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탄절 기원후를 살아가는 사람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12-26 18:39
조회
1003
성탄절 (나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52:7-10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응송 | 시 98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 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서신 | 히 1:1-5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 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 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 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복음 | 요 1: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 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 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 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 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 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5을 묵상하십시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 라"라는 말씀과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떻게 다릅니까?
② 히 1: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 이신 그리스도께서 만물 가운데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③ 사 52:7을 묵상하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이의 발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대림시기 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응답으로 마침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성탄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신앙의 명절인데, 여기서 기념한다는 것은 단지 옛 일을 회상하고 기린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성탄을 오늘 여기서의 사건으로 다시 새롭게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앙겔루스 실레시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천번 만번 베들레헴에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너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탄생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버림받은 자이다." 부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다시 태어나시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 다시 태어나는 신앙의 신비가 우리 모두에게 체험되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이 오늘 우리 안에서 다시 이루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 전과 후로 달라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가른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 탄생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탄생 이전을 기원전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 탄생 이후를 기원후라고 부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안에 성탄이 이루어지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원후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전히 기원전에 머물러버린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구유에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시대의 분기점이라는 것은, 성탄과 십자가와 부활이 시대를 가르는 기준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기원후를 살아가는 사람이란 연대기적으로 예수님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셔서 그분과 함께 믿음과 거듭남과 성화와 완전으로 이어지는 영적여정을 걸어간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성탄의 신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안드레이 루블레프가 1405년에 그린 성탄 이콘이 있습니다. 즈베니고로드 성탄 이콘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이콘이 즈베니고로드에서 모스크바의 성모희보 대성당으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이 성화상이 보여주고 있는 내용은 성탄절 찬미가인 콘다키온(짧은 성가)과 일치하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오늘 동정녀께서 본체를 초월하는 분을 낳으시니, 땅은 범접할 수 없는 분에게 동굴을 바치고, 천사들은 목자들과 함께 영광을 드리며, 박사들은 별 따라 길 떠났으니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음이로다." 이 성화상의 아래쪽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두 장면은 전승에 기초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화상의 한 가운데에 아기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시고, 어두운 동굴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어둠은 상징적 의미에서 '생명의 빛'이 비쳐온, 죄로 가득한 세상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동굴, 구유, 강보 등은 하나님의 겸손(kenosis 비움)을 나타냅니다. 동굴에 놓인 구유 가까이 소와 당나귀가 한 마리씩 서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것들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사 1:3에 있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책망에 의하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라는 말씀으로, 그리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라는 말씀으로 요약합니다. 검정색 동굴은 어둠에 점령당해 버린 세상을 보여주고, 동굴 다른 편에는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 보입니다. 별에서 나온 한 줄기 기다란 빛이 곧게 동굴을 내려 비추고 있습니다. 이 빛은 바로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이 빛이 여러분에게 비쳐온 날입니다. 한낮에 밖에 나가 눈부신 광명 아래 서있어 보십시오. 햇빛은 온 만물의 후미지고 깊은 구석까지 비추어 어둠속에 숨겨진 본상들을 드러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따스한 열기는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처럼 온 대지를 안아줍니다. 성탄절은 바로 그런 날입니다. 생명의 빛이 우리를 향해 비치어 우리의 어둠을 드러낼 뿐 아니라, 우리를 품어 생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황홀하게 전해줍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내 안에 드리운 존재의 어두움을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②생명의 빛 안에 있는 존재답게 살아가는 삶은 어떠한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52:7-10
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8 네 파수꾼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보리로다 9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내어 함께 노래할지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셨음이라 10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응송 | 시 98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 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서신 | 히 1:1-5
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 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4 그가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 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 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복음 | 요 1: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 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 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 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 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 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 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5을 묵상하십시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 라"라는 말씀과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어떻게 다릅니까?
