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4주 참다운 봄 참다운 영성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3-22 10:08
조회
1815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삼상 16:1-13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 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 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 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 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 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 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 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응송 | 시 23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서신 | 엡 5:8-14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 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 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 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복음 | 요 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 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 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 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 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 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 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 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 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 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 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 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 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 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 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 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 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 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 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 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 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 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 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9:36-38을 묵상하십시오. 육의 눈을 뜨게 된 맹인이 마침내 예 수를 그리스도로 인식했을 때, 그의 '봄'은 무엇으로 변합니까?
② 삼상 16:7을 묵상하십시오.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 으실 자'라고 생각한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③엡 5:8, 9을 묵상하십시오. 빛의 자녀들이 맺는 빛의 열매는 궁극적 으로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참되고 본 된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기도함으로서만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자녀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창조 질서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그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영적 감수성이 깊어져야 합니다. 장미꽃 위에 맺혀있는 아침 이슬방울 속에서 하나님의 청아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고요한 침묵 속에 뭇 별이 제 길을 따라 지구를 싸고도는 소리, 뭇 새들과 동물들과 풀꽃들의 호흡을 들으며 창조세계와 세심하게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태적 영성에 눈뜰 때, 생태적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이런 시선을 갖추도록 요청합니다. 구약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육(肉)의 시선을 떠서 엘리압의 잘생긴 외모만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라고 판단한 사무엘을 향해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삼상 16:6)시며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심을 보는 시선, 표면 너머를 보는 시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선이요, 하나님 자녀들의 시선이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요한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이웃들(요 9:8) 혹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시선(요 9:40-41)과, '육신(肉身)의 눈'만이 아닌 '영(靈)의 안목'을 떠가는 맹인의 시선(요 9:7, 29-38)을 비교해서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빛의 자녀'(엡 5:8)인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열매'로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결실을 맺어갈 때(엡 5:9), 그 '빛의 열매'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엡 5:11)과 더불어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될 것'(엡 5:13)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요한이 무척이나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오늘 말씀은 문학적 측면에서 감정, 느낌, 반응, 대립적 상황 등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완벽한 작품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시각장애를 가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카리스마타 수도회를 이끄셨던 박효섭 목사님께서 2008년 2월 '유리바다'에 기고하신 글이 있습니다.
"부활절을 앞둔 어느 맘 때였을 것입니다. 아침기도를 바치러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발코니를 뒤덮고 있는 등나무 아래서 잠시 햇빛을 즐기고 있노라니, 어디서 이름 모를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등나무 가지에 앉아 꼬리를 까불거리더니 뭐라고 뭐라고 지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예쁘고 앙증맞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순간 작은 새를 마음으로 데려와 가슴 깊숙이 품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듣노라니 평소에 자주 외는 '영광송'을 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가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속으로 가만히 새를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새 흉내를 내며 따라 부르노라니 어느 새 아름다운 곡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나중에 '카리스마타 전례'에서 부르는 '영광송'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새를 잘 볼 수가 없었는데, 지난겨울 몇 차례 같은 모양의 새가 마당에 와서 창에 앉기도 하고 장독 항아리에 앉기도 하며 놀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까지 해운대교회 피정을 끝내고, 오늘 아침 몇 일만에 아침기도를 바치러 예배당 발코니에 올라갔더니, 눈에 익은 그 새가 예배당 문 앞에 반듯이 누워, 죽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리고 직감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죽어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나와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했던 예배당 발코니를 죽을 장소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새를 안고 내려와, 그 목소리처럼이나 해맑은 유리컵 속에 그를 앉히고, 얼마 전에 사다 놓은 허브 향 젤 전등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영광송을 노래할 때마다 그 작은 새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갖가지 빛깔로 깜빡이고 있는 향 전등 위에 놓인 유리 컵 속에서 작은 새는 지금 아주 평화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안녕, 글로리아! 이게 네 이름이란다."
