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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1주 세례와 광야의 시험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2-20 16:35
조회
1243
사순절 제1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9:8-17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 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 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 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 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 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응송 | 시 25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 리로다
서신 | 벧전 3:18-22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 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 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 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 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 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 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복음 | 막 1:9-15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 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 을 믿으라 하시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9:16을 묵상하십시오. 구름 사이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② 벧전 3:20-21을 묵상하십시오. 베드로는 노아 때 범람했던 홍수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③ 막 1:13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에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몰아내신 이유에는 어떤 목적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109항에서 사순시기의 전례적 특성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사순절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세례의 회상과 세례의 준비를 통해서 또 다른 편으로는 참회를 통해서 신자들로 하여금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한다." 그리고 110항에서는 "사순절의 참회는 오로지 내적이고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적이고 사회적인 참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문헌 해설총서에 의하면 '신자의 죄가 내적이고 개인적이어서 사회에 드러나지 않고 손해와 악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라도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적 회심과 더불어 외적이고도 사회적인 참회가 되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사순절을 맞이한 우리의 참회는 우리의 '내적 성결'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화'도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사순절 여정을 일컬어 '거룩한 40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순절의 여정의 끝에 마침내 비쳐오는 파스카의 빛은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선물이지만, 동시에 그 빛을 향해 사십 일간 걸어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일인 오늘 성서일과의 기본 줄거리는 세례와 광야의 시험, 하나님 체험, 마음의 정화 등의 테마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구약의 말씀인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맺어주신 언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그들은 홍수 심판 이후에도 계속될 온 인류를 상징합니다. 즉 홍수의 물로 세례를 받은(벧전 3:21) 새로운 인류가 탄생되고,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창 9:13)을 통해, 이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과 사랑을 영원히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이 있게 된 배경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창 6:5, 6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 말씀은 심판 이전의 세상이 죄로 가득 차서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בל'인데, 히브리적 사고에서 이 '마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이자, 생각과 이해와 의지가 모여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성 마카리오스에게 있어서 '마음'은 '육체의 중심이자 지성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는 장소'였고, 토마스 머튼은 시 64:6에 있는 '깊은 마음(deep heart)'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루이 마시뇽'의 글을 인용해 '동정지점(le point vierge)'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동정지점'으로서의 '깊은 마음'은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마음의 은밀한 중심'이고, '잠재적 인격, 깊은 의식, 비밀의 독방'이며, 하나님 홀로 활동하시는 곳이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고, 인간 영혼 깊이에 숨어있는 지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면 과연 그 사회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표현은 당신의 창조행위를 스스로 부정하신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당신의 창조행위를 실패로 여기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하실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惡)함을 보시고 절망하셨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대홍수로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맙니다. 물은 천하의 높은 산을 다 잠기게 했고,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을 다 죽인 채로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습니다.(창 7:19-24) 그런데 이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보다 더욱 깊고 크신 하나님의 자비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오늘 구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약속의 두 번째 특징은 약속의 대상이 노아나 노아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더 나아가서 모든 생물이라는 사실입니다. 9절과 10절 다시 보십시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오는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약속의 대상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도 약속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라"고 하신 것은 저들 안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은 척박한 광야를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이 되었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 광야시절에 가장 풍성한 신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사회과학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생존의 확실성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과 다툼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 생존의 확실성에 천착하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현대인들은 '생존' 또는 '존재(be)'가 아니라 '소유'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실제로는 옛날보다 풍요롭게 살면서도 오히려 불행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폴 틸리히의 표현대로라면 우리에게는 '존재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어주셨던 약속보다 비교될 수 없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가르쳐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동물들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아차려서 이후로는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걸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세례의 물을 통해 낡은 인간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났지만 아직도 육체는 연약한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된 이 연약성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도와주는 시기입니다. 물론 우리들 가운데는 아직 마음으로 사순절을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은 설렘과 행복으로 다가오지만, 사순절은 왠지 부담스러운 손님 같기만 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사순절이 지향하고 있는 회개라든지 절제 순명 등등 대하기 버거운 영적 과제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순절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영적 성숙과 회복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성도에게는 사순절이 소중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육의 눈을 감고 영의 눈을 뜨는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께 다시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고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 예수님 음성을 따라 사순절을 걸어간 성도에게는 부활절 아침이 행복으로 열릴 것입니다. 부디 주님과 함께하는 사십일의 여정을 통해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안에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세례 이후 거듭남과 성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가?
