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주현 후 제1주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1:1-5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 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응송 | 시 29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 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서신 | 행 19:1-7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 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 의 세례니라 4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5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 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복음 | 막 1:4-11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 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 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 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0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 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막 1:10, 11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 오실 때 일어난 장면은 어떠한 하나님을 보여줍니까?
② 행 19:5-6을 묵상하십시오. 백성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 례를 받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③ 창 1:1, 2을 묵상하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수면에 운행하시던 분은 누구이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오늘은 주현 후 첫째 주일이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날을 기념하는 주님의 세례(洗禮)주일입니다. 주현(主顯) 혹은 현현(顯顯)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에피파니아(Epiphaneia)'는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당신의 충만한 현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3세기경부터 비록 주님의 탄생과 세례 사이에 연대기 적으로 30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과 주님의 세례를 기념하는 주현절을 한 날 동시적으로 기념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지(冬至)의 날짜가 1월 6일에서 12월 25일로 변경됨에 따라, 5세기 초부터 성탄절은 12월 25일에, 주현절은 1월 6일에 각각 기념하게 되었는데, 같은 주현절에도 서방교회는 동방 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것을 기념하고, 동방교회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서방교회 전통에 의하면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왕을 위한 황금과 제사장을 위한 유향과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몰약을 선물로 드린 것은, 아기 예수님께서 진정한 왕이시고, 완전한 제사장이시고, 최고의 구원자이심을 예시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동방교회 전통에서 주현절을 주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지키는 것은 첫째는, 예수께서 요단강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며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냈기 때문이고, 둘째는, 성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셨으며,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하늘로부터 들려오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베푼 물세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말씀과 성령의 강림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참된 세례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현절 전 만과(晩課, 저녁기도)와 조과(朝課, 아침기도) 때 이렇게 노래했습니다.오, 요단강아, 준비하여라.
보라, 우리 하나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러 가까이 오시도다.
오 천사들의 능력이여, 베들레헴으로부터
요단강의 흐르는 물살을 찾아가거라.
그리고 마침내 주현절이 오면 조과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빛 중의 빛, 우리 하나님 그리스도 세상을 비추시도다.
하나님 증거하시니, 백성들아 그분께 영광 돌리세.
참된 빛 나타나 세상을 비추시도다
그리스도 요단강에 나타나셨으니 온 만물아, 기뻐하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체로서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셨도다.
그리고 이런 '트로파리온(troparion, 짧은 찬송시)을 부릅니다.
오 주여, 당신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셨을 때,
삼위일체 경배는 증거 되었나이다.
성부의 음성이 당신을 사랑하는 성자라 증거 하셨으며,
비둘기의 형상 가운데서
성령은 성부의 말씀을 확고하게 증거 하였나이다.
오, 우리 하나님 그리스도 나타나시어 세상을 바꾸시니
당신께 영광을 돌리나이다.
이토록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이 중요한 까닭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은 마태복음(3:13-17)과 마가복음(1:9-11), 누가복음(3:21-22)에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세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내리신 성령에 관한 요한의 증언(요 1:25-34)이 서술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강림하신 성령과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부 하나님의 음성은 지금 세례 받으신 분이 바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땅으로 보내지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받으신 이 세례는 이후로 그리스도교 세례의 원형으로 간주된 까닭에 우리 역시 세례를 받을 때, 우리에게 오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받는 모든 이들에게 예수님께 하셨던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막 1:9-11) 특별히 오늘 성서일과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받으신 세례를 먼저는 그리스도론적 차원에서, 다음으로는 성령론적 차원에서, 마지막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안에서 관상하게 됩니다. 먼저 복음서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 막 1:9-11
여기 '그 때에'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 때(막 1:4, 5)를 말합니다. 그 때 요한이 준 세례는 이후 전개되는 예수님의 공적 활동에 대한 연대의 첫 걸음일 뿐 아니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시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 장면 안으로 들어가 봤으면 좋겠습니다.이해를 돕기 위해 그리스 아토스 성산의 스타브리키니타 수도원에 소장된 크레타의 화가 테오파니스가 1546년에 그린 성화를 보겠습니다. 이 성화의 구성은 완전히 성경의 내용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성화의 맨 위 쪽에 있는 반원은 성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그 반원으로부터 광선이 나와서 성삼위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인 '비둘기 형상'(눅 3:22)의 성령과 두 번째 위격인 그리스도를 비춥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성삼위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정확하게 수직선으로 성화의 한 가운데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요단강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비둘기 모양으로 표현된 성령이 계셔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해 줍니다. 그 위로 성화 위쪽 가장자리에는 빛나는 반원 즉 하늘이 있는데,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현존과 증언을 의미합니다. 성화 작가는 성삼위 하나님의 위격들을 일직선상에 같은 간격으로 배치함으로써 두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는, 성삼위가 동일본질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각각의 위격이 특별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아들이심을, 즉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언합니다. 그는 창조주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부의 뜻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성부의 증언을 확인하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확실하게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세례 받으신 직후 하늘이 열렸습니다.(마 3:16;막 1:10)
