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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3주 하나님 닮음과 그리스도인의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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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21-06-12 18:26
조회
1171
성령강림 후 제3주 | 환경선교주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상 15:34-16:13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 라가니라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 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 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 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 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 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 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 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 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응송 | 시 20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서신 | 고후 5:6-10 (11-13) 14-17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 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 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 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 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 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 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 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 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복음 | 막 4:26-34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 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 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 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 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4:27, 28을 묵상하십시오. 씨앗을 심은 후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 동안 사람이 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② 고후 5:7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의 삶과 사역에서 가장 우선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삼상 16:7을 묵상하십시오. 용모와 키를 중시 여기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창 1:26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교부들은 이 말씀을 따라 지어진 사람 안에 드리운 하나님 이미지를 '닮음(likeness)'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닮음(잠재성)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神化 theosis)'에 도달하는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이 '닮음' 즉 '잠재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변화의 능력 즉 회복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확실히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도하심을 통해 오는 것인데, 교부들에 따르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완전한 근거가 되십니다. 요 10:34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에게 시편을 인용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성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를 신(God)이 되게 하시려고 그분은 사람(성육신)을 만드셨다." 즉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가 '도달하고 연합해야 할' 궁극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격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 안에 결합시키심으로서 타락한 본성을 회복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스승이며 안내자로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는 이렇게 해설했습니다. "구원은 로고스로 말미암는다. 성자 하나님이신 로고스는 회개와 개인지도를 통해 우리를 당신과 같이 만드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멀리 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로고스로 말미암아 연합(honosis)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 '그리스도와 같아짐'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사도 베드로는 벧후 1:4에서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를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리스도인의 완전(神化 theosis)'을 베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한 우리의 날갯짓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과 질투, 염려와 미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은총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해가 떠오르면 어둠이 물러가듯 예수님의 빛이 비추어오는 순간 내 안에 있던 어둠은 물러가고 맙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영적 성장의 단계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육체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면을 방치해두고 있지 않은가?
② 나의 내면은 말씀의 씨와 성령의 은총으로 자라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구약 | 삼상 15:34-16:13
34 이에 사무엘은 라마로 가고 사울은 사울 기브아 자기의 집으로 올 라가니라 35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 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 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 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 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 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 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 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 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응송 | 시 20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서신 | 고후 5:6-10 (11-13) 14-17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 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 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 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 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 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 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 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 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 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복음 | 막 4:26-34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 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 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 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 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4:27, 28을 묵상하십시오. 씨앗을 심은 후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 동안 사람이 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② 고후 5:7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의 삶과 사역에서 가장 우선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삼상 16:7을 묵상하십시오. 