작은 새의 지절거림에서 하나님 향한 영광송이 들리고, 작은 새 안에 깃들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들음도 시선도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한 사람이 그 답답한 어둠의 굴레를 벗고 막 눈을 뜨는 그 순간은 얼마나 벅찬 신비이고 영광입니까? 그러나 사람이 종교적 권태에 빠져들고 말면 그 어떤 신비에도 영광에도 눈이 가려진 채, 율법을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다만 법전으로 외워서 사람이나 옭아매는 무정한 삶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 내 눈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방치하고 있다면 이미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영적 감수성이 깊어져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관상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람을 대하고,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며, 우리는 보다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지금 맹인이 '보는' 그것을 부인하게 하려고 온갖 협잡을 벌입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바리새인처럼 '본다' 하는 교만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를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신앙의 시선을 갖추었는가?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삼상 16:1-13
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 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 니라 하시는지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제사에 청하라 내가 네게 행할 일을 가르치리니 내가 네게 알게 하는 자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을지니라 4 사무엘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 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5 이르되 평강을 위함이니라 내가 여호와께 제사하러 왔으니 스스로 성결하게 하고 와서 나와 함께 제사하자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 을 성결하게 하고 제사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8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을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 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 9 이새가 삼마로 지나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도 여호와께서 택하 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이새가 그의 아들 일곱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나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사무엘이 이새 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 오기까지는 우리가 식사 자리에 앉지 아니하겠노라 12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하시는지라 13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응송 | 시 23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서신 | 엡 5:8-14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 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 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 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복음 | 요 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 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 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 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 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 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13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 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 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 이 있었더니 17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 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 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 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 함이러라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 보 소서 하였더라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 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 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 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 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 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 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 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 를 만나사 이르시되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 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9:36-38을 묵상하십시오. 육의 눈을 뜨게 된 맹인이 마침내 예 수를 그리스도로 인식했을 때, 그의 '봄'은 무엇으로 변합니까?
② 삼상 16:7을 묵상하십시오.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 으실 자'라고 생각한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③엡 5:8, 9을 묵상하십시오. 빛의 자녀들이 맺는 빛의 열매는 궁극적 으로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참다운 '봄' 참다운 '영성'
코로나 19 감염 병으로 온 세상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계절은 바야흐로 춘분(春分)을 이틀이나 지나왔습니다. 태양은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고, 지구는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져 추위와 더위가 사이좋게 손을 잡았으니 계절로는 나들이하기 참 좋은 계절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밖을 꺼리고 있고, 초중고는 4월 개학이라는 초유의 결정을 이미 내려놓고 있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렵다 보니 소비시장은 얼어붙고, 그에 따른 경제적 파장은 어디까지 갈지, 그 깊이를 예단할 수 없습니다. 처음인 게 너무 많습니다. 주일예배를 한 달 넘게 가정예배로 대체하는 것도 그렇고, 4월인데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마스크를 안 쓰는 것이 무례함으로 비치는 사회가 그렇고, 이웃을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로 인식해서 냉정하게 거리두기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코로나19 감염 병은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요? 마냥 비관도, 마냥 낙관도 할 수 없는 요즈음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그리고 귀에 들리는 것 이면에 있는 더 높고 깊은 본질의 세계를 관상하고 전망하며, 그 세계에 걸맞은 나를 형성해 가야 하겠습니다.참되고 본 된 그리스도교 영성이란 교회 안에서 예배하고 기도함으로서만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하나님 자녀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창조 질서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에서 그 깊이와 넓이가 더해지는 것이겠습니다. 그러려면 우리 영적 감수성이 깊어져야 합니다. 장미꽃 위에 맺혀있는 아침 이슬방울 속에서 하나님의 청아한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고요한 침묵 속에 뭇 별이 제 길을 따라 지구를 싸고도는 소리, 뭇 새들과 동물들과 풀꽃들의 호흡을 들으며 창조세계와 세심하게 교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생태적 영성에 눈뜰 때, 생태적 삶이 가능한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은 우리에게 이런 시선을 갖추도록 요청합니다. 구약의 말씀에서 하나님은 육(肉)의 시선을 떠서 엘리압의 잘생긴 외모만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라고 판단한 사무엘을 향해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삼상 16:6)시며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심을 보는 시선, 표면 너머를 보는 시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시선이요, 하나님 자녀들의 시선이어야 합니다.
