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2주 말씀을 경청하는 그리스도인
Lectio Divina
구약 | 수 3:7-17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 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10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 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 희가 알리라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나아가니라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 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 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응송 | 시 107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 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서신 | 살전 2:9-13
9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 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 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 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복음 | 마 23:1-10
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 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 술을 길게 하고 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 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이시니라 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수 3:7-9을 묵상하십시오.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는 9절에 서 이스라엘 자손을 향해 뭐라고 외칩니까?
② 살전 2:13을 묵상하십시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이유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말씀에 대한 어떤 자세 때문입니까?
③ 마 23:3을 묵상하십시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말씀을 경청하는 그리스도인
목판화가인 이철수 화백이 펴낸, 자신의 목판화 30년 선집인 '이철수 나무에 새긴 마음'에 '무게 weight'라는 제목의 인상 깊은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물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고, 배의 한쪽에는 탑이 있고, 맞은편에는 새가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 아래로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떠 있는 배 위에 탑이 실려 있습니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맞은편에 가볍게 내려앉았습니다. 배와 물이 살며시 움직였습니다. 새도 무게가 있습니다." 적어도 이 배에서 만큼은 작은 새 한 마리의 무게와 여러 층으로 쌓아올린 탑의 무게가 편견을 거부하고 존재감과 균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목판화를 응시하다 보면 어느새 시선이 새에게 더 많이 머무르고 그 무게감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새 한 마리의 무게가 배와 물을 움직이듯 어느 날 말씀이 여러분 마음에 내려 앉아 마음을 움직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그렇듯 말씀의 무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해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며 전환기 이스라엘 자손을 말씀 앞에 세웁니다. 그들로 하여금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게 하는 힘은 그 어떤 수단보다도 '여호와의 말씀'임을 그가 안 것입니다.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는 이유를,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살전 2:13)에서 찾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 눈길을 끄는 것은 저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할 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했으며(살전 2:11), 데살로니가의 성도들도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마음으로 반응하며 산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전혀 결이 다른 분위기의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마 23:2-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에게' 과시하며 대접받는 것을 더 좋아하고(마 23:5),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입니다.(마 23:7)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일지 몰라도 가장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전환기를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종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고,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사람이 없을 만큼(신 34:5, 6) 모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순명해 살고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생의 마지막 까지 하나님 알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함께 진보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3)라고 기도했고, 또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구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을 누가 이끌어 가나안땅에 들어가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이 알게 하리라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 수 3:7, 8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자였던 존 메인(John main)이 만트라 전통과 그리스도교 기도전통에 관한 글 중에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말을 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 분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우리를 찾아내신다." 그러면서 그는 14세기, 윌터 힐튼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대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마라. 그대 영혼 안에서 그 분이 활동하시도록 허락하면 될 뿐." 오늘 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먼저 나서서 액션을 취하는 장면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그에게 말을 걸으셨고,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 안에서 하나님께서 활동하시도록 허락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거두절미하고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내가 모세의 곁에 있어주었듯이 네 곁에도 있어준다는 사실을 저들이 알게 해줄 테니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해서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들어서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앞에 주어진 사명은 모세처럼 하나님 말씀에 순명(順命)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후의 여호수아의 모습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 | 수 3:9, 10
그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들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먼저 행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서 있으면,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활동하실 것이니 그 눈부신 순간을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정말 그의 말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서있을 때,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고, 그들 앞에서 요단을 건너갑니다.(수 3:14) 때는 밀과 보리를 거두는 4, 5월경이었기 때문에 요단강 물이 넘쳐 범람하고 있었습니다.(수 3:15) 그럼에도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한 곳에 쌓이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으로 건너갔습니다.(수 3:15b-17)여기서 그들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실 때, 말씀하신 그대로 물이 끊어진 요단강을 건넌 것뿐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자세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 살전 2:13
그동안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자녀를 대하는 아버지처럼 권고하고, 격려하고 지도했습니다.(살전 2:11) 그것은 바울 역시 자기의 시대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고,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영광에 이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살전 2:12) 그런데 바울이 그렇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더니, 말씀을 받는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그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 신앙생활의 목표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로서가 아니라 생생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경청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육화(肉化, incarnation)되어 나의 삶의 태도를 바꾸고, 마침내 하나님과 더 친밀한 인격적 만남을 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는 자세는 다른 독서와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중세 수도전통의 권위자였던 '장 러끌레르끄(Jean Leclercq)'는 두 개의 큰 범주로 성서 독서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습니다. 첫째는 '학문적 독서(the scholastic lectio)'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적(知的) 접근으로 분석적, 논쟁적 측면을 지닙니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이나, 라르킨 같은 영성가들은, 이러한 성서 접근은 아름다운 신학적인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결코 만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둘째는 '수도자적 독서(the monastic lectio)'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오랫동안 수행되어 온 가장 성스러운 독서인 '렉시오 디비나'를 의미합니다. 이런 '독서'는 성경을 머리가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읽는 수행입니다. 렉시오 디비나는 읽기와 묵상, 기도와 관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하나님과의 일치에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를 대표하는 이들은 제사장이나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 경건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경건을 자부하는 그들이 예수님과 가장 자주 충돌했는데,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서기관은 율법을 신학적으로 수호하는 이들이었고, 바리새인은 율법을 실제 삶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 마 23:1-3a
주님은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자리란 회당 앞에 있는 돌로 만든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는 대개 권위 있는 선생이 앉았는데, 모세의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나 서기관 중에서 가장 유력한 자가 그 자리에 앉아 율법을 해석해주는 것이 당시 관례였습니다.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관념에서 '어떤 사람의 자리에 앉는 것'은 곧 그 사람의 권위를 계승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것을, 모세의 권위를 전수받은 공식적인 모세의 법적 계승자가 되는 길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그릇된 권위의식이었고, 언행이 불일치한 허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회당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경계하도록 하시면서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마 23:3a)고 하십니다. 그들이 하는 말은 율법에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바대로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에'(마 23:3b),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 마 23:5-7
주님은 이 말씀에서 본받지 말아야 할 유대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라는 한 말씀으로 압축합니다. 그들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사람이 아니라, 단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경건을 가장한 위선자들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사람들 안에 똬리를 튼 위선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신 말씀입니다. 그래도 위선이 악(惡) 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강도나 사기질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보다는 비록 위선이라 할지라도 존경받을만하게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악보다 위선이 더 위험합니다. 악은 이미 악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경계할 수 있지만, 위선은 선(善)으로 위장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드러난 악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 마 23:9-10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에 순명하는 것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면 감히 스스로를 높여 지도자연(然) 하며, 선생의 자리를 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처럼 여호와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눌 때, 전심을 다해 주님 살과 피를 여러분 심장에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살과 피가 여러분 심장에서 뜨겁게 박동하고 흐르게 하시기 바랍니다. '들리는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게 하고, '보이는 말씀'인 성찬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공감해 따라가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고, 그런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지금 우리는 요단강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세속의 물결은 여전히 범람하며 우리 정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말씀을 경청하고, 성찬을 통해 주님과 연합한 성도로서 참된 거룩과 경건의 무게로 세속물결의 범람을 이기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하나님 말씀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②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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