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3주 내적 젊음의 길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왕상 8:22-30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 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 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 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응송 | 시 8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서신 | 엡 6:10-20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9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 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20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 | 요 6:56-69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9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 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 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 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 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묵상 | meditatio
① 요 6:68-69을 묵상하십시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렵다며 떠나갈 때, 베드로가 주님께 남긴 고백은 무엇입니까?
② 왕상 8:25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당부하신 말씀 중 에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③ 엡 6:14-17을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영으로 듣고 살아가는 성도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떠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내적 젊음의 길
이탈리아 사람들의 영적 스승으로 받들어지는 아르투로 파올리(Arturo Paoli)가 쓴'사막일기'에 보면 '지적 젊음'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본래 의도했던 관찰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늙어 가는지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늙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이들의 비결이 뭘까? 나이가 들고 육체가 퇴행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적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비결은 단 하나이다. 자기 삶을, 자기 삶의 진정한 핵심이 되는 것을 역사, 즉 미래에 연결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 안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내일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전의 내가 그린 그림을 거슬러 그림을 그린다'고 피카소가 말했다. 이것이 바로 피카소가 젊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여기에서 지적 젊음이란 내면의 젊음을 뜻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사람의 내면을 젊게 만들어줍니다. 책을 읽고, 예술과 접하고, 좋은 사람과 여행을 하는 이 모든 것들이 지적 젊음의 징검다리들입니다. 그 징검다리들을 건너면서 오늘의 삶이 미래로 새롭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이런 징검다리들이 없다면 우리는 점점 내면이 늙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사람들이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은 진리에 대한 호기심도 열정도 없었다는 반증입니다. 호기심과 열정이 사람의 내면을 젊게 만드는데, 그들은 끝내 진리를 향한 호기심과 열정의 징검다리를 건너지 않습니다. 주님은 군중들을 향해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요 6:51)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떡'을 연결시킨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생명의 신비를 깨우쳐 주려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오히려 사람들 사이에 미묘한 파장만을 일으켰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요 6:52 공동번역) 하며 반감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주님은 그들에게 더 못 알아들을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 주님은 '떡을 먹는다'는 표현을 넘어 '살을 먹는다'고 말씀하시고, 심지어 '피를 마신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이때 사람들은 더 큰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바로 그 상황을 배경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품어온 반감을 폭발시킨 후에 유대인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의 말씀을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 요 6:60
지금껏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지내왔던 제자들조차도 상식적인 식견과 인간적 합리성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예수님의 이 마지막 말씀은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힘들어했다면 예수님께 적대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신 말씀을 설명해 주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당신께서 선언하신 말씀의 강세를 좀 누그러뜨려 제자들의 마음에 피어난 반감을 달래주려는 것이 아니라 '떡을 먹고 살을 먹는' 이 문제를 육적 시선이 아닌, 하나님께서 보시는 바로 그 시선 즉 영적 시선으로 통찰하게 해주시려는데 목적이 있어 보입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인 됨에 있어서 본질적 사안에 집중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육의 눈 대신 영의 눈을 뜰 수 있다면 보다 깊고 큰 진리에 접근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요 6:61
때때로 진리로 불리는 것이 나의 이성에 걸리는 이유는 내가 진리대로 살지 못한 까닭일 때가 의외로 많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면 결코 진리는 '걸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죄의 본능을 가진 우리에게 있어 영에 속한 것들이 때때로 마음에 걸리는 현상은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걸림 현상'은 우리가 영적으로 새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주님은,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그들 눈높이에 맞추어 다독여 주시기 보다는 보다 첨예하고 본질적인 사안으로 이끌고 들어가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요 6:62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의향을 따라 보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인자(人子)'라고 부르신 사실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전승 안에서 '인자'는 종말론적 개념의 술어로 나타나는데, 희랍어 '휘온 투 안드로푸(υἱὁν τοῡ ἀνθρώπου)'나 히브리어 '바르에 나쉬(שׁנאךב)' 모두 '사람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신학자인 '래드(G. E. Ladd)'에 의하면 복음서의 인자 개념은 세 가지 특징적인 범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땅위에서 섬기는 인자이고, 둘째는 고난과 죽임을 당하는 인자이고, 셋째는 종말론적 영광을 입을 인자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은 그러한 메시아로서의 인자이신 예수님을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그저 훌륭한 가르침을 주시는 랍비 정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태어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고대 시인이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 82:11)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땅에서 육을 취해 오셨고, 그분의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그분의 의가 감추어져 있는 까닭에) 군중들도, 제자들도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요 6:52 공동번역) 하며 분통을 터뜨리는가 하면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라며 마음에 걸려하며 수군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러한 반응들에 대한 주님의 처방은 영의 눈을 뜨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요 6:62) 여기서 주님은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이라고 말씀하시고, '다시 그곳으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당신의 선재사상(先在思想) 즉 당신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었다는 주장이고, 동시에 '그곳으로 올라간다'고 말씀하심으로써,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 존재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러한 표현은 여기에서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신바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주님은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고 말씀하시고 '하늘에 올라간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왜 하늘에 계속 계시지 않고, 땅에 오셔서 말씀해야만 했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땅에 붙박인 시선을 하늘을 향해 들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땅에 붙박인 시선이 육적 시선이라면, 하늘을 보는 시선은 영적 시선입니다. 우리가 떠야할 눈은 영적 시선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 요 6:63
