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3주 그리스도의 소리로 사는 기쁨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61:1-4, 8-11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 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 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 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 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 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 수할 것이며 8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9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 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 하리라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 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 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
응송 | 시 126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서신 | 살전 5:16-24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 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복음 | 요 1:6-8, 19-28
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 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 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61:1-3을 묵상하십시오. 주 여호와의 영이 내렸을 때, 부름 받은 소명의 담지자가 감당하게 될 구체적인 사역들은 어떤 것입니까?
② 요 1:23을 묵상하십시오. 세인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 있을 때 세례 요한은 자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까?
③ 살전 5:16-23을 묵상하십시오. 우리 삶의 기쁨과 기도와 감사 즉 온 전한 거룩함은 어떤 노력들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의 '소리'로 사는 기쁨
대림절 셋째 주일은 그리스도교의 오랜 전통 안에서 '기뻐하라 주일(Gaudete Sunday)'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대림절 셋째 주의 입당송은 항상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하신 빌 4:4-5의 말씀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쁨은 대림절 셋째 주일을 지나, 대림절 넷째 주일로 가면서 더 배가되도록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주님의 성탄과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된 기쁨이고, 동시에 그 두 오심의 중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 여기, 우리 가운데' 임재해 계신 주님과 함께 있는 감미로운 기쁨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에게 위로와 치유와 해방 그리고 기쁨을 가져오시는 우리의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지난날 유다고을 베들레헴에 나셨던 아기 예수님은, 지난날 저지른 우리 죄들을 십자가에서 대속하셨고, 오늘 여기에 성령으로 와 계시며 또한 오고 계시는 주님은 '오늘, 여기, 우리 가운데'서 '보혜사' 즉 '위로자'가 되어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얼굴에 가리운 너울을 찢고'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주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과 생명이 되실 것이니, 우리는 가히 그분을 '기쁨'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당신을 설명하시기 위해 친히 인용하신 말씀으로,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이루실 기쁜 일을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사 61:1-3
그리고 장차 메시아를 통해 이루실 이 일로 인해 오늘 응송인 시 126에서 시인은 이렇게 외칩니다.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 시 126:1-3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 역시 메시아이신 그리스도의 현재적 구원을 바라보며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살전 5:16-18a)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살전 5:18b)고 소개합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 범사에 감사하는 것(살전 5:16-18a) 이것은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과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복음서는 무엇보다도 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세례 요한의 기쁨을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세상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빛으로 오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빛이 비치고 있으나 어둠이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요 1:1-9). 그러나 요한은,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이미 사람들 사이에 와 계신 그리스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 요 1:26b-27
그는 진정 빛에 대하여 증언할 뿐 아니라, 자기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빛을 믿도록 하는 것(요 1:7)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이 땅에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임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오늘 구약의 말씀은,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남유다 사람들이 긴긴 포로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고국으로 귀환하던 BC 5세기 초반 제3 이사야가 쓴 '소명선언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사 61:1), 주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사 61:2),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 재를 뒤집어쓴 사람들에게 화관을 씌워주는 일, 상복을 입었던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는 일,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는 일(사 61:3), 이것이 바로 주 하나님의 영이 자신에게 임하시고, 자신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며 맡기신 일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놀라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역사를 신앙의 눈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릅니다.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서 일제의 억압 속에 있던 당시, 우리나라를 '우리 거문고를 바빌론 시냇가 언덕 위의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놓은 때'라고 표현했습니다. 밖으로부터 오는 억누름, 안에서 오는 슬픔으로 말이 자유롭지 못한 그 때, 그 때 여남은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쓰디 쓴 입에 붙이어 될 수 있는 데까지 간추려서 우리 역사의 '뜻'을 말해보자고, 그래서 시작된 글을 김교신의 '성서조선'에 연재하다가 그나마도 억누르는 자의 뜻에 거슬려서 아주 내지 못하게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심정을 함석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고난의 역사는 정말 바빌론 거친 들에서 지나가는 바람결에 잠깐 들렸다가 바람결에 사라지는 외로운 종의 앓는 소리같이 아주 없어져버린 듯하였다." 그런데 해방이 왔습니다. 그 때 비로소 '성서조선'에 연재하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자는 의견이 있어서 낸 책이 '뜻으로 본 한국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본래 이름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글이 글 된 까닭이 성경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함석헌은 자신의 책에 대해 성경적 입장'에서 역사를 쓴 것이 아니라, '성경의 자리'에서 역사를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바로 아는 길은 성경 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심정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한 시대 안에서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의 예언들은 이스라엘 역사를 초월해 있지 않고 이스라엘 역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 사역을 보았습니다. 결국 그 신앙의 안목으로 인해 이사야는 고통당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선언이 눅 4:18, 19에 나와 있습니다. 훗날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오늘 구약의 말씀인 사 61:1-3을 읽으신 후에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제3 이사야가 선포했던 그 소명 선언문이 바로 메시아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신의 사역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역사 속에서 보았던 신앙의 시선, 그리고 역사 속으로 찾아오신 주님께서 인식하셨던 가난한 자와 포로 된 자, 눈 먼 자와 억눌린 자를 향한 사명감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시선, 대한민국이라는 한 민족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구체적인 구원 활동을 보는 시선,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시선이 필요합니다. 기쁨이란 그러한 신앙의 시선을 통해서만 우리 내면에서 싹트고 자라는 감정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세례 요한에게서 바로 그러한 신앙의 시선을 봅니다. 군중들 사이에 서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바로 그 시선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는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라는 말씀이 시대의 어둠을 아프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시대의 어둠 속에서 요한은 기쁨의 이유를 찾아냅니다. 바로 그 기쁨의 이유를 요한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 요 1:27b-28a
