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6주 사랑의 시원(始原), 성부 하나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5-08 23:48
조회
1413
부활절 제6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0:25-26, 34-35, 44-48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응송 | 시 98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서신 | 요일 5:1-6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 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 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 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 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복음 | 요 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 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 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5:9, 12을 묵상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랑의 삶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입니까?
② 행 10:34, 35을 묵상하십시오. 이방인 고넬료를 맞으며 고백한 베드 로의 고백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③ 요일 5:1, 2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사랑이 결여된 채 계명을 지키려는 것에만 급급하지 않았는가?
② 하나님께로 부터 시작된 사랑으로 이웃들과 가족을 사랑하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0:25-26, 34-35, 44-48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35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응송 | 시 98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서신 | 요일 5:1-6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 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 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 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 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복음 | 요 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 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 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5:9, 12을 묵상하십시오. 오늘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랑의 삶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입니까?
② 행 10:34, 35을 묵상하십시오. 이방인 고넬료를 맞으며 고백한 베드 로의 고백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③ 요일 5:1, 2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사랑의 시원(始原), 성부 하나님
오늘은 부활절 제6주일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내 안에, 나와 더불어 계시는' 신비의 절정으로 이루어진 이 부활 시기를 다 지나고 나면 어느덧 다음 주 승천주일을 지나고, 바로 이어 성령강림주일을 맞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 성서일과는 성령의 강림을 예고하는 말씀들과 성령 안에서의 완결된 사랑에 관한 말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나면 나무들마다 꽃과 열매가 맺히듯 지난 주 보았던 '포도나무와 가지'에 성령의 단비가 내리면 자연스레 맺히는 것이 열매인데, 오늘 복음서에서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열매는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가 예수님과 우리의 일치 즉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인 일치라고 보았을 때, 포도나무와 가지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형제로서 긴밀히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힘은 바로 성령님이고, 그로 인해 맺히는 열매가 곧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보십시오.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요 15:9
이 말씀은 사랑의 당위성에 대한 가장 완벽한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당위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하신 당신의 사랑이 결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라는 이 말씀은 그래서 모든 사랑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 주일이면서 동시에 어버이주일이기도 합니다. 성자를 사랑하신 성부의 마음에서 참된 사랑의 심연(深淵)이 느껴지고,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마음에서 또한 참된 사랑의 깊음이 느껴지듯이, 우리를 사랑하신 부모님의 마음에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의 깊이를 느끼는 오늘은 그런 주일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를 사랑하신 부모님의 사랑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부터 출발된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가슴에서 배어난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에서 확증된 사랑이 우리들 부모님 사랑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주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하신 말씀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 비로소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엄숙성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성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내리사랑으로 온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요 15:10
여기에서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성자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온 '사랑으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계명'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요한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 요일 5:3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우리 모두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버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마 22:37-40) 우리는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얻으신 그 기쁨으로 우리 영혼을 채우게 됩니다. 성 대 바실리우스는 '세례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사랑의 가장 중요한 표시라면, 사랑이 없을 경우 영광스러운 선물인 은사들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우리는 몹시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들이 자신의 뜻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 어떤 숭고한 계명이라도 그저 표면적으로만 지켜지는 것이라면 그 계명은 사랑의 증거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랑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눈을 떠서 십자가 위에서 펼쳐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파도에 깊숙이 잠길 때, 우리 또한 사랑으로 지켜지는 계명만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듯이, 우리 또한 예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서 예수님 사랑 안에 거하려 애쓰게 될 것입니다.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요 15:11
이 말씀은 '나에게 기쁨이 되는 일들이 너희에게도 기쁨이 될 것'이라는 뜻인데,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나의 내면으로 주님의 기쁨이 흘러들어 내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기쁨을 매개로 주님과 우리 사이에 '친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때, 거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께로 부터 시작된 그 사랑으로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 또한 하나님께로 부터 시작된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 요 15:12
