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사순절 제3주 육(肉)의 갈망을 넘어 영(靈)의 갈망으로
■ 읽기 | Lectio
구약 | 출 17:1-7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 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 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 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 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 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 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 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 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 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 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응송 | 시 95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서신 | 롬 5:1-1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 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 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 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 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 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복음 | 요 4:5-26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 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 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 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 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 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 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 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 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 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 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 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4:10, 14을 묵상하십시오.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며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어디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까?
② 출 17:3-6을 묵상하십시오. 물을 달라며 모세와 다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처방은 무엇입니까?
③ 롬 5:3, 4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겪는 환난이 우리에게 이루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육(肉)의 갈망을 넘어 영(靈)의 갈망으로
경남 거창의 중촌마을에 사시는 정을순 할머니가 군청에서 운영하는 '문해(文解)교실'에서 한글을 깨친 후에 쓴 시(詩)가 있습니다. 숨바꼭질이라는 시입니다.오만데 / 한글이 다 숨었는 걸
팔십 넘어 알았다
낫 호미 괭이 속에 ㄱ ㄱ ㄱ
부침개 접시에 ㅇ ㅇ ㅇ
달아 놓은 곶감에 ㅎ ㅎ ㅎ
제아무리 숨어봐라
인자는 다 보인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 출 17:1
사막이란 단순히 지리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막은 '하나님의 복이 없는 황폐한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구원사적, 영성적으로 독특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으로 고독과 시련의 장소로 자주 거론되는 사막은, 그래서 구원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에게 이 사막은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 밀월여행을 시작한 장소이고, 척박했던 만큼이나 하나님의 현존과 거룩함과 위대하심이 극적으로 드러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사막에서 출애굽한 히브리들이 처음 보인 모습은 매우 본능적인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의 저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출 17:1) 우리는 이들의 상황과 그들이 보인 반응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생명의 원천이 차단된 배타적인 장소에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운명에 항거하는 그 모습이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보이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들이 모세와 다투었다고 말하고(출 17:2), 모세는 그들을 향해 '너희가 여호와를 시험했다'며 분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고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출 17:3)며 원망을 쏟아냅니다. 어찌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창궐에 대해 급기야는 WHO에서 팬데믹(pandemic, 감염병 세계 유행)을 선언하고, 이제는 전염병을 넘어 경제까지 염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원망을 쏟아냅니까? 어쩌면 위기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예민한 부분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모세를 찾아가서 한 말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닌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불신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처한 이 사막이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는 자리임을 알고,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이끄심을 믿고 따라야 할 장소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그 깨달음과 믿음으로 사막을 통과했을 때, 그 기억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새롭게 이해하고, 믿고 따르도록 돕는 영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마찬가지로 바이러스 대유행 앞에서 우리의 시선 역시 하나님을 향하고 있어야 함을 오늘 말씀은 보여줍니다. 물론 이 바이러스를 하나님께서 몰고 오신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계기로 하나님의 뜻을 성찰할 수는 있습니다. 히브리들이 모세를 찾아가 원망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히브리들을 구원하시려 이끌어내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하나님처럼 온전해지기를 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참된 구원의 여정으로 나서기를 바라시고, 그런 뜻에서 우리에게 닥쳐온 고난을 통해, 우리 관심사와 삶의 태도를 조정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히브리들이 출애굽에는 성공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영적 미성숙에 머물러 버리고 만다면 그냥 애굽에 머물러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들 출애굽의 진정한 목적은 육체의 해방이 아니라, 사막을 통과하는 동안 영과 정신이 성숙해져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듯이 이 바이러스의 위협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 역시 참된 예배에 대해,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해, 그리고 더불어 상생해야 할 창조질서에 대해 성찰함으로서 한껏 성숙해 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고 삶을 돌이킬 때, 비로소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는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갈망(desire)입니다. 우리는 갈망을 회복해야 합니다. 갈망은 육체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에너지원입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을 타고 올라오는 육체적 갈망을 우리는 영적 갈망으로 바꾸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물을 향한 갈망이 선용되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서의 영적 에너지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서에 나오는 우물가의 여인도 역시 내면 깊은 곳에 갈망을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 요 4:6-8
