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9주 그리스도인의 적 - 태만(怠慢)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하 11:1-15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 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 신하였나이다 하니라 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 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 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 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 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 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응송 | 시 14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 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서신 | 엡 3:14-21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 를 원하노라 아멘
복음 | 요 6:1-15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 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 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 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 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 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삼하 11:2을 묵상하십시오. 다윗이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마음의 욕 망을 감추지 못했던 때는 언제였습니까?
② 엡 3:16-19을 묵상하십시오.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과 '믿 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들은 각각 무엇입니까?
③ 요 6:5-7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시험 어린 물음에 대한 빌립의 대답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인의 적, 태만(怠慢)
교회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공동체가 아니듯이, 그리스도인 또한 세상 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일상성과 초월성, 생활과 수행, 현실과 말씀이 충돌하는 공간입니다. 이 긴장을 팽팽하게 유지하는 경계선 위에, 마치 군사처럼 서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뉴스들 속에는 간혹 미담(美談)과 감동어린 소식들도 섞여오긴 하지만, 대개는 사건과 사고의 소식들 혹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저변에서 배어나는 갈등과 분열의 소식들이 더 많습니다. 현대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갈등과 분열은 그것들을 일으키는 악이 따로 존재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창조 목적대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세계의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게 난마와 같이 얽혀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그 모든 것은 동일한 영적 뿌리에서 파생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러하며, 미래 역시 본질적으로 인간의 영혼은 정욕과 쾌락과 걱정, 욕망과 갈망이라는 빛과 어둠 사이의 어떤 영역에 음산하게 걸쳐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의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점점 더 바깥을 떠돌며 외향적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성 마카리우스(Pseudo Macarius)의 경고와 같이 이 가시적 세상과 거기서 발견되는 만족이란 그저 육체를 한 번 달래보려는 절망적 몸부림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할수록 영혼의 병은 깊어지고, 실존의 고통 또한 해결되지 않고 더욱 악화됩니다. 오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에게서 우리는 바로 그러한 해결되지 않는 갈등과 분열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게 됩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 삼하 11:1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갈 때(삼하 5:10),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셔서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삼하 7:1), 이 강성함과 평안함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다윗 왕국에 서서히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그 문제점은 다름 아닌 다윗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신앙인으로서의 다윗을 뿌리째 흔드는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국이 블레셋을 점령하고 난 후(삼하 8:1), 모압과 아람마저 제압해(삼하 8:2-6) 그들에게 조공을 받고 팔레스타인 북쪽과 서쪽과 남쪽에까지 세력을 펼쳤을 때,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해가는 자기 왕국을 바라보며 다윗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겠다"(창 15:18)고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맺어주신 언약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즈음 요단 동편의 암몬은 아직 다윗의 군대와 대치 중이었습니다. 다윗은 1차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었지만 아직 암몬의 항복을 받은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암몬의 수도인 랍바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다시 시작하였는데, 이때 다윗은 전장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 성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는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 삼하 11:2
