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3주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길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20:1-17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 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 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 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 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 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 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 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응송 | 시 19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서신 | 고전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 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 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 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 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 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 보다 강하니라
복음 | 요 2:13-22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 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 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 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20:4을 묵상하십시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은,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신앙생활을 요청하는가?
② 요 2:14-16을 묵상하십시오. 성전에서 장사하거나 돈 바꾸는 사람 들은 '성전' 그리고 '성전에 오는 사람'을 어떻게 여기고 있습니까?
③ 고전 1:22, 23을 묵상하십시오.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과 다르고, 지 혜를 구하는 헬라인과도 다른 바울의 관심은 오직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창조 질서를 회복하는 길
교회의 시간으로 사순절 셋째 주일을 맞은 오늘, 24절기 생태력으로는 경칩이 이틀이 지났습니다. 경칩은 일어난다는 뜻의 '경(驚)' 자와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 자가 어우러진 단어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입니다. 계절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릴 만큼 생태적 감수성이 깨어있던 선조들의 지혜가 계절에 붙여진 이름마다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영성에는, 바로 이런 생태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요청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하늘로 올라가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창조하신 생태계에 깃들여 계시며 또한 우리의 곁에 계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숨결을 받아 하루하루 숨을 쉬는 것이고, 또 다른 창조물인 새와 풀꽃 등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애틋하게 순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며칠 전 카르투시오수도원 수도사들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수사가 산새를 부르니 손끝에 내려앉아 지절거리며 친구처럼 수사의 손에 있는 먹이를 쪼아 먹습니다. 산새는 사랑스러웠으며, 수사는 신비로웠습니다. 하나님과 참된 일치를 이룬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모든 생태계들과 일치를 이루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일제히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먼저 구약성경은 '언약의 말씀' 즉 '십계명'(출 34:28;신 4:13 참조)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길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3-7절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설명하고, 8-11절은 생태계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설명하고, 12-17절은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설명합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창조질서 회복의 길을 '십자가의 도'를 통해 설명합니다. 바울 당시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은 거리끼는 것이라 여겨 외면했고, 헬라인들은 미련한 것으로 여긴 채(고전 1:23), 유대인들은 표적을 통해 냉철함을 추구했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통해 우아함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화의 숨겨진 이면에는 속물적인 우상숭배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사도 바울은 표적에도 지혜에도 마음 빼앗기지 말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촉구합니다.(고전 1:22, 23) 그들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었고, 십자가의 도를 몸으로 살아내야만 창조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의 교류가 파괴되고,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가 유린당하는 끔찍한 현장을 성전에서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장사치들을 통해 보여줍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비정상적인 커넥션을 형성하고 오로지 이윤추구에 영혼까지 팔아버린 사람들의 부패성과 완악성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니라 사람들 간의 생태계를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채찍으로 내치시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고 역정을 내십니다.
구약성경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장엄하게 시작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 출 20:2
우리는 이 선언을 읽으면서 십계명이, 하나님께서 히브리들을 애굽인들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시고, 광야에서 그들과 맺어주신 언약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해방 직후의 언약이라는 측면에서 십계명은 자유에의 약속이자, 그들이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에 대한 표증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 안에는, 지금 막 해방을 맞은 사람들이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칙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예로 살아갈 때, 노예의 법이 필요했다면, 자유인으로 살아갈 때는 자유인에게 걸맞은 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자유인에게 필요한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에 대한 설명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출 20:3
이 첫째 계명은 이후에 선포되는 나머지 계명의 초석이 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실까요? 5절 하반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정말 그래서인 걸까요? 그러나 5절의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외 다른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길 때, 당신의 공의로운 품성과 배치되는 것에 대한 표현인 것이지, 실제로 헬라나 로마의 잡스러운 신들이 품었던 시기(猜忌)와 같은 그런 불의한 질투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첫 번째 계명의 보다 정확한 의미를 이어지는 두 번째 계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 출 20:4, 5a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이라든지 '어떤 형상'이란 언급을 하십니다. 여기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당시 고대 근동에는 나무나 돌이나 금속에 사람이나 짐승의 형상을 조각하고, 그 조각한 형상(形象, graven image)을 숭배하는 풍습이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형상을 조각하고 숭배하는 동기'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4절에서 '너를 위하여'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풀어서 설명하면 '네 생각과 네 계획과 네 소원'을 위하여 '네가 조각한 우상(偶像)'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상숭배를 말리신 이유는, 당시 다신론 사회에서의 우상들은 순수한 신(神)이 아닌 사람들의 탐심을 자극하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고대근동에서 지배자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 그리고 풍요와 다산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부추겨서 백성들이 더 우상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길들여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백성들의 무지(無知)를 악용해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구축해 갔고, 백성들은 풍요와 다산을 향한 욕망에 겨워 갖가지 형상의 새긴 우상에게 굴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은 바로 그러한 것,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우상에게 투사하며 영혼을 빼앗기고 삶을 예속당하는 하나님 자녀답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도, 그런 욕망을 담아 부르지 말라고 하십니다.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출 20:7