② 세례 받은 이후 더 경건해지려는 훈련을 감내하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9:8-17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 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 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 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 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 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응송 | 시 25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 리로다
서신 | 벧전 3:18-22
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 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 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 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 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 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 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복음 | 막 1:9-15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 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 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 을 믿으라 하시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9:16을 묵상하십시오. 구름 사이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② 벧전 3:20-21을 묵상하십시오. 베드로는 노아 때 범람했던 홍수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③ 막 1:13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후에 성령께서 그를 광야로 몰아내신 이유에는 어떤 목적이 담겨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세례와 광야의 시험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일 `재의 예식을 통해, 이마에 재를 바르고,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며' 성령의 지시에 따라 예수님처럼 광야의 길 즉 사순절에 들어섰습니다. 사순절의 '사순(四旬)'은 40일을 뜻하는데, 노아 홍수 때 사십 일 밤낮으로 비가 내렸듯이(창 7:4), 모세가 밤낮으로 사십 일을 산에서 지냈듯이(출 24:18), 엘리야가 사십 주 사십 야를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듯이(왕상 19:8),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듯이(눅 4:2), 재의 수요일부터 고난주간 성목요일 저녁까지 세례를 회상하고, 참회와 기도와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걸어가는 영적 시간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109항에서 사순시기의 전례적 특성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사순절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세례의 회상과 세례의 준비를 통해서 또 다른 편으로는 참회를 통해서 신자들로 하여금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하며,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한다." 그리고 110항에서는 "사순절의 참회는 오로지 내적이고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외적이고 사회적인 참회가 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문헌 해설총서에 의하면 '신자의 죄가 내적이고 개인적이어서 사회에 드러나지 않고 손해와 악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라도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내적 회심과 더불어 외적이고도 사회적인 참회가 되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따라서 사순절을 맞이한 우리의 참회는 우리의 '내적 성결'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사회적 성화'도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사순절 여정을 일컬어 '거룩한 40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사순절의 여정의 끝에 마침내 비쳐오는 파스카의 빛은 하나님께서 무상으로 베풀어주시는 선물이지만, 동시에 그 빛을 향해 사십 일간 걸어온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기도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일인 오늘 성서일과의 기본 줄거리는 세례와 광야의 시험, 하나님 체험, 마음의 정화 등의 테마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구약의 말씀인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맺어주신 언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그들은 홍수 심판 이후에도 계속될 온 인류를 상징합니다. 즉 홍수의 물로 세례를 받은(벧전 3:21) 새로운 인류가 탄생되고, 하나님께서는 무지개 언약(창 9:13)을 통해, 이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과 사랑을 영원히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언약이 있게 된 배경이 되는 상황을 우리는 창 6:5, 6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 말씀은 심판 이전의 세상이 죄로 가득 차서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이런 세상이 되고 말았을까요? 창세기의 저자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마음'은 히브리어로 '레브 בל'인데, 히브리적 사고에서 이 '마음'은 갖가지 감정이 자리 잡고 있는 장소이자, 생각과 이해와 의지가 모여 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이집트의 성 마카리오스에게 있어서 '마음'은 '육체의 중심이자 지성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는 장소'였고, 토마스 머튼은 시 64:6에 있는 '깊은 마음(deep heart)'을 설명하면서 프랑스의 동양학자인 '루이 마시뇽'의 글을 인용해 '동정지점(le point vierge)'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동정지점'으로서의 '깊은 마음'은 '최종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마음의 은밀한 중심'이고, '잠재적 인격, 깊은 의식, 비밀의 독방'이며, 하나님 홀로 활동하시는 곳이며,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고, 인간 영혼 깊이에 숨어있는 지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다면 과연 그 사회가 어떠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멸망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다는 표현은 당신의 창조행위를 스스로 부정하신 것처럼 보이고, 심지어 당신의 창조행위를 실패로 여기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하실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께서 인간의 악(惡)함을 보시고 절망하셨다는 뜻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대홍수로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맙니다. 물은 천하의 높은 산을 다 잠기게 했고,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을 다 죽인 채로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습니다.(창 7:19-24) 그런데 이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보다 더욱 깊고 크신 하나님의 자비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오늘 구약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창 9:8-11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言約)을 노아와 맺어주십니다. 이 '언약'은 인간의 육적인 연약성 때문에 주어진 가장 엄숙하고 구속력 있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이 약속의 체결을 보여줌으로서 하나님이 '약속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한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약속의 증표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 창 9:12-15