그리스도는 거의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그것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영광을 모두 내려놓으셨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에게 영원한 영광의 옷을 입혀주시기 위해 당신은 벌거벗으셨습니다,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라고 요한이 말할 때,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세례를 받으신 것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것 모두 인간을 위해 낮아지시고, 고난을 당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임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세례 요한에게 머리를 숙이고 세례를 받으시는 이 장면은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이렇듯 주님의 세례가 지니고 있는 영적 함의(含意)는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 한 장면에서 주목해 볼 것은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신 사실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이 물에 들어가심으로써 물은 새로운 창조와 성화의 요소로 변화됩니다. 즉 물이 주님을 씻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물을 성화하셔서 이후로 물을 통한 성화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밤에 니고데모가 당신을 찾아왔을 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요한은 세례자로서 자신이 주는 세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당시 요한은 광야지대의 요단강변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막 1:4, 5) '광야'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히브리들이 약속의 땅을 찾아 순례했던 곳이고, '요단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여호수아의 인도를 따라 건너갔던(수 4:21-23) 곳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광야'에 있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푼 것은 그가 세례를 새로운 '출애굽'으로, 그리고 새로운 '구원'으로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요한이 진정한 선지자요,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인 이유는 그 새로운 출애굽의 담지자가 '자기'가 아닌 '자기 뒤에 오실 분'임을 안 것입니다. 7절과 8절을 표준 새 번역 성경으로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몸을 굽혀서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자칫, 요한의 세례를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너무 중요합니다. 사실 요한의 세례만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에서 정한 정결의식인 미크바(Mikvah)를 널리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주는 세례는, 당시의 정결의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세례를 받기 위해, 먼저 자기 죄를 고백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설 것을 약속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세례를 받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건입니다. 진정으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돌아서는 과정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오히려 자신과 주님을 기만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의 세례로 상징되는 회개의 세례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요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위대한 선지자인 진정한 이유는 자신이 주는 회개의 세례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참되고도 새로운 출애굽은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성령세례를 통해 완성되는 것임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주는 회개의 세례는 일회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 베푸실 성령세례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세례이고, 매일 매순간 재창조하실 세례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 보면 가슴 아픈 장면이 하나 소개됩니다.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 행 19:2, 3
이 장면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에게 묻는 장면입니다.(행 19:1)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들의 말이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볼로에게 성경을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드리아 학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문적 전통이 강한 도시였습니다. 그곳 출신이어서인지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신학자였습니다.(행 18:24) 그런데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행 18:25에 보면, 누가는 아볼로에 대한 소개 끝에 뭔가 석연치 않은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는 박식한 성경지식과 그 지식에 걸맞은 화려한 언변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요한의 세례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례 요한의 영향을 받은 아볼로가 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성령에 관해 들려주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제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한 게 아니라 아예 성령이 계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은 작은 결핍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은 이미 태초부터 계셔서 창조사역의 한 축을 담당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창 1:1, 2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는 분명히 창조사역의 한 축을 담당하신 하나님이신데, 그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다면 아볼로는 그만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면 만을 가르쳤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성령께서 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배할 때 성령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에 잠기는 그 시간에 성령세례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넘어 성령세례를 체험할 때, 우리는 '예수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 막 1:11
사도 바울이 안수했을 때,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그때부터 에베소를 변화시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에베소 전체 인구 중에서 불과 소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 변화된 소수 의해 에베소 전체가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령세례를 받고 변화될 때, 그 변화된 나로 말미암아 '예수 생명'이 드러나고, 변화된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변하고, 내 나라가 변하고, 교회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말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단지 죄를 씻는 회개의 세례였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성삼위와의 일치와 통교를 의미합니다. 세례 받음으로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존재론적으로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직자들이 세례의 성례전을 수행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행하는 것이고, 시리아 전통에서는 세례를 '영광의 겉옷을 받아 입음' 혹은 '낙원에로의 귀환'이라고 불렀습니다. 흙으로 된 육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거룩하신 하나님과 일치를 이루었으니, 그것이 영광의 겉옷이 아니겠으며 낙원으로의 귀환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 사실을 사도 바울은 고전 14,49에서 이렇게 감격스럽게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넘어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세례를 받을 분들도 계십니다. 세례 받기 전에 자기 죄를 고백하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돌아서셨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육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때로 원치 않는 죄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물로 세례 받은 것에 만족하지 말고, 꾸준한 영적 생활을 통해 성령세례를 받으심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랑의 일치를 이루고, 하나님과 함께 걸어 생명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세례 받은 이후에도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세례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거룩한 일치를 이루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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