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3주 눈이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Lectio Divina
신약 | 행 2:14a, 36-41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 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 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 나 더하더라
응송 | 시 116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서신 | 벧전 1:17-23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 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 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 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복음 | 눅 24:13-35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 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 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 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 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 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 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 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 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 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 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24:31, 32을 묵상하십시오. 제자들이 눈이 밝아진 순간, 그리고 마음에 뜨거움을 느낀 순간은 각각 어느 때였습니까?
② 행 2:38을 묵상하십시오.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이들에게 선물로 주 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③ 벧전 1:18-19을 묵상하십시오. 유대인들이 조상들이 물려준 헛된 행 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무엇으로 된 것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오가는 풍경이 언젠가 부터는 너무 익숙해 보여서 슬픕니다. 그 동안 지구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산 결과가 이렇게 우리 일상의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내적 환경을 오염시킨 채 살아가니 그 여파가 대기와 하천과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이제 도시의 사람들은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타인과의 대면이 탐탁지 않은 삶을 살아갑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의 숨결이 되셨고, 사람은 하나님의 숨결로 숨을 쉼으로서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내적 환경을 오염시킨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의 숨결로 살기를 거부하고 야망에 찬 자기의 숨을 토하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내적 공간은 오염이 가속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거칠어진 성품은 거친 행위들을 유발했으며, 우리는 지금 그 결과로서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겁니다. 소위 '비非 대면'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기 껍질 속에 가두고, 바이러스가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문득 지난주에 보았던 복음서의 말씀에서, 문을 닫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 모습과 지금 우리 모습이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상황, 다른 두려움인 듯 보이지만, 그러나 두려움의 원인이 '하나님의 숨결을 잃고 산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 역시 하나님의 숨결로 내면을 채움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것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지난주 복음서의 말씀을 다시 반추해 보면 왜 그런지가 더욱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안식 후 첫날 저녁때'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해 문을 닫아걸고 모여 있던 곳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이때 그분이 자연적 질서를 넘어, 굳게 닫아놓은 문이나 두터운 벽마저 거침없이 통과해서 들어오신 사실은 주님의 현존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해줍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은 그렇게 '내 안에' 그리고 '우리들 안에' 들어오셔서 현존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제자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라고 인사하신 주님은 당신의 상처 입은 손과 옆구리도 보여주시고(요 20:20),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 창조'의 표지이자 결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령이 '숨'이라는 매개를 통해 제자들 안에 들어갔음을 요한은 보여줍니다.
조지 말로니는 '현대인의 영성, 신비가의 숨'에서 '숨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은사'라고 말합니다. 숨을 쉬지 않으면 의사는 죽음을 선고합니다. 그래서 '숨'은 '생명의 표징'으로 여겨집니다. '숨'은 또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아담을 흙으로 빚으신 후에, 숨을 그 코에 불어넣어 주셨을 때,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숨결을 지닌 존재가 되었습니다.(창 2:7) 욥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욥 12:10에 보면 그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어느 동물의 목숨이 그의 손을 벗어날 수 있으며 어느 사람의 숨결이 주의 손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욥 12:10 공동번역) 뿐만 아니라 욥 33:4에서는 친구들과의 논쟁 중에 "나는 하나님의 콧김으로 생겨난 몸, 전능하신 분의 입김을 받아 숨 쉬게 된 몸"이라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숨에 완전히 의존된 존재임을 욥이 고백한 것입니다.
한 고대 시인은 시편 33:6에서 이렇게 고백하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을 그의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당신의 기운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어 주십니다.(요 20:22) 그렇게 주님의 숨이 그들 안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비로소 '존재(存在)'가 되었습니다. 이 존재의 차원을 희랍어로 '아이온(aeon)'이라고 합니다. '현세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시간' 즉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영적 시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현실 가운데 들어가 현존하시듯, 우리도 '예수님의 현실 안으로' 즉 '예수님의 영적 차원 안으로' '지금', '여기'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이온'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는 바로 이 '아이온'에 대한 보충 설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주 말씀에서의 '아이온'이 주님이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오늘 복음서에서의 '아이온'은 '주님의 말씀'과 '빵'이라는 매개, 즉 말씀과 성찬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희망의 몰락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중에게 있어 예수라는 존재는 단지 병이나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리는 그런 차원을 넘어, 로마의 지배와 독재자 헤롯 가문의 폭압과 유대 종교권력자들이 지워준 짐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게 하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고문과 모멸 속에서 힘없이 죽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서 우리는 현실에 절망해버린 가련함을 봅니다. 지금 그들이 걸어가는 그 길은 몇 해 전 그들이 희망에 들떠 올라왔던 길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길은 절망에 빠져 내려가는 길입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리 밖에 안 되는 길이었지만, 꿈과 희망을 상실한 제자들에게 그 길은 어두우며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그 길을 걸으며 나눈 대화도 당연히 어두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 눅 24:13, 14
'이 모든 된 일'이란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보았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노중(路中)에 한 남자가 가까이 다가와 그들과 동행을 합니다.(눅 24:15) 누가는 그 남자를 '부활하신 예수'라고 말하지만 이야기 속의 두 사람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이유를 누가는 '눈이 가리어져서'라고 말합니다.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눅 24:15, 16