여기서 '망령되게'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라사웨(אושׁל)' 즉 '헛되이', '쓸데없이', '함부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이름을 통해 당신의 '거룩하신 품성'을 계시하셨는데, 그런 하나님의 거룩하신 품성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담아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상숭배에 거부감을 나타내시고, 심지어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마저도 우상에게 하듯 부르지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사람이 욕망을 담아 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할 때, 그것이 자기영혼을 파괴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그릇된 구조로 비틀어 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교회와 신자들이 버젓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과 형상을 만듭니다. 그게 무엇인지 여러분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은 우상숭배의 전형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 출 20:6
이 말씀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나를 사랑하고'에서의 '사랑'이 히브리어로 '아하브(בהא)'라는 사실입니다. '아하브(בהא)'는 남녀 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성간의 사랑이 제3자의 개입을 불허하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듯이, 하나님 사랑도 우상숭배와 같은 제3의 요소가 없는 순수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할 뿐 아니라, 내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진정한 일치를 이룰 때, 우리는 나머지 계명에 순종해서, 이웃들과 또 다른 창조질서와도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치는 안식일 계명에서 신비롭게 모아지고 있습니다.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 출 20:8-10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우리 시선을 끕니다. 첫째는 '일'과 '쉼'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일'과 '쉼'을 잘 할 때 진정한 출애굽의 목적이 달성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동의 목적'을 완전히 바꾸어 주십니다.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있을 때,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파라오(바로)'를 위한 일이었습니다. 파라오를 위해 벽돌을 굽고, 파라오를 위해 성을 쌓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기 일이란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7일 중에 엿새는 '네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네 행복'을 위해 엿새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며칠 전까지 노예였던 그들에게 이 말씀은 너무 낯설고 두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를 알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인을 만들기 위해 출애굽 시키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어떤 억압도 굴종도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유인으로서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일할 권리가 비로소 생겨난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기 행복을 위해 무한정 일만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이레째 되는 날에는 '하루의 안식'을 통해 자유인의 행복을 만끽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일을 통해서도 행복을 일구어가지만, 안식을 통해 더 큰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자신이 자유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도록 일주일에 한 번은 휴식할 수 있는 여가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과 '쉼'의 의미를 단순하게 노동과 휴식의 관점에서만 보면 안 됩니다.적어도 그 일과 쉼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자유인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그 '일'과 '쉼'은 그들에게 삶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엿새 동안 일을 할 때도 '하나님 안에서' 소명감을 가지고 자기의 일에 임해야 할 것이고, 일곱째 날의 쉼도 '하나님 안에서' 예배가 있는 쉼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쉴 때는 너 혼자만 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네 아들이나 딸은 물론이고, 네 남종이나 여종, 심지어 가축과 객까지도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진정한 일치를 이룬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사람들과 또한 동물들과도 사랑으로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8절 말씀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시며 안식일에 자신과 종들과 동물들까지 모두 쉬는 것은 하나님과 진정으로 연합한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참되고 진정한 '거룩'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보다 적극적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 출 20:12-17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 보면 이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세계의 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 요 2:13, 14
유월절 해방을 기념하는 축제일을 맞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시선이 일단의 무리들에게 멈춥니다.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파는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이 거기 앉아있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 요 2:15, 16
왜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이렇게 역정을 내시는 것일까요? 그들의 행위가 정도(正道)를 이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거나 환전을 해주면서 부당하게 이익을 더 남기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 부당한 이익을 중심으로 그들과 성전 관리들 사이에 이해가 형성되었고, 그들은 제사하러 온 사람을 대상으로 부당한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이 단순히 불의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익에 눈이 멀어서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거기가 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이익의 노예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그래도 되는 곳이 아니었고, 유월절은 그래도 되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자유의 상징이었고, 유월절 축제는 그들이 노예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는 돈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께로 부터 버림받고, 사람은 속이는 전형적인 속물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 눈에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았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당연히 이웃도 형제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바울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합니다.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 고전 1:22
여기에서 바울은 종교적 인간상으로는 유대인을, 정치 문화적 인간상으로는 헬라인을 제시합니다. 당시 유대인은 메시아의 증거를 보기 위해 표적을 기대했고, 헬라인은 고상한 삶을 추구하며 철학적 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 냉철함과 우아함 뒤에 숨겨진 속물적인 이해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표적과 지혜에 눈이 먼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으로 구분되는 두 종류의 인간상과 질적으로 다른 제 3의 인간상을 제시합니다.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고전 1:23, 24
사람들이 표적과 지혜에 눈이 멀어 그것만을 구하던 때,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진실이었고, 헬라인들에게도 미련함의 극치였지만 그러나 바울에게는 자신의 전부였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참 자유와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은 바울이었기에 그는 그리스도만을 알기 원했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서 자유와 생명을 얻게 하는 것에 자기 생을 걸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하늘로 올라가서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창조하신 생태계에 깃들여 계시며 또한 우리의 곁에 계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숨결을 받아 하루하루 숨을 쉬는 것이고, 그 숨결에 힘입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며, 또 다른 창조물인 새와 풀꽃 등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애틋하게 순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순절이 깊어가는 이 때, 우리 모두 영의 눈이 뜨여 하나님과 참된 일치를 이루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자연의 모든 생태계들과도 일치를 이루며, 다가오는 부활절을 손꼽아 기다리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나도 모르게 예배와 기도가 우상숭배로 채워지고 있지 않은가?
②하나님과 일치를 이룬 후 다른 창조질서와도 일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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