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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2주 악마와 직접 싸우지 말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8-23 18:27
조회
1240
성령강림 후 제12주 (가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1:8-2:10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 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 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 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 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 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 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 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 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 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 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응송 | 시 124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서신 | 롬 12:1-3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 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 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복음 | 마 16:13-20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 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 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 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 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 르지 말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16:16, 19을 묵상하십시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매인 사람이, 하늘 과 땅에서 매인 실존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무엇입니까?
② 출 2:10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이름에 그가 장차 살아가야 할 어떠한 삶을 담아주셨습니까?
③ 롬 12:3을 묵상하십시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이란 어떠 한 것이며,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생각의 기준'은 무엇인가?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이 말씀은 요셉이 죽은 후로부터 400년이 훌쩍 넘은 전환기 이집트의 어느 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00년이라는 세월은 이집트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왕조의 변화였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 애굽 왕조는 힉소스 족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힉소스 족은 본래 요셉과 같은 셈 계통으로 15대부터 17대까지 애굽 왕조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샘 계통인 요셉에게 우호적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BC 1514년에 투트모세 1세가 힉소스 왕조를 축출하고 18대 왕조를 이루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는 표현은 투트모세 왕조로 이루어진 당시의 파라오 왕이, 자신들이 축출한 힉소스 왕조와 같은 셈 계통이고, 힉소스 왕조 아래서 총리까지 지낸 요셉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숫자가 점점 불어가자 그들에게 위협을 느낀 애굽 왕은 잔인한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요셉의 후손들을 성 건축 현장으로 내몰아 모진 노역을 시킵니다.(출 1:9-11) 그러다가 현재의 노예들보다 장차 태어날 아기들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라고 판단해서, 노예들에 대한 박해를 강제노역에서 대량 학살 쪽으로 전환합니다. 심지어 파라오는 히브리 산파들을 향해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 1:16)는 잔혹한 명을 내립니다. 이토록 혹독한 시기에 모세가 잉태됩니다.(출 2:1, 2) 표면적 시선으로 이 상황을 보면 비극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모세의 부모에게서 믿음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주님 주신 기준을 넘어서서 내 기준을 따라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주님께서 주신 판단의 기준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출 1:8-2:10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 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 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 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 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 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 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 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 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1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3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4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5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6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 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 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응송 | 시 124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서신 | 롬 12:1-3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 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 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 하도록 하라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복음 | 마 16:13-20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 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 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 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 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 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 르지 말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16:16, 19을 묵상하십시오.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매인 사람이, 하늘 과 땅에서 매인 실존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무엇입니까?
② 출 2:10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모세'라는 이름에 그가 장차 살아가야 할 어떠한 삶을 담아주셨습니까?
③ 롬 12:3을 묵상하십시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이란 어떠 한 것이며,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생각의 기준'은 무엇인가?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악마와 직접 싸우지 말라
