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8주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20:1-4, 7-9, 12-20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 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 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 도 만들지 말며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 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 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 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응송 | 시 19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 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서신 | 빌 3:4b-14
4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 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 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 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 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복음 | 마 21:33-46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 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 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 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 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45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46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 었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20: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 외에 주로 많은 시간 나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② 마 21:38을 묵상하십시오.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살해한 소작인들로 묘사되는 예루살렘의 성직자들은 무슨 목적으로 예수를 죽였을까요?
③ 빌 3:5-8을 묵상하십시오. 5절과 6절에서 바울에게 소중한 것과 7 절과 8절에서의 바울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예수 이후의 첫 사람'이라 불리는 톨스토이(Lev Nikolaevich Tolstoy)가 인생의 마지막 2년을 남겨두고, 여러 명의 톨스토이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고 수제자이기도 했던 블라디미르 체르트코프에게 "살면서 가장 필요하고 유익한 내용을 담은 모음집을 만들 계획이 있네."라고 편지한 후에 소설 쓰기를 그만두고 명상을 통해 얻은 지혜들을 모아놓은 글 모음집이 있습니다. 오늘 날 가장 톨스토이적이면서, 그의 삶과 사상이 가장 풍부하게 담긴 정수로 평가되는 그 책은 바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입니다. 그 책에서 톨스토이가 한 말입니다.
"우리 삶의 핵심은 자기 안에 사는 영혼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 영혼의 존재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영혼의 목소리를 얼마나 따랐는지에 있다. 사물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물질에서 영혼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진리의 빛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때에야 그 빛을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소망대로, 그는 글 마디 하나하나마다에 '살면서 가장 필요하고 유익한 내용'을 담아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자기 안에 사는 영혼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영혼의 존재를 알고, 영혼의 목소리를 따르기 위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물질에서 영혼으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 성서일과의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톨스토이가 남긴, 마치 유언과도 같은 이 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히브리들을 시내산으로 불러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고 당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인생의 다른 푯대를 세우지 말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 3:7-8a) 톨스토이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그는 자기 안에 사는 영혼의 존재를 알고, 그 영혼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영혼의 목소리를 따르기 위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선을 돌렸다는 의미이겠습니다. 자기 안에 사는 그 영혼의 존재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에서 주님은 오로지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폭력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어리석은 농부들을 보여주십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 대상은 바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마치 어리석은 농부들처럼 하나님의 포도원을 자기들이 차지해버린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리라"(마 21:43a)고 단언하십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 출 20:1, 2
"나는 여호와니라(아니 예호와, הוהי ינא)"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신학적 수사학의 기초가 되는 말씀입니다. 이미 6:2절에서도 이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히브리들과 체결하신 언약(言約)의 연속성과 관련해 확신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히브리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현실적으로 당신의 백성이 아닌 바로의 백성인 그들을 '언약 백성'으로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여호와니라" 이 말씀은 율법의 수여자이신 여호와께서 히브리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언약을 맺으시기 전, 당신이 그들을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구원할 '구속자 여호와'라는 사실을 먼저 분명히 밝히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존 칼빈(John Calvin)은 이 말씀을 '십계명의 서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이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당신을 창조주의 권위나 심판주의 위엄으로서가 아닌, 구속자로서 당신을 소개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당신을 소개하시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4)고 전달하도록 하신 것에서 더 분명해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인 '여호와(הוהי)' 안에 당신이 어떤 존재이신지를 명징하게 드러내신 겁니다. 