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1주 대림절, 훈련과 기다림의 계절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사 64:1-9
1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2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 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3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 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4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 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9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 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응송 | 시 80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서신 | 고전 1:3-9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 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 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 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 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복음 | 막 13:24-37
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 이 보리라 27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 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 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 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 니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사 64:5-7을 묵상하십시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어떠한 사 람들이며, 반면 유다 백성들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② 막 13:28, 29을 묵상하십시오. 계절과 사물의 변화를 보며 우리가 깨 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③ 고전 1:5-7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하나 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훈련과 기다림의 계절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은 교회력의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고,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자기 내면을 정돈하는 때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수도자적 일기인' 제네시 일기(Genesee Diary)'라든지, 라틴 아메리카의 선교사로 사역할 때 쓴 책 '기다림의 행로(The Path of Waiting)'등에서 소비중심주의로 흐르고 있는 성탄절의 경향에 아이처럼 편승하지 말고 성경말씀에 귀 기울이며, 성경에서 말씀하는 예수님을 인내와 신뢰로 기다리는 구도자로서의 대림절을 보낼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내가 바라는 것들을 찾아 쟁취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투쟁해서 쟁취할 것을 집요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헨리 나우웬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의 바람(Wish)들을 오히려 떨쳐버렸을 때, 비로소 소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나의 바람에서 자유로워졌을 때만 비로소 그것을 초월한 무엇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태고지(受胎告知)의 날, 마리아가 했던 말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 그녀의 기다림은 자신의 바람이 아닌 말씀을 향해 열려있는 기다림이었습니다. 내 바람을 접고 성경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깊은 영적성찰과 변화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대림절의 기다림이 바로 그러한 기다림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주제는 한결같이 그 기다림으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상태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습니다.(사 63:19)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자세를 낮추고 애타게 주님의 강림을 호소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실 것을 고대(苦待)하고 있습니다.(사 64:1-8)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와 '종들에게 각각 일거리를 맡기고 먼 나라로 떠난 주인의 비유'를 들어 '기다리는 자의 자세'에 대해 말씀합니다. 기다림의 지혜는 '때를 분별하는 것(막13:28-29)'이고, 기다리는 자의 자세는 '깨어 있는 것(막13:35)'이라는 말씀입니다. 서신서에서 우리는 바울의 감사를 봅니다. 그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감사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에 깊은 확신을 가졌을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고전 1:4-7) 오늘 구약성경의 말씀은 참 아름답게 시작합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 사 64:1, 2
이 말씀에는 아주 강력한 기다림이 있고, 하나님의 강림이 야기할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기대 또한 한껏 배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 역사 속에 개입하시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 기대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사정은 앞 장의 끝에 슬프고 처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사 63:19) 이 호소에는 그들의 처참한 현실이 있는 그대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않아 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버렸고, 외세에 의해 주의 성소(聖所)마저 잔인하게 유린당하고 있었습니다.(사 63:18) 어쩌다가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책임은 모두 자신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은 회한(悔恨)에 가득 차서 이렇게 고백합니다.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라 | 사 64:5-7
이사야 선지자의 이 고백에는 흡사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듯이 자신들이 범한 죄악에 대한 진술이 가혹할 만큼 구체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사야의 이 고백의 의도는 인간의 내면을 파괴시켜서 저항 의지를 꺾어버리는 죄의 파괴적인 힘을 그리는 것에 있다 하겠습니다. "우리의 죄가 바람이 되어 우리를 휩쓸어갔습니다"(6절b 공동번역) 라는 고백과 "당신의 이름을 불러 예배하는 자도 없고 당신께 의지하려고 마음을 쓰는 자도 없습니다"(7절 공동번역) 라고 회한에 젖어 울부짖는 고백 안에는 인간들에 대한 절망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으로 인해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께서 강림하시기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의 이 호소를 곰곰이 읽어보면, 자신들이 저질러온 죄악에 대한 부끄러움과,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실 주님께 대한 희망이 동시에 배어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회복시켜주시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단순한 회복이 아닌 새 창조에 버금가는 회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 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 사 64:3, 4