성경은 이때 다윗이 '저녁때'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말함으로써, 그가 낮잠을 자고 일어났음을 암시합니다. 물론 낮잠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오랜 풍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고, 그것도 이스라엘 총병력이 랍바 성을 에워싸고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때입니다. 랍바는 '큰 성'이란 뜻이고 당시 암몬의 수도였습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이곳은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입니다. 이 도시는 두 개의 견고한 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성들은 고원지대의 가파른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지금 다윗은 낮잠이 아닌 기도를 하고 있었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 긴장이 풀려 있었고, 태만과 게으름에 점령당해 있었습니다.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는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내적 혹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를 성찰하고 가르침을 제시했는데, 그는 특히 '여덟 가지 악한 생각'을 분석하고, 그 악한 생각을 물리치는 지혜를 제시했습니다. 그가 분석한 여덟 가지 악한 생각 가운데 여섯 번째 악한 생각이 바로 '태만'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악한 생각'은 항상 '악령'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각각의 생각에는 그에 상응하는 악령이 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의 핵심입니다. 그런 그가 '태만'에 대해 이렇게 진단합니다.'정오의 악령(70인역 시 91:6 참조)'이라고도 부르는 '아케디아(akedia 태만)'의 악령은 모든 악령 가운데 가장 힘겨운 놈이다. 그는 제4시(오전 10시) 그리스도인을 공격하여 제8시(오후 2시)까지 영혼을 포위한다. 먼저 그는 태양이 더디게 움직이거나 멈추어버린 것처럼, 마치 하루가 50시간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또 그리스도인이 시선을 계속 창밖으로 향하도록, 독방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도록, 제9시가 되었는지 알려고 태양을 주시하도록, 형제들 가운데 누가 오는지 살피도록 부추긴다. 그런 다음 그리스도인에게 그의 거처와 단조로운 일상, 그리고 손노동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태만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이 진단은 오늘 구약성경에서 드러난 다윗의 내면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지금 태만의 악령에 사로잡혀 영혼을 포위당한 채, 태양이 더디 움직인다고, 혹은 아예 멈추었다고 느끼며 지루한 시간 속에서 시선을 궁 밖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마침내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 무렵 그의 시선에 목욕하는 한 여인이 포착됩니다. 성경은 이때 그의 심정을 이렇게 꿰뚫어봅니다.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삼하 11:2) 그가 영적으로 깨어있고, 긴장되어 있었어도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요? 우리가 영적 태만을 결코 허용하면 안 되는 가장 적나라한 이유입니다. 태만 혹은 무기력에 대한 에바그리우스의 가르침은 그의 실천학(프락티코스 Praktikos) 중에서 가장 깁니다. 태만이란 그만큼 극도로 복잡한 내적 상황입니다. 에바그리우스는 태만에 대해 또 이렇게 말합니다.
태만은 영혼의 비이성적인 능력인 화(火)와 욕(慾)이 오랫동안 뒤엉켜서 서로 교란되어 생기는 것이다. 화는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해 폭발한다. 욕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런데 정말 태만의 악령에 사로잡힌 다윗은 가능하지 않은 것, 가능하면 안 되는 것을 애타게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 삼하 11:2, 3
영적 태만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거침없이 간음으로 치닫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자가 아기를 가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무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 우선 그는 여인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여, 그가 자기 아내와 잠을 자도록 유도합니다(삼하 11:7, 8). 하지만 충직한 장군인 우리아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왕궁 문에서 잠을 잡니다(삼하 11:9).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삼하 11:11)라는 그의 말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납니다. 다윗은 다시 그를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만들어서 집으로 들여보내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취중에도 저녁 때 일어나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하들과 함께 잠을 잡니다(삼하 11:12, 13). 마침내 다윗은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그는 비열하게도 전쟁터에서 우리아를 맨 앞에 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빠지게 하는 술수를 써서 충직한 군인을 적의 손에 죽게 하고 맙니다(삼하 11:15-17). 지금껏 그는 얼마나 칭송을 받던 인물입니까? 하나님께도 인정받은 그의 중심이 아닙니까? 지난날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광분할 때, 그가 보여줬던 성품과 행동들을 보십시오. 그는 자신을 박해하던 사울을 마침내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을 때, 그를 죽이지 않았었습니다.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삼상 24:10) 라며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만으로도 마음 아파했던(삼상 24:5) 다윗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 우리아에게 행한 비열한 행동은 사람의 성품과 인격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하며, 그마저 태만의 악령에 점령당해버리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버리고 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사부 마가(Abba Mark)는 니콜라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합니다.만일 당신이 내면에 정신적인 빛과 영적 지식을 획득하여 이 세대의 어두운 밤에 넘어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원한다면 영적인 노력과 지성의 통제와 깊은 사고력,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정념들을 정복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나의 방종한 영혼에 침투한 망각과 태만과 무지라는 악한 영들을 찾아내십시오. 그리하면 당신은 주의를 집중하고 지성을 통제하며 위로부터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로부터 해방될 것입니다. 