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4주 그리스도인의 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1-30 10:58
조회
1189
주현 후 제4주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신 18:15-20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 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 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 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응송 | 시 111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서신 | 고전 8:1-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 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 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 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 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 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 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 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 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복음 | 막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 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 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 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신 18:15, 18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 으켜 당신의 말씀을 그 입에 두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막 1:22, 27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항상 권위가 있었 던 이유를 마가는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③ 고전 8:6을 묵상하십시오. 만물은 누구로부터 났으며 누구로부터 말 미암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마가복음은 그 서두(書頭, 막 1:1)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고백과 함께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 곧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가 끝나는 순간에도 같은 고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막 15:39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져 둘이 되는 것을 보고 예수를 향하여 서 있던 백부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결국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그 신앙고백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복음의 시작이자 끝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드러났던 그 권위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분명해졌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 바로 거기에 그의 신적 권위의 출처도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항상 권위가 있었던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 아들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부름 받은 제자로서 우리의 언어가 어떠해야 할지도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언어생활의 기초여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의 언어생활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지식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독서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언어생활의 기초를 두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단어의 차원이기보다는 지향의 차원이고, 표현의 차원이기보다는 영성(靈性)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위는 비단 말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의 권위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 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예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져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알아,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신 18:15-20
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 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1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9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 을 받을 것이요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 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응송 | 시 111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서신 | 고전 8:1-13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 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 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 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 니니라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 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 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 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 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 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복음 | 막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 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 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 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신 18:15, 18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 으켜 당신의 말씀을 그 입에 두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② 막 1:22, 27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항상 권위가 있었 던 이유를 마가는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③ 고전 8:6을 묵상하십시오. 만물은 누구로부터 났으며 누구로부터 말 미암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인의 말
기독교인들만큼 '말씀'이란 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도 드뭅니다. 그 이유는 말씀에서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은 사람에게 있어서도 참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자기를 표현함으로서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표현하는 가장 주된 방식이 바로 말입니다. 말을 통해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말을 통해 의견도 나누며 위로도 받습니다. 말은 존재의 표현입니다. 사람과 말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꼭 닮았습니다. 말에는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는 말씀과 창조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고, 말씀을 통해 당신의 생각을 전달하시는데, 구약성경에서는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셨고, 신약성경에서는 말씀에 육신을 입혀 보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기에, 그 분 말씀은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서일과를 통해 보는 것이 그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워 "내 말을 그 입에 두겠다"(신 18:18)고 말씀하시는데, 그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에 대해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신 18:18)이라고 완곡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아마 구약시대 말기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하고 광야에서 외칠 때, 신명기에서 모세가 예언한 그 말씀을 뇌리에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예언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그 분, 그랬기에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사람들은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막 1:27)라며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신명기가 전해주는 구약의 말씀과 마가가 전하는 복음서의 말씀은 잘 연결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좀 더 심층적으로 보겠습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입니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 신 18:15
지금 이 말은 모세의 말입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란 모세와 같은 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지금까지 모세가 감당해온 일을 감당할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겠다고 선언하시는 겁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선지자 제도에 관한 약속입니다. 모세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일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입니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의 선지자요(신 34:10), 제사장이요(출 24:6-8), 왕이었던 것처럼(신 33:5), 온 인류의 유일한 대제사장이시며(히 5:5-10),영원한 왕이시고(마 27:11), 참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혈통 중에서 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모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 신 18:18, 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동족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고, 당신의 말씀을 그 입에 담아주실 것인데, 만약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하는 그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벌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선지자 제도에 관한 약속입니다. 모세 사후에도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키시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 말씀이 정말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신약시대 초기의 정신적 불안정과 무질서를 생각해볼 때, 당시 이러한 선지자에 대한 기다림이 얼마나 간절했을 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 사명을 받은 것도 이스라엘의 그러한 기다림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하고 외치는 요한의 권고를 보면서, 오늘 신명기에서 모세가 말한 그 예언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서 그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 막 1:21, 22