지금 이사야는 주님의 강림을 고대(苦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셔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는, 주님 없이는 인간의 마음이 조금도 새롭게 변할 수 없음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낡아빠진 옛 마음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한 새로운 도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 도시는 금방 벌을 받아 다시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다 | 사 64:8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라는 고백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 내면부터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완전히 재창조 수준으로 인간들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항상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 자신감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그 자신감 때문에 나라도 반으로 갈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 돌아오라고 호소할 때도 그들은 귀를 막고 듣지 않았으며 가슴을 닫아걸고 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삶은 자신들의 기대와 같지 않았습니다. 강대국들은 끊임없이 침략을 거듭해 왔고, 사람들은 하나 둘 범죄자가 되어갔습니다. 자신들의 의는 금세 더러운 옷 같아졌고, 존재는 잎사귀처럼 시들어만 갔습니다. 죄악이 바람 같이 그들을 몰아갔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어졌습니다.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도 없었습니다. 위기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얼굴이 내게 보이지 않을 때, 위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셔서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호소는 그래서 더 절절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절절한 요청은 장구한 세월 속에서 소멸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는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에 닿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평강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공생애 즉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는 마침내 참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래 전 이사야의 기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보면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 막 13:28, 29
모습이 변하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계절을 살피듯이, 세태를 보면서 주님 오실 '때'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긴장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설레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껏 주님을 외면하고 살아온 사람에게 이 말씀은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 분의 숨인 성령으로 나의 숨을 쉬고, 그 분의 말씀인 성경으로 내 영혼을 다듬고 있었다면, 무화과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는 것이 어찌 설레고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또 한 가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 막 13:34, 35
여기에서 마가는 밤을 세 경점으로 구분하는 유대인의 계산과는 달리 밤을 네 경점으로 구분하는 로마인의 계산을 따라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만약 집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이 자고 있는 걸 보면 책임을 추궁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으라는 겁니다. 오늘 복음서의 이 두 이야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마지막 '때'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때'가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때'의 성격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는 '그 때가 반드시 온다.' 특히 '임박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비유를 통해서는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대림절 신앙은 바로 이 두 진실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습니다. "반드시 온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이 두 사실이 변증법적인 긴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입니까?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고전 1:4-7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보며 감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에 깊은 확신을 가졌을 뿐 아니라, 말씀이 그들 안에서 이미 견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여러 은사를 부족함이 없이 받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그들이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 내 안에 견고하게 되어 그 말씀이 나를 이끌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분께서 주신 은사들을 여기에서 누리며 가슴 설레도록 기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 즐거움과, 이 설렘과, 이 그리움이 우리에게 없다면 언제일지 모르는 주님의 오심을 어찌 지루하게 기다리시겠습니까? 어쩌면 이 설렘과 이 그리움이 우리에게 없기에 그토록 땅에 집착해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림절은 어두움을 통과하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절기입니다. 전통적으로 4주 동안 계속되는 이 대림절은 우리를 4주 동안 변화시켜나가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훈련과 수련의 절기입니다. 대림절을 겨울의 사순절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장공 김재준 목사님은 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열 가지 삶의 신조가 있었다고 합니다.1.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2. 대인관계에서 의리와 약속을 지킨다.
3. 최저 생활비 이외에는 소유하지 않는다.
4. 버린 물건, 버려진 인간에게서 쓸모를 찾는다.
5.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를 똑똑하게 말한다.
그 다음에 생기는 일은 하나님께 맡긴다.
6. 평생 학도로 산다.
7. 시작한 일은 좀처럼 중단하지 않는다.
8. 사건 처리에는 반드시 건설적, 민주적 질서를 밟는다.
9. 산하와 모든 생명을 존중하여 다룬다.
10.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배려한다.
요한 클리마쿠스(John Climacus)는 그리스도인의 신앙훈련에 필요한 처음 네 가지 기본적인 덕으로 '순종, 참회, 죽음에 대한 기억, 애통'을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내적인 덕을 쌓으려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써 겸손함과 분별의 덕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순종 혹은 순명은 자기의 삶을 내려놓은 신앙의 행위입니다. 이 순종은 겸손의 덕을 낳으며, 자신의 사사로운 판단을 내려놓게 해 주며, 마음 안에 정신의 천국을 이루게 해줍니다. 참회하는 것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운 덕(德)이지만, 이 역시 궁극적인 기쁨을 제공해주는 덕입니다. 그래서 요한 클리마쿠스는 '회개는 소망의 딸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나 성(聖)요한 캇시안도 동의하듯이 탐식, 탐심, 정욕, 분노, 권태 등의 유혹에 맞서 싸우노라면 어느 순간 수덕생활 최고의 덕인, 하나님의 단순함에 참여하는 청빈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덕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겸손에 이르게 됩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의 모방이며,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청빈 양(Lady Poverty)을 아내로 맞이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이 멈추지 않고 지속될 때, 모든 그리스도인은 비로소 헤지키아(hesychia) 즉 내적 고요, 정적, 평온에 도달할 수 있고, 진정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무정념 즉 아파테이아(apatheia)에 도달할 수 있게 됩니다. 포티케의 디아도쿠스는 '무정념이란,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마귀가 공격할 때 패배하지 않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훈련의 결과로서 마침내 믿음, 소망, 사랑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신앙의 해가 바뀌고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때를 분별하고(막13:28-29), 깨어있는(막13:35) 그리스도인으로서 4주간의 대림절기 동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설렘 가득 이러한 신앙훈련에 나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탄절을 맞이할 때는 오늘까지의 나의 모습과 사뭇 달라진,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하게 회복된 모습으로 감격에 찬 성탄절을 맞으시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훈련 없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② 훈련과 기다림 가운데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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