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6주 그리스도인의 완덕(完德)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16:2-15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 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 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 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 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 의 갑절이 되리라 6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게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 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 여 너희가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9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서 너희의 원망함을 들으셨느니 라 하라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 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내가 이스라엘 자손의 원망함을 들었노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기 를 너희가 해 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하라 하시니라 13 ○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 에 있더니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 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 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응송 | 시 105
너희는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 할지어다
서신 | 빌 1:21-30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 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 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 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 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 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 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 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 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0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복음 | 마 20:1-16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 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 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 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 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 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 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16:4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만나를 비같이 내리신 최종적 인 목적은 무엇에 있었습니까?
② 마 20:11-14을 묵상하십시오.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의 관점과 주인 의 관점은 어떻게 다릅니까?
③ 빌 1:29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바울 의 설명에 따르면 어떠한 삶을 말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리스도인의 완덕(完德)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완덕'에 초대되었음을 일깨워줍니다. 그 문헌의 내용은 이렇습니다."모든 완덕의 천상스승이시며, 모범이신 주 예수께서는 친히 거룩한 생활의 원천이시오 완성자로서 신분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제자들에게 생활의 성화를 요구하시며, 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시듯이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마 5:48) 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이며, 이 성덕은 현세사회에 있어서도 보다 인간다운 생활양식의 촉진제가 되는 것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과의 하나 됨, 이것은 기도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참된 목적이고 희망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고대 사막의 교부들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사막이나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독과 침묵 중에 머물면서 한 순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초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한 영적 수행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우리교회에서 시행하는 '렉시도 디비나'입니다. 렉시도 디비나의 4단계 영적 사다리 중 하나인 '관상 (contemplatio)'이라는 용어를 영성생활에서 사용할 때는, 사물의 내면을 실제적으로 아주 자세히 직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물의 실제와 원천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관상'을 의미하는 라틴어 '컨템플라치오(contemplatio)'의 어원은 그리스어 '테오리아(theōria)'인데, '테오리아'는 어떤 목적을 위해 대상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걸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 '테오레인(theōrein)'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테오리아(theōria)'는 '하나님'을 의미하는 '데오스(theos)'와 '뵙다'는 뜻의 '호라오(horao)'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렉시오 디비나의 4단계 영적 사다리 중 하나인 '관상(theōria)'은 '내적으로 하나님을 주의 깊게 바라봄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직접적이고 완전한 인식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을 내적으로 주의 깊게 바라볼 수 있을까요? 물론 고대 수도자들처럼 사막이나 광야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시에서 분주히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현실 속에서 따로 시간을 분리해 하나님을 바라보거나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서 내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서일과가 보여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광야의 배고픔에 시달리는 히브리들에게 하늘로부터 양식을 비 같이 내려주시는데, 그때 그들은 만나의 은총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만나를 내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는 해질 무렵 포도원에서 벌어지는 포도원 주인과 일꾼들 사이의 대화를 보여줍니다. 그 대화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명료하게 드러나는데, 일꾼들의 능력이나, 일한 시간이나, 일의 양이 아니라 오로지 주인의 선한 뜻을 따라 품삯이 주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기준이 세상 기준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 1:27) 오늘 성서일과 전체의 메시지를 통해 이 말씀을 보자면 세속의 가치관을 기준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내적으로 하나님을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한 후에 미디안 광야로 나오는데, 그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이집트 파라오 왕에게 열 가지 재앙이 내리는가 하면, 모세가 지팡이를 홍해 위로 내밀자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넌 다음 사납게 추격해오던 이집트 기마병들이 물속에 수장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분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매일 홍해가 갈라져 주는 것도 아니고, 기대처럼 악이 괴멸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신바람이 나는 일이라도 지나고 나면 이내 시들해집니다. 남는 것은 일상의 현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출애굽의 흥분이 가라앉자 일상적인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식수부터 시작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부족했습니다. 그들이 방금 전까지 살아온 이집트에서의 삶과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해서 넓은 경작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농산물을 지중해 유역의 나라들에 팔아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도 비록 소수민족이긴 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따라 광야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양식, 물, 잠자리 등 일상 전체가 막막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 출 16:3
