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주 작은 생명 하나까지도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18:1-17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 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 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 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 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 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 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 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 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 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응송 | 시 116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 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 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서신 | 롬 5:1-8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 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 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복음 | 마 9:35-38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 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창 18:2-8을 묵상하십시오. 낯선 이들을 보았을 때, 최선을 다해 그 들을 맞이하는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② 마 9:37-38을 묵상하십시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 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③ 롬 5:6-8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연약할 때와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작은 생명 하나까지도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인 오늘은 기독교 대한 감리회가 정한 제 37회 환경선교주일이기도 합니다. 삼위일체주일을 갓 지나 계속해서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 맞이한 환경선교주일은 '생명'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성찰을 갖게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위르겐 몰트만(Jϋrgen Moltmann)'은 '사회적 삼위일체(social trinity)'를 고백한바 있습니다. 삼위의 교제(koinonia) 안에 존재하는 공동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 고백 속에는,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를 모본으로 삼아, 공동체 안에서 사랑의 교제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교제는 비단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닙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과의 교제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를 모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좁쌀 한 알에 우주가 담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무수한 생명들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생명이면서도 고리처럼 연결되고 연합된 큰 생명체로 존재합니다. 이 생명들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 안에서 모든 것은 아름다운 우주를 이루어갑니다. 그래서 장일순은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도 사람과 똑같이 존엄하게 봐야한다고 했습니다. 아시시의 성자인 프란체스코 역시 모든 생명체를 한 혈육으로 생각했습니다. 그에게는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인격적인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는 모든 동물들에 인격을 담아 의인화(擬人化)했습니다. 그는 모든 동물들을 형제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형제'라는 뜻의 라틴어 '제르마누스(germanus)'는 혈육을 나눈 친형제를 의미합니다. 자연을 한 혈육으로 대하는 따뜻한 가슴, 이 가슴이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지금 전 세계인이 겪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 사태는 자연을 혈육으로 대하지 않은 무정한 역린(逆鱗)의 결과입니다. 올해 환경주일의 주제가 '작은 생명 하나까지도'인데, 너무 작아 감지할 수조차 없는 바이러스가 인류의 역린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바이러스가 저항과 공격을 시작하니까 끝을 모르고 질주하던 인류의 행보가 멈춰 섰습니다.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의 홍기빈 소장은 지난 4월 CBS 시사자키에 출연해서, 40년간 세계를 움직여 온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로 인해 지구는 생태적 위기에 직면했고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말은 이제라도 살고 싶으면, 사람과 사회와 자연 모두에게 좋은 삶으로 변해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그 '모두에게 좋은 삶'이 되려면 어떠한 자세로 모든 생명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구약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여호와(창 18:1)와 천사들(히 13:2)을 대접합니다. 믿음에서 우러난 그의 따뜻한 배려를 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라시며 당신의 속마음을 그와 함께 나누셨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에서 마태는 병들고 약한 자들을 지켜보시던 주님의 심정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 역시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7, 8) 라며,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사랑 때문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회상합니다.
오늘 말씀들은 궁극적으로는 무더위에 지쳐있던 나그네를 대하는 아브라함의 자세, 혹은 병들거나 죄를 지은 이들을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통해서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가슴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러나 이런 가슴들을 조금 확대해서 성찰해 보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참된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윤동주는 서시(序詩)에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라고 하는데, 어쩌면 '그리스도인 됨'이란 이렇게 '생명을 사랑하는 것'에서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 창 18:1-5
'날이 뜨거울 때에'란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오정 즈음(םויה םחכ 케홈 하욤)'을 뜻합니다. 태양이 하늘 중앙에 치솟아 올라 가장 뜨거운 시간, 대개 고대근동 사람들은 이때 식사와 함께 휴식을 취하는데, 아브라함 역시 다른 이들처럼 장막 어귀에 앉아 마므레의 상수리나무가 만들어 준 서늘한 그늘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낯선 사람 셋이 자기 맞은편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 13절, 그리고 19:1절에 따르면 이 중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둘은 천사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보기에는 그저 정오의 태양에 지친 사람 셋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 낯선 나그네들에게 '자기를 좋게 보시면, 자기를 그냥 지나가지 마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라'고 말합니다. 그는 나그네들이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길어오고, 그들이 쉴 수 있도록 나무 아래에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을 보십시오.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 창 18:6-8
처음 본 사람들임에도 마치 하인처럼 자세를 낮추어 시중을 드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참 하나님의 사람의 자태를 봅니다.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이 한 마디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그의 말과 행동은 온통 배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행여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마저 읽힙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이 사랑이듯이, 아브라함의 존재방식 또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라면,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방식 또한 사랑이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읽다 보면 결국 하나님은 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당신의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고 가시던 중입니다. 그런데 낯선 나그네를 지극히 배려하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주님은 당신 속내를 털어놓으십니다.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창 18:17