14세기 이집트 사막에 살았던 수도자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악마와 직접 싸우지 말라'입니다. 사막의 교부들은, 악의 세력과 직접 대결하는 것은 커다란 영적 성숙을 요구하기 때문에, 단지 소수만 악의 세력과 대결할 수 있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악마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대신 빛이신 주님에게 보다 집중함으로서 간접적으로, 그러나 보이지 않게 악의 세력을 이기라고 조언합니다. 교부들에 의하면 악마와 직접 대결하게 되면 나의 감추어진 속내가 악마의 주목을 끌기 때문에 악마는 우리를 유혹할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타락 이야기입니다. 하와의 첫 번째 실수는 뱀의 말을 듣고 '상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속내가 사탄에게 주목을 받았을 때, 사탄이 그녀에게 과일을 먹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힘쓸 일은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 악과의 대결 대신 빛이신 주님께 보다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 안에 있는 사랑과 생명을 지속적으로 긍정하며 미움과 죽음의 유혹에 대해서는 '아니요' 할 수 있는 내적 힘을 주님께로부터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 안에서', 그리스도께 힘을 얻어 살 때만 생명에 대해 '예' 할 수 있고, 죽음의 세력을 이길 수 있습니다.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표적을 나타내 보이셨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향해 가지는 견해나 바람은 서로 첨예하게 달랐고, 그런 까닭에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속내를 이미 악마에게 들킨 채, 그저 권력이나 얻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 있는 사랑과 생명에 긍정하며, 그것을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의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신약성서 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 마 16:13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이제 그 사역을 마무리 짓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유대의 영향권이고, 헤롯 안티파스의 통치권인 갈릴리를 벗어나 헤롯 빌립의 통치권인 빌립보 가이사랴의 외곽으로 가십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곳은 헤르몬 산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이었고, 더구나 비(非) 유대 지역이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훈련하시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기 원하셨고, 사역의 목적도 올바르기를 바라셨습니다. 당신은 누구이시며, 당신을 따르는 길은 어떤 길이며, 그 따름은 무엇을 위한 따름이며, 또 그로 인해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도 주님은 제자들이 '알고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날처럼 그리스도에 관한 교설(巧說)이 잡다하고, 교묘하게 수식되고 범람했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요? 그리스도교 신앙을 오해한 잡다한 언설들이 교회와 사회를 미혹해 병들게 하는 시대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 뿐 아니라 미디어를 타고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언설들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도구일 뿐, '주님과 마음을 같이한 말씀'은 찾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얕은 말솜씨로 사람의 영혼이나 미혹해서 자기의 사적(私的) 목적을 달성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매우 이례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십니다.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 마 16:13
아람어로 '인자'는 '나'를 뜻하는 관용구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런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질문을 하시는 것은 제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로서의 당신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당신 생명과 사역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느덧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은 끝을 맺어 가는데, 아직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막연한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대답을 취합해서 보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드러난 행위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 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들조차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예수님 인식은 세상에 떠도는 분분한 소문들보다 그다지 더 나아보이지 않았습니다.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 마 16:14
제자들이 이렇게 전해드리는 것은 자기들 보기에도 그렇다는 겁니다. 그들은 그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드리는 것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가장 최근, 군중들에게 뜨거운 영향력을 행사하며 인기를 얻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타락한 종교인들을 꾸짖는 의로운 선지자이면서 오실 메시아의 선구자로 추앙되고 있었습니다.(말 4:5, 6)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며 고난과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선지자였습니다.(렘 9:1; 14:17) 사람들이 당신을 저들만큼 위대하게 보고 있다고 제자들은 마음이 한껏 들떠 예수님께 보고하는데, 예수님은 그들의 감격에 대꾸조차 없이 문득 질문을 바꾸어 이렇게 물으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마 16:15
예수님의 진짜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군중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그것도 중요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 지금, 그 누구의 인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껏 당신을 따라왔고, 앞으로는 당신 이름으로 살아가야 할 제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원문에 보면 '너희는' 이라는 인칭 대명사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에서 보통 인칭 대명사는 강조할 때 쓰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인칭대명사 '휘메이스(ύμεῖς)'가 문장 처음부터 나와 있습니다. 문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주신 질문이기도 하지만, 독자들에게 제기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이 물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물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예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내 신앙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윤동주는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괴로웠던 사나이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이라는 그의 시어(詩語)를 통해 보면, 윤동주는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고 괴로워하면서도, 그로 인한 생명의 꽃핌을 보며 행복해하는 사나이'로 고백합니다. 그랬기에 윤동주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이 따를 일을 이렇게 결단합니다.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마 16:16
베드로의 이 고백은 예수에 대한 고백 중 가장 완벽한 고백 중 하나로 평가 받아서 기독교 신조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어원은 히브리어 '메시아'의 그리스어 번역입니다. 베드로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겁니다. 그리고 뒤 이어 따라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은 사실은 '그리스도'라는 고백에 대한 부연 설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의 중요한 고비마다 이 고백이 울려 퍼지는 것을 보면, 마태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덧붙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마태의 이 바람 때문인지는 몰라도 훗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고백은 예수님의 신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같은 장면을 다룬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과 비교해 볼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은 '주는 그리스도'라는 앞의 신앙고백을 더욱 생기 넘치게 해줍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마가나 누가처럼, 단지 선지자들이 예언해왔고 사람들이 기다렸던 그런 메시아로서만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절대 유일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다는 것은 자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게 무언지를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때 예수님도 매우 기뻐하셨습니다.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마 16:17
