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3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수 24:1-5, 14-25
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 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3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 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5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 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14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 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 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 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16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17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 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18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 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19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0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 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 이다 하는지라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 인이 되었나이다 하더라 23 여호수아가 이르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치워 버리고 너희의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하니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의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 하는지라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 하여 율례와 법도를 제정하였더라
응송 | 시 70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서신 | 살전 4:13-18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 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복음 | 마 25:1-13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 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 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 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 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수 24:14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 조상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소개 하며 여호수아는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섬길 것을 당부합니까?
② 마 25:13을 묵상하십시오. 성도가 '일상 속에서'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는 무엇입니까?
③ 살전 4:18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신자들이 부활할 것을 말씀하며, 그러므로 어떤 자세로 기다리라고 당부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어느덧 입동마저 지나고 계절은 바야흐로 겨울로 들어섰습니다. 이 즈음의 풍경을 잘 그려놓은 글이 있는데, 1922년 11월6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입동(立冬)과 침채준비(沈菜準備)'라는 글입니다. 침채라는 어원에서 딤채가 나왔고, 딤채가 구개음화해서 김치가 되었습니다.
쌀쌀한 바람이 때때로 불며 누른 잎새가 우수수하고 떨어지든 가을철도 거의 다 지내가고, 새빨갓케 언 손으로 두 귀를 가리고 종종 거름을 칠 겨울도 몃날이 못되야 또다시 오게 되얏다. 따듯한 온돌 안에서 쪽각 유리를 무친 미닫이에 올골을 대이고 소리 업시 날리는 백설을 구경할 때가 머지 아니하야 요사이는 길가나 공동수도에 모히어 살림이야기를 하는 녀인네 사이에는 '우리 집에는 이때까지 솜 한 가지를 못 피어 놓았는데 이를 엇지해' 하며 오나가나 겨울준비에 분망하게 되었다.
닥쳐올 겨울 채비에 종종 발을 구르며 공동수돗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여인네들을 그려놓은 글이 정겹습니다. 여러분은 겨울 준비 잘 해놓으셨습니까? 우리교회는 이맘 때 즈음이면 늘 김장을 했었는데, 코로나 19가 내년까지도 교회당 문을 위협할 것을 감안할 때, 올해는 겨울준비마저 바이러스의 눈치를 살펴야 할 듯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 일상의 이야기이고, 계절로서의 겨울준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생의 겨울을 맞이할 준비이겠습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을 묵상하다 보면 어떤 자세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각각의 상황들 속에서 깨우쳐주는 것을 봅니다. 구약성경은 죽음을 앞둔 늙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그 동안 신앙의 지조를 잃어버리고 여러 우상 사이를 기웃거리며 살아온 자들에게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수 24:14)고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자는 자들'(살전 4:13a) 즉 죽은 자를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에 대해,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성도들은 소망 없는 다른 이들처럼 슬퍼하면 안 된다며(살전 4:13b), 부활의 소망가운데 서로 위로하며(살전 4:18) 주의 강림 때까지 깨어있을 것을 당부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미련한 다섯 처녀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이렇게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먼저 구약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불러 요단강을 건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수 3:7, 8) 그리고 여호수아 앞에 주어진 사명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명(順命)하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수 3:9) 하나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다만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만 주력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의 말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에 마음을 모았을 때,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앞세워 요단강물을 밟게 하셨고(수 3:15), 그들의 발이 닿자 범람하던 요단강이 마르게 하셨고(수 3:16), 그 '마른 땅으로'(수 3:17) 백성들이 뒤따라 건너게 하셨습니다. 출애굽 1세대가 모세와 함께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넜듯이, 출애굽 2세대도 여호수아와 함께 요단강을 건넌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감격스런 간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들의 믿음은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변할 수도 없고 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요?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그들의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부르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 | 수 24:1
