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15주 신앙은 경외감이다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14:19-31
19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가매 구 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20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 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22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 우에 벽이 되니 23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24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25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 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 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2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 시니 27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 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 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8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 우에 벽이 되었더라 30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 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 더라 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 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응송 | 시 114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서신 | 롬 14:1-12
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4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 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 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 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 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 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 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 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복음 | 마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 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 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32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 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출 14:31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큰 능력을 본 이스라엘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② 마 12:32-33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이 참된 용서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은 어느 때부터 가능해지는 것입니까?
③ 롬 14:3을 묵상하십시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신앙은 경외감이다
카리스마타 수도회의 임광지 목사님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사유와 성찰을 통해 얻은 영적 깨우침을 모아 책으로 펼쳐낸 '길 위의 성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행간마다에 낱알처럼 영글어 고개 숙인 구도자의 성찰들이 참으로 성사(聖事)가 되어 영적 감수성을 일깨우는 책입니다. 책에서 저자는 카리온에서 깔사디야까지 걸으며, 평지가 끝없이 이어지고 지평선만 보이는 들판 한가운데서 자신 혼자 완전한 고립 속에 서 있었던 순간을 회상합니다. "완전한 고립이었다. 카리온에서 첫 번째 바(Bar)가 나올 때까지 17km를 가는 동안 집한 채 없이 들판만 이어졌다. 물을 구할 곳도 없었다. 이런 평원에 홀로 서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것은 길을 잃거나 어떤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었다. 신 앞에 단독자로 선 한 존재의 두려움이었다. 하나님 체험을 갈망하지만 하나님 앞에 선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두려움이라는 것을 광활한 들판에서 느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순간, 인간에게 그것은 구원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또한 심판의 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안토니 블룸이 자신의 책 '기도의 체험'에 쓴 고백 하나를 소개합니다. "영어의 '위기(Crisis)'라는 말은 그리스어 '심판(Κρίσις)'에서 유래합니다. 기도 중에 하나님을 대면하여 만난다는 것은 우리 생활의 치명적 순간이며, 사실은 그 분이 우리가 그 분을 만나고 싶어 할 때마다 거기 계시지 않다는 게 다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이 그러한 만남을 견디어 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임광지 목사님은 숨을 곳 없이 완전히 노출된 광활한 들판 한 가운데서, 순간 자신의 숨기고 싶던 부분들이 떠올라서, 두려움 속에서 그저 "주 예수 그리스도여, 하나님의 아들이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마음의 길'에서 '고독은 변형의 용광로' 라고 말하고, '낡은 자기가 죽고 새로운 자기가 태어나는 회심의 장소'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이 마주친 고독은 변형의 용광로가 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자기 존재 전부가 노출되는 두려움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삶이 방자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데 왜 그럴까요?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 한 존재의 두려움을 경험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에 관해 배우고, 관념 속에서 하나님을 인식하고, 개념으로 교리에 동의하는 그런 신앙 말입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유월절을 지킬 것을 명령하시면서, 유월절이 속한 달을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출 12:2)이 되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월절은 여호와께서 히브리들을 장차 압제에서 해방으로 넘어가게 하실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었습니다. 파스카 사건이란 여호와께서 '후 라켐, םכל אוה' 즉 '히브리들을 위하여' 역사 속에서 실행하실 구원과 해방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있는 달을 '해의 첫 달' 즉 '로쉬 호다쉼(םישׁדח שׁאר)'으로 하라고 명령하시는 이유는, 앞으로 매해 찾아올 유월절의 달을 '머리가 되는 달'로 이해함으로써, 이어지는 모든 달을 하나님의 구원사 속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또 히브리들에게 '라바아트, תיבל' 즉 '식구를 위하여'어린 양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이유는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보고 '파스카' 즉 '넘어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유월절에 유월절 식사를 나누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새로운 시간 개념을 제정해 가르치시고,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을 면케 하시고, 그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식사를 매해 나누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사를 다만 지식으로서만이 아닌 몸으로 체감해 기억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려는 세심하신 배려였습니다. 