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7주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15-17, 21-26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 았던 자라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 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 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응송 | 시 1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서신 | 요일 5:9-13
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언을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의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것이니라 10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 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 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복음 | 요 17:6-19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 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 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 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 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 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 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 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13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 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 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15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 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 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묵상 | meditatio
① 요 17:14, 16을 묵상하십시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 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② 행 1:22을 묵상하십시오. 초대교회 공동체가 유다를 대신하여 다른 한 사람을 세운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요일 5:10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증거'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오늘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자 승천주일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주님의 인류 구원사역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영광 속에 승천하심으로써 승천 장면을 지켜본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성을 확인시켜주셨는데, 이후로 교회의 전통 속에서 기념해 온 승천주일은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대로, 주님께서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심"을 찬미하며 경배하는 축제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이 구원론적이고, 종말론적인 차원에서 지니는 커다란 의미는 그리스도 승천주일에 부르는 콘다키온 성가에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우리 하나님 그리스도시여 당신은 우리를 위한 구원사역을 완성하심으로써, 하늘과 땅 그리고 우리와 하나님을 연합시킨 후 영광 속에 승천하셨나이다. 하오나 당신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기에 당신의 사랑을 간직한 이들에게 말씀하셨나이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물론 사도신경의 고백에서나 콘다키온에서 노래하듯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그곳'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창공(蒼空)'이라는 어떤 물리적인 공간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천이 갖는 신학적인 의미 혹은 신앙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더 이상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성부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가셨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분리된 곳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가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세계라고 한다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그곳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는 인간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콘다키온에서도 노래하듯, 마 28:20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있으리라"라고 약속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승천주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4세기 말에 기록된 '열 두 사도의 가르침'과 성경 내용을 바탕으로 그려진 '주님의 승천' 성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1546년 크레테의 테오파니스가 그린 '주님의 승천' 성화는 아토스 성산의 스타브로니키타 수도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성화는 '승천하시는 주님'과 '그분의 교회'라는 두 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주님의 승천보다 교회에 대한 언급이 더 많기 때문에 성화 작가는 승천하시는 주님보다 교회의 구성원인 사도들에게 더 많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주님의 승천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감람산(올리브 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산은 고대로부터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많은 산으로 알려져 왔고, 그래서 성화의 배경 또한 바위들 사이로 감람나무가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빛나는 옷을 입고 앉아계신 그리스도는 왕으로서 '영광'을 상징하는 원 안에 표상되고 있습니다. 원 안에 있는 무지개 위에 앉으신 그리스도께서는 한 손으로는 축복하시고, 다른 손에는 두루마리를 쥐고 계시는데, 이것은 그분이 가장 높은 선지자요 스승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장면을 자세히 관상하노라면 마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라고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 작은 무지개는 주님의 발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부터 비치는 빛은 두 천사를 비추고 있습니다. 이 빛은 신적 위엄과 권위를 상징합니다. 천사들은 놀라움으로 주님을 찬미합니다. 영광을 나타내는 원 바깥의 다른 원은 제자들의 눈으로부터 주님을 가린 '구름'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라는 행 1:9의 말씀이나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라고 증언한 사 19:1에서 보듯이 그리스도께서는 불 마차나 불 위에 앉아계신 것이 아니라 구름 속에 앉아계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현존과 하나님의 이동수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승천하시는 주님의 아래 지상에는 천사들의 수호를 받는 교회가 있습니다. 수직으로 일직선상에 구원자이신 주님과 성모 마리아가 위치해 계시고, 이 둘을 잇는 선과 성화를 거의 양분하는 수평선이 만나 완벽한 십자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여섯 명의 사도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도들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어떤 사도들은 손의 자세와 얼굴 표정을 통해 주님의 승천에 놀라워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당신의 교회를 남기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부활하신 몸으로써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통로로 남겨진 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인들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 안에 유기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몸을 이룰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라고 말씀하신 의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복음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의미심장합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요 17:11
