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0주 모세의 영적 상승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33:12-23
12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 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 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 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 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 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 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 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응송 | 시 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 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서신 | 살전 1:1-10
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 을지어다 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 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 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 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 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 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 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복음 | 마 22:15-22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 까 상의하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 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 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 이니이다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 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18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33:13을 묵상하십시오.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 고"라는 간청에서 드러나는 모세의 마음의 열망은 무엇입니까?
② 마 22:15을 묵상하십시오.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을 예수께 보내어 던진 질문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마음에 숨겨진 열망은 무엇입니까?
③ 살전 1:5-7을 묵상하십시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모세의 영적 상승
고대 교부들은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신화(데오시스, θέοσις)'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이 하나님과의 연합이야 말로 인간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사역의 본질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의례적(儀禮的)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고, 인생 전체를 통해 점진적으로 수용되는 하나님과의 연합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영적으로 더욱 상승하도록 이끌어줍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철학자인 필론(Philon Judaeus)은 모세에게서 바로 그 영적 상승의 예형(豫形)을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리게네스나 니싸의 그레고리오스 역시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승을 통한 하나님 앎을, 모세가 시내산에 등정하는 것에 견주어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모세가 하나님을 뵙도록 허락받은 그 사건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은 더욱 '알 수 없는 분(I'Inconnaissable)'의 이미지가 됩니다. 니싸의 그레고리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모세가 어둠속에 들어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 속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전심전력으로 전진해가면서 실재에 대한 지식에 다가서고 관상에 접근해 갈수록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임을 깨닫는다. 감각이 '지각'하는 것은 물론, 지성이 '보았다고' 믿고 있는 외형적인 것도 모두 내버려두고, '영(靈)'이 더욱 그 자신을 관통하여 '볼 수 없는 분', '알 수 없는 분'에까지 전진해 갈 때, 영은 하나님을 본다. 이 부정(apophatic)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 본질에 대한 앎은 사람 뿐 아니라 모든 지성적 존재에게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즉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모든 영적 지식을 초월하고, 영의 능력을 벗어나는 것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싸의 그레고리오스는 하나님 인식을 철저하게 역설(逆說)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찬란한 어둠'이라는 이미지가 모순된 것이듯, '알 수 없는 분'은 철저하게 '알 수 없는 분'으로 머물러 있으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알려주시는데,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분을 뵙게 된 존재에게 그분의 '알 수 없음'은 더욱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감각이 '지각'하고, 지성이 '보았다고' 믿는 순간 하나님 본질은 그 영적 지식을 초월해 계셔서 여전히 도달할 수 없는 분임을 깨닫는, 이른 바 이런 현상을 부정신학(否定神學, Apophatic theology)이라고 합니다. 플라톤 철학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하나님에 대해 궁극적으로 알 수 없음을 인정하는 신학'입니다. 그러나 이 부정신학은 불가지론에 머무르지 않고, 궁극적 실재이신 하나님과의 합일을 지향합니다. 지성(知性 nous)은 하나님을 다 파악할 수 없으므로, 그 한계를 인지하고 더 이상 홀로 활동하지 않을 때, 은총의 빛에 의해 인간의 중심인 마음이 정화될 뿐 아니라 마음이 깨어 지각(知覺)하기 시작하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느끼고 따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부정신학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전제합니다. 하나님 은총의 빛이 없으면 인간 지성은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정신학의 관점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모세의 생애'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출 33:11에 보면 인상 깊은 말씀 하나가 나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서로 보면 이렇습니다. "야훼께서는 마치 친구끼리 말을 주고받듯이 얼굴을 마주 대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그런데 같은 33장 안에서 20절을 보면 11절 표현과 모순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모세는 11절에서 이미 죽었어야 됩니다.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고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모세가 아직 살아있는 건 어찌된 일일까요? 여기서 "대면하여" 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파님 엘 파님, םינפ־לא םינפ'입니다. 이 어구는 하나님의 실제적 현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향한 친밀함을 표현하는 용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개 다른 사람에게는 꿈이나 환상이나 선지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에 비해, 모세에게는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다른 어떤 선지자도 미처 누리지 못한 하나님과의 영광스럽고 친밀한 교제를 나눈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그토록 특혜에 가까운 친밀함을 누린 모세가 여전히 하나님에 대한 '막연함'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 출 33:12, 13