복음서에서 요한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이웃들(요 9:8) 혹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시선(요 9:40-41)과, '육신(肉身)의 눈'만이 아닌 '영(靈)의 안목'을 떠가는 맹인의 시선(요 9:7, 29-38)을 비교해서 보여줍니다. 그런가 하면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빛의 자녀'(엡 5:8)인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열매'로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결실을 맺어갈 때(엡 5:9), 그 '빛의 열매'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엡 5:11)과 더불어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될 것'(엡 5:13)이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요한이 무척이나 극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오늘 말씀은 문학적 측면에서 감정, 느낌, 반응, 대립적 상황 등이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완벽한 작품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시각장애를 가진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 요 9:2
제자들의 질문은 당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의 통념상 맹인이나 문둥병에 걸리는 것은 그 질병에 걸린 자신 혹은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세계관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런 생각은 출 20:5, 34:7, 민 14:18 등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랍비들도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려주십니다.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 요 9:3
주님의 이 대답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말의 기대감을 갖도록 하기에 충분한데,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소위 '숙명(宿命)'이라는 인간의 절망적 사고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일' 즉 '새로운 창조'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자신이나 부모의 죄가 이 사람이 맹인 된 원인이라면, 이 사람은 평생을 '자신과 부모의 죄'라는 과거에 갇힌 채로 앞을 보지 못하는 비극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이 사람을 실재하지도 않는 숙명 가운데 버려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기대 속에서 새로운 창조에로 이끌어 내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가슴은 더더욱 벅차게 됩니다. 예수님은 맹인에게 다가가셔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발라주십니다.(요 9:6)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진흙을 개어 그의 눈에 발라주시는 모습에서 단지 눈만을 고쳐주시는 치료를 넘어 그를 새로이 창조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런데 주님은 진흙만 쓰시지 않습니다.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요 9:7a) 라고 '말씀'도 하십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가서 씻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상황을 요한은 이렇게 전합니다.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 요 9:7b
그런데 바로 이 감격스러운 장면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벌어집니다. 맹인이 눈을 뜨게 된 사건을 두고 마을에는 일대 소란이 벌어집니다. 그가 전에 구걸하던 것을 봤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저 사람 여기 앉아 구걸하던 사람 아니야?"(요 9:8)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맞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닮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요 9:9) 그러자 이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겨냥해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요 9:16a)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죄인이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하겠느냐"(요 9:16b)며 갑론을박합니다. 소위 신앙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가슴이 굳어버리면 얼마나 무섭게 변질되어버리는지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절감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상처 입은 치유자'에서 단절된 인간상의 특징을 '마비'로 보았습니다. 가슴이 마비된 사람들은 실존적 인간들이 자아내는 불안이나 기쁨이 아닌 무관심과 권태로 가슴을 채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생 맹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보게 되었는데, 그가 보게 된 기쁨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율법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있는 이 사람들에게 도대체 신앙이란 어떤 의미인 걸까요? 그래서 이 맹인이 치유 받은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끝내 예수님의 꾸중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 요 9:41
주님의 이 일갈은 맹인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시선의 역설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맹인은 육신의 눈만이 아닌 영적 안목까지 점진적으로 밝아져 가고 있는 반면, "너는 예수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요 9:28)며 맹인에게 욕을 퍼부어대던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의 안목은 형편없이 어둠에 방치되고 맙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내려지고 있었습니다.카리스마타 수도회를 이끄셨던 박효섭 목사님께서 2008년 2월 '유리바다'에 기고하신 글이 있습니다.
"부활절을 앞둔 어느 맘 때였을 것입니다. 아침기도를 바치러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에 발코니를 뒤덮고 있는 등나무 아래서 잠시 햇빛을 즐기고 있노라니, 어디서 이름 모를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등나무 가지에 앉아 꼬리를 까불거리더니 뭐라고 뭐라고 지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예쁘고 앙증맞은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순간 작은 새를 마음으로 데려와 가슴 깊숙이 품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듣노라니 평소에 자주 외는 '영광송'을 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가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속으로 가만히 새를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새 흉내를 내며 따라 부르노라니 어느 새 아름다운 곡조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나중에 '카리스마타 전례'에서 부르는 '영광송'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새를 잘 볼 수가 없었는데, 지난겨울 몇 차례 같은 모양의 새가 마당에 와서 창에 앉기도 하고 장독 항아리에 앉기도 하며 놀다가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까지 해운대교회 피정을 끝내고, 오늘 아침 몇 일만에 아침기도를 바치러 예배당 발코니에 올라갔더니, 눈에 익은 그 새가 예배당 문 앞에 반듯이 누워, 죽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리고 직감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죽어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나와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했던 예배당 발코니를 죽을 장소로 선택했을 것이라고. 코끝이 찡하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는 조용히 새를 안고 내려와, 그 목소리처럼이나 해맑은 유리컵 속에 그를 앉히고, 얼마 전에 사다 놓은 허브 향 젤 전등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나는 이 영광송을 노래할 때마다 그 작은 새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갖가지 빛깔로 깜빡이고 있는 향 전등 위에 놓인 유리 컵 속에서 작은 새는 지금 아주 평화롭게 잠들어 있습니다. "안녕, 글로리아! 이게 네 이름이란다."