마가는 자신의 복음서 안에서 예수께서 '가르치셨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합니다. 마가복음 안에는 '가르치다'는 동사 '디다스코(διδάσω)'가 17회 나오고, 예수님을 선생으로 표현한 '디다스칼로스(διδάσκλος)'도 11회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가는 '가르치는 분'으로서의 예수님의 사역을 매우 중시하고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초대교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역 중 하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이 가르침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정식 임명도 받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놀란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데, 전혀 직제(職制)를 안 받은 그 분의 가르침이 당시 전문가이고 권위자였던 서기관들과 다르게 권위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는 본문에 쓰인 '권위'라는 단어를 독일어 '볼마스트(Vollmacht)'로 번역했습니다. 모든 것을 압도하는 힘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의 권위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권위였을까요?마가복음은 그 서두(書頭, 막 1:1)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고백과 함께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 곧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가 끝나는 순간에도 같은 고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막 15:39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져 둘이 되는 것을 보고 예수를 향하여 서 있던 백부장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결국 마가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는 그 신앙고백을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서를 기록한 마가의 의도는 분명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복음의 시작이자 끝임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드러났던 그 권위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분명해졌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 바로 거기에 그의 신적 권위의 출처도 있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항상 권위가 있었던 것은 그 말씀이 하나님 아들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고 부름 받은 제자로서 우리의 언어가 어떠해야 할지도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언어생활의 기초여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의 언어생활은 어디에 기초를 두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지식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독서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언어생활의 기초를 두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단어의 차원이기보다는 지향의 차원이고, 표현의 차원이기보다는 영성(靈性)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위는 비단 말씀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과정에서도 예수님의 권위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 막 1:23
마가는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더러운 영(靈, pneuma)'이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이 '더러운 영'의 정체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아비 사탄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총애하셨던 천사장으로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 14:12)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본디 거룩하였으며, 완전하였고, 지혜롭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지위와 위치가 하나님의 은총이요 은혜인 것을 망각한 사탄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망상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자와 같아지리라"(사 14:13-14) 사탄의 이 망상어린 독백을 읽으면서 우리는 마음 한 켠 섬뜩함을 느낍니다. 부패된 그의 본성은 가장 신성하고 고결했던 만큼 오히려 추하고 더러워졌으며 악질적이 되었습니다. 그가 하는 짓은 한결같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이고, 자신에게 부여된 능력을 악용하여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괴하고 사람을 죽음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 사탄의 일에 쓰임 받는 존재가 바로 오늘 복음서에 언급된 '더러운 영'입니다. 그들은 먼저 사람의 내적 기능인 상상과 관념, 감성과 지성에 개입해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의심과 분노에 사로잡히고, 성냄과 미움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점차 파멸로 치닫고 맙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야기에 등장하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한 개인이 아니라, 어쩌면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실상일 수도 있고, 오늘날 우리 모두의 실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실상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내면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예수님 앞에서 나의 내면을 감추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입니다. 그런데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큰 소리로 주님께 이렇게 외칩니다.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 막 1:24
더러운 영은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노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 말을 공동번역 성경은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어떤 방향으로든지 그 영이 반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무관심하던지, 말씀에 대해 이를 갈던지, 아니면 말씀에 찔려 변화 되던지 입니다. 만약 우리가 더러운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이 더러운 영처럼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막 1:24) 그래야 주님은 다음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1:25)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입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왜 주님은 더러운 영에게 입을 다물게 하십니까? 그 입의 말이 진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편으로는 '주님을 안다'고 말하고,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고백하면서도 그러나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멸하러 왔다'고 불평하고, '우리를 간섭하려 한다'며 불편해 합니다. 그저 그에게 주님은 자기 왕국을 파괴하는 적으로 느껴질 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그의 말은 '그래서 난 당신이 불편하다'는 우회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마침내 더러운 귀신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괴성과 함께 뛰쳐나옵니다.(막 1:16) 그리고 사람들은 놀라고 감동해서 이렇게 말합니다.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 막 1:27
실로 예수님의 말씀은 진부하고 장황했던 당시의 랍비들과는 판이하게 새롭고 신선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여기에서 그들이 말한 '새 교훈'은 단지 '시간상의 새로움'이 아니라, '질적인 새로움'을 말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변화합니까? 주님의 말씀이 매일매일 새롭게 나의 심장을 두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신앙의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주님 말씀의 권위를 알긴 알지만, 그 권위와 새로움이 '불편한' 내가 아니라, 주님 말씀의 권위와 새 교훈에 나를 직면시키고, 새롭고 진정한 나로 변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입에 늘 있게 하고 그 말씀에 순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권위에 대한 순종과 실천이 없이 내 욕망에 겨워 하나님을 찾으려 할 때에, 주님은 더러운 영에게 그러셨듯이 우리에게도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 고전 8:6
이 말씀을 통해 느껴지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완전한 일치입니다. 그리고 그 일치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막 1:24) 이렇게 말하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판단에 겨워 사는 사람이고, 자기 판단으로 세상 전체를 규정하며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만이 우리를 살리는 것임을 알아서, 하나님과 긴밀한 내적 소통을 이루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과 참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모두 성부 하나님과의 친숙함에서 나온 것입니다. 요 14:10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모두 아버지이신 하나님과의 친숙한 교제에서 나온 것이듯이, 우리의 말과 행동 역시 하나님과의 친숙함과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내면화시키는 영성생활에서 나오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게 됩니다. 올바른 관계에서 올바른 말이 나옵니다. 매일매일 주님과 참된 교제를 일구시고,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 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예수님의 말씀이 불편하게 느껴져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님 말씀의 권위를 알아,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
첨부파일 : 주현-후-제4주-그리스도인의-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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