이들의 말이 적나라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체면이나 최소한의 지도자에 대한 예의조차 없이, 죽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이때 모세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광야를 횡단해야만 했습니다. 그 광야는 신 광야, 수르 광야, 그리고 미디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시나이 반도라고 하는 이 광야를 횡단하는 일은 그 누누도 녹록치 않았습니다. 건강한 젊은 남자들도 걷기 힘든 길을 노인과 여자와 아이들이 함께 걷습니다.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들도 그들에게 위협이 되었겠지만, 낮의 태양열과 밤의 추위도 그들에게는 결코 만만치 않은 위협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출발부터 서로 원망하다가는 가나안은 고사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말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과 고대 이스라엘의 모습이 사실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어는 말씀을 보십시오.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 출 16: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보라 시는 겁니까?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시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 주목해서 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양식을 '비같이' 내리시는데, 백성들은 '일용할 만큼만' 거두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사방에 '쌓인' 만나를 허겁지겁 욕심껏 거두지 않고, '일용할 만큼만' 거두는 것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자기 욕망을 절제하는 훈련이기도 하고,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만을 구하며, 매일매일 하늘을 바라보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쌓을 곳이 없도록 더 많이 쌓아놓고 살기를 구하며, 그것의 성취여부에 따라 불평과 감사가 하루하루 교차되고 있지는 않으십니까?저녁에는 메추라기가 와서 진에 덮이고 아침에는 이슬이 진 주위에 있더니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 출 16:13-15
아침에는 진 둘레에 이슬이 맺혀 있었는데, 그 이슬이 마르고 나니까 지면 가득 작고 둥근 서리 같은 게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라서 서로 "이게 무엇이냐?" 하고 물었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시는 양식이다" 만나는 원래 가나안 지역의 사투리인 '만'이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만'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이라는 단어가 만나의 이름이 된 겁니다. 만나는 요즘에도 시나이 반도 내륙 지방에서 발견되는데, 그곳 사람들은 지금도 그걸 '만'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헤매는 동안, 아침에 진 둘레에 이슬이 맺혔다가 마르고, 작고 둥근 서리 같은 만나를 거둘 때마다 만나에 담긴 하나님의 은총을 가슴 가득 느꼈더라면 그들의 광야생활은 하루하루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만나와 메추라기는 보면서, 거기서 하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끝이 없는 불평과 원망들로 점철됩니다.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그만 시험에 불합격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두 사람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다 죽고 맙니다.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우리는 원망이 가득한 밤을 맞이하고 있는 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 마 20:8-12
해 저문 일터에서 주인이 품삯을 나누어주는데, 늦게 온 사람에게나, 아침 일찍 온 사람에게나 똑같은 일당을 계산해서 주는 겁니다. 그러자 아침부터 와서 일한 사람들에게서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저녁에 잠깐 나와 일한 저 사람을' 똑같이 대우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주인의 반응은 어떻습니까?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마 20:13-15
신앙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주인의 관점'에 '아멘' 하는 사람입니다. 보십시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사람에게 포도원 주인이 관심을 갖고 물어봅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마 20:6) 그들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 사람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고용해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포도원 주인을 보십시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마 20:7) 우리 상식으로 이런 사람은 일을 시키면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상식이 아닌 '복음'으로 보면 다릅니다. 복음이라는 관점에서 이 말씀을 성찰해 보면, 하나님은 차별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평등한 은총을 내려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후 5시까지 일을 찾지 못한 결함이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은총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대개 '노력한 만큼 보상 받는 사회'를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은 정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가 가지는 상식적인 정당함마저 넘어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따뜻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주신 만나와 메추라기였습니다. 그 만나를 먹었던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광야에서 끊임없이 모세와 아론을 향해 불평을 쉬지 않던 못난 사람들이었습니다.(출 16:2, 3) 그러나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들과 모세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시지 않았습니다. 모세에게도 똑같이 일용할 만큼의 만나를 거두게 하시고, 원망을 일삼던 자들에게도 똑같이 일용할 만큼의 만나를 거두게 하십니다.(출 16:4) 하나님의 상식은 그렇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복음서의 결론에서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마 20:16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 상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상식으로는, 첫째는 첫째여야 하고, 꼴찌는 꼴찌여야 합니다. 그 상식이 뒤바뀌면 그건 정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천국은 우리 상식에 의존되어있지 않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우리 모두는 원망이나 일삼던 광야의 이스라엘 같은 사람들이고, 저녁 무렵 가까스로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고 주님의 은총 때문에 삯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고, 우리가 구원 받는 것도 주님의 은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내가 모세라도 된 듯이 행동하고, 아침부터 포도밭에 나와 수고한 내 능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나의 그 어떤 지혜도 노력도 헌신도 감히 주님께 내어놓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총만이 있을 뿐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빌 1:27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이 말씀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특권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까지 당하는 것도 특권이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도 특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여러분은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시듯이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그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완덕'에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하나 됨',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참된 목적이고 희망이라면 '내적으로 하나님을 주의 깊게 바라봄으로서' 마침내 하나님의 완전함에 도달하는 것만이 우리가 이르러야 할 거룩한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이루는 삶은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오늘 나의 만나인 '일용할 양식'을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부딪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적인 정당함을 포기하고 주님 생각에 순종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내게 특권이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하는 것'도 특권이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도 특권임을 깨달아서 그 특권을 겸손히 실천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하는 삶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일상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불평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
② 사소한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느끼며 감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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