작은 새의 지절거림에서 하나님 향한 영광송이 들리고, 작은 새 안에 깃들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들음도 시선도 비로소 완성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한 사람이 그 답답한 어둠의 굴레를 벗고 막 눈을 뜨는 그 순간은 얼마나 벅찬 신비이고 영광입니까? 그러나 사람이 종교적 권태에 빠져들고 말면 그 어떤 신비에도 영광에도 눈이 가려진 채, 율법을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다만 법전으로 외워서 사람이나 옭아매는 무정한 삶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 내 눈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방치하고 있다면 이미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영적 감수성이 깊어져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관상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람을 대하고,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더욱 사랑하실 것이며, 우리는 보다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지금 맹인이 '보는' 그것을 부인하게 하려고 온갖 협잡을 벌입니다.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 요 9:24
지금 그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맹인이 육신의 눈을 뜨게 된 그 사실이 아닙니다. 맹인의 눈이 밝아져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고, 그로 인해 군중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는 그 진실이 겁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도 협잡도 보람 없이 맹인은 자기에게 나타난 현상을 진실 그대로 고백합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 요 9:25
그리고 주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요 9:35) 물으실 때는,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요 9:36)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이다"(요 9:37) 라고 하시자, 그는 마침내 땅에 엎드리며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 9:38)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시선이 '견(見)'을 넘어, '시(視)'를 넘어, 어느덧 '관(觀)'에 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시선이 바로 이 '관(觀)'의 시선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은 이스라엘 전환기의 한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폐위된 사울의 뒤를 이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새 인물을 가리는 과정에서 하나님과 사무엘의 시선차이가 드러나게 되는데, 우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불러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가라시며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다'(삼상 16:1)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새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초청해 장남부터 차례대로 자기 앞에 서게 합니다.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삼상 16:6, 7
이새의 큰 아들 엘리압이 가장 먼저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엘리압은 히브리어로 '엘리아브' 즉 '하나님은 아버지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름도 은혜로운 데다가 용모마저 준수했던 것 같습니다. 엘리압의 잘생긴 외모에 반한 사무엘은 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시며 "내가 이미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무엇을 보십니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사람은 드러난 용모와 출신과 배경을 보지만 하나님은 감춰진 내면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를 깨달아야 하고, 이 차이를 좁힐 수 있어야 합니다. 이새가 데리고 온 일곱 명의 아들들을 다 보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중 아무도 선택하시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아들이 없느냐고 묻자 이새가 이렇게 대답합니다.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 삼상 16:11
사무엘은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며, "그가 오기까지는 식사 자리에 앉지 않겠다"고 합니다. 마침내 다윗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 양을 지키다 뛰어왔으니 복장이 초라했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의 외모가 아닌, 내면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라마로 돌아간 후, 이스라엘 역사의 주도권은 다윗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후로 비쳐지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이 보셨다던 그 중심이 아름답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간음과 그 간음을 감추기 위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고,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부자간에 목숨을 건 권력투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그를 선택한 것이며, 하나님이 보셨던 그의 중심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의혹에 대한 대답을 오늘 구약성경의 마지막 구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삼상 16:13
"이 날 이후로 여호와의 영에 크게 감동되었다"는 말은 그가 걸어간 '평생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평가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보신 다윗의 중심은 '지금 당장의 그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장 그는 양을 치는 목동에 지나지 않고, 이후로도 한 동안 그는 권력다툼에 치중할 것이며,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은 정욕으로 쓰러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은 끝까지 그와 함께 하며 일평생을 통해서 그를 변화시켜 내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이 시선을 신뢰하고, 우리 또한 평생을 통해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은 다윗처럼 쓰러질 때도 있고, 또 어느 순간은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시키셔서 인격과 행위 전체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움을 드러낼 때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쓰러졌다고 주저앉을 일이 아닙니다. 이 날 이후로 우리 또한 다시 일어서서 삶의 전 과정을 통해 성령님을 의지하며, 마치 맹인이 점차로 눈을 떠가듯이, 우리 또한 점차로 하나님을 보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은 스스로 '본다'는 자부심에 가득 찼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의 빛 앞에서 소경이 되었을 때, 그 날 이후로 바울은 '영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은총을 체험한 사도 바울이 서신서에서 이렇게 촉구합니다.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 엡 5:8, 9
자기 내면의 어두움을 본 사람만이 빛이 되기 위해 몸부림 칠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빛의 자녀가 된 사람은 빛의 열매로서의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삶을 살아낼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시선으로 모든 생명체를 사랑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관상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람을 대하고,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 영혼은 참된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부디 이 사순절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 시선이 맑아지고 깊어져서,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람을 대하고, 또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바리새인처럼 '본다' 하는 교만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예수를 그리스도로 볼 수 있는 신앙의 시선을 갖추었는가?
전체 0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하세요.
번호 | 다운로드 | 제목 | Language | 작성일 |
41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6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
KOR | 2024.11.17 |
41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5주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
KOR | 2024.11.10 |
410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4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
KOR | 2024.11.02 |
409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3주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
KOR | 2024.10.26 |
408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2주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
|
KOR | 2024.10.19 |
407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1주 하나님만이 오직 최선이시다
|
KOR | 2024.10.12 |
406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20주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KOR | 2024.10.05 |
405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8주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
KOR | 2024.09.21 |
404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7주 내 언어의 원천(源泉) 마음
|
KOR | 2024.09.14 |
403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6주 복 있는 눈, 복 있는 귀
|
KOR | 2024.09.07 |
402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5주 장로들의 전통과 하나님 말씀
|
KOR | 2024.09.01 |
401 | 다운로드 |
성령강림 후 제14주 제2의 본성을 쇄신하라
|
KOR | 2024.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