이 전제가 중요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계명으로 우리가 '서로 사랑할 것'을 당부하시면서도 그 사랑의 시원(始原)을 우리에게 두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시원(始原)이 너희가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행위는 바로 이 사실을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향해 신앙의 눈을 뜨는 그 순간, 우리는 아무 대가도 없이 무상으로 우리에게 베풀어진 그리스도의 사랑에 잠기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토록 무참하게 꺾이신 것 아닙니까? 우리가 계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희생어린 사랑을 절절하게 깨닫고, 그 사랑을 통해서 회복시켜 주신 생명의 가치를 깨달을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 깨달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 부모님을 사랑할 때, 자식으로서 본능적으로 섬기는 것도 소중하지만, 내 부모의 생명이 육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서 새 생명의 차원을 보여주신 '예수님 안에 있는 참 생명'임을 깨달아서 기도로 부모님의 생명을 섬겨드리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런 사랑은 죽음을 통과해 부활에 이르신 예수님의 사랑의 여정을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부활은 완결된 죽음의 결과입니다. 부활은 진정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새로운 생명의 차원입니다.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려가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자기 발밑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죽음의 심연을 발견한 사람. 그리하여 이제는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가치 있는 세계가 있음을 깨닫고 그 일에 자기 생명을 희생하는 사람에게 열리는, 부활은 바로 그런 역설이요, 신비요 새롭고도 다채로운 생명의 차원입니다. 이 부활 생명에 나의 부모님을 연결시키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자녀가 자신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날 때, 내 자녀의 순간순간의 호흡과 맥박은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 때부터 우리 자녀는 자신의 숨결에서 주님의 숨결을 느끼고, 모든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느끼며 살게 될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가 한 생명인 것처럼, 예수님과 내 자녀가 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내 자녀, 내 자녀와 예수님이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인 존재가 될 때, 그 때부터 우리의 자녀들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갈 2:20) 놀라운 생명의 차원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을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자녀가 '예수님의 친구'로 살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자녀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행복의 이유까지 서로 통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 율법으로는 죽어도 친해질 수 없는 두 사람이 감격 속에 서로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 행 10:25, 26
로마의 장교인 고넬료가 정중하게 베드로를 맞아들이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이 장면을 그저 훈훈하게만 여기면 안 됩니다.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의 장교였습니다. 성경은 "그가 경건했고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했다"(행 10:2)고 하지만, 그러나 유대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그도 점령국의 장교인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베드로가 간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어느 날 시몬 베드로가 환상을 봅니다. 하늘에서 보자기에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유대인이 먹지 못하는 부정한 짐승과 새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잡아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베드로는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행 10:13, 14) 그러자 곧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행 10:15) 그 환상이 끝나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에게 전후사정을 들은 베드로는 두 번째 소리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삶이 경건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사람을 단지 그가 이방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부정하게 여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고넬료가 보낸 일행과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갑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의 환경에서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 기독교인들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마음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 장벽을 끝내 넘지 못하고 베드로와 고넬료가 서로 만나기를 포기하고 말았다면 이방인 세계에 영영 복음이 전해지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중하게 듣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던 베드로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께는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베드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그가 예수님께 견고히 붙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의 가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안에 흐르는 사랑의 수액을 받아 살았고, 그 결과 아름다운 순종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이 유대를 넘어 이방인 세계까지 흘러가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유대인으로서의 자만을 거두고 이방인인 고넬료를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요한은 말씀합니다.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요일 5:1, 2
하나님 안에 머문다 함은 '사랑 안에 머물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으로서 당신을 가장 잘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란 윤리적인 행위 같은 것이 아닙니다. 거짓되고 허무한 자아(自我)가 죽음임을 알고, 하나님 안에 있는 내가 진정한 나임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위해 목숨도 희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있는 기쁨, 그것은 감정이나 심리나 정서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명의 완전한 충만'입니다. '생명의 충만에서 오는 환희'입니다. 모든 것을 썩게 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 그러나 썩지 않는 열매로 살아가는 감격입니다. 이것이 부활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아버지의 가슴으로부터 시작된, 그리고 예수님의 희생과 부활로 완성된,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우리가 사랑하며 살 때, 그러한 사랑은 새로운 환경을 창조해 냅니다. 그 사랑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케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적 사랑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화로 이끄는 사랑이겠습니다. 오늘은 부활절 여섯째 주일이자 어버이주일입니다. 박경리 선생은 생전의 어머니를 회상하며 "어머니를 미인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 저 인물로 어찌 소박을 맞았을까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 그러나 자신은 어머니를 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 어머니는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얼굴 윤곽이 너무 뚜렷했으며 / 쌍꺼풀 진 큰 눈에 의미를 담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 그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때도 / 왠지 나는 그것이 슬퍼 보이지 않았다"(어머니의 모습)는 고백을 보며 박경리 선생도 다른 모녀들처럼 어머니와의 사이에 공감이 적었나보다 라고 느꼈습니다. 사실은 대개 자녀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 사랑'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활절 여섯째 주일의 복음은 그보다 훨씬 본질적이고 깊은 사랑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랑으로 지켜지는 계명만이 그리스도께 속한 것임을 알아 주님이 우리 연약함에 공감하셨듯이 우리도 부모님의 연약함에 공감하며,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듯이, 우리 또한 부모님 사랑을 사랑으로 화답함으로써 부모님의 크신 사랑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사랑이 결여된 채 계명을 지키려는 것에만 급급하지 않았는가?
② 하나님께로 부터 시작된 사랑으로 이웃들과 가족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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