② 히 1: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 이신 그리스도께서 만물 가운데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③ 사 52:7을 묵상하십시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이의 발은 어떻게 묘사되고 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기원후를 살아가는 사람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대림시기 동안의 기다림에 대한 응답으로 마침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성탄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신앙의 명절인데, 여기서 기념한다는 것은 단지 옛 일을 회상하고 기린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성탄을 오늘 여기서의 사건으로 다시 새롭게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인 앙겔루스 실레시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천번 만번 베들레헴에 탄생한다고 하더라도 너의 마음에 그리스도가 탄생하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히 버림받은 자이다." 부디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다시 태어나시고, 우리는 예수님 안에 다시 태어나는 신앙의 신비가 우리 모두에게 체험되기를 축복합니다. 성탄이 오늘 우리 안에서 다시 이루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진정한 의미에서 오늘 전과 후로 달라진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에서 시대를 가른 사건이 바로 그리스도 탄생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탄생 이전을 기원전이라고 부르고 그리스도 탄생 이후를 기원후라고 부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안에 성탄이 이루어지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원후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여전히 기원전에 머물러버린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구유에 태어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시대의 분기점이라는 것은, 성탄과 십자가와 부활이 시대를 가르는 기준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기원후를 살아가는 사람이란 연대기적으로 예수님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셔서 그분과 함께 믿음과 거듭남과 성화와 완전으로 이어지는 영적여정을 걸어간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성탄의 신비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요 1:1-5
여기에서 요한이 언급한 '태초(엔 아르케, Ένάρχη)'란, '처음 시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초시간적 영원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만물의 시초(始初)'를 의미합니다. 이 만물의 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으로 번역된 헬라어 '로고스(λόγος)'는 스토아학파에 의하면 '우주의 지배적인 이성' 혹은 '우주를 다스리는 정신'을 가리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로고스에 의해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이 스토아학파의 보편적 개념이었는데, 요한공동체가 이 로고스 개념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주목해 보면 요한이 언급하는 로고스 개념에 몇 가지 핵심 단어가 나오는데, 태초, 창조, 생명, 빛 등입니다. 이 단어들을 종합해서 요약하면 '생명의 빛'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서에서 요한이 설명하고 싶어 하는 로고스는 바로 '생명의 빛'으로서의 로고스입니다. 예수님이 로고스인 근거는, 그분이 '생명의 빛'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설명에 의하면, 오늘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은 곧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온 것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다시 정리하면, 역사는 '생명의 빛' 이전과 이후로 나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역시,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했느냐'의 여부에 따라 '생명의 빛' 이전과 이후의 존재로 나뉘게 됩니다.안드레이 루블레프가 1405년에 그린 성탄 이콘이 있습니다. 즈베니고로드 성탄 이콘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이콘이 즈베니고로드에서 모스크바의 성모희보 대성당으로 옮겨왔기 때문입니다. 이 성화상이 보여주고 있는 내용은 성탄절 찬미가인 콘다키온(짧은 성가)과 일치하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오늘 동정녀께서 본체를 초월하는 분을 낳으시니, 땅은 범접할 수 없는 분에게 동굴을 바치고, 천사들은 목자들과 함께 영광을 드리며, 박사들은 별 따라 길 떠났으니 이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어린 아기로 태어나셨음이로다." 이 성화상의 아래쪽으로 보이는 서로 다른 두 장면은 전승에 기초한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화상의 한 가운데에 아기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시고, 어두운 동굴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어둠은 상징적 의미에서 '생명의 빛'이 비쳐온, 죄로 가득한 세상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동굴, 구유, 강보 등은 하나님의 겸손(kenosis 비움)을 나타냅니다. 동굴에 놓인 구유 가까이 소와 당나귀가 한 마리씩 서 있습니다. 복음서는 그것들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사 1:3에 있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책망에 의하면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실을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라는 말씀으로, 그리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 1:11)라는 말씀으로 요약합니다. 검정색 동굴은 어둠에 점령당해 버린 세상을 보여주고, 동굴 다른 편에는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들이 보입니다. 별에서 나온 한 줄기 기다란 빛이 곧게 동굴을 내려 비추고 있습니다. 이 빛은 바로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이 빛이 여러분에게 비쳐온 날입니다. 한낮에 밖에 나가 눈부신 광명 아래 서있어 보십시오. 햇빛은 온 만물의 후미지고 깊은 구석까지 비추어 어둠속에 숨겨진 본상들을 드러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 따스한 열기는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처럼 온 대지를 안아줍니다. 성탄절은 바로 그런 날입니다. 생명의 빛이 우리를 향해 비치어 우리의 어둠을 드러낼 뿐 아니라, 우리를 품어 생명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바로 그 사실을 우리에게 황홀하게 전해줍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 1:9-14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 생명의 빛에 의해 진정한 기원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신서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 빛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히 1:3a)이시라고 증언하고,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신다"(히 1:3b)고 단언합니다. 공동번역 성경대로 표현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오, 하나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십니다. 이 영광의 광채가 여러분 안에 비쳐들고, 능력의 말씀이 여러분을 붙드셔서, 죄를 정결하게 하실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가득 차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 빛을 한껏 머금고 어두운 세상 가운데 서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합니다.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사 52:7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도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 사 52:10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기원후'라는 단어보다 '코로나 이후'라는 단어가 더 실감나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19라는 대유행이 시대를 그 전과 후로 나눌 만큼 맹위를 떨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후 시대를 그리스도 후 시대와 감히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러나 공통점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의 관성을 돌아보고 처음부터 재검토하게 해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코로나 후 시대란 없습니다. 코로나 질병은 다른 질병의 이름으로 인류 역사 안에, 사람들 가운데 늘 있어왔습니다. 코로나 19가 극복된다 해도 인류는 또 다른 바이러스의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 후 시대를 그리스도 후 시대와 함께 열어갈 수 있다면 상황은 다를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는 존재답게, 말씀의 능력에 이끌리는 존재답게, 나보다 삶의 변두리로 밀려난 이웃을 더 돌아보고, 편하게 자연을 착취하는 삶보다 환경을 돌아보며,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웃을 돌보고 환경을 보전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은 우리를 향해 더욱 강하고 따뜻하게 비쳐올 것입니다. 성탄절인 오늘이 바로 그 출발점이 되는 진정한 기원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내 안에 드리운 존재의 어두움을 방치하고 있지 않은가?
②생명의 빛 안에 있는 존재답게 살아가는 삶은 어떠한가?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