앞에서 말씀드린 부정신학에 관점에서 보면, 지금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친밀한 대화를 나눈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니싸의 그레고리오스는 이런 상태를 '하나님이 계시는 어둠의 신비'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어둠처럼 그 자신의 '이해불가성'으로 인해 모든 것과 분리된 '결코 볼 수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대 시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시 18:11) 그러나 이 어둠은 '찬란한 어둠'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어둠속에 숨어 사람의 접근을 차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음의 깊음' 속에서 하나님을 뵙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찾아 나설 때, 은총의 빛으로서 당신을 드러내시고, 마침내 당신과 사랑의 연합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셨다는 고백에서 시(詩)를 끝내지 않고, "그 앞에선 환한 빛이 터져 나오며 짙은 구름이 밀리고 우박이 쏟아지며 불길이 뻗어났다"(시 18:12 공동번역)는 고백으로 계속해서 시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모세의 모습은 아직 여전히 하나님을 '알 수 없어 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내 이름을 아시고,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가 주를 알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뿐만 아니라 16절에서는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며 다시 질문하기도 하고, 18절에서는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재차 간청합니다. 참으로 애가 타는 모습입니다. 물론 우리는 모세의 당시 심정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한 자연인이 아닙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을 이끌어 가나안땅으로 가는 중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부여받은 지도자입니다. 그래서 더욱 애를 태우는 것이고, 하나님 현존을 자신과 히브리들 모두가 보이기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찬찬히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안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한 가지씩 요구할 때마다 하나님은 열심히 대답해 주십니다. 모세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라"(출 33:13)고 하면, 하나님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출 33:14)고 대답해주십니다. 모세가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 라고 말하고,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6) 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네가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출 33:17)고 대답해 주십니다. 모세가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말하면, 하나님은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출 33:19)라고 대답해 주십니다. 정말 대단한 대화 아닙니까? 모세는 마치 엄마나 아빠에게 투정하는 아이처럼 말하고, 하나님은 엄마나 아버지처럼 꼬박꼬박 대답해 주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에바그리우스의 말이 생각났습니다."기도는 지성(intellect)이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이다."
기도에 대한 이야기인데, 자신이 신학자 출신이라서 그렇게 이야기 한 것 같습니다. 실제 에바그리우스는 사람을 이루는 구성요소 중에서 지성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의 스승인 마카리우스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지금 모세는 '지성'으로 하나님과 대화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요구는 한결같이 구체적이고도 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세의 이 집요한 요구는 그의 불신앙이거나 혹은 하나님을 못미더워하는 의심이나 회의(懷疑)가 아닌, 영적 진보의 과정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아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자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함께 진보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3)라고, 또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라고 말하는가 하면,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 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출 33:15) 라고 말하고,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알기 위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셔야 한다고(출 33:16) 집요하게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모세와 같기를 바랍니다. '막연하게 아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진보하기 위해, 우리 지성과 마음을 동원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러하셨듯이, 우리 기도에 하나하나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 기도의 백미는 18절 이하에서 황홀하게 드러납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모세가 요구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십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 출 33:19
여기에서의 모든 방점은 여호와께 찍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거룩성과 속성을 드러내시고,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풀고, 여호와께서 긍휼을 베푸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 출 33:20-23
그들은 이미 출애굽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바로가 신처럼 지배하고 있던 애굽에 열 개의 재앙이 임하는 걸 봤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경험을 했고, 하나님께 계명을 받고, 언약을 체결하기도 했으며, 만나와 물을 주시는 은총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관심사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사건을 경험했어도,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렸어도, 반석에서 물이 터졌어도, 십계명이 쓰인 돌 판을 받았어도, 그리고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었어도, 그것만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그 모든 사건을 일으키신 분, 이미 그 이전에 아름다운 우주와 자신을 창조하신 궁극적이고 절대적이신 하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보여주시는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보여주시기 전에 세심하게 모세의 안전을 위한 처방부터 하십니다. 먼저 "너는 반석 위에 서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반석(하추르, רוצה)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피난처입니다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에서 '두고(웨사므티카, ךיתמשׂו)'는 '돌보다(숨, םושׂ)'의 미래형으로 '바위틈에 두어 돌보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덮었다가(웨사코티, יתשׂו)'는 '울타리를 두르다', '뚜껑을 덮다', '방어하다'란 의미입니다. 모세가, 자신이 목격했던 기적을 넘어, 자신이 하나님과 나누었던 대화를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자기 눈으로 보고, 그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를 원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당신께서 지나가신 후의 반영(反影)을 보여주심으로서, 그를 보호하시는 방법으로 당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모세가 하나님을 다 안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 알 수 없음'은 그에게서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영적 상승을 통하여 더욱 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로 나아갈 수 있었고, 마침내 '하나님의 에네르기아' 즉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맛보고 도달할 수 있는 실제적 현실 안에서 살았으며, 하나님은 그를 친구로 삼아 대화를 계속하셨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장면입니다. 