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2주 믿음 없는 자가 되자 말고 믿는 자가 되라
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 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 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 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 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 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 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응송 | 시 16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서신 | 벧전 1:3-9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 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복음 | 요 20:19-31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 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 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 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 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 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 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 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 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20:27을 묵상하십시오.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하신 주님께서 그 다음에 요청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② 벧전 1:8, 9을 묵상하십시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베드로가 칭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③ 행 2:25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다윗은 어 디에 희망과 기쁨을 두고 살았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0년 봄은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여러 모로 흔치 않은 소회(所懷)들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19(COVID-19)가 그렇고, 지난 수요일에 치른 국회의원 선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순간 전 세계 사람들의 개인의 일상 뿐 아니라, 조직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정치와 경제까지 송두리째 흔들리고 탈바꿈할 수 있을까요? 1 밀리미터의 100분의 1에 불과한 바이러스가 우리사회에 끼친 영향은 대지진이나 태풍보다 훨씬 강력하고 광범위합니다. 오히려 지진이나 태풍에 의한 피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복구할 수도 있고,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코로나 19가 가져다 준 피해나 변화는 다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우리의 당혹감이 있습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단언하고, 사이먼 존슨 전(前) 국제통화기금(IMF) 수석경제학자는 '우리는 이미 코로나 이후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코로나 이전 세계는 끝났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비대면 문화의 확산입니다. 재택근무 및 격일, 격주 근무 등 인력 분산을 위한 다양한 근무 형태가 실험되고,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는 낯선 것들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도 우리에게 많은 생각들을 갖게 했습니다. 정치적 경쟁은 언제나 담론적 경쟁과 결합됩니다. 그리고 담론 경쟁은 시대정신으로 구체화 됩니다. 지난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는, 불현 듯 우리사회에 던져진 코로나 19라는 거대 담론이 야당이 내세우려 했던 정권심판이라는 해묵은 정치적 이슈를 삼켜버렸습니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의 좌표가 되는 북극성과도 같은 것인데, 어둠속 망망대해와도 같은 광범위한 코로나 19의 물결 속에서 국민이 원한 시대정신은 무엇보다 안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국민의 바람을 헤아린 정치인은 선택을 받았고,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 있는 정치인은 외면을 당했습니다. 정몽주가 남긴 '포은집(圃隱集)'에 보면 후배이자 동지였던 삼봉 정도전에 대한 애정 어린 시가 담겨있습니다. '경지의 시에 차운하여 삼봉에게'라는 시입니다.국정을 돕고 시폐 바로잡음에 재주 이미 부족하니
어릴 때 익힌 것들이 나이 들어 어지러워짐을 스스로 한탄하네.
삼봉의 은자 누가 닮을 수 있으리
처음에 세운 뜻 평생 동안 변하지 않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 요 20:19-22
그러니까 지금 요한의 관심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과 동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당신이 들어가셨고, 이제는 제자들도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에 제자들을 참여시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자들로서는 지금 그 '새로운 생명'이 눈에도 마음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모여 있는 집의 문들을 모두 닫고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그토록 두려워하고 있었을까요? 아직 자신을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탁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부활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 가운데 서시자마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인사하시고, 당신의 상처 입은 손과 옆구리도 보여주십니다. 이때 비로소 제자들은 기쁨을 회복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은 단지 기쁨만을 회복시켜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세상으로 보냄 받아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의 인사를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실 뿐 아니라, 숨을 내쉬어 성령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 창조'의 표지이자 결실이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을 흙으로 빚으신 후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어 영적 존재가 되게 하셨듯이(창 2:7), 주님은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 제자들로 하여금 성령의 사람들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제자들은 기쁨을 회복한 것을 넘어 부활의 기쁨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 도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료들로부터 주님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 도마는 이렇게 말합니다.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요 20:25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묶여 있는 우리로서, 그리고 그 죽음이 어느 때보다 뼈아픈 우리로서, 손으로 만져서라도 주님을 믿고 싶다는 도마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 말 때문에 사람들은 도마의 성격 중에서 회의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평가합니다. 그러나 사실 요 11:16의 증언에 의하면 도마는 주와 함께 죽기를 각오할 만큼 의지가 강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마태는 마 28:17에서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자기 눈으로 보고도 의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의 이 의심이 그렇게 두고두고 회자되어야 했을 만큼 이슈가 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좀 다른 측면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어쩌면 도마의 이 딜레마는 부활의 증언을 전해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보편적 상황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믿기를 어려워하는 우리이고 보면 도마의 이 모습은 우리의 모습을 대표한다 하겠습니다. 도마가 그렇게 회의하고, 혼돈스러워 하고 있을 때, 주님은 여드레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계셨습니다. 그 여드레가 도마에게 어떤 시간이었을지 어렴풋이는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였을 때, 이번엔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주님께서 다시 제자들 가운데 서서 이렇게 인사하십니다.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요 20:26