이 칭찬을 곰곰이 되새겨 보십시오. '신앙고백'은 이성이나 지성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해 분명히 하십니다. 믿음이란 지성을 넘어서는 어떤 사실 즉 예수님께서 설명해주신 것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부터 주어지는 순수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마 11:25-26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리십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예수님의 이 감사와 긍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에 있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진정한 자세는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마 16:18, 19을 보십시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 19) 베드로가 자신의 이성이나 지성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었을 때, 주님은 베드로를 향해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교회란 바로 이 고백 위에 세워져야만 하고, 그럼으로써 천국의 열쇠를 간직하게 됩니다. 반대로 교회에 이 고백이 없다면, 비록 교회라는 외형은 갖추고 있을지 몰라도, 그러나 천국의 열쇠가 없는 까닭에 진정한 교회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은 현재도 우리에게 계속 주어지는 물음입니다. 교회는 어떤 곳입니까? 예수가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곳이고, 그 고백을 기초로 나를 재구성 하는 곳이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분 형상이신 예수를 따라 하나님의 형상을 내면으로부터 되찾는 곳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을 보십시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 출 1:8이 말씀은 요셉이 죽은 후로부터 400년이 훌쩍 넘은 전환기 이집트의 어느 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00년이라는 세월은 이집트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왕조의 변화였습니다.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 애굽 왕조는 힉소스 족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힉소스 족은 본래 요셉과 같은 셈 계통으로 15대부터 17대까지 애굽 왕조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샘 계통인 요셉에게 우호적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BC 1514년에 투트모세 1세가 힉소스 왕조를 축출하고 18대 왕조를 이루는데 성공합니다. 결국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는 표현은 투트모세 왕조로 이루어진 당시의 파라오 왕이, 자신들이 축출한 힉소스 왕조와 같은 셈 계통이고, 힉소스 왕조 아래서 총리까지 지낸 요셉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의미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숫자가 점점 불어가자 그들에게 위협을 느낀 애굽 왕은 잔인한 핍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요셉의 후손들을 성 건축 현장으로 내몰아 모진 노역을 시킵니다.(출 1:9-11) 그러다가 현재의 노예들보다 장차 태어날 아기들이 오히려 더 위협적이라고 판단해서, 노예들에 대한 박해를 강제노역에서 대량 학살 쪽으로 전환합니다. 심지어 파라오는 히브리 산파들을 향해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출 1:16)는 잔혹한 명을 내립니다. 이토록 혹독한 시기에 모세가 잉태됩니다.(출 2:1, 2) 표면적 시선으로 이 상황을 보면 비극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모세의 부모에게서 믿음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 출2:2b
이 말씀을 그저 표면적으로만 보면 믿음의 흔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훗날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부모의 이 행동에서 '믿음의 시선'이라는 본질적인 측면을 발굴해서 전해줍니다.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히 11:23) 출애굽기에서의 '잘 생긴 것을 보고' 라는 표현이 히브리서에서는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행 7:20에 보면 '아름다운 아이'라는 표현에 대한 주석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행 7:20a)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어디에서 본 듯한 말씀 아닙니까? 모세가 태어났을 때, 모세의 부모가 본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아이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인 것을 알고 석 달 동안 이 아이를 숨겼다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그런 것입니다. '내 시선'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역사를, 창조세계를 보며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고,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이며, 천국의 열쇠는 바로 그런 교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고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의 부모는 아기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웁니다. 그러나 이 상자를 지켜보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갈대상자가 나일강에 띄어지는 바로 그 시간에 바로의 공주가 나일강에 목욕하러 나옵니다.(창 2:5, 6) 공주의 눈이 정확하게 갈대상자에 멈춥니다. 갈대상자를 열어보니 아기가 웁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마음에 불쌍한 마음을 갖게 하십니다. 공주는 그 히브리 아기를 자기 아들로 삼고, 아기 이름을 이집트식 이름을 따라 '모우세스'라고 짓습니다."(출 2:10) '건져냄을 받다'라는 뜻입니다. 훗날 이 이름은 히브리 발음을 따라 '모세(Moses)'로 고쳐집니다. 놀랍게도 그 이름의 뜻은 '장차 자기 백성을 건져낼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 이름의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그의 이름 속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사명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예나 지금이나 당신 자녀들을 '죽음의 강으로부터 건져내어 살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로 그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시고,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했을 때, 그렇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서신서에서 바울은 말씀합니다.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롬 12:3
'우리가 가져야 할 마땅한 생각' 그것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우리의 마땅한 생각은 이 고백에서부터 시작되어, 그분의 이름에 새겨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따라, 그분과의 교통 안에서, 완성되어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세속의 가치와 맞서서 싸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속에 미혹되어 악마가 내건 조건을 '상대할 가치가 있다'고 마음에 생각하고, 은근히 곁눈질하며 때로는 속내를 악마에게 들키기도 합니다. 한 번 악마에게 속내를 들키면, 악마가 우리에게 선악과를 탐하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힘쓸 일은 빛이신 그리스도께 더욱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빛 아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닮습니다. 나의 내면이 예수님과 같아지면, 우리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예' 할 수 있고,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에 '아니요'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 내면이 예수님 같아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고, 그 나라의 열쇠를 우리들에게 맡기실 것입니다. 그것만이 그리스도인의 행복입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주님 주신 기준을 넘어서서 내 기준을 따라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주님께서 주신 판단의 기준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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