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2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40:1-11
1 너희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 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 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 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 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 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응송 | 시 85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 에 머무르리이다
서신 | 벧후 3:8-15a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 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 보나니 주 앞에서 점 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복음 | 막 1:1-8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 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 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40:4을 묵상하십시오. 골짜기를 돋우고, 산과 언덕을 낮아지게 하 라는 말씀은 궁극적으로 어떤 신앙의 자세를 요청하는 말씀인가?
② 막 1:3-5을 묵상하십시오.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말씀에 대한 세례 요한의 화답은 무엇이었습니까?
③ 벧후 3:11b-12a을 묵상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땅한 자세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대림절은 시간이 지닌 신비를 잘 보여줍니다. 대림절 초에 불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이 점차 가까워지고, 그런 그리스도를 향해 선 사람들의 내면이, 그분의 빛으로 점차 밝아져가는 영적시간을 실감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대림절은 예수님과 관련한 두 가지 시간의 차원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이미 오신 예수님'입니다. 즉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만 빼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다른 하나는 '다시 오실 예수님'입니다. 즉 '세상 끝 날에 오실 예수님'입니다. 마 25:31-40에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그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연결된 시간입니다. 그러고 보면 '대림(Adventus)'이라는 명칭이 품고 있는 기다림, 오심(내림), 다다름(도착)이라는 의미는 확실히 우리를 보다 절실하게 영적시간 안에 머무르게 해줍니다. 우리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깨어 기다리라는 말씀은 이해할 수 있는데, 이미 오신 주님을 기다리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래서 대림절이 더욱 영적인 시간인 것입니다. 첫 번째 성탄은 마리아의 태(胎) 안에 이루어졌지만, 두 번째 성탄은 우리의 내면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마음으로 영접할 때, 예수님은 우리 안에 생명의 주로 탄생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과 성화와 완전을 이루어 갈 때, 그 삶은 곧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도, 세상 끝 날 다시 오실 예수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깨어있을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대림절 제2주와 제3주 복음서의 말씀에 가해, 나해, 다해 모두 세례 요한의 설교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매일성서일과 역시 대림절 제2주 목요일부터 12월16일까지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들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을 '대림의 설교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세례 요한의 역할은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예언한 그대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것'(눅 1:76)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주로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것'(막 1:7;요 1:26)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마 3:8)으로 집약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교회력 가해와 나해의 구약의 말씀은 대림절 기간 내내 이사야의 예언으로 채워집니다. 세례 요한의 별명이 '대림의 설교자'라면, 이사야의 별명은 '대림의 선지자'입니다.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메시아가 곧 오실 것이니 그분에게 희망을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신서의 말씀은 한결같이 '두 번째 오실 예수님'께 주의를 집중하며 '깨어서 그 분을 기다릴 것'을 요청합니다. 대림절 제2주인 오늘 구약의 말씀은 제2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으로 시작됩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사 40:1
이 말씀은 유다인들이 그들의 조국인 팔레스티나에서 몇 천리 떨어진 바벨론에서 유배중일 때 쓰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마음을 판 대가로 오랜 세월 동안 유배생활을 감내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쓰이던 BC 587년은, 그 복역의 때가 서서히 끝나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그 위로는 값싼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벌을 받은 이후였습니다.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사 40:2b)는 말씀이 그들이 치른 죄의 대가가 엄중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로하라시며, 그 위로가 '그들의 마음에 닿도록'(사 40:2a) 자상하게 말해주라고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그 위로의 내용은 복역의 때가 끝났으므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2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도록 하십니다.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 사 40:3-5
바벨론에서 팔레스티나로 가는 길은 음식과 물을 구할 수 없는 사막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더욱이 광야는 거칠었고 골짜기도 많았기 때문에,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막을 횡단하고 골짜기를 건널 수 있는 길을 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고국으로 돌아갈 때 단 한 번 사용하자고 그토록 위험한 공사를 꼭 벌여야 하느냐는 물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표현이라든지,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이 닦아야 할 '길'은 사실은 실제로 길을 닦는 토목공사가 아니라 유다인들의 마음속에 닦아야 할 내면의 공사 즉 '영적인 도로'를 건설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 당시 유다인들은 오랜 기간의 우상숭배와 그로 인한 유배생활을 감내하는 동안 마음들이 사막처럼 마르고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에게 마냥 설레고 기뻐할 일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칠고 패인 상황은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그들의 내적 상태와 외적 상태 모두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칫 고국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그들의 '마음에 닿도록' 설명하지 못했을 때, 그들은 이사야에게 저항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 40:4, 5a) 라는 말씀은 실제 그들이 돌아갈 길에 관한 말씀이기도 하겠지만, 다시 하나님을 향해 서야 할 그들의 마음의 준비 즉 오랜 유배생활에 황폐해진 마음은 돋우어주고, 하나님 없이 자아로 가득 찬 마음은 낮춰주고, 죄로 인해 험해진 마음은 평탄하게 골라, 주님 오실 길을 마음에 닦으라는 말씀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말씀에 순종해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그들은 스스로는 돌아갈 힘이 없었습니다. 돌아갈 힘은 다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회복되어야 돌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수신한 선지자는 제2 이사야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제1 이사야와 다른 사람이고, 오늘 말씀인 이사야 40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런 그로서 아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 사 40:6-8