용모와 키를 중시 여기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하나님 닮음과 그리스도인의 완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서 인간존재는 유일하게 하나님을 닮은 존재입니다. 교부들은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 형상(image)'을 따라 지어졌다는 개념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백자 막시무스는 사람 안에 드리운 하나님 이미지를 '존재(being)'와 '영원성(eternity)'에서 찾았습니다. 니사의 그레고리는 사람 안에 드리운 하나님 이미지의 일차적 특성을 '지성(intellect)'과 '자유의지(free will)'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는 사람의 '이성적 능력(noetic faculties)' 및 '도덕적 완성을 성취하기 위하여 가지는 자유의지'를 실체적으로 사람 안에 드리운 하나님 이미지로 보았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육체'에는 하나님 이미지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미지는 사람의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지 않고 육체와 영혼을 포함한 '존재'와 '그 존재의 영원성' 그리고 지성과 이성, 자유의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렇게 하나님 이미지를 따라 지어진 사람은 소우주(小宇宙 mikrokosmos)로 만들어졌으며, 여타의 피조물들이 그 안에 요약되어 있는 까닭에 사람은 자신의 모상(模像)이신 하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모든 창조세계를 포용해 아름답게 돌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목적입니다.창 1:26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교부들은 이 말씀을 따라 지어진 사람 안에 드리운 하나님 이미지를 '닮음(likeness)'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닮음(잠재성)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완전(神化 theosis)'에 도달하는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은 이 '닮음' 즉 '잠재성'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런 변화의 능력 즉 회복의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확실히 하나님의 주도권과 인도하심을 통해 오는 것인데, 교부들에 따르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완전한 근거가 되십니다. 요 10:34에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돌로 치려는 유대인들에게 시편을 인용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근거로 성 아타나시우스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목적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우리를 신(God)이 되게 하시려고 그분은 사람(성육신)을 만드셨다." 즉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가 '도달하고 연합해야 할' 궁극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격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을 새롭게 하셨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 안에 결합시키심으로서 타락한 본성을 회복시키셨을 뿐만 아니라 스승이며 안내자로 활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그레고리오스 팔라마스는 이렇게 해설했습니다. "구원은 로고스로 말미암는다. 성자 하나님이신 로고스는 회개와 개인지도를 통해 우리를 당신과 같이 만드시려고 사람이 되셨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으로부터 멀리 있다. 그러나 성육신하신 로고스로 말미암아 연합(honosis)이 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 '그리스도와 같아짐' 즉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사도 베드로는 벧후 1:4에서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여기에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를 공동번역 성경으로 보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리스도인의 완전(神化 theosis)'을 베드로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한 우리의 날갯짓을 가로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만과 질투, 염려와 미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내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신 은총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해가 떠오르면 어둠이 물러가듯 예수님의 빛이 비추어오는 순간 내 안에 있던 어둠은 물러가고 맙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일러줍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람의 영적 성장의 단계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 막 4:28
주님의 이 말씀에 따르면 사람은, 하나님께서 땅에 햇빛과 비를 내려 곡식을 자라게 하시듯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숨결을 불어넣어 주셔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의 숨결로서 호흡하며 자라 열매 맺는 존재인데, 처음에는 싹이다가, 그 다음에는 이삭이다가, 마침내는 곡식으로 무르익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린 다윗에게서 우리는 그런 과정을 겪어가는 선례를 봅니다. 폐위된 사울의 뒤를 이을 이스라엘의 새 왕을 뽑으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용모와 키를 기준으로 왕을 찾는 사무엘과 달리 '사람의 중심'(삼상 15:7)을 보시겠다고 하십니다. 중심이란 '마음' 즉 '사람의 내면'을 가리키는데, 그의 내면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명하신 것은 그가 형들에 비해 내면에 하나님 이미지가 있고, 그러한 내면의 잠재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과 창조세계를 포용해 아름답게 돌볼 수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보아내신 것입니다. 비록 아직 어리고 미숙한 다윗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당신 숨결로 그를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훈련이었습니다. 훈련은 어린 다윗으로 하여금 점차 싹을 넘어 이삭을 넘어 곡식으로 무르익게 할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라며 자신이 '내면을 가꾸며 사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내면에 그리스도를 모신 자'로 살아간다는 의미이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육의 눈'이 아닌 '영의 눈'을 뜨고 산다는 것인데, 특별히 바울은 '사람을 보고 아는 것'에 있어서도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라고 단언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영의 눈을 뜨고 보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 것'(고후 5:17)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서가 들어있는 마가복음 4장에는 씨를 주제로 하는 비유가 세 가지 나옵니다. 하나는 막 4:1-9절로 '씨 뿌리는 사람과 밭에 대한 비유'이고, 둘째는 26-29절로서 '저절로 자라는 씨'에 대한 비유이고, 셋째는 30-32절로 '겨자씨에 대한 비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의 말씀은 이 중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비유를 시작하십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 막 4:26
오늘은 땅에 뿌려진 씨앗의 심정으로 이 신비를 한 번 따라가 보시겠습니다. 씨앗 하나가 어느 농부의 손에 의해 땅에 뿌려졌습니다. 처음에는 뿌려진 그대로 씨앗이었겠지만 어느 순간 자기 몸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피부가 썩기 시작하다가 몸체도 썩어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죽어서 썩은 그 몸에 가녀린 싹이 트이더니 자기를 뒤덮은 두터운 흙을 밀어 올리고 땅 위를 향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땅 위로 오르자 햇빛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비가 시원하게 내리면서 온몸이 해갈을 경험합니다. 자기가 자라려고 애를 쓰는 것도 아닌데, 자신도 모르게 하루하루 쑥쑥 자라갑니다. 농부의 시선으로 이 상황을 보면 어떨까요? 농부는 추수를 기대하며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가 한 일이란 좋은 씨를 가려 보관하고, 밭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쟁기질을 하고, 적당한 퇴비를 주는 것뿐입니다. 씨를 뿌리고 며칠 뒤에 밭으로 나갔습니다. 아주 작은 떡잎이 보입니다. 얼마 후에는 부쩍 자란 이삭이 보이더니 어느 날 이삭마다에 열매가 달렸습니다. 이 신비를 마가는 오늘 복음서 27절과 28절에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 막 4:27-28
