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5주 환대, 깨어있음의 열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겔 34:11-16, 20-24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 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13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 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 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14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15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 와의 말씀이니라 16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 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20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곧 내가 살진 양과 파리한 양 사이에서 심판하리라 21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 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22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 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응송 | 시 100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서신 | 엡 1:15-23
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 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 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 함이니라
복음 | 마 25:31-46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 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 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 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 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 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 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 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 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 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25:40, 45을 묵상하십시오. 오른편에 있는 자들과 왼편에 있는 자들이 칭찬과 꾸중을 들은 기준은 무엇입니까?
② 겔 34:16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싸매 주는 양은 어떤 양이며, 없애고 심판하실 양은 어떤 양입니까?
③ 엡 1:15, 16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기도할 때에 에베소교회 성도로 말미암아 감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환대, 깨어있음의 열매
오늘은 성령감림 후 마지막 주일이자 왕국주일로서, 이번 주로 한 해의 교회력이 모두 끝을 맺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은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의 구원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한 해를 걸어온 것에 감사하며, 마치 하루를 지내고 나서 황홀한 저녁 햇살을 온 몸에 받으며 저녁 찬미가를 주께 바치듯이, 한 해의 일몰을 바라보며 주를 찬미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정작 성경을 통해 보면, 찬미를 받으시는 주님의 왕관은 가시관이었고, 그 분의 보좌는 십자가였습니다. 그 분은 화려하게 군림하는 왕이 아닌 겸손히 복종하고 섬기는 왕이셨습니다. 병사들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 만세" 하며 희롱하는가 하면,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머리를 치기도 했습니다.(마 27:29, 30) 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눅 23:37)며 빈정대고,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눅 23:38)이라고 '패'를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이 왕국주일에 담긴 신비는 이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신 왕에게 우리도 겸손히 순종하기를 바라신다는 것, 자신의 아버지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신 그분을 위하여, 우리 역시 '나의 원함'을 포기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로 인해 수모를 참아내신 그분을 위하여, 나 역시 수모를 참아내도록 요청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자신을 비우시고 낮아져 우리와 같아지심으로써 우리의 왕이 되셨습니다. 오늘은 바로 최고의 낮아짐 속에서, 최고의 승리를 보여주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다음주일부터 대림절이 시작되는데, 대림절은 우리 역시 겸손과 낮아짐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의미심장합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주님은 심판하시는 왕으로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겸손한 자세로 이웃을 환대하며 산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을 엄격하게 구별해서 심판하시는 장면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말씀이 들어있는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최후의 심판을 보여주는 세 개의 비유가 연속해서 등장하는데, 1-13절은 미련한 다섯 처녀와 슬기로운 다섯 처녀 비유이고, 14-30절은 달란트의 비유이며, 오늘 말씀인 31-46절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각각 비유의 마지막 구절에 결론이 나옵니다. 첫째 비유에서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들에게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경고가 주어집니다.(마 25:13) 둘째 비유에서는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 주인이 이렇게 판결합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5:30) 그리고 오늘 복음서의 말씀인 셋째 비유는 "악인은 영벌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 25:46)는 결론적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세 비유의 공통된 결론은 주님은 반드시 오신다는 것과,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25장의 마지막 비유인 양과 염소의 비유를 보겠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 마 25:31-33
강림하신 예수님께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은 19:28절에서도 이미 언급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영광의 보좌는 심판의 보좌를 뜻하는 것이고, 심판의 대상은 '모든 민족'입니다. 그리고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겠다는 것은 심판의 명료성을 보여줍니다. 즉 제3의 자리가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최후 심판의 순간에는 옳거나 틀린 것만 있을 뿐입니다. 기름이 있는 처녀와 없는 처녀가 명료하게 나뉘듯이, 달란트를 남긴 종과 땅에 묻어버린 종이 나뉘었듯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과정에서 양으로 살아왔는지 염소로 살아왔는지도 명료하게 나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양은 오른편에 두어서 복 받을 자로 칭찬하고, 염소는 왼편에 두어 저주받은 자로 경멸한다는 것은 구약시대부터 이어져 온 그들의 심판 이해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른 편은 의로운 자리이고, 동시에 영광과 존귀와 생명의 자리였습니다. 반면에 왼편은 불의한 자리이고, 저주받은 자리이며, 사망의 자리였습니다. 따라서 심판 때 오른 편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한다는 뜻이 되고, 왼편에 선다는 것은 영영한 멸망에 떨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그 심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이어지는 말씀에 그 답이 나옵니다.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 마 25:34-36
이유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지금 왕의 오른편에 세워진 사람들은 그 동안 살아온 삶의 결과로 그 자리에 선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임금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이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임금이 처했던 어려웠던 순간들이 오늘 말씀에 여섯 가지로 나옵니다. 주림, 목마름, 나그네 됨, 헐벗음 그리고 병듦과 옥에 갇힘이 그것입니다. 그 때 너희가 나를 돌아봐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 마 25:37-39
의인들은 자신들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임금의 대답이 놀라웠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마 25:40
너희가 그 동안 형제들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를 어떻게 대해왔는지가 심판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 동안 '지극히 작은 자'를 대했던 태도가 곧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임금은 당시의 작은 자들과 자신을 같은 위치에 놓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작은 자들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회 안에서 소외되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임금은 그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었고, 병들었고, 옥에 갇힌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신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 10:42절은 이렇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리아의 찬가에서는 메시아가 "비천한 자를 높이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다"고 노래합니다.(눅 1:52, 53) 무엇보다도 소외된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가장 절절하게 드러났던 장면은 처음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 인용하셨던 이사야의 말씀에서입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사 61:1) 하는 일이 메시아로서의 자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 삶에서도 주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오죽했으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묘사해서,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자라고 했겠습니까?(눅 5:30) 그런데 왼편에 있던 자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 마 25:41-43