어찌 됐건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다가가시면서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눅 24:17a)고 물으십니다. 누가는 이때 그들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섰다"(눅 24:17b)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글로바가 "당신은 예루살렘에 있었으면서도 어떻게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모르느냐"며 거기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 줍니다.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 눅 24:19-24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미련한 자들"(눅 24:25)이라고 꾸짖으시면서도 "그리스도는 영광에 들어가시기 전에 반드시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눅 24:26)이라고 구약성경의 예언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들의 '마음의 어두움'의 원인을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이란 사 50:6 혹은 사 53:3-9의 '고난당하는 어린 양' 이야기와 슥 11:13에 예언된 유다의 배신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그리스도를 기다려 왔으면서도 그러나 뇌리 속에서는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그리스도의 수난은 더디 믿고 오직 영광만을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 역시 그들과 같은 오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수난'을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낯선 분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엠마오 마을에 도착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더 가시려는 듯 하시자, 그들이 "날이 저물었으니 여기서 함께 묵자"(눅 24:29)며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예수님에게서 어떤 강력한 영적 힘을 느낀 그들은 이 분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삶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키는 순간은 꼭 붙들어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지혜로웠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받아들이십니다. 제자들은 등불을 켜서 집안을 밝히고 기쁜 마음이 되어 식탁을 차립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눅 24:30-31
예수님은 여기에서 더 이상 그들에게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떡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고, 그것을 쪼개 나누어주셨을 뿐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파스카 축제 즉 유월절 만찬을 상기시켜주시는 것이었고,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던 최후의 만찬을 상기시켜주시는 상징적 행동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신비로운 빛만을 남기고 사라진 예수, 지금부터 그 분은 제자들 안에 계셨습니다. 그들이 먹은 그 빵이야말로 찢기신 예수님의 살이었습니다. 누가가 말하고 싶어 했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떡을 떼어주실 때, 비로소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눈이 밝아져 벌거벗었음을 깨달은 것(창 3:7)과, 눈이 밝아져 주님을 알아보는 것(눅 24:30)은 얼마나 다릅니까? 교회에 나와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여러분의 눈도 밝아지시길 바랍니다. 그 밝아진 눈으로 내 주님을 알아보고, 동행의 감격으로 내면을 채워가는 여러분의 일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눈이 가리어있으면 주님이 내 곁에 계셔도 불행하게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부활의 경험은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무엇일지 성찰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특별한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 어떤 사건들을 경험합니다. 학생은 스승과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 지식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도자기를 굽는 장인(匠人)은 흙과 불과의 특별한 관계를 통해서 위대한 장인의 기품을 완성해갑니다.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는 우리를 부활의 감격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행 2:36) 라며 베드로가 말씀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하며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이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 행 2:38
여기서 베드로는 회개와 세례를 통해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회개란 그리스도를 향해 돌아서는 것입니다. 세례란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사는 것입니다.
시리아의 성聖 에프렘(AD 306-373)은 자신의 관상 시편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오, 주님, 당신은 모든 것을 낱낱이 꿰뚫어보는 분이시라, 죄에서 돌이키고자 하는 사람의 결심도 미리 알아채시나이다. 그리하여 그가 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당신은 그에게 문을 열어주시며, 그가 당신 앞에 엎드리기 전에, 당신은 손을 뻗어 그를 맞아주시나이다. 그가 채 눈물을 흘리기도 전에, 당신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가 제 잘못을 고백하기도 전에, 당신은 그에게 용서를 베풀어주시나이다." 회개란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우리가 탕자의 회개를 통해서도 보았듯이, 죄에서 돌이키고자 하는 사람의 결심을 아시는 주님은, 죄인이 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문을 열어주시고, 당신 앞에 엎드리기도 전에, 손을 뻗어 맞아주십니다. 이렇듯이 회개란 우리 모두를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해줍니다. 베드로는 또 서신서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 벧전 1:18, 19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는 이내 없어질 은이나 금 따위가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그리스도의 귀한 피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와 여러분은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흠도 티도 없는 그리스도의 피를 내 안에 모시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내 안에 모심으로서, 그분과의 벅찬 동행에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 말씀합니다.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벧전 1:22, 23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나, 진리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 때, 비로소 진리에 순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마음에 어두움을 품고 엠마오를 향해 가던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에게 구약성경을 설명해주심으로 다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존재의 새 차원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밝음과 어둠 사이의 어느 쯤에서 지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로서, 당장 필요한 것은 눈이 밝아지는 것이겠습니다.
눈이 가리어져 있으면 바로 곁에 부활하신 주님이 계서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눈이 밝아진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밝음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눈이 밝아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기 위해 먼저 우리는 주님의 숨결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회개하고, 주님께서 물려주신 성찬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내 안에 모시어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눈이 밝아져, 마침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두워진 엠마오 길에서 돌이켜 동이 트는 아침을 향해 다시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영적 시선이 어두워 가까이 계신 주님조차 모르고 있지 않은가?
② 말씀을 통해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찬을 통해 눈이 밝아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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