마가가 여기에서 강조한 것은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 중에 이 당연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치에도 우리를 착각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 일이란 그저 씨앗을 뿌린 후에 '자고'와 '깨고'만 반복한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 씨가 싹을 틔우고, 이삭이 되고, 열매 맺어 자라는 것까지, 다 내가 한 일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물도 주고 비료도 주긴 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력은 진정으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노력은 거기까지입니다. 씨앗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고, 열매 맺게 하시는 '주체'는 철저하게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더 고려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토양(土壤)입니다. 농부가 뿌린 씨앗 안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생명'이 있었는데, 그 생명은 토양의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리 씨앗 안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햇빛과 비를 내려주신다 할지라도 그러나 땅이 그 씨앗을 거부한다거나 땅이 햇빛과 비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 땅은 아무 열매도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땅은 곧 사람의 내면입니다. 사람의 내면이 하나님께서 주신 씨앗을 기뻐하고, 그 씨앗을 품고 가꾸어 열매를 맺으려는 열망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 씨앗과 땅을 통해 열매가 결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 노력을 그레고리 팔라마스는 성사 즉 세례와 성찬으로 설명했습니다. 세례를 통해 성령께서는 타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재생시키며, 그 '형상(in the image)'으로 사람을 정화시키시며, 하나님을 닮도록 사람에게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례'가 사람의 본성을 정화해 하나님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것이라면, 그리스도 희생의 살과 피로서 제정하신 '성찬'은 주님 희생을 보고, 받아들이고, 내면화함으로서 '닮음'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렇게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성사적 연합을 이룬 사람은 내면 또한 실상의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주님은 이러한 영적성숙의 과정을 씨앗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보게 하십니다. 다윗의 형 엘리압의 외모에 반해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삼상 16:6)라고 섣부르게 판단했던 사무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신 말씀을 들은 후에 더 이상 외모나 키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새의 아들 일곱 명은 모두 뛰어난 외모를 가졌음에도 사무엘은 그들을 모두 지나보냅니다. 그런데 아들 일곱 명이 다 지나갔는데 그들 중에 왕 될 인물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이 또 없느냐"고 묻자 이새는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삼상 16:11a)라고 대답합니다. 형들이 왕이 되기 위해 사무엘 앞에 있을 때, 여전히 들에서 양을 지키고 있던 사람, 다윗,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아두었던 이스라엘의 새 왕이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삼상 16:13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수정해 주신 시선으로 다윗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그에게 기름을 부었더니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었습니다. 사람이 씨앗을 뿌리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듯, 사람을 자라게 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복음서로 돌아와서 이 말씀을 좀 더 심층 깊게 묵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염두(念頭)'에 두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비유가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는 사실입니다. 마가는 어떤 사람이 씨앗을 뿌린 후에,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했다고 했는데, 여기서 '자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카테우데(katheude)' 즉 '죽음'을 의미하고, '깨다'라고 번역된 단어 '에게이라타이(egeiretai)는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 비유를 단순히 파종에서 수확에까지 이르는 '한 계절'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죽음과 부활까지 포함한 '인생 전체'를 전제하고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있습니까? 중심에 말씀의 씨앗이 있습니까? 내면에 믿음의 씨앗이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이 땅에서 살다가 죽고 부활하는 우리 인생 전체를 통해, 이 씨앗이 우리 안에서 자라게 하실 것이고,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궁극적인 결과를 주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를 통해 말씀해 주십니다.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 막 4:30-32
생각해 보면 예수 사건은 일종의 겨자씨와 같은 사건입니다. 말구유에 태어나 목수의 아들로 자란 예수, 불과 열두 명의 제자를 이끌고 갈릴리를 다닌 이 젊은이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2천 년 전에 팔레스티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겨자씨만큼 작고도 초라했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지난 2천년 동안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그늘에 깃들어 쉼과 생명을 열매 맺게 된 생명 운동의 시작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작고 작은 씨앗 안에 은폐되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과 에너지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내면에 이 씨앗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 씨앗을 자라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서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 고후 6:15-16a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여전히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고 주님의 희생을 통해 이루신 은총의 빛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만 '육신을 따라 아는 사람'일 뿐이고, 그저 '보는 것'(고후 5:7)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소인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씀합니다.이제부터는 그 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 고후 6:16b
지금까지는 육신을 따라 알고 보는 것에 반응해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연합을 이룬 사람으로서 영적 시선을 뜨고, 그리스도의 밝은 빛 안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루어 뒤섞이면서 살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선언합니다.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후 6:17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만이 진정으로 새 것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막연하거나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으로서 그의 존재는 하나님의 영원에 들어갈 것이고, 그는 지성과 이성은 진리를 추구할 것입니다. 자신의 모상(模像)이신 하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는 모든 창조세계를 사랑으로 포용하고 돌보며 하나님과 사람과 창조세계와 더불어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씨앗이었던 우리가 자라 반드시 맺어야 할 영적열매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육체에 관심을 기울이며 내면을 방치해두고 있지 않은가?
② 나의 내면은 말씀의 씨와 성령의 은총으로 자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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