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절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2:1-21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5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6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 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 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10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 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 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 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응송 | 시 104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서신 | 롬 8:22-27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 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 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복음 | 요 16:5-15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 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 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 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 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묵상 | meditatio
① 행 2:2-4을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 오셨을 때의 청각적이고(2절) 시각적인(3절) 현상은 무엇이며, 사람들의 반응(4절)은 어땠습니까?
② 요 16:13을 묵상하십시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 분은 우리를 어 디로 인도하십니까?
③ 롬 8:26, 27을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기도 하실 때의 태도(26절), 그리고 방향(27절)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들은 성령강림절 전 날 저녁기도에서 교회가 오순절 축제로 들어오도록 초대사를 불렀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오라, 우리는 오늘 오순절의 축제를 거행하나니,
성령께서 강림하심은 약속의 성취이며
또한 우리의 희망이로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이 밝아오면 아침기도에서는 이렇게 찬미가를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감동된 누가가 전한 바대로,
불의 혀 가운데서 성령이 내려오시사
오늘 다윗 성에서 만국이 놀라운 일을 보도다.
제자들은 모두 함께 모여 있었고
거센 바람소리 같은 것이
그들이 앉아있는 집을 가득 채웠도다.
그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서 여러 가지 말로
신기한 교훈과 신기한 가르침을 말하기 시작했도다.
본디 이 오순절축제는 구약성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오순절'이란 어원에는 '제 50'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오순절은 유월절(파스카) 주간의 안식일로부터 50일 째 되는 날에 지키는 유대인의 3대 절기 즉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신 16:1, 10, 13) 중 하나인데, 그 중에서 오순절은 유월절 기간 동안 처음 익은 보리 곡식 단을 제단에 드린 날로부터 시작해서 밀 추수로 끝나는 49일 간의 추수기간 다음 날이기 때문에 칠칠절(출 34:22;신 16:10)이라고도 합니다. 또 처음 수확한 밀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제사를 드리는 절기이기 때문에 '맥추절'(출 23:16)이라고도 했고 '초실절'(출 34:12)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세기경부터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 지켜졌습니다. 출 19:1에 암시된 연대를 추론해볼 때, 율법을 받은 날은 오순절이 분명한데, 유월절 어린 양을 바친 후 50일 째 되던 날, 그날 광경을 출애굽기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6-19) 하나님께서 옛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율법은 이렇듯 유월절 어린 양을 바친 후 50일 째 되던 날 하나님의 시내산 현현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에 성령을 주실 때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오십일 째(Pentecost)되던 날, 그날도 역시 오순절 축제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이기도 했던(요 14:26) 이 성령의 강림은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새 언약이었습니다(행 2:1-41) 그래서 성령강림절을 교회의 생일이라고도 합니다. 바로 이날 역사상 새로운 시대인 교회의 시대가 개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역사적 장면을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 행 2: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라는 말씀은 오순절이 거의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언급해드린 유대인의 3대 절기를 맞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 절기들을 지켰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인파로 인한 혼잡을 피하기 위해 혹은 아직도 예수에 대해 적대적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한 곳에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이루어진 성령강림은 세 가지 징표로 나타났습니다. 곧 '바람'과 '불'과 '방언'입니다. 먼저 그들은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들었다'는 것은 청각적인 현상을 의미하는데,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바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거나(삼하 22:16;욥 37:10;겔 13:13), 죽은 육체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생기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겔 37:9-14). 그리고 그들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성령강림을 청각적으로 들었을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기도 한 것입니다. 불은 죄악되고 더러운 것들을 태워 없애는 정결의 도구로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출 3:2;19:18), 불세례에 관해서는 세례 요한이 마 3:11에서 예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육체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바람'은 제자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했고, 죄악되고 더러운 것들을 태워 없애는 정결의 도구인 '불'은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다는 누가의 세밀한 표현 증언입니다. 이렇게 50일간의 부활시기를 마감하는 날 임하신 성령강림은 그래서 부활의 완성일 뿐 아니라 구원사업을 종결짓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누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스라엘 시대와 구원의 시대로 구분했습니다. 이스라엘 시대란 출애굽 시대부터 예수님 이전까지의 시대를 뜻하고, 구원의 시대란 예수님 이후의 시대를 뜻하는데, 이 구원의 시대는 다시 예수님 시대와 교회의 시대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시대란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순절, 즉 성령강림절부터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를 말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교회를 통해 주님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확산되는데, 그 힘은 바로 지금 강림하신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순절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곡식을 수확하고 과실을 거두어들이려 낫을 대는 때이지요.
이제 그 실상을 보십시오.
'말씀'의 낫이 일을 시작할 시간이 어떻게 왔나 보십시오.
낫 대신 칼날처럼 예리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마 9:37)
그분께서는 친히 우리의 본성을 취하시어 높이 들어 올리셨고,몸소 가장 먼저 낫을 대셨습니다."