그런가하면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모세와 사뭇 결이 다른 사람들을 보여줍니다.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 마 22:15, 16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신앙의 사람이 영적상승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때, 얼마나 흉물스러운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지를 봅니다. 15절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라며 상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그 섬뜩한 속내를 숨기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서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늘어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리 신앙이 화석화되어도 이 지경까지 가면 안 됩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전혀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던 집단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념적으로 반정부적이며 반로마적이었고, 헤롯 당원들은 당시의 정부나 로마와 결탁해 상대적으로 이득을 누리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성향으로는 죽어도 연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에 있어서만큼은 이해를 모아가는 모습들이 섬뜩합니다. 마침내 그들은 마음에 감추고 있던 비장한 질문 하나를 꺼내놓습니다.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 마 22:17
예수님 당시 유대 지방은 헤롯 아켈라오가 폐위되고 로마황제의 직속령으로 총독이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유대 백성들은 로마황제 즉 가이사에게 직접 세금을 바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질문은 이런 겁니다. "하나님의 선민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유대 땅에서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 있다는 표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게 과연 옳은 겁니까?"이 질문이 예수께 덫인 이유는,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그들이 쳐놓은 함정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한다고 말하면, 열심당과 바리새인 등 반로마적인 사람들에게 걸려들 것이고,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 헤롯 당원과 사두개인 등 친 로마적인 사람들과 로마 정부로부터 정치범으로 몰릴 것이 분명했습니다. 여기에서 바리새인들은 더 사악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납세 문제에 관한 한 예수와 자기들의 견해가 같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을 덫으로 삼아 예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때의 바리새인들의 의도를 예수님이 알고 계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 마 22:18
'사람을 외모를 보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정중하고 호의적인 물음 뒤에 감춰진 살의와 사악함을 슬프게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회칠한 무덤과도 같은. 겉은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속은 썩어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을까요? 그들의 지성은 권력과 돈이 지배하고 있었고, 그들의 감성은 권력과 돈을 흠모하고 있었고, 그들의 의지는 권력과 돈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타락하고 그리스도인들이 타락하면 그보다 더 흉물스러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칭의(稱義)'에 멈추지 말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악한 생각들에 맞서 싸우는 수행(프락티코스)을 통해 내적 평정(아파테이아) 혹은 순수한 마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며, 마음 안에서의 순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친교와 일치에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창조된 실재인 피조물' 즉 나무나 꽃이나 동물이나 사람을 봐도 하나님이 보이고, 그러한 영적 상승 속에서 마침내 '창조되지 않은 실재'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관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신서에 보면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있습니다.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살전 1:2-4
바울이 감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오직 그리스도께만 소망을 두고 믿음으로 살고, 사랑의 수고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너희가 기억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박해와 환난이 끊어지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지성과 마음과 의지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경험한 영적 상승이 그들을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하나님을 알려하는 열망은 스러지고 관습만 남아있지 않은가?
②영적상승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친교로 들어서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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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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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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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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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1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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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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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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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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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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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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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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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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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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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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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