당신은 '존재 자체'이며 '있음 자체'이고, 눈에 보이는 우주, 자연, 생물, 무생물, 동물, 사람 등과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지혜, 마음, 영적 현상 등 이 세상 모든 존재의 근본 바탕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든 신적 존재를 초월한 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הוהי)'를 히브리어 문법 일인칭 단수 미래로 해석하면 '나는 존재할 것이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즉 너희가 걸어갈 길과 새로이 만들어갈 이스라엘 뿐 아니라, 너희의 생각과 행동 가운데 존재하실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 교부들에게 있어 '영적 인식'이란 궁극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앎(인식)'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영적 인식의 단계를 자연학과 신학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는 영적 인식이란 '창조된 실재(피조물)에 대한 인식'인 '자연학'을 통해 '창조되지 않은 실재(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인 '신학'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즉 그에게 있어 영적 인식이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파악하는 것'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분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존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졌기 때문이고, 그분이 나와 내 삶속에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고, 그분을 앎으로서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톨스토이가 말한, 내 안에 사는 영혼의 존재를 알고, 그 영혼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영혼의 목소리를 따르기 위해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시선을 돌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이 창조주를 알려고 찾아가기 전에 창조주가 먼저 피조물을 찾아오셔서 당신을 소개하시고 율법을 주십니다. 오늘 말씀 바로 직전의 상황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첫째 날과 둘째 날에는 옷을 깨끗이 빨게 하고, 여인을 가까이 못하게 하시며 그들을 성결하게 하신 후에(출 19:14, 15), 셋째 날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크나큰 나팔소리, 그리고 옹기 가마 같은 연기와 불 가운데서 그들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출 19:16-18) 그리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시는데, 놀랍게도 그 율법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명령이 아니라 언약(言約, covenant)의 형식으로 주어집니다. 출 24:3을 보면 모세가 율법을 히브리들에게 전했을 때, 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한 소리로 화답합니다. 이때 모세는 히브리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서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출 24:5), 피를 가져다가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게 합니다.(출 24:6) 그리고 언약서를 가져다 백성에게 낭독하자 그들이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하고 다시 한 번 화답합니다.(출 24:7) 모세가 이번에는 그 피를 백성을 향해 뿌리며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8) 하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율법 즉 모세오경의 계약법전과 신명기법전, 정결법전, 제사법전 등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율법의 영원한 종지(宗旨) 즉 율법의 근본정신으로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당신을 소개하신 후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 출 20:3
십계명은 본래 '열 마디 말씀'이라고 불렸듯이 아주 짧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긴급하고 중요한 말씀일수록 간단명료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이 점차 부드러워지고, 사회도 복잡해지고, 문화가 발전할수록 설명도 첨가되고 사족(蛇足)도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그만큼 십계명이 형성되던 본래적 상황은 새로운 공동체를 일으키고 지켜내기 위한 긴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십계명은 단언적(斷言的)이면서 꼭 필요한 말씀들로만 압축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으뜸 되는 계명이 바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 첫 번째 계명은 이후에 선포되는 나머지 아홉 계명의 초석이 된다는 면에서, 그리고 십계명이 보증하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의 기초가 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 수사비평학자인 제임스 마일렌버그(James Muilenburg)는 "제1 계명은 제2-10계명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계명이며, 모세오경의 핵심이고 구약성경 전체의 중심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중요한 계명을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다소 극단적인 표현으로 시작하시는 것일까요? 심지어 두 번째 계명에서는 당신을 '질투하는 하나님'(출 20:5)이라고 까지 묘사하십니다. 이런 표현은 다른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라서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이 말씀이 있고 난 이후에도 여호와는 600-700년 동안 줄곧 이스라엘의 부족신으로서, 고대근동의 다곤이나 체모스 같은 신들과 싸우는 신이었습니다. BC 8-6 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에 의해, 여호와는 히브리들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역사와 인류를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임이 선포되기 시작합니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이 특별한 시기를 '차축시대(die Aschenzeit)'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인류 정신사에 거대한 수레바퀴가 움직인 시대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사야나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은 사람이 창조주를 알고 그분께로 돌아가, 그분의 인도함을 받아야만 사람다울 수 있음을 안 것입니다. 