어느덧 여호수아도 110세의 늙은 몸이 되어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만약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아오지 않았더라면 그가 맞이한 인생의 겨울도 참 덧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말씀을 따라 살아온 삶이었기에 그의 인생의 겨울은 참 멋이 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자기 사후의 이스라엘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겜에 열두 지파의 대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여호수아가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세겜에 모이게 한 것은 이곳이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곳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겜(Shechem)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성스러운 곳이고(창 12:6, 7), 야곱도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한 후 이곳에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습니다.(창 33:18-20) 뿐만 아니라 이곳은 하란에서 돌아온 야곱이,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겁탈당한 후에(창 34:1-7), 크게 각성하고 이방의 우상들을 묻어버린(창 35:2-4) 개혁의 장소였을 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언약을 다시 한 번 맹세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수 8:30-35) 그런 이유로 족장시대 이후에 이곳은 줄곧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집해서 언약을 갱신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십자가로 돌아가라'라는 자신의 책에서, 십자가라는 상징이 갖는 놀라운 힘에 대해 말하면서, 기독교 미술과 건축, 문학과 음악은 '십자가'라는 '상징'의 지배를 받는데, 이 '상징'은 우리의 사고와 성찰을 유발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이라는 곳으로 모이게 한 것은, 바로 그 상징적인 장소에서 그들의 사고와 성찰을 돕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그들이 전 존재로 자기 신앙의 선조들을 만나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다시금 진정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그런데 1절 말씀에 인상적인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라는 표현입니다. 언약의 땅에 들어와서 산지가 꽤 되었음에도 그들은 지금껏 '하나님 앞에' 섰던 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신 8:3),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로 불러내셨고,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설하게 하셨음에도 그들은 지금껏 말씀보다는 떡에 집착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선지라"라는 표현은 당연해야 함에도 참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영성생활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늘 하나님 앞에 서있지 않다면, 우리 역시 이 표현이 매우 생경하거나 낯선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감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 앞에 선 존재로 그 분을 관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 행복을 매일매일 누릴 것입니다. 바로 그 행복을 되찾으라고 지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들을 보면, 바로 그 상징적인 장소에서 떠올려지는 인물들을 열거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구원하셨는지를 회상시켜 줍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내가 모세와 아론을 보내었고 또 애굽에 재앙을 내렸나니 곧 내가 그들 가운데 행한 것과 같고 그 후에 너희를 인도하여 내었노라 | 수 24:2-5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서, 그들을 출애굽 시키신 후에 여호와께서 광야에서 그들을 어떻게 지키고 축복하고 이끄셨는지를 설명해줍니다.(수 24:6-13) 조지 말로니는 '현대인의 영성, 신비가의 숨'에서 신구약 성경에서 가장 풍부하고 영적으로 깊은 주제가 출애굽기라고 말하면서, 출애굽기는 하나의 원형상징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바로 노예생활과 그것으로부터의 구원, 탈출과 광야생활, 그리고 하나님께로의 회귀(回歸)라고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이 세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브라함과 야곱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출애굽기의 구원 역사를 설명해 주는 것은, 그들이 왜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역사를 거울삼아 성찰하라는 의미이겠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완전하게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여호수아는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 수 24:14a
여기까지는 매우 일반적인 당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라는 말씀은 두렵고 떨림으로 여호와 앞에 서라는 말씀이고,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는 말씀은 완전한 마음과 견고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습니다.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 수 24:14b
이 말씀은 그들이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섬기려면, 그 이전에 청산해야 할 것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버지 데라는 '강 저쪽' 즉 유프라테스 건너편인 갈대아 우르에서 월신(月神)을 섬겼었습니다.(수 24:2)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는 동안 숫염소를 비롯한 여러 음란한 우상들을 섬겼습니다.(레 17:7;겔 20:7) 그런데 여호수아가 '지금' 하는 당부가 무엇입니까? 그 신들을 치워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이 말은, 아직 그들이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의 영향을 여전히 받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믿어지지 않지만 그러나 사실입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과거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을 완전히 떠나지 않은 영적상태로 있었던 겁니다. 어쩌면 이 사실은 사람 마음에서 우상을 떨쳐내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지난한 영적싸움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러함에도 여호수아는 결단을 촉구합니다.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수 24:15
여호수아의 이 표현은 우리를 각성하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감동하게 합니다. 그는 자기 의견을 내세워 백성들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그의 이 말은 백성들의 이성적 판단을 존중하는 표현입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의 판단으로' 악하거든" 혹은 "내키지 않거든", "바람직스럽게 보이지 않거든" 그런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런 표현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는 것이 너무 당연하고 옳은 일이지만, 그러나 백성들이 결코 억지로나 마지못해서가 아닌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결단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려는 마음 또한 담겨 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성도 의지도 진정으로 존중해주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참 좋은 지도자입니다. 하지만 본인의 선택에 있어서는 매우 단호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는 이렇게 자신의 결단을 통해 옳은 길의 모범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자 머뭇거리던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도 비로소 과거에 자기 조상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들도 여호와만 섬기겠다고,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 수 24:16-18
오늘 복음서의 비유는 당신의 영적 신부들에게 '깨어있을 것'을 간곡하게 당부하는 말씀입니다.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 마 25:1
유대인들은 신랑과 신부가 약혼을 하면 일 년 정도 각자의 집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다가 결혼식 날이 오면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갑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열 처녀는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친구들입니다. 그들은 신랑이 도착하게 되면, 신부와 함께 신랑을 영접해서 등불을 켜고 신랑의 집으로 떠나는 연등행렬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초대된 손님들과 함께 혼인잔치를 열게 되는데, 고대 팔레스틴의 혼인잔치는 일주일씩 계속되었습니다. 문제는 신랑이 언제 도착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열 명의 처녀는 신부와 함께 신랑을 기다리다가 신랑의 행차가 지연되자 그만 졸음을 못 이기고 하나씩 잠에 떨어졌습니다.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2-5