예수님과 수가(Sychar) 성의 여인이 야곱의 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인데, 여인의 내면의 갈증이 물을 통해 은유됩니다. 예수님께서 "물을 좀 달라"(요 4:7) 하실 때,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요 4:9) 하며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여인의 어투에서 당시 사회의 통념과 관습에 상처 입고, 거기서 탈출하고 싶은 갈망이 은연중 드러나고 있다면,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하실 때,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 라는 대답을 통해서는 사람의 시선을 피해 물 길러 다녀야 하는 처지에서 지긋지긋한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은 가엽은 갈망도 엿보입니다. 무엇보다 여인의 갈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예수님께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하셨을 때입니다.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 요 4:16, 17
우리는 이 대화를 보면서 여인이 그 육신의 갈망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 쳐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인은 갈망 속에서 다섯 번이나 남자를 갈아치웠습니다. 그리고 새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녀는 번번이 해갈을 얻는데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그 갈망 속에서 여인의 삶은 황폐해갔고 자신과 이웃 모두를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저 옛날 해소되지 않는 갈증 속에 광야를 떠돌던 이스라엘의 갈증과, 해소되지 않는 갈증으로 남자들의 품을 떠돌던 여인의 갈증은, 그것이 육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과, 끝내 채울 수 없는 갈증이라는 점에서 본질상 같은 것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마셔도 마셔도 또 다시 목마른 샘물, 그것은 우리 실존의 어쩔 수 없는 갈증입니다. 오늘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갈증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갈증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 것일까요? 저 옛날 시나이 반도의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해결 없는 분노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만나신 이 우물가 여인처럼 비밀한 쾌락을 찾아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갈증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 혹은 때때로 겪는 고난과 힘겨움은 우리 내면의 영성이 발현되는 자리이고, 주님께서 나를 찾아와 부르시는 소명의 자리라는 사실입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 롬 5:3, 4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공허함으로 사방에서 벽을 느끼고, 해결되지 않는 환난과 고난이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지만, 그러나 매일 겪는 갈증이나 때때로 겪는 환난은 오히려 우리 삶의 에너지가 되고, 인내와 연단과 소망이 되어 우리를 차근차근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히브리들처럼 때로는 불평하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때로는 갈망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책인 성경 안에 우리가 'ㄱ'도, 'ㅇ'도, 'ㅎ'도 읽을 수 있도록, 그 말씀과 성령의 은총 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우리 손을 잡아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 속에서 결정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 요 4:20
우리는 이 대화를 보면서 내심 놀라게 됩니다. 단지 물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된 대화가, 자기 실존에 대한 갈망의 문제를 지나서, 어느덧 예배에 대한 대화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갈망의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질문을 주목해 보십시오. 지금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예배는 꼭 교회에서만 드려야 하나요? 아니면 집에서 예배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런 뜻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예배하지 못하고 가정에서 예배하는 우리 입장에서 참으로 궁금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요 4:21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 말씀은 혁명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만 예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라고 하십니다. 예배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아무데서나 예배해도 될까요? 이제부터는 집에서 혼자 예배해도 되겠군요?"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가 아닙니다. 예배에는 교제도 있고 성찬례도 있습니다. 입례송으로부터 시작된 예배는 말씀과 성찬과 교제가 다 이루어져야 비로소 진정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비상시기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가장 많이 전염을 일으키는 장소가 바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입니다. 중앙루터교회의 최주훈 목사님이 '뉴스앤조이'와의 대담에서 "교회는 말씀과 성찬 거룩한 사귐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참된 예배를 언급하며 동시에 이런 말씀을 합니다. "교회는 무슨 일을 선택하든 이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예배는 개인 구원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은 물론 세상도 위해야 한다. 교회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이 원칙에 따라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각자의 삶이 예배가 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예배가 참된 예배가 되려면, 성도뿐 아니라 이웃의 생명까지도 아껴주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의 장소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요 4:23, 24
여인은 예배의 방법과 장소를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방법이나 장소보다도 예배의 핵심은 영과 진리라고 하십니다. 영으로 하는 예배는 성령 안에서 하는 예배입니다. 진리로 하는 예배는 말씀 안에서 하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성령의 은총 안에서, 말씀이 우리 인간의 영혼을 매만질 때, 비로소 우리 속에 불붙여지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예배의 방법은 성령과 말씀입니다.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마침내 여인은 자기 갈망의 상징인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 들어가며 흥분해서 소리칩니다.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요 4:29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을 보면서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기까지는 나에게 쉼이란 없었다"고 고백했던 성(聖) 어거스틴의 고백을 떠올립니다. 바이러스의 대유행과 맞닥뜨리며 세상은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바이러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은총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많은 사람들의 가정을 짓밟은 신천지의 만행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뿐만 아니라 잠시 멈춰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고, 은연중 하나님을 관상할 수 있으니 고난 속에 깃은 은총이 분명합니다. 바이러스 대유행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고난과 환난 중에 인내를, 연단을, 소망을 꽃피울 수 있는 신앙의 성숙함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 끝에 자기를 멸시했던 마을로 뛰어 들어가며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 4:29) 하며 감격했듯이, 우리도 육신의 갈망이 영적 갈망으로 고양되는 이 시점에 여인처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 희망의 소식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그리스도 밖에서 육신의 갈망에 몸부림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②육의 갈망이 어느덧 영의 갈망으로 고양된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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