본능을 따라 완고해진 우리 마음을 추수하려 '말씀'의 낫 대신 칼날처럼 예리한 성령께서 오셨다는 그의 고백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말씀에 의해 추수되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성령에 의해 결실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강림은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닙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계명을 주셔서 사람들이 '지각(知覺)'과 '의지(意志)'로서 당신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약함과 타산적인 본성을 넘어서지 못하자 당신께서 친히 사람 안으로 임재하심으로서 사람과 내밀하고 진정한 일치를 이루시고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강림절이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는 파스카의 신비를 완결하시려고
우리를 독생 성자와 결합시키시어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신 후
오늘 성령을 가득히 내려주셨으며,
성령은 새로 세워진 교회와 만민에게
천상의 지식을 넣어주시고,
서로 '다른 언어'로 '한 신앙'을
고백하게 하셨나이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행 2:4
성령강림의 세 번째 징표는 '언어' 즉 '방언'이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셨다'는 누가의 증언을 원문에 충실하게 재해석하면, 제자들이 '크고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즉 성령께서 임재하셨을 때, 그들이 한 말은 황홀경에 빠져 중얼거리는 뜻 모르는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담아낸 신탁발언(神託發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말을 들은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 행 2:5-13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이 때의 상황을 '혼돈(混沌)'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에 의해 이루어진 이 두 번 째 혼돈은 첫 번째 언어의 혼돈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혼돈은 바벨탑에서 일어난 사악한 혼돈입니다. 이때 일어난 언어의 혼돈은 분열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그들은 교만했고, 의도마다 불경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혼돈은 회복과 일치의 혼돈입니다. 이때 성령께서는 회복과 일치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바벨론의 교만으로 갈라진 언어를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해 회복시켜주셨는데, 교회의 겸손함 위에 주어진 언어의 다양성은 은총의 다양한 선물을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 중 가장 놀라우며 귀한 선물은 하나님 말씀을 각자 난 곳의 언어로 들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사악한 인간들이 하늘까지 닿도록 하자며 바벨탑을 쌓아올렸을 때, 그 불경한 마음들은 말의 형태를 갖가지로 갈라놓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강림하신 교회에서 그 흩어진 언어들은 다시 모아졌고, 많은 민족의 말은 한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 언어의 일치를 우리는 '조화(調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언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룬 곳입니다. 바벨론의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갈라지게 하지만, 오순절의 언어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치되게 합니다. 성서적 언어는 사람을 하나님께로 이끌지만, 미혹의 언어는 사람을 악마에게로 이끕니다. 겸손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천국으로 이끌지만, 교만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지옥으로 이끕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우리의 언어를 오순절의 언어, 성서적 언어, 겸손한 언어로 조화를 이루도록 바꾸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에 관한 지식을 꿰뚫고 있는 것과 성령을 체험하며 사는 삶은 다릅니다. 우리는 성령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으로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신앙생활도 해야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성령을 체험함으로서 '거룩한 성전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답답한 말씀을 하십니다.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 요 16:5, 6
'지금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의 승천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진의를 모른 채, 그저 예수님의 부재에 대한 근심으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다" 라는 주님 말씀은 요 13:16에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묻던 베드로의 질문과, 요 14:5에서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한 도마의 질문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처럼 보이는 주님의 말씀은, 나의 목적지를 제자들이 묻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고, 당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진정한 의미를 모른 채, 근심에만 빠져 있는 제자들의 무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요 17:11)라고 말씀하신 지난주 복음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떠올려 봅니다. 이제부터 제자들은 예수님 없는 세상에 남겨져 냉소와 멸시의 시선들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은 마냥 안타까워하지만은 않으셨습니다. 당신을 대신하실 성령을 보내주실 수 있으신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시면, 성령께서 제자들을 깨우쳐 진리를 알게 하실 것입니다.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 요 16:7, 8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요 16:12, 13
성령님은 얼마나 좋은 분이십니까? 그 동안 예수님과 대화가 통하지 않은 채 동상이몽에 젖어있던 제자들에게 임재하셔서 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롬 8:26, 27
바울의 진단에 따르면 우리가 처한 연약함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창조자인 하나님의 영이시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하나님의 뜻대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영적 호흡을 주시는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영(靈)'을 뜻하는 그리스어 프뉴마(pneuma)가 '호흡'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숨의 중요성도 그다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숨을 쉬는데 무언가 잘못되면, 그 때 비로소 숨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성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강림절은 하나님의 숨결인 성령님께서 내 존재 안으로 들어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은 사람이 비로소 하나님의 숨결로 숨쉬기 시작한 날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하나님의 호흡과 사람의 호흡이 일치된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중요성도 그다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된 채 여전히 육체의 숨만 쉬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그저 우리에게는 이천년 전의 인물일 뿐이고, 우리는 제자들보다 훨씬 더 주님과 멀리 있으며 주님과의 소통이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무척 역동적인 모습으로, 초월적 에너지로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안에서 숨 쉬는 하나님의 숨결이시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도우시는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이 하나님의 숨결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로이 창조된 존재로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더 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바람을 따라가면 늘 바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아는 사람은 자기 고집으로 바람의 방향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늘 성령의 바람이 불어가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강림하신 성령의 바람에 자신을 맡긴 채 우리의 언어와 삶이 쇄신되어 진리의 나라로 날아오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실천 | Praxio
① 주님과 소통의 부재 속에 내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②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읽으며 살아가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