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대림절 제2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 읽기 | Lectio
구약 | 사 11:1-10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 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 이니라 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응송 | 시 72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서신 | 롬 15:4-13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ㅠ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시고 9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그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11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 였으며 12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 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복음 | 마 3:1-12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 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 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 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마 3:2, 10을 묵상하십시오. 회개의 가장 절박한 이유는 무엇이며, 가장 이상적인 회개의 때는 언제입니까?
② 사 11:10을 묵상하십시오.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 치로 설 때, 열방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③ 롬 15:12을 묵상하십시오.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를 향한 열방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오늘 우리는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대림절 초에 불을 하나 더 밝히며 한층 기다림의 설렘도 깊어지는 오늘, 독서의 말씀들은 오시는 그리스도를 잘 맞아들이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을 살펴줍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들을 묵상하노라면 '희망을 보는 설렘'과 '통회의 슬픔'이 서로 교차하면서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영적 상승에로 이끌어 갑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누릴 복의 상태를 시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려 놀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젖먹이가 독사의 굴에서 장난하는, 동화 속 같기도, 비현실적이기도 한 이 장면은 완벽하게 평화로워진 어떤 상태를 보여주는데,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실 평화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벽한 행복,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묘사라 하겠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신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롬 15:12)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복음서의 말씀에서 세례 요한은 희망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도래하는 천국을 맞아들이기 위해 철저하게 회개할 것, 그리고 그 회개의 증거로써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것을 강력하고 통렬한 질책과 함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의 외침은 그가 입고 있던 낙타털 옷처럼 껄끄럽고, 유대 광야에 널린 바윗돌만큼이나 거칠게 다가옵니다. 복음서의 말씀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오래 전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마침내 성취 된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여줍니다. 마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마 3:3) 라고 소개하는데, 이사야에 의하면 그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사 40:3)였습니다. 그의 소리는 광야에 이렇게 퍼져나갔습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마 3:2
이 외침은 짧지만 강력하게 동시대 사람들의 타성을 깨우며 광야에 울려나갔을 것입니다. "회개하라(μετανοειτε)" 이 말씀은 "마음을 바꾸어라" 그런 뜻입니다. 마음을 바꾸어 돌이키지 않는 회개는 사실은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마음의 돌이킴'과 '삶의 돌이킴이' 함께 진행될 때만 비로소 성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는 것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 있습니다. 사복음서 안에는 많은 회심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향해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예수의 초청이 자신들의 삶에 가져올 총체적인 변화를 받아들여 순종하던지, 아니면 부자 청년처럼 근심하며 떠나가던지(막 10:22)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한이 왜 그토록 강경하게 회개하라고 호소하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천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촉구하고 있는 '회개'는 '천국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상처를 낫게 하려면 고름을 짜내야 하듯이, 천국을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겪어내야만 하는 것이 회개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광야의 사람들을 향해 독설이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이 급박하게 회개를 촉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보다 더 큰 권능을 가지신 어떤 분의 오심을 지금 자신이 예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마 3:11, 12
요한의 이 예고는 메시아께서 앞으로 행하실 종말의 심판이 마치 농부가 쭉정이와 알곡을 가려내는 것과 같은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요한이 호소하는 회개에의 초청은 참으로 긴박하고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오로지 이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그의 행색을 이렇게 소개합니다.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 마 3:4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낙타털로 거칠게 짠 옷을 말합니다. 요한의 이 복장은 왕하 1:8의 엘리야 선지자나 당시 아라비아 광야에서 살았던 베두인들과 유사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마태는 요한의 복장을 엘리야와 일치시킴으로서, 그가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말 4:5) 하나님께서 다시 보내신 엘리야임을 암시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또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습니다. 메뚜기는 레위기에서도 식용으로 허락된 정결한 식물이었고, 석청은 바위 틈새에 만들어진 야생 벌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개 방랑자들이 먹던 조악한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례 요한의 모습에서 주님을 기다리는 자의 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그의 모습은 절제와 고독의 전형입니다. 그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희생하고 있습니다.헨리 나우웬이 자신의 책 '마음의 길'에서 '수사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안토니우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안토니우스가 18세 쯤 되었을 때, 성경을 읽다가 이런 말씀을 읽게 됩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마 19:21) 그는 이 말씀을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으로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그는 마을 변두리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사막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20년 동안을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동안 그의 표면적 안전의 껍질이 벗겨지고 사막의 심연(深淵)이 그에게 입을 벌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시련들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 그에게서 육체와 정신 그리고 영혼이 건전한 '참으로 건강한' 사람을 보았다고 합니다. 성 안토니우스의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것은 '우리의 거짓되고 강박적인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자기'로 변형시켜야 할 소명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나우웬은 '고독은 변형의 용광로'라고 단언합니다.