우리는 예수님의 이 기도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이 기도 내용은 가깝게는 당신의 죽음으로부터 승천까지 이르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의식하신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후 오순절을 기점으로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셔서 제자들은 계속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죽음에서 승천까지 이르는 그 막간(幕間)이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러나 제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일들이 당신 없는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에게 거세게 몰아닥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그 제자들을 향한 연민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실 수밖에 없는 보다 절박하고 거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몰아닥칠 바리새인들에 의한 율법 근본주의의 거센 탄압이었습니다. 앞으로 38년이 지나면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힘을 잃고, 율법과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막강한 기득권을 챙기게 될 것입니다. 이때부터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 세력을 회당으로부터 몰아내기 시작할 것이고, 그 첫 번째 대상이 그리스도인들이 될 것은 불을 보는 뻔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바리새파가 근본주의로 선회하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양자택일을 해야만 합니다. 바리새파가 요구하는 정도로 율법을 준수할 것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저항할 것인지, 율법을 따르려면 복음의 본질훼손이 불가피하게 되고, 그들에게 저항하려면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주님의 이 걱정이 보다 구체화되어 있습니다.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 요 17:14
결국 우리는 11절과 14절을 읽으면서, 예수님께서 왜 그토록 절박하게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남겨져 있으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남겨질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연민이고, 예수님께서 그토록 기도하셨던 이유였습니다. 결국 세상이 제자들을 그토록 미워한 이유도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 요 17:16
사실 주님의 이 기도는 우리를 매우 민망하게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이 걱정하실 만큼 지나치게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기도가 우리가 세상에 속해있지 않을 때만 성립되는 기도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마지막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정체를 부여해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상에 보냄 받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 요 17:18
이 말씀의 흐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에서는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라고 하셨습니다. 14절에서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다"고 하십니다. 결국 제자는 어떤 존재입니까? 세상에 살아가고 있으면서 세상에 속해있지는 않고, 세상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세상에 보내진 존재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승천 이후에 세상에 남아 있는 성도들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에서 그 거룩성 때문에 미움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문제는 우리를 진정으로 거룩하게 하는 것이 뭐냐는 겁니다. 주님은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요 17:17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 요 17:19
여기에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성별(聖別, consecration)' 즉 분리된 삶을 의미하는 것인데, 헬라어 성경에 보면 '하기아조(ἁγιάζω)'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떼어놓는다'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떼어지는' 이 성별된 삶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주님은 17절과 19절에서 '진리가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그러니까 진리로 거룩함을 얻는다는 것은 말씀을 통해 거룩함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만 진리로 살아갈 수 있고, 말씀을 통해서만 세상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세상에 보내진 존재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의 이 기도가 우리를 '승천의 신비'에로 이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영원한 계절'에서 주님의 승천일을 보내면서 주님께서 성육신하심으로 당신의 인간적인 삶을 우리와 공유하셨을 뿐 아니라, 승천하심으로서 우리의 존재성을 하늘 아버지의 오른편으로 이끄셨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로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지는 내 인생의 미래를 바라볼 수 없다면, 우리는 끝내 세상에 속한 존재로 세상을 탐하며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손에 모든 것을 움켜쥐어도 불안한 삶이고, 가진 것이 없으면 없어서 더 초라한 삶이 '세상에서 내 존재가 마감되는' 그러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맞이한 이 승천주일은 마치 성화 속 제자들의 시선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향한다는 것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승천의 신비는 우리 존재성이 하나님의 오른편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뿐 아니라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기다린다는 건 그리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움이 없이는 기다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그리워하며 기다리십니다. 토마스 머턴은 '침묵 속의 만남'에서 '유일한 불행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당신은 언제 돌아오시겠습니까?
내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오시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당신의 이 순수한 사랑 외에는 결코 아무 것도
갈망하지 말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이 사랑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시는 당신,
곧 제 영혼 안에서 뿐 아니라
저의 모든 생각과 말과 기능들 안에서
당신 자신을 사랑하시는 당신입니다.
이 사랑으로
제 육체의 기능은 공허하게 사라지고 끝나버려
마침내 자유 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 행 1:25
만약 유다가, 주님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되어 부활과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심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이루어질 생명의 신비를 볼 수 있었더라면, 그래도 그토록 무모한 선택을 했을까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유다에 대해, "그가 제 곳으로 갔다"고 증언합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3년이나 주님과 함께 다녔으면서도 끝내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은 채 '자기 길'을 가고 만 것입니다. 대신 맛디아가 뽑혀서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보면 어쩌면 맛디아는 불행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머잖아 닥쳐올 환란과 핍박의 한 가운데서 그도 잔인한 핍박을 당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우리 존재의 진짜 현실이 하늘에 있는 것임을 알았기에 기꺼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대하여 증언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0, 11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우리 역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삶이란 그런 것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그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음을 믿고,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세상 한 가운데서 주님이 맡겨주신 직무에 충실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에 따르면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증거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 안에서 신앙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하나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깊이 믿어' 마침내 진리로 거룩하게 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는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을 맞아 주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분,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분을, 믿음이 담긴 고백 속에서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우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삶을 살며, 동시에 세상에 보냄 받은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시선을 땅에 두고 세상에 속한 자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진리 안에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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