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9주 주(主) 안에 서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32:1-14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 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 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 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 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 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 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 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 하시니라
응송 | 시 106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그 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서신 | 빌 4:1-9
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 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 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 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 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 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 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복음 | 마 22:1-14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 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 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 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 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 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 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22:14절을 묵상하십시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 는 적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② 출 32:1을 묵상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동기 는 누구를 위해서였습니까?
③ 빌 4:8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말씀하는 성도가 입어야 할 예복은 어떤 것들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주(主) 안에 서라
1935년 용정북부교회 하기성경학교 사진
윤동주(맨 뒷줄 왼쪽) 문익환 (맨 뒷줄 오른쪽)
규암 김약연 목사(1868-1942)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윤동주의 외삼촌입니다. 윤동주의 집안은 이 규암으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윤동주는 이분에게 한학을 배웠습니다. 김약연 목사는 맹자 전문가이자 무장 독립 투쟁가였습니다. 간도지방 독립운동의 배후조정자이기도 한 그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거기에서 성경을 읽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400년이나 노예생활을 했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탈출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400년 동안 남의 나라에 있으면서 어떻게 자기 민족을 잊지 않았는가?" 그게 충격이었습니다. 이후로 그의 관심의 중심은 히브리였습니다. '히브리'와 '하비루'는 같은 뜻으로,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변 사람' 즉 '노예 계급'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외삼촌인 규암이 그들에게 관심을 갖다 보니 외삼촌에게 영향을 받은 윤동주의 관심 역시 세상중심에서 밀려난 주변 사람들이었습니다. 윤동주에게는 그들이 바로 눅 4:18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였습니다. 윤동주가 쓴 첫 번째 시(詩)가 1934년 12월 24일에 쓴 '초 한 대'라는 시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 방에 품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光明)의 제단(祭壇)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祭物)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生命)인 심지(心志)까지
백옥(白玉)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리고도 책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暗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품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1934년12월24일
오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히브리인들은 모두 파스카(Pascha)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치실 때, 그들은 어린 양의 피로 인해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홍해를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안에 굳게 서지 못했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그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출 32:1)고 재촉합니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의 모세의 탄원(출 32:11-13)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심판과 화를 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복음서의 말씀은 임금의 혼인잔치에 초대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임금의 초대를 아예 거절하는가 하면(마 22:3-6), 어떤 사람들은 초대에는 응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았습니다.(마 22:11-13) 이런 성서일과의 말씀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호의로 인해 구원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그 은혜를 쉽게 잊거나 배신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어떤 경우에는 아예 호의를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거나, 혹 받아들이더라도 그 태도의 무례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끝내는 택함을 입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마 22:14)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 서라"(빌 4:1) 라며 간절하게 당부하고, 이어지는 말씀에서도 '주 안에서'(빌 4:2, 4) 혹은 '예수 안에서'(빌 4:7)란 표현을 거듭 반복합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복음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 마 22:1
예수님께서 '다시' 비유를 말씀하셨다는 것은 이 말씀이 우리가 지난 두 주 동안 연속해서 살펴본 두 아들의 비유(마 21:28-32), 그리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 21:28-32)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께서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마 21:28) 했을 때, 처음에는 "싫소이다" 했지만, 그 후에 뉘우치고 갔던"(마 21:29)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그렇듯이 세리들과 창녀들도 비록 처음에는 죄를 지었지만, 그러나 뉘우친 후에는 너희보다 더 하나님께 순종했으므로,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 하신 말씀, 그리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과 아들을 돌로 치고 죽인 자들로, 자기들을 지목해 풍자하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 21:33-39)를 들은 후에도 여전히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예수를 붙잡아 죽이려 들던(마 21:45) 그들을 보며 주님은 오늘 복음서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마 22:2
끝내 회개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 이 천국의 잔치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마지막으로 어떤 통첩(通牒)을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 25:6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잔칫날을, 모든 사람의 몸에서 '수의'를 벗기시는 날로,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시는 날로, 자기 백성을 수치에서 해방시켜주시는 날로 묘사합니다. 사도 요한은 계 19:9에서 역사의 완성을 '어린 양의 혼인잔치'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사람들이 운명처럼 걸치고 있던 '수의(壽衣)'가 벗겨지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사람들의 눈물이 닦아지고, 수치가 사라집니다. 거기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불화하던 이들이 형제자매의 사랑을 회복하고,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회복합니다. 바로 그 잔치자리에 그 나라의 임금이신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초청하시는데, 그런데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합니다.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 마 22:3-6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오기를 싫어했고, 어떤 이들은 임금의 초대를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오기를 싫어했다는 것은 , 그들이 임금의 초대를 원하지 않아 완고한 마음으로 거절했다는 것이고, 돌아보지도 않았다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는 뜻으로 아예 임금의 초대에 관심이 없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임금의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는 행동까지 불사합니다. 임금은 그만 분노하고 맙니다. 임금은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진멸하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 버립니다.(마 22:7) 임금의 독백에서 실망과 분노가 가득 배어나옵니다.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 마 22:8