그럼 다른 신들의 인도를 받으면 사람다울 수 없는 것일까요?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다른 신들'을 지칭하실 때, '신(神)'이라 하시지 않고 '우상'이라고 부르신 사실입니다.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 출 20:4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질투하신 대상은 '신'이 아닌 '우상(偶像)'이었습니다. 우상이란 신이 아닌 어떤 것을 마치 신처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고대근동 안에서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이 섬긴 건, 우상 자체가 아닌 '우상이 주는 어떤 대가(代價)들'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문화 안에서 보면 풍요(豊饒)와 다산(多産)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자기들을 창조하시고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떠나 물질을 탐(貪)한 나머지 물질의 세계에 예속되어 산 것이고, 그러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고 비인간화된 존재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가 아닌, 선악과를 탐하다가 타락해버린 아담의 형상이고, 하나님 숨결이 없는 다른 동물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초라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은 질투하실 뿐 아니라, 보복하시는 하나님(나훔 1:2)이라고 까지 경고합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에 따르면 그렇게 사는 것은 '그 분의 숭고한 상태에 이르지 못하므로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연약함'입니다. 사람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질 때'(마 5:48), 그 때 비로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자기 안에 사는 영혼의 존재를 알고, 그 영혼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영혼의 목소리를 따를 때, 내 존재 가득 차오르는 행복을 아시는 아버지께서, 여전히 '보이는 우상'인 돈과 권력에 예속되어 사는 당신 자녀들을 보실 때, 어떻게 질투하지 않으실 수 있겠으며, 어떻게 보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복음서에 그런 사람들이 나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예루살렘의 고위 성직자들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포도원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 마 21:33-39
어떤 집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집에 포도원을 만들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포도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을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열매를 거둘 때가 되자, 그는 열매를 받아 오라며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서 심히 때리고 돌로 치고 하나는 죽이고 말았습니다. 집 주인은 처음보다 더 많이 종들을 보냅니다.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똑같은 짓을 했습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대하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포도원으로 보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오히려 "저자는 상속자다. 저자를 죽이고 그의 유산이 될 이 포도원을 우리가 차지하자" 라며 그 아들을 포도원 밖에 끌어내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는 사 5:1-7에 나오는 '포도원의 노래'를 예수님께서 재인용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의 원작인 이사야 선지자의 '포도원의 노래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세우셨는데, 그 포도원은 바로 이스라엘 민족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는 유다 백성들이고, 포도나무를 경작하는 소작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유대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런데 소작인들이 주인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열매를 받으러 온 주인의 종들을 죽이거나 때리고, 심지어 주인의 아들마저 죽였다는 이야기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기 땅에 보내신 선지자들을 탄압하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를 보내시자 그마저 성 밖으로 끌고 가 죽였다는 말씀입니다. 왜 주님은 이 비유가 풍자하는 대상인 예루살렘 성전의 고위 성직자들을 향해, 이토록 듣기에도 거북한 비유를 들려주시는 것일까요? 그들이 명색이 율법학자들이고 성직자들임에도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첫 계명을 어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들 마음에는 하나님도 없었고, 하나님의 형상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을 좇기에 여념이 없고, 성전을 찾아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저 자기들의 탐욕을 채워줄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판결하십니다.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 마 21:43
불행하고 비참한 결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고백합니다.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빌 3:5-9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깨달은 후, 자기가 자랑하고 추구하던 모든 것을 버린 사람 바울, 그러고도 나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며 겸손해 하는 바울, 우리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가을이 깊어 가면 나를 찾아오신 하나님께 꺼내어 보여드릴 내면의 열매가 있어야 할 텐데, 꺼내어 보여드릴 열매는 변변치 않고 오히려 탐하고 취해야 할 것들만 많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내 안에 계신 분, 나를 창조하신 그분 존재를 알고, 그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 하나님의 목소리를 따라 살기 위해 나머지는 해로 여기고 살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내밀어 보이는 열매를 보고 기뻐하시고 칭찬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올해의 가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하나님 외에 눈에 보이는 것들이 마음을 채우고 있지 않은가?
②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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