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5주 마음에 새겨주신 새 언약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렘 31:31-34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 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 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응송 | 시 51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서신 | 히 5:5-10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 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 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 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 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복음 | 요 12:20-33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 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 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 묵상 | meditatio
① 렘 31:3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집과 맺을 새 언약 을 어디에 두고 어디에 기록하겠다고 하십니까?
② 요 12:24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헬라 사람들 앞 에서 구원의 방법을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③ 히 5:7-8을 묵상하십시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보인 두 가지 태도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마음에 새겨주신 새 언약
사순절 다섯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본래 1969년 전례규범이 개정되기 이전까지는 사순절 제5주부터 수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옛말로는 '예수 고난 제1주일'이었는데, 교회들은 이 때부터 부활절 전날 저녁까지 십자가를 가려두었습니다. 십자가를 가리는 이유는 '눈의 절제'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추심(자기 비하)을 본받으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눈으로서가 아닌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신자들 역시 세속의 욕망에서 눈을 돌려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예배는 눈앞에 성큼 다가온 십자가를 맞이하는 마음과 십자가 너머에 준비된 부활을 맞이하는 마음이 고통스러우면서도 기대와 설렘으로 교차하는 예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십자가는 바라보는 자리와 각도에 따라 우리를 다양한 심정에 직면하게 합니다. 때로는 '낮춤'의 신비로 다가오는가 하면, 때로는 '희생'의 신비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고양(高揚)'의 신비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렇듯 십자가에는 우리가 성찰해내야 할 신앙의 근본 테마들이 집약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성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권고, 우리 각자가 십자가 앞에서 취하는 자세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 구원 혹은 심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사랑의 선물로서의 언약' 등등이 바로 십자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묵상과 성찰의 테마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한편으로는 사순절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우리가 훈련해내야 할 신앙의 노력을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활이 가져다 줄 '파스카(Pascha)의 신비' 즉 '죽음 너머에 준비된 부활의 신비'에로 우리를 이끌어갑니다. 특별히 오늘 성서일과는 이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사랑의 선물로서의 새 언약'을 묵상하게 합니다.이른바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는 오늘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옛 언약을 이스라엘이 깨뜨렸을 때(렘 31:32), 먼 미래에 탄생할 아기 예수께 희망을 두며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이 '새 언약'의 특성은 '결정적'이라는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새 언약'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바꾸어 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 언약'이 율법에 기초한 것이라면, '새 언약'은 복음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것은 작지만 결정적인 차이였습니다. 더구나 이제부터 하나님은 돌이나 양피지가 아닌 그들의 '마음'에, 차가운 법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담은 복음을 주셔서(렘 31:33),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법의 준수가 아닌, 하나님 아들의 희생으로 이루시는 사랑의 결과로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의지를 새로이 이루실 '새 언약'에 가득 담아놓고 계셨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깨지지 않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이 예언이 있고 난 후 600년이 지난 어느 날, 실제로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현장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온 헬라인들 앞에서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 12:23) 라시며, 한 알의 밀의 죽음에서 당신의 죽음을 보여주십니다.(요 12:24) 예수님 자신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 언약'의 성취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요 12:27)라는 예수님의 고백 안에, 하나님의 뜻인 새 언약을 성취시킴으로 인류구원을 이루려는 온전한 순명이 빛을 발합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 역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실현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여 새 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음을 보여주면서도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 9)라는 말씀을 통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서 예레미야가 예언한 이스라엘을 위한 새 언약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오늘 말씀을 좀 더 심층적으로 보겠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렘 31:31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어주셔야만 했을까요? 출애굽 직후에 체결해주셨던 첫 언약이 그들의 배신으로 인해 깨어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 7)라는 약속과,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려진 피로서 맺어진 시내산 언약의 존속 여부는 그들이 여호와를 계속 '주(主)'로 인정하느냐의 문제, 즉 언약에 규정된 말씀과 규례에 지속적으로 순종하느냐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말씀과 규례에 순종하는 것에 언제나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렘 31:32b)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여호와께서는 히브리들을 해방시키신 후 그들의 남편이 되어주셨습니다.(렘 31:32) 그들과의 친밀감을 결혼관계로 표현하실 만큼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알(בעל 우상)'을 섬김으로서 '바알르티(בעלתי 남편)'가 되어주신 여호와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족장시대로부터 왕정시대를 거쳐 남북분단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지속적으로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우상숭배에 몰두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계약 관계의 파국이 아닌 영적 간음이었으며 회복 불가한 것이었습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마음이 렘 3:1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리하여 시내산 언약은 파국을 맞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강력한 구원의 능력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셨음에도 불구하고 첫 언약을 깨뜨리고 만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나라가 분단된 후 북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멸망하여 앗수르로, 남 유다는 BC 605년에 멸망하여 바벨로니아로 차례로 포로로 끌려가고 맙니다. 주목할 것은 그들이 고해와 같은 포로생활을 감당한 후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찾아와 새 언약을 체결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남북왕국을 통틀어 맺어주시는 이 새 언약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 맺어주셨던 첫 언약과 다를 것(렘 31:32a)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다름'이 무엇인지는 계속 이어지는 말씀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렘 31:33
시내산에서의 첫 언약이 돌판 위에 새겨졌던 것에 비해, 새 언약은 그들의 '마음'에 새겨질 것 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마음'은 사람의 가장 심층적인 영역입니다. 이집트의 성 마카리오스는 '마음(coeur)'을 '육체의 중심'이요 '지성의 자리'로 여겼고,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는 장소'로 여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는 것이 가능하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 34:8) 이 맛봄은 마음 안에서 충만하게 활동하는 성령의 힘이다. 성령 안에서 새 언약의 담당자가 된 빛의 자녀들은 사람에게서는 배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배운다. 은총이 그들 마음속에 성령의 법을 새겨놓는다. 사실 마음은 모든 육체기관의 주인이요 임금이다. 은총이 마음의 초원을 정복하면 그 밖의 모든 지체와 모든 생각도 지배하게 된다.