사건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부와 친구들이 모두 깊이 잠들 무렵 한밤중에 그만 신랑이 오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때의 상황을 매우 극적으로 전해줍니다.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두었던 슬기 있는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해서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갔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처녀들은 뒤늦게 허둥대며 기름을 구해왔지만 이미 잔치 집의 문이 닫힌 후였다는 것입니다.(마 25:10) 사실 이것은 매우 결정적인 방심이었습니다. 주님은 이후의 상황을 애처롭게 들려줍니다.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1, 12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비유를 읽으면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신랑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사실 아직도 제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실 때,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한 말입니다.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0, 11)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희망이 되었고, 기다림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제자들은 이 말씀을 믿고 하루같이 예수님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만 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내심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마태가 전해준 예수님의 열 처녀 비유는 매우 의미 있는 대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로서 자신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이 비유가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처녀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있는 모습들입니다. 신랑이 언젠가 올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러나 모두 평온히 잠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련함과 슬기로움의 차이는 어떤 급박한 상황 가운데서가 아닌, 일상의 평온함 속에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똑같이 잠들어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 결정적인 차이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기름의 차이'였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평온하게 잠들어 있지만 그러나 일상에서 늘 기름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이 없으면서 기름이 없다는 심각성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떤 특별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믿음은 사실은 그 즉석에서 형성된 믿음이 아니라, 일상에서 준비되어 온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에게 극단적으로 종말의 삶을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꾸어 가는 '그리스도인다움'이 마지막 때에 이르러 그 진가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가꾸어 가는 그리스도인다움' 즉 '평온한 일상에서 준비된 기름'이란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의 영성생활입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때, 나의 내면이 어떻게 가꾸어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예배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는 외형적 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비하게 감추어져 있는 내면입니다. 주님의 시선 앞에서만 드러나는 '나의 중심' 주님은 우리의 그 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결론을 들어보십시오.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 마 25:13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깊고 진지하게 묵상하는 구도자로써 성령의 임재와 현존하심 속에서 일상을 살며, 신랑이신 주님께서 내게 오시는 날을 깨어 기다리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계절은 겨울로 들어섰습니다. 종말을 체감하는 계절입니다. 이 계절에 오늘 성서일과는 한 목소리로 깨어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을 일깨웁니다. 그것은 긴장감이 아닌 설렘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며 설렘 가득 주님 때문에 가슴 두근거리는 2020년 겨울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보이는 세계에만 마음을 두고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② 친밀함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깨어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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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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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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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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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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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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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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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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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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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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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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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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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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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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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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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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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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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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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