소리가 말씀합니다. "외치라" 젊은 선지자가 놀라서 묻습니다. "무엇이라고 외쳐야 합니까?"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습니다.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진다, 스쳐 가는 야훼의 입김에. 백성이란 실로 풀과 같은 존재이다. 풀은 시들고 꽃은 지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 사 40:6-8 공동번역
이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다 보면 6절-8절a과 8절b의 말씀이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봅니다. 6절-8절a의 말씀은 순간적이고 나약한 존재인 인간 자신과 인간이 세운 영화를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8절b의 말씀은 영원하고 강하신 하나님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초강대국인 바벨로니아 제국의 위용은 다시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고, 바벨로니아 사람들은 두려울 만큼 강직하고 용맹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서슬 앞에서 몸을 낮추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 나라를 떠나는 것 또한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들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저들은 곧 시들고 말 풀이나 꽃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저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그 사실을 외침으로써 탈 바벨론 앞에서 주저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생은 한낱 풀포기이고, 그 영화는 들에 핀 꽃과 같다"는 말씀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을 향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시 90편은 그것을 적나라하게 묘사했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시 90:5,6) 옳은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뛰어나도 풀이나 꽃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 세상 권력도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순식간에 마르는 풀이나 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의 선언에 따르면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선지자에게 들려온 소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실존을 적나라하게 깨닫게 하고,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앞에 서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 사 40:9
이 외침에서의 포인트는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입니다. 이 말씀의 흐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에게 들려온 소리는 '외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당혹감 속에서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묻습니다. 이때 들려온 말씀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라"고 외치라는 것입니다. 이 두 명령은 인간의 실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초월하는 힘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실존은 위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로가 사람에게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풀이고 꽃입니다. 사람이나 풀이나 꽃이나 같은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사람은 그 누군가를 위로할 주제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의 실존을 넘어서는 동시에, 그 실존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된 위로를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보는' 현실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부디 길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 인간 구원이 어디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이 어디서 구원받느냐' 하는 질문은 곧 '인간이 어디서 위로받느냐'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 오늘 이사야는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을 보라" 그렇습니다. 구원을 받고자 한다면, 위로를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시대에 국한된 해답이 아닙니다.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똑같이 적용되는 해답입니다. 우리를 그 사실을 오늘 복음서의 세례 요한의 외침을 통해서도 깨닫습니다.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 막 1:3, 4
놀랍게도 이 말씀에서 마가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말씀을 전파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치는 자의 소리'(사 40:3)였던 이사야 선지자의 오래 전 예언이 이루어지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 때, 그가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고 외쳤었는데, 지금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분께서 오실 길을 곧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세례 요한도 비록 살아간 시대는 달랐지만, 그러나 가슴속에서 북받쳐 나와 '외치는 소리'는 같았습니다. 구원과 위로를 받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는 것뿐이라는 진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을 보라"(사 30:9)고 외친 것처럼, 세례 요한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막 1:4)고 외친 것입니다. '회개'를 의미하는 희랍어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는 전인적이고 본질적인 '마음의 돌이킴'을 나타냅니다. 오리게네스의 표현에 의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길을 내시고, 그 길을 통해 우리 안에 들어오시려 하시는데, 우리 안에 주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작업, 그것이 바로 회개함으로서 '새로운 자아'를 우리 마음에 이루는 것입니다.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 막 1:7
세례 요한은 우리 안에 주님 오실 길을 내야 하는 이유를, 그 길을 따라 오시는 분이 자기보다 능력 많으신 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요한은 '외치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주님은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셨습니다. '소리'는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지만, '말씀'은 태초부터 영원히 계셔서 사람들을 재창조하시는 능력이십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며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소개하고, "그 분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고,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한다"(막 1:7)고 고백한 것입니다. 제 2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보라'던 그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요한이 소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따라서 대림절 둘째 주를 지나고 있는 우리 역시 이사야처럼, 세례 요한처럼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라!",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서신서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 분을 보는 자로서 우리 자세가 어떠해야 할지를 이렇게 일러줍니다.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벧후 3:11b-12a
'하나님을 보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자'가 마땅히 살아가야 할 삶은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 사막처럼 메마르고 황량해진 마음, 골짜기처럼 패이고 상처 입은 마음, 높은 산과 언덕 같이 거만해진 마음, 비탈길같이 편협하고 옹졸해진 마음이십니까? 대림절기를 지나는 동안 메우고, 깎고, 넓혀서 주님께서 오실 길을 마음에 내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탄생하셔서 참된 성탄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사막처럼 메마르고 골짜기처럼 패인 마음 그대로 살아가는가?
② 마음에 길을 내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시도록 노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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