은혜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일치와 참된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려는 열심이 마음에 심겨지고 배양될 때, 망각과 태만과 무지가 마음에서 완전히 제거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마음을 태만에 방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롬 8:9)을 성전인 내 존재 안에 소중히 모시려 애쓰는 사람이고,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아 5:2)라며 그리스도를 향한 감수성이 항상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지난 주 서신서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성전이라는 단어로 요약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는 사람'(엡 2:21),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사람'(엡 2:22),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리스도 안에서'이고, 둘째는 '성전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서신서의 말씀을 보면 '성전이 되어가는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할 변화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바로 그 변화를 위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중보 기도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 엡 3:16-17a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성전이 되어가는 존재'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해야 할 영적 목표에 대해 기도합니다. 그 첫 번째 기도는 '내적으로 굳센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에서 '속사람'이란 단어는 사도 바울이 만든 단어입니다. 같은 단어를 필로(Philo)는 '사람 속의 사람'이라고 표현했고, 플라톤(Platon)은 '내부 인간'이라고 표현했으며, 공동번역 성경은 '내적 인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면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태만과 그 태만으로부터 비롯되는 음욕과 탐심과 게으름 등이 우리를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시리아의 성 이삭(St. Issac)은 말했습니다.내면의 성소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늘의 성소를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성소와 하늘의 성소는 동일한 것이며, 그것들을 보게 해주는 입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로 이어지는 사다리는 당신의 내면 즉 당신의 영혼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왜 '내적 인간'을 굳세게 해야 하는지를 이 당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내적 인간이 굳세어진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으로서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심을 알면,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영혼을 태만에게 내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또 이렇게 기도합니다.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엡 3:17b-19
바울의 기도의 흐름을 보십시오. 우리의 속사람 즉 내적 인간이 굳세어지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마음에 계시게 되고, 내 존재가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나의 지식이 깨닫게 되는데, 그 깨달음으로 인해 우리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하나님처럼 충만하게 해달라고 바울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를 염두에 두고 오늘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과 큰 무리,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대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 요 6:1, 2
요한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을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 바다를 건넌 목적은 '예수님' 혹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표적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예수님을 보지 않았고, 오로지 표적에만 꽂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예수님을 보게 하는 수단이었지, 표적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 내면의 공허함이 드러나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땠을까요? 큰 무리가 당신에게 몰려오는 걸 보시고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요 6:5
이 물음은 몰라서 묻는 물음이 아니었습니다. 요한은 이 물음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요 6:6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군중들은 '예수님'보다 '표적'에 더 눈과 마음이 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눈과 마음이 가있어야 했을까요? "우리가 어디에서 빵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실 때, 그의 시선과 마음은 예수님을 향하고, 예수님과 마음을 함께 하고 있기를 예수님은 바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속물스러운 저 군중들과 시선과 마음에 있어 다르지 않았습니다.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 요 6:7
예수님은 영으로 가슴으로 대답하기를 바라셨는데, 빌립은 육으로 머리로 수치로 계량해서 대답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어떠함'(엡 3:19)은 감히 사람의 셈법으로, 물리적으로 계량할 수 없는 것임을 깨닫고 헤아려 같은 심정으로 대답했더라면 예수님 마음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우리는 오늘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군중과 빌립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 순간 우리 모습이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군중들을 통해 그리고 빌립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보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거나 꾸짖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때때로 태만과 무지에 처해지는 나의 내면의 갈등과 분열은, 내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대로 존재하지 않는 순간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임을 깨달아서, 나의 속사람 즉 내적 인간을 굳세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는 성전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따라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려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영적 태만에 빠져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잊은 채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속사람의 강건함 속에 태만을 극복하고 성전으로 지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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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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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