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6주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50:4-9a
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5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 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6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 니하였느니라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 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 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9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응송 | 시 31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 사 나를 붙드소서
서신 | 빌 2:5-11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 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복음 | 막15:1-39, 47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 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 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 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 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 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 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50:6-9을 묵상하십시오. 고통과 조롱을 주는 자들 앞에서 끝까지 당당할 수 있었던 이사야의 힘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까?
② 막 15:39을 묵상하십시오. 사람에게 조롱과 수모를 당하시고 십자가 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끝까지 지켜본 백부장은 뭐라고 고백합니까?
③ 빌 2:5-8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안에 품어야 할 예수님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마음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
사순절이 시작된 지 40여일 만에 오늘 우리는 종려주일을 맞이했고, 고난주간의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고난주간은 사순절기의 마지막 주간이고, 온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을 향해 마지막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시기입니다. 연중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시기인 이 주간 동안 교회는 예수님의 체포와 수난과 죽음을 묵상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이 주간을 '고난주간'이라고 하지 않고 '성주간'이라고 부를 것을 권고합니다. '고난주간'이라는 명칭은 자칫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구원사의 신비 안에서 기념하기보다는 극화함으로써 감상적 연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수난의 구원론적 측면과 죽음에 대한 승리, 그리고 부활의 의미가 희미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고난주간'을 '성주간(聖週間, Holy Week)'이라고 표현하는데, 다른 이름으로는 '위대한 주간', '수난주간', '파스카 주간' 등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종려주일부터 토요일 밤까지 예수님 지상생활의 마지막 이 한 주간 동안 신자들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며 지내는데, 신약 성경의 의미에서 '파스카(Pascha)'란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성주간 안에 포함된 성삼일을 '파스카 삼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파스카 삼일'은 교회력 중에서도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이 담긴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따라서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로 이어지는 이 성삼일 동안 교회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배와 기도회를 통해 심층적으로 묵상합니다. 목요일에는 세족식과 함께 '성목요일성찬예배'가 있고, 금요일에는 금식과 더불어 '성금요일예배'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절 전 날인 토요일에 전례적 교회들은 '예수 부활 대축일 저녁기도(성무일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격스럽게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수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거룩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루시는데, 이 때의 예수님의 자태는 마치 길고 추운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박노해 시인이 쓴 '나무가 그랬다'는 시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비바람 치는 나무 아래서
찢어진 생가지를 어루만지며
이 또한 지나갈 거야 울먹이자
나무가 그랬다
정직하게 맞아야 지나간다고
뿌리까지 흔들리며 지나간다고
시간은 그냥 흔들리지 않는다고
이렇게 무언가를 데려가고
다시 무언가를 데려온다고
좋은 때도 나쁜 때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게 아니라고
뼛속까지 새기며 지나가는 거라고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 사 50:6
포로시기에 바벨론에서 활동한 익명의 선지자인 제2이사야는 이사야 40-55장 사이에서 어떤 특정한 인물에 대해 네 차례 반복해서 예언합니다. 그 인물을 가리켜 '고난 받는 종'이라고 하는데, 그 종에 관하여 예언한 네 차례의 본문을 '고난 받는 종의 노래'라고 부릅니다. 첫째 예언은 사 42: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둘째 예언은 사 49: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그리고 셋째 예언은 사 50:1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마지막 넷째 예언은 사 53:1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고난 받는 종에 대한 이 네 번에 걸친 예언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메시아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주는 보물창고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제2이사야가 네 번이나 예언한 그 '고난 받는 종'이 도대체 누구일까를 물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행 8:32에 나오는 에디오피아 여왕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이사야서를 읽다가 고난 받는 종에 관해 길 위에서 빌립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 내가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냐"(행 8:32-34) 빌립이 그가 읽던 이사야서에 등장하는, 그 고난 받는 종은 예수라고 가르쳐주자 내시는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며 마차를 멈추고 빌립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니까 제2이사야가 네 번에 걸쳐 예언해 준 '고난 받는 종의 노래'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의 참 모습을 보았던 것인데, 그 분은 바로 고난 받는 종이 묵묵히 굴욕을 감내했듯이 조용히 입을 열지 않고 굴욕을 감내해내신 예수 그리스도였던 것입니다. 이사야가 전해주는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가 당한 고통은 처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자기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깁니다. 등을 때리는 건 일종의 태형(笞刑)으로 '육체'에 고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염을 뽑히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합니다. 수염을 뽑고 침을 뱉는 건 '마음'에 수치를 주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메시아는 그 상황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 사 50:4, 5
하나님은 그에게 학자와 같은 혀를 주셨을 뿐 아니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는데, 여기서는 귀가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인 것입니다.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시고', '나의 귀를 여셨다'는 고백에서, 우리는 그가 들려오는 말씀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입니까? 고난 받는 종이 그랬던 것처럼 '말씀을 경청하는' 존재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수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지려면 어리석은 삶에서 순종하는 경청으로 옮겨가려는 씨름이 있어야 한다. 어리석다(absurd)는 단어에는 '귀머거리'라는 뜻의 'sardus'라는 말이 들어있다. 어리석은 삶이란 침묵 속에서 우리에게 말하는 음성을 듣지 못하는 줄곧 귀먹은 생활 방식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향해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 말씀을 듣지 못한다면, 그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고난 받는 종은 등에 채찍을 맞고, 수염을 뽑히고,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는 중에도 귀를 열어 학자들같이 말씀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결과가 이랬습니다.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 사 50:7-9