주님의 이 말씀은 왜 우리가 영적 시선을 가져야만 하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줍니다. 그것만이 우리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살리는'이라는 말씀은 희랍어로 '조오포이에오(ζωοποιέω)' 즉 '생명을 주는'이란 의미입니다. 우리가 영의 눈을 뜨고 살면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육(肉)'은 아예 무익한 것일까요? "육은 무익하니라"라는 말씀은 인간의 육신이 필요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과 본능으로 영의 말씀을 해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우리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식인이며 종교적으로 성숙한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요 3:4) 그가 지성인이었고 준수한 종교인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육으로 이해하려 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그에게 걸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5-7)
'육으로 난 것은 육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육으로는 영을 해석할 수 없는 겁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영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임재하시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하나님을 찾아 떠나는 마음 여행'에서 저자인 김철원 목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과 속에 사과 씨가 들어 있습니다. 사과 씨 속에는 다시 사과가 있습니다. 사과 속에 사과 씨가 있고, 그 사과 씨 속에 다시 사과가 있듯이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 안에 다시 내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이 품부된 존재로서 하나님과 다르지 않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다르지 않음을 체득하는 일은 모든 인간과 생명의 행복을 지향하는 지혜 전통과 종교가 추구하는 구원의 본질이며, 영성의 본체이며,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임재하시면 하나님과 나의 본질이 근본에 있어 서로 다르지 않게 됩니다. 물론 기독교의 교리들을 '이성'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이성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닮은 중요한 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성으로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 든다면,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영적 시선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오늘 말씀은 보여줍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 요 6:64
주님은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십니다. 제자들의 무리에 속해있지만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주님을 따라나설 수 있었겠으며,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을까? 앞에서 본 군중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단지 빵이나 입신양명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 같습니다. 주님은 그러한 속내와 신앙행태에 대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라고 진단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이어지는 말씀을 통해 고스란히 증명됩니다.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요 6:66
떡을 먹었을 때, 그 육체적 포만감 속에서 열광적으로 주님을 따라다니던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들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자기들 기대와 달랐을 때, 그들은 다시는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기로 작정하고 완전히 예수로부터 등을 돌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열두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제자라기보다는 추종자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막연한 추종자가 되면 안 됩니다. 영의 눈을 뜨고 주님과 한 뜻을 마음에 간직하고 한 길을 걷는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남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 요 6:67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이때 베드로가 놀라운 대답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 요 6:68-69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이기적 욕망을 안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닌, 오직 주께만 있는 영생의 말씀을 듣기 위해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 중요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 왕상 8:25
솔로몬의 이 기도는 왕상 2:4에서 아버지 다윗이 남겨준 마지막 유언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 유언은 삼하 7:8-16에서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에 근거한 유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해서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너 자신의 길'을 삼가라는 것입니다. '삼가다' 이 말은 히브리어로 '샤마르'입니다. '주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가 걷는 길을 면밀히 주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걷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삼가 주의해서 '너 자신의 길'이 아닌, '하나님과 하나인 길'을 걷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 엡 6:12-13
우리가 영의 눈을 떠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바울은 영적 전쟁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우리가 싸우고 있는 악한 영들은 본래는 하늘에서 죄를 지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먼저 하늘에서 죄를 지었고, 지금은 땅에서 다시 그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해서 '육의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갑옷을 열거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엡 6:14-17
바울은 먼저 '서서 있을 것'을 당부합니다. 생각이 땅을 기도록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또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고 당부합니다. 허리는 배의 용골처럼 우리 중심을 잡아주는데, 띠는 그 허리를 보호해서 버티도록 도와줍니다. 바울은 또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당부합니다. '의로움의 갑옷'을 입으라는 뜻입니다. 그밖에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당부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영을 보호해 주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영적 무기들입니다. 이 영적 무기들로 내면을 보호하며 '늙지 않는 소수의 사람'으로 살고, 지금껏 내가 살아온 삶을 거슬러 미래를 사는 영적 젊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을 육으로 받아들인 까닭에 내게 걸림이 되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영으로 받아들여 '하나님과 하나인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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