그리고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요 20:27
예수님은 왜 도마의 손목을 이끌어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게 하셨을까요? 도마의 믿음을 돕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온통 죽음의 그늘에 삼키어 버린 제자들이, 빨리 회복해야 할 것은 부활에의 확신이었습니다. 도마가 정말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대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도마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요 20:28
회의의 밤이 지나가고 부활의 빛이 그를 감쌉니다. 도마에게 예수님은 이제 창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존재이고, 다시 하나님 곁으로 가신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영광의 주님을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이제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죽음에 삼키어 기쁨을 상실한 제자들, 두려움에 삼키어 평화를 잃은 제자들이 다시 기쁨을 회복하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을 때, 손으로 눈으로 주님을 확인하고 성령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때 제자들은 주님이 자기들 앞에 계셨기에 손으로 눈으로 확인했던 것인데, 오늘 우리는 주님이 앞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요 20:29
이후로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할' 우리들을 향해 주님은 "그래서 너희는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도마와 같은 자리에 있었던 베드로는 주님의 이 말씀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가 훗날 박해와 환난 중에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고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말씀합니다.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 벧전 1:8, 9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인 AD 60년경에는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라고 칭찬하면서 그날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하셨던 말씀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부활을 신앙함으로서만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나는 것이며, 거듭날 때 그리스도인들은 산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며, 산 소망만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거듭남과 산 소망의 삶을 살고 있었고(벧전 1:3), 시험 중에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벧전 1:6) 베드로는 그들이 그 부활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간직된 유업을 받았다고 선언합니다.(벧전 1:4)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의 부활이 우리 현세의 삶에 가져다 준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부활하신 주님께서 굳게 닫힌 문을 거침없이 통과하셔서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듯이, 오늘 우리도 우리의 현세적인 삶 속에서 거침없이 예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의 현실 가운데 현존하시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의 현실 안으로' 즉 '예수님의 영적 차원 안으로' '지금', '여기'에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가슴 벅찬 현실을 '아이온(aeon)'이라고 합니다. 아이온은 희랍어로 시간, 시대, 혹은 영원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현세 속에 들어와 있는 하나님의 시간 즉 '지금', '여기'에서 경험하는 영적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영적인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다"고 주님은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증언합니다.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 행 2:25
다윗이 어느 시대 사람입니까? 예수님보다 천년을 앞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다윗이 시 16:8에서 한 고백을 지금 베드로가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장차 자신의 가문에 태어날 메시아를 미리 보았습니다. "뵈었음이여" 이 말씀은 헬라어로 "내가 미리 보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가 본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본 것은 끔찍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행 2:25) 예수님은 죽으시는 순간까지 자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계셨는데, 그 때 하나님은 예수님이 요동치 않도록 그의 오른편에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장차 천년 후에 이루어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다윗은 오늘 응송의 말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 시 16:9, 10
그리고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그 말씀을 받아 자기 책에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 행 2:26-28
예수님보다 천년 앞서 살았던 다윗의 고백이나, 예수님보다 이천년 뒤에 사는 우리의 고백이나, 각각의 '현세 속에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일한 기쁨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보이는 세상'이 온통 혼돈에 휘말려 있는 것을 봅니다. 결코 우리가 원했던 변화가 아닌데,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합니다. 혹 우리가 정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 정상은 코로나가 일어나기 전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돌아갈 수 없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에 따르면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신 것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금의 여러 가지 질병과 고난으로 인해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산 소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넉넉히 이겨내고 남을 것이며, 이러한 질병과 고난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의 믿음은 정금보다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식민지 시대의 저항시인이었던 이육사는 자신의 시 '절정'에서 서릿발 칼날진 위에 선 것 같은 박해에도 결코 굴복할 수 없는 정신의 고고한 세계를 '강철로 된 무지개'로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신앙 또한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닫힌 문을 거침없이 통과해 들어오셨듯이, 우리 또한 서릿발 칼날진 것 같은 이 세상에서 거침없이 부활생명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신앙은 강철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보지 않고도 믿는' 복된 신앙입니다.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정신을 썩지 않게 지켜주실 하나님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며 오늘도 내일도 부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보이는 것, 만져지는 것만을 믿으며 땅의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②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시간(aeon)과 천상의 삶을 살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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