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23주 보다 나은 존재 에로의 초대
■ 읽기 | Lectio
구약 | 신 26:1-11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 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 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그 때의 제사장에게 나아가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 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 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응송 | 시 100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서신 | 빌 4:4-9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 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 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복음 | 요 6:25-35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 하리라
■ 묵상 | meditatio
① 신 26:1-3을 묵상하십시오. 신명기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의 땅이었습니까?
② 요 6:32, 33을 묵상하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구하고 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③ 빌 4:4-7을 묵상하십시오. '주 안에서' 기쁨과 관용과 기도와 간구 그리고 감사로 살아가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보다 나은 존재'에로의 초대
'말로 모건'이라는 미국 캔자스시티 출신의 백인 여의사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연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호주의 초청을 받아 의료 활동을 하던 중 '오스틀로이드 족'이라 불리는 사막 오지의 원주민들과 함께 넉 달에 걸쳐 걸어서 호주 대 사막을 횡단하는 힘든 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여행 중 원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공생하는 삶을 배우게 됩니다. '오스틀로이드 족' 사람들은 스스로를 '참사람 부족'이라고 부르고 문명인들을 '무탄트'라고 불렀습니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인데, 그들은 어머니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쓰러뜨리는 문명인들을 보면서 돌연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사막을 걷던 행렬이 갑자기 멈추어 섰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은 막대기 두 개가 땅바닥에 뒹굴고 있었는데, 원주민의 설명에 따르면 그 막대기는 무덤의 위치를 나타내는 십자가였습니다. 원주민 중 하나가 그 막대기에 가죽 끈을 감아 다시 십자가를 만들어 무덤에 꽂아주었습니다. "같은 부족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원주민은 "아녜요. 이 무덤엔 무탄트가 묻혀 있습니다." 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십자가를 고쳐주었느냐고 묻자 원주민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우리는 당신들의 방식에 동의하지도 않고, 또 받아들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들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입장을 존중합니다. 이곳에 오면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거나, 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관계에 대해 다시금 확인할 기회를 갖습니다. 이 자리에 와서 우리는 당신 종족들을 축복하고 당신들 종족이 한 일을 용서합니다. 그래서 이 길을 지나감으로서 우리는 보다 나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구약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문득 몇 해 전에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서 읽었던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 대지를 파헤치고, 강을 더럽히고, 나무를 쓰러뜨렸던 문명인의 무덤을 찾아 그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거나, 신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며, 그가 저지른 일을 용서하고 그를 축복함으로서 보다 나은 존재가 되려 한다는 그의 말이 얼마나 깊게 다가옵니까? 그런데 오늘 구약의 말씀에서 하나님 역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과거 그들이 겪은 아픈 기억을 회상하게 하시고, 그런 다음 그것을 기억에서 지워버리도록 하심으로서 그들을 '보다 나은 존재'에로 이끄시는 것을 봅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신 25:17-19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역사 속에서 겪었던 아픔을 이렇게 회상시켜 주십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라도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출애굽해서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고단한 행군을 이기지 못하고 뒤떨어진 약한 사람들을 아말렉이 공격해서 무참하게 살육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행한 그들의 살육은 하나님에 대한 도전행위였습니다. 그날부터 아말렉이란 이름은 그들 가슴속의 증오로 남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몸서리쳐지는 그 아픈 기억을 기껏 떠올리게 하신 후에 다시 잊으라고 하십니다. 가나안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하나님은 왜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시고, 그런 다음 기억에서 지워버리라고 하시는 걸까요? 과거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마주 설 때, 비로소 그 아픔에서 해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럼으로써만 '보다 나은 존재'로서 새 미래를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시고, 그런 다음 그 기억을 지워버리라고 명령하신 다음에 오늘 말씀에서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삶을 명령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에 거주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 신 26:1, 2
그들이 광야의 아픔을 극복한 후 들어갈 가나안 땅의 특징 중 하나는, 그 땅이 '그들이 노력해 쟁취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땅, 차지하게 하신 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실 땅(신 26:1)',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땅'(신 26:2),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신 26:3)' 이게 가나안 땅의 특징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껏 남의 땅에서만 살아온 그들의 역사를 볼 때, 한편 설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것이었습니다. 지금껏 그들이 경험한 거라곤 남의 땅에 살면서 채찍에 맞았던 기억, 그리고 광야를 지나는 동안 사나운 적들에게 가족이 살해되었던 기억,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어쩌면 사십 년 동안 광야를 걸어오면서 그들이 그토록 불평과 원망을 입에 달고 산 것도 그 끔찍했던 과거와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두웠던 것만큼 부정적이었고, 시달렸던 것만큼 사나워져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광야를 걸어오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체결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이끄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그들에게 내리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어 그들을 마시게 하고, 옷이 해어지지 않게,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겪은 끔찍한 학대와 광야에서 가족들을 잃은 슬픈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더 몸과 마음에 배이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행복하려면 그 심성은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두워지고 사나워진 심성은 새로운 미래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적합하지도 않았습니다. 새로운 땅에 어울리는 심성은 감사였고, 새로운 미래에 어울리는 심성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행복을 소중히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해야 할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거둔 각종 햇곡식을 광주리에 담아 하나님께서 당신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땅으로 가지고 가서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해야 했습니다.내가 오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뢰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 신 26:3
