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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주일-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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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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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6 19:05
조회
1611
성령강림 후 제1주, 삼위일체주일 (가해)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1:1-2:4a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 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 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 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 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 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 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 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 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 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 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 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 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 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 하셨음이니라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응송 | 시 8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서신 | 고후 13:11-13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 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 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복음 | 마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 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28:19을 묵상하십시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베푸 는 세례는 누구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것입니까?
② 고후 13:13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누구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까?
③ 창 1:1-5을 묵상하십시오. 태초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각각 어떠한 분이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스위스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님으로 계시하신다'고 말하면서, 이 명제가 삼위일체 신앙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主)님'으로 계시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형태가 있는 분으로 계시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형태로 계시된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이신 하나님과 다른 분이지만 그러나 동일한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삼위일체'라는 관점에서 '성령(聖靈)'은 어떤 지위를 지니고 있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에 대해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분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사랑의 영(靈)이시다." 성령의 힘으로 성자는 성부를 알고 믿었으며,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고 붙들고 계셨습니다. 성령은 성자와 성부께서 서로 교통하는 통로요 결합하는 힘이며 생명의 교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단지 이 이론을 수긍하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신비를 믿는다는 진정한 뜻은 우리 존재를 삼위일체적인 형태로 구축한다는 뜻입니다. 성자께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와 하나를 이루어 사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성자와 하나를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성부 하나님 안에 있게 됩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관상하게 됩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은 창조의 한 장면 안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을 보여줍니다.(창 1:1-2:4a)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수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 그리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로서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 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것을 당부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가르침을 따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의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고후 13:13) 이렇게 삼위일체 교리를 정리해 지켜내려 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노력 속에는, 후세의 신앙을 확고하게 삼위일체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는 열망이 가득 배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목숨을 건 신앙생활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을 실제 체험했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님,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는 풍성한 체험 가운데 그들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머리가 아니라 전 존재로 마주 대할 때, 놀라운 변화가 나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성서연구를 통해 성경지식을 얻으면 나의 신앙이 성숙하게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혹은 기도 생활에 전력함으로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길어지면 나의 신앙이 성숙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막의 교부들은 기도나 성경지식 만으로는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배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만남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를 통해 체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참여해서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성찬에 참여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모셔 들일 때, 그 공경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리가 아닌 실제로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작별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첫 번째 당부가 무엇입니까? "기뻐하라"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기쁨을 잃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당부는 "온전하게 되라"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회개와 거듭남과 성화의 전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온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당부는 "위로를 받으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으려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만 합니다. 네 번째 당부는 "마음을 같이 하라"입니다. 주님은 요 17:22에서 '신자의 하나 됨'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당부는 "평안하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당부는 "거룩한 교제를 가지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삶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뻐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지도 위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평안하지도 못했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지금까지 못해오던 거룩한 삶인데 당부 하나로 금방 거룩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기에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지식만으로 혹은 감성만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가?
②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조화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창 1:1-2:4a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 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 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하나님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 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 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라 15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 니라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 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18 낮과 밤을 주관하게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 20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21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2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 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 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 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 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 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 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 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 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 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 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 하셨음이니라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응송 | 시 8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서신 | 고후 13:11-13
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 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 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12 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복음 | 마 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 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28:19을 묵상하십시오.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그들에게 베푸 는 세례는 누구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것입니까?
② 고후 13:13을 묵상하십시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누구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습니까?