빛이 너희 가운데 비추어왔음에도 너희는 알지도 깨닫지도 영접하지도 않았지만 그러나 그 빛이 지금 너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광경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요한을 찾아왔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요한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파견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입니다.(요 1:19) 그리고 또 한 부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들은 답변이 궁금해서 바리새인들이 파견한 사람들입니다.(요 1:24) 먼저 유대인들이 보낸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요 1:19)고 물어봅니다. 이 첫째 질문의 속뜻은 '당신이 바로 백성들이 고대하며 기다리던 메시아인가?' 라는 겁니다.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요 1:20)고 단호하게 부정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두 번 째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요 1:21a)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850년 전 쯤에 활동했던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많은 이적을 일으켰고, 죽지 않고 하늘로 올리움을 받았습니다.(왕하 2:7-13) 말 4:5, 6절의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에 의하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하셨는데, 당신이 바로 그 엘리야냐는 것입니다. 역시 요한은 '나는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요한이 '그렇다'고 대답해도 틀린 대답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가, 그들 앞에서 변형되어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던 이야기가 나옵니다.(마 17:2) 그 일이 있고 나서 산을 내려올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마 17:10) 제자들이 이렇게 물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빛에 둘러싸여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마 17:3) 그런데 정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합하시는 겁니다.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마 17:11b-12) 그리고 이어지는 요한복음 저자의 설명을 보십시오.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마 17:13) 예수님의 대답을 들은 제자들이 비로소 세례 요한이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그 엘리야인 것을 알았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의 입장에서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내가 바로 엘리야다." 아니면 "나는 엘리야는 아니지만, 그러나 그에 대해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나는 아니라'고 잘라 대답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진리를 찾기 위해 묻는 것이 아니라 악의(惡意)를 품고 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마지막 세 번째로 '네가 그 선지자냐'고 묻습니다.(요 1:21b) 당시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지만, 이들의 질문은 당신이 신 18:15에서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냐는 겁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애가 타서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며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요 1:22)고 묻습니다. 요한의 정체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하고 빈손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요한은 지난 주 구약의 말씀이었던 사 40:3을 인용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 요 1:23
요한의 이 대답은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말씀(logos)'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볼 때, 자신은 '소리(phone)'에 불과하다는 고백입니다. 그의 이 대답은 매우 겸손한 답변이지만, 그러나 사실은 '소리'로서의 요한 역시 결코 가벼운 존재는 아닙니다. 사람은 '소리'를 들어야만 비로소 그 소리가 가리키는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 5:35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을 '등불'이라고 표현하신 것도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고 여겨집니다. 요한은 빛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빛으로 비추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위대한 것은 스스로 빛이 되려 하지 않고 '빛'을 비추게 하는 '등(燈)'이 된 겸손함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마 11:11) 하신 예수님의 칭찬은 하나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는 '말씀'이 아닌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소리'가 있었기에 사람들이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빛을 비추이게 하는 등이 되어 빛을 도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는 요한의 고백은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찬 고백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기쁨과 희망의 이유도 요한과 같은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그 분의 '소리'로서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우주의 역사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유일하게 일어난 구원 사건에 영혼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살전 5:16-18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삶을 시작하고 말을 배우게 되면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 있는 기쁨을 가르쳐줘야 하고,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라도록 이끌어줘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고마움에서 비롯되기도 하겠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영적 성숙과 기쁨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기쁨은 어떻게 보존되고 깊어지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살전 5:19-23
이사야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 즉 '성령'을 소멸하지 않고 '가난한 자를 향한 소식'을 멸시하지 않음으로 그는 똑같은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시온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재를 뒤집어쓴 사람들에게 화관을 씌워주시고, 상복을 입었던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주시고,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시는(사 61:3), 평강의 하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 신앙의 안목으로 인해 이사야는 고통당하는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세례 요한 역시 그랬습니다. 당대의 모든 사람이 예언을 멸시하며,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조차 않고 있을 때, 그는 세인(世人)의 머릿속에서 이미 잊혀진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기억하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 시선을 고정하고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그 사람 이사야처럼, 그 사람 요한처럼, 우리 역시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시며, 역사 속에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될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어 주고, 포로 된 자에게 임하는 여호와의 구원을 선포하는(사 61:1), 희망의 '소리'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②신앙의 시선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며 희망의 소리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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