그래서 마카리오스는 기도를 드릴 때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선호했습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첫 언약 때와는 달리 그들 '마음'에 기록해주겠다는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돌판은 깨뜨려질 수 있고(출 32:19;신 9:17), 두루마리는 분실되거나(왕하 22:8) 소각될 수 있지만(왕하 36:23), 마음에 기록해주신 새 언약은 절대로 잊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신 30:6-8에서 하나님은 '마음의 할례'를 명하기도 하셨습니다. 실제로 새 언약을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할 때, 일어날 결과를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 렘 31:34a
새 언약을 '마음'에 새겨주면, 다시는 '여호와를 알라'고 가르칠 필요가 없는 이유는 절대로 잊힐 수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새겨주신 새 언약이 첫 언약과 완전하게 다른 또 한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렘 31:34b
새 언약이 체결된 이후로는 사람들이 더 이상 첫 언약 이후의 사람들처럼 조상이나 자신들의 죄로 인해 만성적인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새 언약 이후로는 죄로 인한 형벌을 그들이 치르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신다는 걸까요? 누가와 사도 바울에 의하면, 새 언약 이후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의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께 대신 지워, 그분의 피를 통해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눅 22:20;고전 11:25) 놀랍게도 예레미야를 통한 이 예언은 정확하게 600년 후에 이루어집니다.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 요 12:20, 21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침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 중에 헬라인 몇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은 헬레네스(Hellēnes) 즉 헬라 혈통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 문명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합리적인 사유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음에도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당도했을 때, 예수님의 행렬을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와 빌립에게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라고 청하는데, 아마도 그 진의는 조금 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외쳤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 12:13)라는 그 외침들이 무슨 뜻인지를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요구에 직접 응답을 주시지 않고 다소 선문답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요 12:23-25
우리가 이 말씀에서 우선 느끼는 것은 주님께서 헬라 사람들의 전통이 아닌 히브리들의 전통에서 대화의 고리를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는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의 때가 마침내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헬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성적이고 합리적 경향성이 아닌 신앙적인 관점에서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희생함으로서 많은 열매를 거두는 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섭리에 대한 밀알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 이듯, 새 언약을 통한 인간의 해방과 구원은 너희의 합리적인 이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도 그 급박한 순간에 먼 미래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희생에 희망을 두고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렘 31:31)고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아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만찬에서, 잔을 드시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눅 22:20)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얼마나 복음을 함축하고 있는 말씀인지, 그리고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고백들은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 요 12:27-28
예수님은 당신 마음의 괴로움을 호소하며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애원하시는 중에도, 당신이 순종하셔야 할 일과 당신이 순종하셔야 할 때를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이 기도의 결론은 '당신이 죽으심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러우셔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의 죽음이 어떻게 아버지의 영광이 될 수 있을까요? 거기에는 이중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버지의 큰 사랑을 이루는 행위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한 알의 밀처럼 희생당하심으로서 600년 전에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새 언약이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얼굴마다에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예수님의 이 순종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히브리서 기자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 히 5:7-10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웠습니다.(히 5:8)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것은 그 역시 죽음 앞에서 공포를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밀알처럼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그 사실이 죽음의 공포와 거부감을 완전하게 제거해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분열시키는 괴로운 심정을 성부께 완전히 의탁하심으로서 극복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이루십니다. 따라서 그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이스라엘을 위한 새 언약이 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은 기도의 첫 머리를 이렇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마 6:9)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기도를 가르쳐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생의 가장 괴로운 순간에 당신도 그 기도를 실천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a)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을 대가로 이 기도를 드리신 겁니다. 우리도 우리에게 가장 불리한 순간에 이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도하셨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 12:28b) 하나님의 이 응답은 예수님의 전 생애, 이미 지나온 생애와, 아직 죽음을 감수해야 할 생애와 부활을 통해 영광을 얻을 생애를 통틀어 화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응답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진정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새 언약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당신이 죽어 그 언약을 이루시고, 하나님 사랑을 우리 마음에 새기신 예수님,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신 예수님처럼, 나의 마음을 찢어 분열시키려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따라 걸으며 주님처럼 기도하고, 주님처럼 순종하고, 주님처럼 죽음으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소망들이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하나님의 은총을 망각하고 죄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가?
②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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