③ 창 1:1-5을 묵상하십시오. 태초의 창조 사역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각각 어떠한 분이십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하나님의 시간'을 따라 걸어온 여정이 어느덧 성령강림절을 지나 삼위일체주일을 맞았습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 Τριάδος, Trinitas) 교리는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AD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제정되었는데,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미하고 묵상하는 일은 어느 한정된 날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 뿐 아니라 매일의 기도와 묵상생활이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분되는 세 위격(位格, 지위)으로 존재하지만, 하나의 본질을 공유한다'는 삼위일체 신앙은 그리스도인들의 영성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신비를 우리에게 처음 계시하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요 14:11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즉 아들이신 당신과 성부 하나님이 일체(一體)이심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확증해주고, 아버지와 아들이 교통할 수 있게 하는 일치의 역할은 성령님의 몫이겠습니다.스위스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교회교의학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주님으로 계시하신다'고 말하면서, 이 명제가 삼위일체 신앙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主)님'으로 계시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형태가 있는 분으로 계시하신다'는 뜻입니다. 그 '형태로 계시된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이신 하나님과 다른 분이지만 그러나 동일한 하나님이신데, 그러면 '삼위일체'라는 관점에서 '성령(聖靈)'은 어떤 지위를 지니고 있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이에 대해 칼 바르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분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사랑의 영(靈)이시다." 성령의 힘으로 성자는 성부를 알고 믿었으며, 성부는 성자를 사랑하고 붙들고 계셨습니다. 성령은 성자와 성부께서 서로 교통하는 통로요 결합하는 힘이며 생명의 교환인 것입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단지 이 이론을 수긍하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신비를 믿는다는 진정한 뜻은 우리 존재를 삼위일체적인 형태로 구축한다는 뜻입니다. 성자께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와 하나를 이루어 사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성자와 하나를 이루어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성부 하나님 안에 있게 됩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을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관상하게 됩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은 창조의 한 장면 안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고유한 사역을 보여줍니다.(창 1:1-2:4a)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수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 그리고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로서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마 28:19) 시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 것을 당부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가르침을 따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의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습니다.(고후 13:13) 이렇게 삼위일체 교리를 정리해 지켜내려 했던 신앙의 선배들의 노력 속에는, 후세의 신앙을 확고하게 삼위일체 하나님 안으로 이끌려는 열망이 가득 배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목숨을 건 신앙생활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을 실제 체험했었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진리의 영으로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님, 이렇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는 풍성한 체험 가운데 그들이 살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머리가 아니라 전 존재로 마주 대할 때, 놀라운 변화가 나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우리는 오늘 복음서의 제자들을 통해서도 보게 됩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 마 28:16, 17a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뵌 여자들이 제자들에게 가서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 28:10) 하신 주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유다를 제외한 열 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는데,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을 자신들과 지금껏 동고동락한 스승이 아닌 경배 받으실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분은 계시(啓示)된 '형태를 가지신 하나님'이셨고, 지금껏 자신들은 하나님과 함께 지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 앞에 경배합니다. 이때 제자들의 '경배'는 단순한 인사가 아닌 '프로세퀴네오(προσεκυνέο)' 즉 예배였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경배하는 제자들에 이어 다른 반응도 소개합니다.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 마 28:17b
'의심하는 사람들'이라고 복수형으로 되어있는 걸 볼 때, 제자 중 몇몇 사람이 의심을 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당연하게 여겨지면서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제자들의 연약함이 이 한 장면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주지해야 할 것은 이 연약함이 우리 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도 알고, 죽음을 딛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도 알고 믿지만, 그러나 한편으로는 연약함 속에서 주저하고 있는 우리의 이 '뿌리 깊은 의심'을 어찌할 것입니까? 그런데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마 28:18
일부 제자들의 의심을 아신 주님은 먼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신 것은, 그들을 안심시키고 친밀감을 갖게 하시려는 배려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하신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막 광야의 금식을 마치셨을 때, 사탄이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이끌고 가서 천하만국과 영광을 보여주며 했던 유혹 기억하십니까?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9) 그때 사탄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셨다'는 말씀은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영광을 얻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그러므로 | 마 28:19a
이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그러므로'는 "궁극적인 승리와 영광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므로"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라는 말씀입니까?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b-20
