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4주 소명(召命), 깨어있음의 열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삿 4:1-7
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 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 하지 아니하셨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 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 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응송 | 시 123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서신 | 살전 5:1-11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 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 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 릴지라 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 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복음 | 마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 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 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 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 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 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 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 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 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하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25:21, 23을 묵상하십시오. 적은 일에 충성한 자들에게 주인이 내 린 두 가지 보상은 무엇입니까?
② 삿 4:1을 묵상하십시오. 신앙적 긴박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은 에훗이 죽은 후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③ 살전 5:5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은 우리가 자지 말고 오직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소명(召命), 깨어있음의 열매
서양의 노자라고 일컬어지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1848년 3월 27일, 신학자인 해리슨 블레이크에게 보낸 편지가 그의 책 '구도자의 편지'(오래된 미래 2005)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거기 아주 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삶과 내면의 삶이 일치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한 차원 높은 삶을 사는데 성공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만큼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으로 보여지는 부분은 안의 것들이 드러난 결과입니다. 습관은 사람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드러나게 합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이 말은 지난 주 복음서에 등장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 그리고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각각의 달란트를 받은 종들'에게서 고스란히 발견됩니다. 그들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그날 형성된 모습이 아닌 오랜 동안 형성된 내면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친구이거나 동료 사이였지만 그러나 서로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면이 감추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추어진 내면이 마침내 바깥으로 드러났을 때, 그 차이는 운명 전체를 가를 만큼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 복음서에서 보았던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의 차이는 '기름의 차이'였습니다. 그 차이가 일상 속에서 서서히 벌어지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벌어진 현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차이를 발견하지도 느끼지도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감추어진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미련한 처녀는 허둥대며 기름을 찾으러 다녔지만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에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깨어있으려는 평소의 영적 노력 즉 '교회 안에서'의 기도와 말씀묵상과 예배 등의 영성생활을 통해 서서히 차오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깨어있음이 '교회 밖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 마 25:14, 15
같은 비유를 기록한 마가는 이 비유를 간략하게 소개하며 그저 '깨어있음'의 중요성을 시사해 주는 것에 그쳤습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막 13:34)라고 말입니다. 그런가하면 마태는 이 비유를 통해 종말론적 '깨어있음'을 강조하면서도 그 깨어있음의 기준을 '일상에서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찾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태를 통해 이 비유를 읽는 독자들은 자기 내면의 깨어있음의 증거로서, 일상에서의 자기 삶의 자세를 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기 재산을 현금화해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종들에게 맡겼습니다. 주인이 이렇게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맡긴 것은 종들을 향한 '신뢰'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따라서 종들도 똑같이 마음을 열어 주인의 '신뢰'에 부응했어야 합니다. 더구나 주인이 그들에게 맡긴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재능에 따라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는데, 한 달란트가 6천 데나리온에 해당하고, 노동자의 20년 수입임을 가정해 볼 때, 주인은 정말 큰돈을 그들에게 맡긴 것이었습니다. 같은 비유를 기록한 누가복음에 보면 주인은 종들에게 명확한 지시를 내립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그런 지시가 없습니다. "주고 떠났더니"(마 25:15) 라고만 했습니다. '맡김'과 '떠남' 사이에 어떤 미련이나 당부가 없이 그냥 떠난 겁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서 저자들 간에도 존재하는 이런 각자 다른 시선의 차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는 주인이 종들에게 '권한'을 주고 '사무'를 맡기고 떠났다(막 13:34)고 증언하고, 누가는 주인이 종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눅 19:13)고 업무에 관한 명확한 지시를 내리고 떠났다고 증언하는데, 마태는 종들에게 그냥 맡기고 떠난 주인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주인이 떠난 후 종들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합니다.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 마 25:16-18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맡김'과 '수행' 사이에 어떤 망설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주인과 종들의 태도가 닮았습니다. 주인도 종들도 피차에 신뢰로 가득 찬 모습들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다른 두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즉시 가서 땅을 파고 달란트를 묻어두고 맙니다. 마침내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결산의 시간이 된 것입니다. 마태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돌아온 주인에게 칭찬을 듣는 장면을 매우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마 25:19-23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주인의 관심사를 봅니다. 그는 다섯 달란트 받은 종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무슨 일을 해서 그런 결과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이 주인이 고마워하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들이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은 그들을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그러면서 충성스러운 종들을 향해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23)라며 '더 중요한 일'을 맡김과 더불어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라는 보상을 줍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주인의 즐거움'이란 우리가 지난 주 열 처녀의 비유에서 보았듯이, 신랑이신 주님께서 베푸시는 천국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비유의 조명은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모아집니다. 그런데 그는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가 그 돈을 그대로 주인에게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 마 25:24, 25