파라오가 지난 400년 동안, 200만에 이르는 히브리들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제군주의 강력한 정치 체제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열 가지 재앙(출 7:14-10:29;11:29) 앞에서 손 한 번 못 쓰고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들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고, 경이로움 가운데 출애굽에 성공했습니다. 그 경이로움은 파라오가 죽음 앞에서 체감한 두려움과 질적으로 다른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거룩한 두려움이 영적 긴장감 속에서 유지될 때, 우리는 '코람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작가이며 목사인 피트 그리그(Pete Greig)는 자신의 책 '침묵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서 1945년, 유대인들이 게슈타포를 피해 숨었던 장소로 추정되는 독일 쾰른의 한 지하실 벽에서 발견된 낙서를 소개해 줍니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순간에도 나는 태양의 존재를 믿는다. 혼자일 때도 나는 사랑의 존재를 믿는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도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이런 믿음과, 그 믿음에서 비롯된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내 마음을 감싸고 있을 때,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게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방자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시간이 지나면서 두려움을 망각했고, 히브리들 역시 경외감이 무디어지며 또다시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합니다.(출 14:10-12) 파라오는 히브리들의 탈출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가, 탈출로가 차단된 곳으로 그들이 몰려가는 것을 보고 다시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표면적인 시선으로만 보면 이 상황은 분명 다시 히브리들에게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영적 시선으로 보면 여전히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이 그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배역은 둘입니다. 하나는 이집트 왕 파라오이고, 하나는 탈출한 히브리들입니다. 히브리들은 이집트를 탈출해 도망가는 중이고, 파라오는 도망가는 그들을 쫓아가는 중입니다. 히브리들은 남자 장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와 어린이와 노인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나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반면에 파라오는 최정예 기동부대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이 히브리들을 따라잡는 건 시간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진 앞에 가던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의 뒤로 옮겨 가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 출 14:19-20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가 중간을 가로막습니다. 그리고 이어 구름기둥이 그 중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상황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데, 하나님은 세 단계로 이집트 군대를 궤멸시키십니다. 첫 단계는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는 것입니다.새벽녘에 야훼께서 불과 구름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자 이집트 군대는 갈팡질팡하였다 | 출 14:24 공동번역
두 번째 단계는 여호와께서 애굽 군대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꼼짝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첨단무기를 파괴하셨을 때, 이집트 군대는 그만 공포에 사로잡히고 맙니다.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 출 14:25
세 번째 단계는 바닷물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것입니다.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슬러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따라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 출 14:27-28
이 말씀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파라오의 군대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죽었고, 히브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살았습니다. 파라오의 군대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강력했으며, 히브리들에 대한 구원이 얼마나 섬세했었는지를 우리는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집트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고, 동시에 이집트 신들에 대한 여호와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 출 14:31
히브리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들을 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군대를 몰살시키셨고, 히브리들은 바다에 처참하게 널려있는 이집트 군사들의 시체를 목격했습니다. 히브리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 '경외'와 '믿음' 회복이 바로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이 경외감과 믿음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우리는 베드로로 하여금 바로 그 경외감과 믿음에 직면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 마 18:21
베드로가 이렇게 물은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주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네 형제가 '너에게 대해'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마 18:15)는 말씀을 하십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함으로서 그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고, 자기감정을 내세워 꾸짖기보다는 그를 빛 아래 세워 권고함으로서, 그가 자기 잘못에 대해 바른 인식을 갖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친구로서 살아가는 두세 사람 즉 소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고, 그렇게 땅에서 푸는 사람만이, 하늘에서도 풀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마 18:18)이 지난 주 복음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말씀을 재빠르게 받아서 베드로가 이렇게 질문을 던진 것입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까지 용서해 주면 되겠습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사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시한 일곱 번의 용서는 당시 유대인 문화에서 보면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외경인 집회서 19:13-17에 보면, 내게 죄를 범한 이웃에게 두 번의 기회를 줄 것을 권고하고 있고, 랍비들은 죄를 범한 이웃을 세 번 까지만 용서하고 그 이상은 금하라고 가르쳤습니다.(암 1:3) 그러나 이 일곱이라는 관대한 숫자가 예수님에 의해 단번에 무시되고 맙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2