이들은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반문합니다.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 마 25:44
그런데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 우리는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오른편으로 분류된 사람들도, 왼편으로 분류된 사람들도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우리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른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님께서 주린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왼편으로 분류된 사람들 역시 주님께서 주린 것을 보고 외면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건 무얼 말합니까? 오른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당시의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아 주면서도 그것이 곧 주님을 돌아보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고, 왼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당시의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그것이 주님을 외면하는 일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그들은 모두 작은 자를 대하는 태도가 곧 주님을 대하는 태도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중 어떤 모습일까요?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실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국어사전에서는 실존을 '실제로 존재함'이라고 다소 밋밋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영어로는 실존을 이그지스턴스(existence)라고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로 '밖'을 뜻하는 '익스(ex)'와 '서다'를 뜻하는 '스테어(stare)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실존이란 '밖에 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스타시오'라는 단어는 수도생활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자기 밖에 선다는 것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성찰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성찰하는 사람은 욕망대로 살지 않고 의미를 추구하며 삽니다. 그렇다면 '실존'이란 자기 밖에 서서 의미를 추구하며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면 삶의 의미는 어디서 발생합니까? 누군가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넘어 다른 사람의 삶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야 말로 실존의 과제입니다.그레그 모텐슨이 쓴 '세 잔의 차'라는 책이 있습니다. 히말라야 산맥 K2 등정에 나섰던 저자가 등정에 실패하고 쇠약하고 지친 상태에서 북부 파키스탄의 빈곤한 마을인 코르페에 도착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딴 오지이고, 빈곤한 마을중 하나인 코르페 사람들은 이 길 잃은 조난자를 두 팔을 활짝 벌려 환대해주었고, 야크 똥을 태우는 불 옆에서 몸을 녹이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보살펴준 그들의 친절로 인해 건강을 회복한 그레그 모텐슨은 자신도 가진 것 없지만 마을사람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녔으면 한다고 답합니다.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모텐슨은, 그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두가 꺼려하는 병원야간근무를 자처하고, 집세 낼 돈도 아까워 중고차 안에서 잠을 자면서 돈을 모읍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간 그는 산간마을에 학교를 하나씩 짓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80여 곳의 학교를 지었고, 이 학교들을 통해 3만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교육을 받게 되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적인 이해가 서로 달랐고, 그레그 모텐슨이이 보기에 작업 속도가 너무 더디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했고, 소리를 지르며 따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즈음 코르페 마을의 촌장인 '하지 알리'가 자기 아내 사키나가 끓여 나온 차(茶)를 권하며 한 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발티스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우리 방식을 존중해주어야 하네. 발티 사람과 처음에 함께 차를 마실 때, 자네는 이방인일세. 두 번째로 차를 마실 때는 영예로운 손님이고, 세 번째로 차를 마시면 가족이 되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네. 죽음도 마다하지 않아." 그러면서 이렇게 충고해 줍니다. "닥터 그레그,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실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날, 하지 알리는 자기 평생 가장 귀중한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그레그 모텐슨은 고백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물리적인 결합을 이룬 채,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나 얼마나 많이 서로를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혹은 다투며 혹은 무관심하며 살아버리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공감과 환대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노력 없이 완성되지는 않는 까닭에, 타인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먼저 있어야 하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는 만큼의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은 모두 우리 곁에 다가오신 나의 왕이신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오늘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먼저 오늘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겔 34:2-6에서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 목자들의 게으르고 포악한 모습을 꾸짖은 바 있습니다. 그들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않았습니다.(겔 34:3) 약한 것은 잘 먹여 힘을 돋우어 주어야 하고, 아픈 것은 고쳐주어야 하고, 상처 입은 것은 싸매주어야 하고, 길 잃고 헤매는 것은 찾아 데려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아니하고 그들은 포악하게만 굴었습니다.(겔 34:4) 그런 거짓 목자들을 꾸짖은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겔 34:11b-15
행여 먹구름이 덮여 흐리고 캄캄한 날일지라도 흩어진 모든 곳에서 찾아오시겠다는 말씀에서 그들은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복의 약속 끝에 엄중한 경고도 잊지 않으십니다.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 겔 34:16a
여기까지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6b) 살진 자와 강한 자, 그들은 누구입니까? 거짓 목자들입니다. 불의한 권력에 기생하면서 약한 백성들을 착취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염소 같은 자들이고, 내면이 출세욕과 오만으로 가득 찬 자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과 다른 내 마음이 마지막 심판을 자처하고 마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신서의 말씀에서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엡 1:16
오늘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기쁨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준비된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신랑을 맞이했던 슬기 있는 다섯 처녀처럼, 예수님 향해 깨어있는 '신실한 믿음'이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여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헌신하는 믿음'이어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 맞아들이듯 사랑으로 환대하는 '실천적인 믿음'이어서 기쁨과 사랑으로 오른 쪽에 앉으라 하시고,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새해인 대림절이 열리기 전에 우리는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라'시는 주님의 당부를 듣습니다. 주님의 이 당부는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며 주님을 기다리라'는 당부이기도 하고,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며 새해를 살아가라'는 당부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당부에 마음을 기울이며 다가오는 대림절을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작은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② 일상에서 형제를 환대하며 더불어 공감하며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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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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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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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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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