이 사람은 자기가 주인의 돈을 가지고 이익을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해 나름의 변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주인의 굳은 성격이 자신을 두렵게 했다고 말합니다. 원문에서 '굳은 사람'이라는 어원은 '박정하고 포악하고 거칠다'란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사람'이라는 표현에는 주인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멸시의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결국 그의 변명을 종합해 보면 그는 처음부터 주인의 달란트를 맡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이 그에게 맡긴 달란트는 그에게 무거운 부담이었습니다. 주인이 맡긴 것을 잃어버리거나 낭비하면 가혹한 징벌이 있을 거라는 예단이 그를 위축시켰습니다. 주인이 '굳은 사람'이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사람'이라는 판단은, 주인의 실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던 주인에 대한 편견이었습니다. 그릇된 편견은 그릇된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그릇된 관계는 그릇된 두려움을 양산합니다. 우리는 요일 4:18에서 사도 요한이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이 사람은 주인을 향해 '사랑'이 아닌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편견과 두려움이 주인의 사랑을 배척하고 사명마저 그르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의 말 속에서 일말의 열등감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한 달란트를 다른 사람들이 받은 달란트와 비교하면서 그만 열등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상대방과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자면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 역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와도 자기를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자기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소중히 받아들였고 열심히 노력해서 두 달란트를 더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관점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먼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그저 돈으로 보지 않고 자기를 불러 주인의 사역에 참여시키려는 소명(召命)으로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아무런 불평도 할 것이 없었고, 다른 사람이 받은 달란트와 비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오로지 감사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그 일에 나를 불러주고 맡겨준 것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행복은 감사함에서 싹트는 것입니다. 감사한 마음이 없으면 행복도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행복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행복하다면 삶을 소명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어쩌면 삶의 수위(首位)에 돈을 두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두 달란트 받은 종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소명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그 소명을 감당하는 것에서 부름 받은 행복에 한껏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소명으로 받지 않고 '돈'으로 보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달란트는 그저 돈일뿐이었고 눈에 보이는 지위의 척도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천박한 속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달란트의 양을 타인의 것과 비교하며 자본주의적 열등감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런 종을 향해 주인은 화를 내고 맙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합니다.(마 25:26) 그리고 이 종이 가지고 온 한 달란트를 빼앗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주고 맙니다.(마 25:28) 주인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 마 25:29
여기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차이'였고 '깨어있음'의 차이였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본 미련한 다섯 처녀나 오늘 복음서가 보여주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나 소명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소명을 상실하고 잠들어버렸듯이, 한 달란트 받은 종도 소명을 상실하고 주인의 것을 땅에 묻어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주인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차라리 주인이 오지 않기를 바랐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 마 25:19
주님의 다시 오심은 더뎌지고 있을 뿐이지, 안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우리는 신앙의 긴박감을 상실해버린 사람들이 벌인 사사시대에 일어난 참상을 목격하게 됩니다.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 삿 4:1-3
이 말씀의 원문을 번역하면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그 악 행하기를 반복하였다. 그리고 에훗이 죽었다"입니다. 이 어순대로라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영적 지도자인 에훗이 살아있을 때부터 이미 우상숭배에 빠져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에훗이 죽고 난 후에도 그들은 그 악을 떠나지 않고 계속 행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호와보다 눈에 보이는 이방 신에게 더 매력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진노하셔서 당시에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진 야빈에게 이십 년 동안 학대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부르짖음은 회개가 아닌 불평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학대의 이유를 자신들이 저질러온 악행에서 찾지 않고 힘이나 무기가 없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야빈에게 받는 압제를 하나님이 이십 년씩이나 방치하셨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어둠속에서 나올 마음이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지면, 심판을 당해도 심판인지 모르고, 그러기에 일상에서의 삶도 게으름과 핑계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영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을 뿐 아니라, 일상에서 또한 부름 받은 소명을 다하며 행복해 합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것'(살전 5:1-4)에 대해 경고하며, 성도들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 살전 5:5
오늘 응송인 시편에서 하늘에 계시는 주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우리의 시선을 부끄럽게 합니다.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 시 123: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처럼 깨어있는 시선으로 순일하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내면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가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입니까? 내게 주신 달란트를 헤아리며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의미 있는 소명을 보아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입니까?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불평할 것 천지인데, 빛의 자녀로 깨어있는 까닭에, 범사가 감사로 채워지고 하루하루가 감사뿐인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행복한 존재입니까? 삶의 종말을 묵상하는 이 계절에, 우리 시선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께서 나를 신뢰하셔서 맡기신 모든 일들이 사실은 당신의 기쁨에 참여시키려는 방편이고, 이후로 더 큰 일을 맡기시려는 은총임을 깨달아서 오롯이 감사와 기쁨으로 열과 성을 다해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우리 직업을 단지 돈벌이의 관점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② 내 일과 재능을 소명으로 받아들여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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