아마도 주님은 이 말씀을 하심으로서, 용서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너에게는 용서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해 주십니다.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마 18:23-27
달란트는 예수님 당시 유대와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는 화폐단위 중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1 달란트는 당시 노동자 한 사람의 일일 품삯인 1 데나리온의 약 6,000배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유대 전역에서 각출된 1년 세금이 800달란트 정도였다고 하니, 만 달란트는 거의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그런데 24절의 '빚진 자'로 표기된 단어가 원문에서 보면 '오페일레테스, ὀφειλὲτης'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오페일레테스'가 주기도문에서도 언급되는데, 거기서는 '죄지은 자'를 뜻하는 단어인 '오페일레마, ὀφεὶλημα'로 쓰였습니다. 같은 단어가 '빚진 자'로도 쓰이고 '죄 지은 자'로도 쓰이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에서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우리인 겁니다. 그런데 임금이 그 빚을 다 탕감해 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 마 18:28-34
백 데나리온은 자기가 탕감 받은 만 달란트에 비하면 60만 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소액(少額)입니다. 6억 원 빚을 임금에게 탕감 받은 사람이, 자기에게 만원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빚을 탕감해 주었던 어진 임금이 매우 화가 나서 그에게 다시 '빚을 갚으라'며 감옥에 가둬버리고 맙니다. 그것은 이 종이 자기가 임금에게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자기 친구에게 무정하게 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빚진 친구는 만났을 때, 자기를 용서한 임금을 기억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임금이 자기에게 자비로웠듯이, 자기도 친구에게 자비로워야 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베드로에게 해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용서를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가 유혹받고 있음을 아신 것입니다. 용서란 그렇게 자기의 자아(ege)에서 나와지는 것이 아닌, 자기가 하나님께 크나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깊고 성숙한 그 신앙의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믿음이 연약한 자는 채소만 먹느니라 | 롬 14:1, 2
당시 로마교회 안에는 소위 믿음이 연약한 자와 믿음이 강한 자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첨예하게 맞섰던 것 중에 절기 문제와 음식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들은 사람이 무엇을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것은 신앙적 정결과 상관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고기를 먹으면서 음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은 소위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율법이 금한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채소만 먹으며 고기 먹는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소위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바울은 뭐라고 말씀합니까?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라 | 롬 14:3a
누구든 자기의 판단을 절대화해서 함부로 타인의 신앙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이는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음이라 | 롬 14:3b
나와 믿음의 형태가 다른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는 교만이고, 하나님은 그 교만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 롬 14:10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시간 개념을 제정해 가르치시고,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을 면케 하시고, 그 파스카 사건을 기념하는 식사를 매해 나누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사를 지식으로서만이 아닌, 몸으로 체감해 기억하며,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시려는 세심하신 배려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관용으로 용서할 수 있다고 믿었던 베드로에게 비유를 통해 '그가 먼저 하나님께 크나큰 용서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헤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받은 용서에 감사하는 사람만이 그 경외감과 믿음으로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타인의 신앙을 판단하는 로마교회 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고 합니다.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 때문에 힘을 내고,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 때문에 용서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 때문에 나와 생각이 다른 형제를 받아들이는, 참된 그리스도인 됨이란 바로 그러한 것이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으로 인해 참 그리스도인이시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 없는 '자기중심적' 신앙인이지는 않은가?
②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이 모든 상황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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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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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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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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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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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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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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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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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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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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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