한 소문이 아니었습니다. 시 45:7에 보면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베드로는 바로 이 고대 시인의 고백을 기초로 예수님을 '기름부음 받은 이'로 고백한 것입니다. 이때의 베드로는 얼마나 멋이 있습니까?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이후입니다.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 막 8:31-32a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이 수난 예고는 베드로의 고백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시편 말씀에서 우러난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바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을 합니다.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막 8:32b-33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게 되리라는 스승의 말을 막고, 가야 할 길을 만류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보기에 따라 소박하면서도 직선적인 감정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탄의 유혹이란 어쩌면 이런 류(類)의 소박한 감정을 타고 들어올 수도 있겠습니다. 마가는 이때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었다'고 증언합니다. '붙들었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프로슬라보메로스(προσλαβόμενος)'인데, 개인적으로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예수를 '자기 곁으로 당겨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항변했다'는 것은 '에피티마오(ἐπιτιμάω)' 즉 '책망하고, 꾸짖으며, 비난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예수를 자기 곁으로 끌어당겨서 책망하고, 꾸짖고, 비난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자기 생각을 받아들이도록 종용한 겁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 태도에서 공생애 초기 예수님을 유혹했던 사탄의 유혹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때 사탄은 예수님을 안이한 메시아의 길로 이끌어 들이려고 유혹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럴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으로 인해 늘 성공하는 삶을 상상하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고난이 엄습해 올 때, 그 고난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라보며 성찰하기보다는, 겪어서는 안 될 저주로 인식하고 거부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이미 유혹인 것을 알고, 주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시며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나무라신 것입니다. 어쩌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막 8:30)고 당부하신 이유도 거기에 있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당신을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메시아가 아닌 정치적인 메시아로 알고 타인에게도 그렇게 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막 8:34
존 웨슬리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 48번에서 "자기를 부인하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으며, 비록 자기의 뜻이 기쁨이 된다 할지라도' 자기의 뜻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생되지 않고 하나님께로 인도하지 않는 어떤 쾌락이라도 스스로 부인하는 것이며, 즐겁고 화려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 해도 곁길로 가기를 거절하는 것이며, 자기 취향에 맞을지라도 결국에는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에 따르면 '자기 부인'에 대한 주님의 이 요청에서 벗어나는 신앙인은 '형식적인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일 뿐 '온전한 그리스도인(altogether christian)'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말씀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힘겹게 다가오고, 무겁게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 말씀에 순종하고자 할 때, 힘겹고 무거워 보이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렇기에 어떤 경우에라도 주님 말씀에의 순종은 결코 힘겹지도 무겁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 11:30에서도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십자가는 자신의 뜻과 무언가 상반되는 것이며, 자신의 본성에 무언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과 계명을 따라 사는 영적 여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자신에 대해 냉소하는 사람들과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교회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기 몸 안에 있는 고약한 세포들처럼, 같은 지체로 여겨지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있어서 교회의 내밀한 부분에서 갈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때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십자가 지는 일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보다 높은 신앙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고, 어떠한 괴로움도 견디어내며 주님을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역설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 막 8:35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궁극적으로 신앙인들이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목숨' 즉 '생명'입니다. 그것만이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생명을 얻습니까? 사람의 지혜보다 '대도(大道)' 즉 말씀을 소중히 여겨서, 말씀에 순종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지혜는 말씀합니다.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 잠 1:22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자가 어리석은 행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거만한 행동 때문에 거만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만한 자가 거만한 행동을 기뻐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지혜가 열거하는 어리석은 자, 거만한 자, 미련한 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즉 '대도(大道)'의 길을 벗어나 사람의 지혜를 숭배하고, 오만한 길을 걸으며 때때로 큰 거짓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들을 향해 지혜는 "어느 때까지 그렇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어느 때까지 어리석고, 어느 때까지 거만하고, 어느 때까지 미련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 잠 1:23a
여기 '들음'과 '돌이킴'이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들음'으로부터 '돌이킴'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해석하자면 '들음'이 없이는 '돌이킴'도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듣고 돌이키는 자'에게 지혜는 약속합니다.보라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잠 1:23b
만약 베드로가 주님 말씀에 흔들림 없이 귀 기울였다면, 주님의 수난 예고를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 했을까요? 그는 주님의 뜻을 따르려 했을 것이고, 그에게 주님의 영이 부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그토록 무섭게 꾸짖으시며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리석고, 거만하고, 미련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서 가지 말고, 겸손히 말씀을 따라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호되게 꾸짖어 주심으로 그가 서야 할 자리를 바로 잡아 주십니다. 그런데 자꾸만 우리는 스스로 스승의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스승의 자리를 탐하다 보니 주님보다 앞서게 되고 그러다 보니 베드로처럼 주제넘은 소리도 합니다. 서신서에서 야고보는 말씀합니다.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 약 3:1
촌철살인(寸鐵殺人)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생이 되려하지 말고, 겸손히 말씀을 배우는 구도자가 되고,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배우는 자' 다운 자세는 '들음'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대도폐 유인의(大道廢 有仁義), 지혜출 유대위(智慧出 有大僞)' 말씀보다 사람의 성정을 더 믿고, 말씀보다 사람의 지혜를 더 의지하니 오히려 큰 거짓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도자(道者) 만물지오(萬物之奧)' 道는 마치 아랫목같이 만물이 흘러드는 근원이어서, 道를 알아 모시는 자에게는 보물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우리 존재의 근원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우리 생각의 근원이고, 하나님의 말씀의 우리 행동의 근원이어서, 하나님과 참된 일치를 이룬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안에 충만한 생명을 찬미하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우리의 언어생활은 내 생각에서 비롯되고 있지 않은가?
②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부터 내 말이 시작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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