채 기뻐하고 승리감에 도취할 틈조차 주시지 않고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어 내보내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 확연하게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 지금이 처음이신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요 7:39)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도 여전히 의심하면서 불안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과 불안함은 이제 제자들로서 끝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이상 삼위일체 하나님 밖을 배회하지 말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신앙의 기초를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자들은 계시된 하나님만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계시된, '보이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연약할 수밖에 없었고,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볼 수 있는 영적시선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성 그레고리 팔라마스(Gregorius Palamas)'는 '육안(肉眼)'이나 '지성(知性)'으로 보는 것 외에 본질적으로 다른 시선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육안이나 모든 지성의 행위가 중단될 때, 비로소 발휘되기 시작하는 '영적 시선'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선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은총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 안에 온전하게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우리는 흔히 성서연구를 통해 성경지식을 얻으면 나의 신앙이 성숙하게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혹은 기도 생활에 전력함으로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길어지면 나의 신앙이 성숙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막의 교부들은 기도나 성경지식 만으로는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도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예배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만남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즉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를 통해 체험하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에 참여해서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성찬에 참여함으로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모셔 들일 때, 그 공경의 행위를 통해 비로소 삼위일체 하나님은 교리가 아닌 실제로서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작별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 고후 13:11
우리는 이 말씀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첫 번째 당부가 무엇입니까? "기뻐하라"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기쁨을 잃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당부는 "온전하게 되라"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회개와 거듭남과 성화의 전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온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당부는 "위로를 받으라"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으려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만 합니다. 네 번째 당부는 "마음을 같이 하라"입니다. 주님은 요 17:22에서 '신자의 하나 됨'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다섯 번째 당부는 "평안하라"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은혜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당부는 "거룩한 교제를 가지라"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의 삶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뻐하지도 온전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위로하지도 위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지 못했고, 그랬기 때문에 평안하지도 못했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지금까지 못해오던 거룩한 삶인데 당부 하나로 금방 거룩해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기에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 고후 13:13
먼저 바울은 고린도교우들에게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 예수'를 가리킵니다. 역사 속에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님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고린도교우들에게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함께 하셨던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고린도교우들에게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성령은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영적으로 소통하시는 영입니다. 성령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을 느낄 수도,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결국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의 교통을 통해서만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연약함을 극복하고 진정한 기쁨과 온전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이 구절에서 구체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바울 시대에는 삼위일체(Trinity) 개념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인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정말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안에 간직되어 있는 은혜와 사랑과 교통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미하고 묵상하는 일은 신학적인 이해와 별 관련이 없습니다. 매일 예배에 참여해서 말씀을 듣고 성찬을 나누는 생활,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 자체가 이미 삼위일체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꼭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이론적으로 알아야만 신앙의 깊이가 더해지거나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듯이, 우리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서 기쁨과 위로와 온전함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은 그 교리를 수긍하고 인정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진정한 뜻은, 우리가 우리의 전존재를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구축한다는 뜻입니다. 성자께서 성령을 통하여 성부와 하나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을 통하여 성자와 하나를 이룰 때 성부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게 되는 것입니다.(요 14:23) 마지막으로 구약의 말씀을 보십시오.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 창 1:1-2a
오늘 구약의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던 태초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지가 창조되기 전, 땅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절망을 봅니다. 그러나 태초의 이 장면은 우리에게 절망만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은 우리에게 오히려 희망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창 1:2b-4a
우리는 이 태초의 한 장면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동시에 만납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과, 수면에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영,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즉 로고스(λόγος)입니다. 요 1:1과 요 1:14을 통해서 우리는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절대적인 절망의 상황 즉 혼돈과 공허 위로 성령께서 부드럽게 선회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부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시는데 "빛이 있으라"는 말씀으로 인해 빛이 있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물러가고 빛이 있었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서 오늘 우리 삶의 혼돈과 공허와 어둠이 물러가고 질서와 행복과 밝음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전 존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견고하게 구축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기쁨과 온전함과 평화가 여러분 내면에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지식만으로 혹은 감성만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가?
②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조화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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