그는 주 여호와께서 당신을 도우심을 알았습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의연함으로 넘쳤으며, 아무에게도 정죄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고난당하는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상세히 그려집니다. 예수님을 심문하고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빌라도의 모습에서, 제2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여호와의 종의 등을 잔인하게 채찍질 하고 수염을 뽑고 침을 뱉는 야만성이 보입니다. 빌라도는 보기에도 초라한 유대 청년을 조롱감으로 군중들에게 던져줘 버립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금쪽같이 여기던 법조항을 무시합니다. 산헤드린법 4장 1조 1항과 2항에는'범죄인 심문은 반드시 낮에 할 것이며 해지기 전까지는 끝마칠 것'과, '만일 선고가 무죄일 때에는 심문 당일에 선고할 것이나 유죄일 때는 다음날 선고하여 판결에 신중을 기할 것'을 법조문으로 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저들은 주님을 밤에 심문하고 심문한 당일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넘겨져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하십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몇 번씩 쓰러져가면서 골고다 언덕을 오르신 주님은 저들에 의해 옷이 벗겨집니다. 저들은 주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로 관을 엮어 머리에 씌웁니다. 오른손에 갈대를 들게 하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며 희롱하다가 주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때리며 "네가 무슨 유대인의 왕이냐"며 또 조롱합니다. 우리 시간으로 금요일 아침 9시경에 주님의 형이 집행됩니다.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가 붙고, 양편으로 강도 둘이 주님과 함께 사형을 당합니다. 마가는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면서 '자기 머리를 흔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시편 22편에 의하면 '머리를 흔드는 행동'은 적대자에 대한 조롱의 몸짓입니다.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 막 15:29-30
이 조롱은 주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 마귀가 했던 시험의 연장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함께 주님을 희롱합니다.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 막 15:31
심지어 주님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두 강도마저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막 15:32)라며 주님을 욕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비웃음과 냉소에 휩싸여 생의 가장 힘든 순간을 지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없이 십자가를 감내하십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로는 이 십자가를 절대로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무력함이요 패배입니다. 수치요 손실이요 좌절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십자가는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저 십자가의 현장에서 인간의 야만성이 여지없이 드러나 버렸다면, 예수님은 그 야만성을 십자가 사랑으로 바꾸어 최후 승리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악을 이겨내기 위해 칼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수(數)에 의지하지도 않았고, 당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빛난 이 당당한 승리는 세상의 강함과는 질적으로 다른 승리였습니다. 세상의 강함이 강격한 무기와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과시되는 것이라면, 예수님의 강함은 이미 십자가에서 드러났듯이 무기가 아닌 사랑으로, 과시가 아닌 희생으로 조용히 꽃피운 것이었습니다. 이 강함이 믿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을 따르는 일로 인해 세상의 조롱을 받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멸시를 당했다고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복수를 다짐하며 독해질 이유도 없게 됩니다. 우리는 세속의 영리함과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바랍니다. 우리의 힘은 바로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이 승리한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며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의 모본으로써의 '고난 받는 종'을 이렇게 소개해 줍니다.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6-8
인문학자인 김용규 선생이 '생각의 시대'라는 책에서,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의 왕이었던 슐기(shulgi)가 자신을 위해 지은 찬미가를 점토판에 새겨놓은 것을 소개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고대 세계를 통틀어 가장 특출한 군주 가운데 하나였고, 용맹하고 달리기를 잘하는 자신의 탄생에 대해 "용에게서 태어난 사나운 눈의 사자가 나다"라고 묘사했다고 합니다. 고대 세계의 영웅들은 이렇게 종종 사자나 말과 같은 동물들을 이용한 은유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했었는데, 그러한 표현들은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강하게 보이려고 동원된 문학적 수사들이었습니다. 대개 사람들 마음이란 게 그렇습니다. 강인하게 보이고 싶어 하고, 지혜로워 보이고 싶어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의 무의식 안에는 너나없이 이런 유(類)의 욕망들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의식에라도 품어야 할 마음은 그러한 마음들은 분명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당부합니다.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간직하고 이 고난주간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가치관을 내 가치관으로 받아들여 이 고난주간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주간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여정을 걸어가신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그 분을 신뢰하며 우리가 지고 있는 십자가를 견뎌내는 시간입니다. 비바람 치는 산길에 선 나무처럼, '과정의 엄숙성' 속에서 정직하게 맞아야 할 바람을 감내하고, 뿌리까지 흔들리는 고난을 감내해 낼 때, 비로소 죽음의 묵은 땅이 걷어지고 생명 넘치는 부활의 아침이 열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야 말로 참된 거룩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길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그 길을 따라 걸으면 세상은 분명히 변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 바다를 이루고, 한 줌 햇살이 우주를 키웁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외쳤던 백부장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후로 그 백부장은 어떤 사람으로 살았을까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지 않았을까요? 그 한 사람의 거룩이 로마를 변화시킨 것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을 귀를 열어 경청하고, 내 마음의 서고에 담아, 그 말씀으로 인해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살아갈 때, 그 참된 거룩으로 말미암아 부활절은 더 화창한 생명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게 존재 가득 부활 생명을 피워내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실천 | Praxio
①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본성을 따라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 참된 거룩을 살아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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