이 무지개 언약은 상호동의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체결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무지개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증표로 해서 언약을 체결해주신 것은 당신의 약속이 당신의 초월적 능력인 무지개만큼이나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약속의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약속이나 모세와 맺으신 약속을 보면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든지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와 맺으신 무지개 약속에서는 그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이제 더 이상 대홍수로 인한 멸망은 없다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맺어주신 것입니다. 이 약속이 이해가 가십니까? 노아시대 대홍수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일어난 '심판'으로서의 홍수입니다. 그렇다면 노아와 맺으신 약속에는 인간이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창 8:20-22에 보면, 홍수가 끝난 뒤에 노아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 소개되는데, 노아의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 8:21) 자세히 보면, 8장에서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하신 이 약속이, 9장에서 '홍수를 일으키지 않겠다' 하신 약속으로 일관되게 연결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타락해서 본질이 악해져 버린 인간이, 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타락'과 '악(惡)'은 이제는 바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자 본질이 되어버렸습니다. 만약 인간이 악하다는 이유로 심판을 계속한다면 더 이상 인류는 지구에서 존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악과는 상관없이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겠다는 표현을 하나님은 무지개로서 보여주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약속의 두 번째 특징은 약속의 대상이 노아나 노아 가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 더 나아가서 모든 생물이라는 사실입니다. 9절과 10절 다시 보십시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오는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약속의 대상입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도 약속의 대상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보라"고 하신 것은 저들 안에 스며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은 척박한 광야를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야에서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이 되었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 광야시절에 가장 풍성한 신앙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건 사회과학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생존의 확실성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과 다툼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 생존의 확실성에 천착하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현대인들은 '생존' 또는 '존재(be)'가 아니라 '소유'하는 것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에 실제로는 옛날보다 풍요롭게 살면서도 오히려 불행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폴 틸리히의 표현대로라면 우리에게는 '존재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어주셨던 약속보다 비교될 수 없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약속입니다. 그 사실을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가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 벧전 3:18
구약시대 노아와 맺어주신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구원으로 요약됩니다. 특별히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노아 홍수 때, 여덟 명만 구원을 받았던 사실을 언급하는데(벧전 3:20), 그 여덟 명이란, 노아 부부와 세 아들 부부를 가리킵니다.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 벧전 3:20
노아는 무려 120년이나 묵묵히 방주를 만듦으로서 동시대 사람들에게, 장차 올 심판과 구원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순종치 않는 자들을 위해 오래 참으심으로서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창 6:3, 롬 2:4, 벧후 3:9). 그러나 그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고, 방주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방주에 들어감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은 겨우 여덟 사람뿐이었습니다. 왜 베드로가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1세기 당시에 고난 받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홍수 이전의 시대를 상기시켜주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악한 사람들이 의로운 자보다 많았고, 악한 사람들이 의로운 자보다 출세하였지만, 그러나 노아는 개의치 않고 120년을 하루같이 여겨 방주를 만듦으로 자신과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심으로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고 그리스도의 영은 신자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니, 그대들은 환경에 굴하지 말고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노아의 시대에 노아를 통해 당대의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하셨던 성령(聖靈)께서 성자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 막 1:12, 13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 당하게 하신 성령님은 사도 베드로의 증언에 따르면, 전에 노아가 방주를 준비할 동안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해서 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셨던 바로 그 분이셨습니다(벧전 3:19, 20). 그러고 보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팍팍한 세상살이도 모두 성령께서 작정하고 보내신 곳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사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칭찬하신 날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창 6:9-15). 그리고 예수님께서 광야로 내몰리신 것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11) 하신 사랑의 말씀을 들으신 그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럽고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죄다 외롭고 힘들고 벅찬 40년 혹은 40일의 훈련기간을 겪었다는 사실이 의미롭게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미 우리에게 시작된 40일의 사순절 여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자녀들에게 주어진 가슴 벅찬 여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대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에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동물들을 쓸어버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그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알아차려서 이후로는 하나님 백성다운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다는 걸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세례의 물을 통해 낡은 인간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태어났지만 아직도 육체는 연약한 본성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사순 시기는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된 이 연약성을 깨닫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도와주는 시기입니다. 물론 우리들 가운데는 아직 마음으로 사순절을 맞을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도 있겠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은 설렘과 행복으로 다가오지만, 사순절은 왠지 부담스러운 손님 같기만 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사순절이 지향하고 있는 회개라든지 절제 순명 등등 대하기 버거운 영적 과제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사순절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영적 성숙과 회복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성도에게는 사순절이 소중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줄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가 육의 눈을 감고 영의 눈을 뜨는 시기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의 약속을 부여잡는 시간입니다. 사순절은 하나님께 다시 초점을 맞추는 시간이고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 예수님 음성을 따라 사순절을 걸어간 성도에게는 부활절 아침이 행복으로 열릴 것입니다. 부디 주님과 함께하는 사십일의 여정을 통해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 안에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세례 이후 거듭남과 성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가?
② 세례 받은 이후 더 경건해지려는 훈련을 감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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