누구나 자기 인생의 절정에 섰을 때, 자기만의 고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든지, 도와주신 은인들께 감사한다든지, 오늘의 내 성취가 자랑스럽다든지 등입니다. 그런데 가나안에서 거둔 첫 곡식을 광주리에 담아 들고 하나님께 가서 "나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우리의 선조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땅에 들어오게 된 것을 오늘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 아룁니다."라고 고백할 때, 이 고백은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고백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 제 삶은 당신의 은총입니다. 아버지께서 도우셔서 오늘이 있습니다." 하는 진심어린 고백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 고백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호텔 마다가스카르 라는 책에 보면 지은이가 편지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시간을 멈출 능력을 신에게서 부여받은 남자의 이야기 알아? 그는 언제 시간을 멈출지 정하지 못해서 그냥 늙어 죽었대." 그러자 상대방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앞으로 달려가는 것도 멈추고 싶은 자리에 멈추는 것도 둘 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정말 두려운 건 아무 생각도 없이 떠밀려 가는 거야" 여러분은 지나온 삶 속에서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 때가 언제였습니까? 가장 행복한 순간에 시간을 멈출 능력을 신에게서 부여받았음에도 언제 시간을 멈출지 정하지 못해서 그냥 늙어 죽었다는 건, 특별히 행복한 순간이 그의 인생에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떠밀려갔다는 의미이겠습니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요.", "행복한 일이 있어야 행복해 하지요"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 들어가 가나안은 척박하기 짝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은 햇곡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달려갈 만한 그 무엇조차 있어 보이지 않는 땅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앞으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심고 거두어야 할 것은 사실은 곡식이 아닌 신앙이었고 감사였습니다. 참 감사는 곡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하는 것입니다. 참 행복은 곡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서 열매 맺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심고 거두는 것은 농부들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 인생 자체가 심고 거두는 행위입니다.바울은 갈 6:7-9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그래서 감사절은 농부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수감사절이라는 길목을 지나면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과연 우리는 지나온 시간 동안 무엇을 심고 거둔 것일까요? 사도 바울에 따르면 모든 인생은 두 가지 것 중 하나를 심는다고 말합니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다는 겁니다. 주님은 "열매를 보아 나무를 안다"고 하셨는데, 과연 우리는 내 육체를 위하여 심고 그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성령을 위하여 심고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사람일까요? 추수감사절은 그런 날입니다. 지나온 내 삶의 열매를 주님께 보여드리고 감사함 속에서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는 날 말입니다.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받아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앞에 놓을 것이며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애굽에 내려가 거기에서 소수로 거류하였더니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는데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 신 26:4-9
여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뿌리와 그들의 비참했던 과거가 다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저자는 그들이 겪은 비참한 과거에서 분노와 원망을 거두어내지 않습니다. 압제와 학대를 당한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 놀랍게도 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을 보아내고, 그 하나님께서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라고 감격스럽게 고백합니다. 분명 그들이 지나온 과거는 압제와 학대와 살육으로 얼룩진 고통스럽고 원망과 불평으로 얼룩진 과거였지만,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았더니 매 순간순간이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 '시간을 멈추고 싶을 만큼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신앙의 신비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우리가 당신을 믿도록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요 6:30)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다"는 겁니다.(요 6:31) 그러니까 그들이 말하는 의도는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 자기 조상들을 먹게 했듯이 당신도 표적으로 떡을 만들어 우리가 배불리 먹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은 언뜻 들으면 생존과 관련한 요구이지만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돌로 떡을 만들어보라던 사탄의 유혹과 닮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의미가 있습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요 6:32, 33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늘에서 떡을 내려 너희 조상을 먹인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그 떡은 참된 떡이 아니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구해야 할 떡은 배를 불려주는 떡이 아닌 세상에 생명을 주는 참 떡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먹는 음식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여러분의 아내 혹은 엄마의 수고를 통해 여러분이 조반을 드시고 교회에 나오셨겠지만, 그러나 좀 더 성찰해 보면 그 이전에 지난여름 내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태양과 비 즉 하나님의 은총을 지어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밥상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는 것이고, 오늘아침 이 밥을 내게 주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더 근원적인 생명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의 역시 바로 그러한 삶에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빌 4:4-6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이 말씀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이미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여러 차례 기뻐하라고 당부를 해왔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기뻐하라는 말을 두 번이나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그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이때 그는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상황 하나로만 본다면 그는 기뻐하기보다는 염려와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쁨을 잃지 않고 있었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서도 기뻐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바울은 그 해답을 '주 안에서'라는 어떤 상태에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의 감옥이 아닌 '주 안에서(엔 퀴리오 ἐν κυρίῳ)'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주 안에서'의 상태로 초청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빌립보의 성도들을 관용과 기도와 간구 그리고 감사함에로 초청합니다. 사실은 이 모두가 '주 안에서' 굳게 서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주 안에서' 그들이 관용하고, 기도와 간구를 잃지 않고, 감사함으로 서 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지는 깊은 은총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 4:7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말씀은 우리의 내면세계가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상태가 '보다 나은 존재'의 상태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호주 참사랑 부족 사람들은 생일이라고 무작정 축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작년보다 올해 더 나은 존재가 되었으면' 그걸 축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축하를 받아야 할 때가 언제인가는 자신밖에 모른다는 겁니다. 지금 우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감사를 하고 있으며, 무엇을 가지고 감사해야 하는 것일까요? 압제와 학대와 살육을 당한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돌보심에 감사해야 했던 이스라엘처럼, 때로 어둡고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내 삶 속에서도 한 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떡에 반응하고 집착하며 살아온 우리를 변화시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무엇보다 '주 안에서'의 삶을 살게 하시고, 그로 인해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호주 참사람 부족 원주민들이 용서의 길을 지나감으로서 '보다 나은 존재'가 되었듯이 우리 역시 한 해가 저무는 길목에서 자신을 돌아봄으로서 '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 갇혀 분노와 우울함 가운데 있지 않은가?
② 주 안에서 감사를 회복하고 보다 나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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