이토록 사람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생명을 살리는 길'을 말해주는 것이 옳다고 하나님께서는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열어 보이는 것을 '계시(revelation)'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사람을 아끼고 공경하는 사람,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계시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돌아보면 온통 하나님의 계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거 생명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함부로 대했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는 자신들의 욕망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체들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시 말입니다. 우리가 정말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계시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전 세계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 19는 박쥐에게서 유래한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라고 합니다. 2002년에 발생했던 사스, 2009년에 발생했던 신종 플루와 2012년에 발생했던 메르스까지, 대부분 바이러스감염증은 야생생물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되었습니다. 박쥐, 낙타, 돼지, 조류 등에서 살아가던 바이러스는 여러 변이를 거쳐 사람에게도 전파됩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야생생물의 서식지 감소와 인간의 남획 등으로 인해 빈번해진, 인간과 야생생물의 접촉이,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습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에 따르면, 1900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지구 전체의 14% 정도였지만, 산업화에 따른 개발로 지금은 거의 77%로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개발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동물들이 사람들 가까이로 오면서 바이러스를 옮겨다 준 것인데, 그래서 살고 싶으면 다시 생태계를 복원해서 동물들을 살던 자연으로 돌려보내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대하는 예의이고, 자연과 사람이 서로 상생(相生)하는 길입니다."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이 선교적 언어는 우리 이웃을 향해 해야 하고,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을 향해서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들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아끼고 사랑할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두고 "내가 하려는 것을 ○○○에게 숨기겠느냐"(창 18:17) 라시며, 우리를 통해 당신의 심판을 거두시고, 당신께서 창조하신 생태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 마 9:36
'불쌍히 여기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3:29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가 나옵니다. 사람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담긴 비유입니다. 가라지가 거슬린다고 뽑으려다가 자칫 알곡을 다치게 하듯, 교회 안의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알곡과 같은 신자들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 역시 조금만 확대해 보면 모든 생명들에 대한 배려가 담겨있습니다. 가라지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는 생명이고 보면, 비록 그의 폭력성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은 살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읽혀지고,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자칫 함께 뽑힐 수 있는 연약한 곡식에 대한 마땅한 배려로도 읽힙니다. 들에 핀 꽃 하나를 아끼시고 입히시는 주님 손길을 생각하면, 우리가 함부로 대해도 되는 생명은 이 땅에 하나도 없습니다. 장일순 선생은 '일완지식(一碗之食)에 함천지인(含天地人)이라' 즉 '밥 한 그릇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해월선생의 말씀을 인용한 한자어인데, '밥 한 그릇이 만들어지려면 거기에 우주일체가 참여해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밥 한 그릇도 함부로 남기거나 반찬투정을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사람의 땅과 땅의 헌신이 고스란히 배여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함부로 버리는 건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을 오염시키는 행위입니다. 나 하나 있게 하기 위해 태양과 물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아니 우주 전체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면, 우리 또한 태양과 물과 나무와 풀 한 포기까지 아끼고 사랑하고 보호하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불교의 식사기도는 이런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인 창조세계를 돌보지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겠습니까?생태 신학자인 매튜 폭스는 "몸이 만물입니다. 몸은 구름이고, 산이고 바람에 끄덕이는 초록빛 나무들뿐 아니라, 강물이나 조약돌 그리고 오래된 바위까지 모두 몸입니다. 이 모든 몸들은 자기 정체성을 갖고, 하나의 유기체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거대한 축복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요 혈육'이라는 이 '제르마누스 영성'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태계를 아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사랑과 만나 누리게 된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중해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는 곳마다 박해를 받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는 돌에 맞을 위기를 넘겼고, 발을 쓰지 못하는 지체 장애인을 고쳐주었던 루스드라에서는 군중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뻔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감옥에 갇혔고, 아테네에서는 조롱을 당했습니다. 고린도에서는 재판정에 끌려가고 테러의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오늘 서신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 롬 5:3a
환난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익과 아무 관계없는 일에 몸을 바쳐본 사람은 그로 인한 환난이 왜 즐거움이 될 수 있는지를 압니다. 죄로 죽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사역에 매진하고, 개발로 인해 파괴된 창조세계를 되살리는 일에 힘을 쏟는 일은, 내 이익에도 아무 유익이 없을 뿐 아니라, 때로 그로 인한 고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사역에 나서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롬 5:3b-4
여기서 말하는 인내는 그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굳게 서서 강하게 밀고 나가는 저력(底力)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인내의 뿌리는 사랑에 맞닿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말씀합니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롬 5:5-8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죽음에서 살아난 존재들입니다. 우리 생명 살리자고 하나님께서는 저 오랜 옛날, 고대 세계에 살던 아브라함을 자기 고향,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나게 하셨고, 심지어 당신 아들마저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강해서도 죄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그 연약함 때문에 죄를 범하고,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살기도 했었지만, 그러나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돌이켰을 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 사랑이 지금도 우리를 붙잡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사랑으로 다른 생명들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들, 하나님이 사랑하신 생명들, 하나님이 돌보시는 생명들 말입니다. 스웨덴의 어린 소녀인 '툰베리'는 TED 강연에서 '희망보다 더 필요한 것은 행동'이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행동할 것입니까? 박노해 시인은 '길 잃은 날의 지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큰 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갈 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 보인다고
그저 손 놓고 흘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 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 있고
큰 것은 작은 것들을 비추는 방편일 뿐입니다
현실 속에, 생활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좋아하신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가?
②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창조 세계를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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