예수님 자신도 이 용광로에 들어가셨으며, 그곳에서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셨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리고 예수님께서 처하셨던 고독의 자리 그곳이야말로 우리 회심의 장소이고, 낡은 자기가 죽고 새로운 자기가 태어나는 장소인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을 기다리는 자로서 고요한 자리를 찾아 절제와 고독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영혼을 건강하게 돌봐야 할 것입니다. 복음서가 그려주는 요한의 모습을 계속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 마 3:5, 6
'이 때에'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처럼 나타난 그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요한을 보러 광야에 까지 찾아온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역시 요한처럼 수선스런 일상에서 벗어나 광야를 찾아 나온 사람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런 그들이었기에 광야에서 들려온 요한의 음성은 그들의 영을 일으켜줄 양식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며 요한에게 세례(baptizein)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때 요한이 베푼 세례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세례는 주로 입문 의례로서 이방인들이 유대교인이 되려고 할 때 시행되어 왔습니다. 과거로부터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징표로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유대인들은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며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봤을 겁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그 입문 의식으로서의 세례를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에게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유대인이라는 혈통으로 무조건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임박한 천국을 맞이할 사람, 그리고, 임박한 심판 앞에 선 사람은 누구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흔하게 있던 선민의식에 대한 요한의 날선 도전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보십시오.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 마 3:7a
세례를 통한 회개와 내적 변화에의 의무를 모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자' 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들도 이 회개의 의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갖는 그 어떤 영적 특권도 회개라는 소명을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더 거칠게 소리칩니다.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마 3:7b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너희도 회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도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똑같은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주님 역시 40일 광야 금식을 마치시고, 세 번에 걸친 유혹을 물리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7)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 사이에 있는 이 일련의 연속성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일치된 메시지 안에 복음의 본질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천국' 즉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 메시지의 핵심이라면, '회개'는 그 나라에 들어가는 강력한 조건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의 요한의 일갈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저와 여러분 들으라고 퍼붓는 독설(毒舌)입니다. 이후로도 요한은 계속 요구합니다.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마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은 회개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참되고 순수한 회개란 내면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면이 변하고 삶이 변화되어 입술의 회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마 3:9
너희는 내심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흔하게 널려 있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혈통과 출신이 아니라 내면의 돌이킴이고 삶의 돌이킴입니다. 언제 돌이켜야 합니까? 요한은 이렇게 말씀합니다.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제로입니다. 숨 고르고 미루어 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돌이켜야 한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우리에게 급박하고도 진정한 돌이킴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급박할수록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돌이킴의 방향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회개의 방향이 어디냐는 것입니다. 우리 돌이킴의 방향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기에서 요한은 자기가 말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진리를 꺼내놓습니다.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마 3:11, 12
세례 요한의 위대함은 회개의 방향을 분명히 안 것, 그리고 자기한계를 분명히 알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광야에 선 자기를 바라보다가 자칫 예수님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도록, 그는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바라보라"고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당부합니다. 주님은 요한의 겸손이 배인 이 길을 따라 성령 충만한 걸음으로 걸어오셔서우리의 내면을 성령과 불로 변화시켜 주시고, 변화된 성도를 구별해 천국에 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림절기에 마음을 고요하게 모아 주님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겸손히 주님 오실 길을 닦고 자신을 감추었던 세례 요한과 그가 전한 말씀도 함께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말과 허영, 그리고 위선을 벗고 순수한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거나, 무슨 직분을 가졌다거나 하는 종교적 겉치레를 벗어버리고 내가 회개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삶으로서 보이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통해 회개한 사람에게 이루어질 나라를 아름다운 산문시 형태로 보여줍니다.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 마 3:11, 12
이새의 줄기에서 돋아난 한 싹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이루어 가실 새로운 세상은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을 통해 이루어질 것인데, 그 세상의 정신은 공의와 정직과 성실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이사야는 그 공의와 정직과 성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세상을 마치 동화 속 세상처럼 묘사해줍니다.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기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 사 11:6-9
이런 세상이 가능할까요?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인 걸까요? 그래서 우리는 이 이상을 접어야 할까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시고, 우리가 참으로 예수님께로 돌아서서 예수님 안에 있는 공의를 회복한다면, 그래서 지난 주 말씀처럼 칼과 창을 녹여 보습 즉 농기구를 만들고,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는다면(사 2:4), 우리는 이 이상을 현실로 보게 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 예수님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그렇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보여준 저 에덴동산의 이상은 회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저 나라는 이상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그 말씀을 합니다.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 사 11:10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도 똑같은 말씀을 합니다.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 롬 15:12
우리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지금 돌이키고, 지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지금 우리의 내면이 성령과 불로 변화되어 다가오는 성탄절, 예수님 안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교회 안에서 나의 직분으로 인해 회개를 놓치고 있지 않는가?
② 주의 오심이 임박함을 느끼고 내면과 삶의 돌이킴에 힘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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