처음에 초청받은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초청받은 선민(選民)인 이스라엘과 유대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초청장은 무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청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초청에 합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초청에 합당치 않은 이런 모습은 사실 그들에게 어제 오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히브리 자손들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안에 끝까지 굳건히 서있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이 지연되자 그들은 아론을 향해 이렇게 소리칩니다.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 출 32:1a
그들은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자신들을 위해' 새로운 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그들이 요구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이란 다름 아닌 '눈에 보이는 신'이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애굽 생활을 통해 그들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우상들만 접해왔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미덥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새로이 각성시켜 주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고,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 20:4)고 그토록 간곡하게 당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내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며 아론에게 떼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 32:1b)는 그들의 믿음을 저버린 한 마디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니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가나안으로 초청하신 하나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초청에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는지가 그 표현 하나에서 드러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자유를 팽개치고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우상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똑같습니다. 먼 훗날 하나님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하늘나라의 천국의 잔치로 초청해 들이셨을 때도, 처음에 초청받았던 사람들은 끝내 '자기를 위하여' 초청을 거절하고 예수를 살해(殺害)하고 맙니다. 다시 복음서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보면 임금은 다시 종들에게 명령합니다.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 마 22:8-10
처음에 하나님의 선민들에게 했던 초청은 이제 무효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환대를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합당치 않음은 다름 아닌 '교만함'과 '게으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몇몇 귀인들을 지정해서 정중하게 초대장을 보내 초청했던 임금이 두 번째 사람들을 초청할 때는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초청하라고 합니다. 네거리 길이란 지방으로 통하는 길이 시작되는 광장입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 초청받았던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눅 14:21에 의하면 이들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입니다. 윤동주가 끝까지 관심을 가졌던, 눅 4:18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먼저 초청받은 사람들 즉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혐오하던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로 인해 잔치자리가 채워졌고, 마침내 잔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 마 22:11, 12
손님들을 보러 잔치자리에 들어온 임금이 그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봅니다. 임금은 그에게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고 묻습니다. 성경은 그가 아무 말도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가 아무 말도 못했다는 것은 자신도 잘못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왕이 이미 잔치자리 입구에 손님이 입을 예복을 준비해놓았다고 합니다. 자리에 걸 맞는 예복을 갖추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는 예복을 갖춰 입지 않았습니다. 남들은 모두 왕이 주는 예복을 입었음에도, 혼자만 자기 옷을 고집했다는 것은, 그가 왕이 주는 구원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기 지식과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스스로 자만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예복이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옷으로 회개의 옷이고, 믿음의 옷이고, 거듭남의 옷입니다. 그리고 우리 내면이 입어야 할 옷 즉 겸손함과 온유함의 옷입니다. 그러니까 이 예복으로 갈아입는다는 의미는 지금까지 입고 있던 '자아(自我)'의 옷을 벗고, 주님께서 주시는 새 옷 즉 회개와 믿음과 거듭남 그리고 겸손과 온유함의 옷을 입는다는 뜻입니다. 예복을 갖춰 입은 사람만이 잔치의 중심에 설 수 있듯이, 믿음과 거듭남과 겸손함과 온유함의 옷을 입은 사람만이 복음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당부합니다.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빌 4:1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읽어보면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빌 4:2)고 말하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고 당부합니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주 안에' 굳게 서서 같은 마음을 품고, 항상 기뻐하는 이들에게 바울을 통해 주시는 약속은 다음과 같습니다.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 4:7
우리는 어떤 사람일까요? 주님께서 주신 예복을 갖추어 입고, 주 안에 굳게 선 그리스도인일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주신 예복을 거절하고, 내 옷을 고집하며, 내 생각대로 살며 복음의 주변만 서성이는 사람일까요? 그렇게 산 사람들의 결말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 마 22:13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곰곰이 묵상해보십시오. 그리고 선택은 여러분이 하십시오.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 마 22:14
저와 여러분은 분명히 처음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네거리 길'에서 부르심에 응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잔치자리에 왔다는 사실에만 만족하면 안 됩니다. 초대받은 자로서의 예복을 갖추어 입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경 곳곳에서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 되라고 말씀합니다(갈 3:27, 롬 13:14, 엡 4:24)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주 안에 굳게 선 사람'이 입어야 할 예복입니다. 스물다섯 윤동주는 눅 4:18을 이해한 후에 또 이런 시를 남깁니다.지난밤에
눈이 소오복이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나리지
(눈, 1936.12) (130)
빨래줄에 걸어 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 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 간 아빠 계신
만주 땅 지돈가?
(오줌싸개지도 , 1936)
여기서 '눈'은 추워하는 그 누구이고, '오줌싸개'는 엄마가 없는 고아입니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를 위한 윤동주의 애틋한 마음을 볼 수 있는 시(時)입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도 갈비뼈를 불살라 '위대한 향내'로 풍겨질 것을 다짐했던 그리스도인 윤동주,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었기에, 눈이 추운 겨울에만 내려 지붕과 길과 밭을 덮어주듯, 추워하는 사람들을 덮어주길 원했고, 자기 동생이 오줌 싸 그린 지도에서 고아들이 그리워 할 엄마와 아빠가 계실만한 곳을 보며 함께 그리움에 빠지는 겁니다.주님 주신 예복을 갖추어 입고 주 안에 굳게 선 우리의 모습도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초청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내 옷을 고집하고 있지 않은가?
② 그리스도로 새 옷을 입고 주(主) 안에 견고하게 서 있는가?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