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 19주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
■ 읽기 | Lectio
구약 | 렘 31:27-34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 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 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응송 | 시 119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서신 | 딤후 3:14-4:5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 느니라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1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복음 | 눅 18:1-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렘 31:33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으로서의 당신의 말 씀을 어디에 두며, 어디에 기록하겠다고 말씀하십니까?
② 눅 18:1-8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의 비유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께 서 약속하신 새 언약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③ 딤후 3:14, 15을 묵상하십시오. 어려서부터 배우고 확신한 성경 말 씀에 대한 믿음은 궁극적으로 성도를 어디에 이르게 합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마음'에 새겨주신 말씀
존 웨슬리는 의도적으로 신학(theology)이라는 용어 대신 '디비니티'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디비니티(divinity)의 옥스퍼드 사전적 정의는 '하나님처럼 거룩한 이가 된 상태'입니다. 신학이 하나님에 대한 이성적 설명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디비니티는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져 가는 인간의 변화에 주된 관심을 둡니다. 그러니까 신학이 객관적 이론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디비니티는 '하나님을 어떻게 닮을 수 있을까' 하는 신앙실천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인데, 웨슬리가 신학이라는 표현 대신 디비니티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가 신학이론보다 성화(聖化 sancitification)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의미이겠습니다. 그런데 웨슬리가 신앙실천을 통한 성화에 이르기 위해 관심을 기울인 것 중의 하나가 '성경 말씀'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신앙적 삶의 표준'으로서 성경을 지목한 것은 1729년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설명'에서 성경을 '진리의 궁극적인 표준이며 참된 신앙의 유일한 표지'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1930년 6월에는 자신에 대해 "성경 외에는 어떤 책도 관심을 두지 않는 '한 책의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고 선언합니다. 물론 그가 한 책의 사람이 되기를 결심했다 해서 성경만을 읽었던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그는 의학과 역사 문학 등을 연구했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주신 통찰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오직 성경만이 진리의 궁극적 표준(標準)이고 신앙의 유일한 표지(標識)였습니다. 1746년에 그는 자신의 설교집 서문에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제가 알고 싶은 한 가지, 그것은 바로 '하늘로 가는 길(the way heaven)'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그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분은 한 책에 그 길을 적어놓으셨습니다."
그러니까 웨슬리가 '오직 한 책' 성경을 통해 추구하고 자 했던 것은 명백합니다. 그것은 곧 '하늘로 가는 길'로서 '하나님을 닮는 성화'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정말 깊은 성경읽기의 결과로서 선명한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며, 예수님 마음의 일부가 아닌 예수님 전체를 닮아갈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또 그는 '오직 한 책인 성경'을 읽음으로서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따르는 것'임을, 그리고 '주님과 더불어 내적·외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역시 웨슬리처럼 '오직 한 책' 성경을 통해 선명한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며, 예수님 마음의 일부가 아닌 예수님 전체를 닮아가며, 주님과 더불어 내적·외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성서일과는 일제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 있으며, 우리는 성경말씀을 읽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설 수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긴 것을 언급하시며 하나님께서 '마음에 기록해 두신' 말씀만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을 지키며 살게 할 것(렘 31:33)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만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딤후 3:16-17)고 말씀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로 말씀하시며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반문하십니다. 말씀 위에 세워진 믿음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며 기도와 실천의 삶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한 까닭에 오늘 응송에서 시인은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시 119:97)라고 노래하며, 말씀을 읊조림이 자신을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며(시 119:98) 스승보다 노인보다 명철하게 했다(시 119:99)고 고백합니다. 구약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 렘 31:31
"새 언약을 맺으리라" 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문득 '옛 언약'에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실제로 32절에서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은 언약이 깨어진 것이 확실하고, 언약을 깨뜨린 당사자가 '그들'이라고 인칭대명사를 써서 강조하시는 걸 보면, 언약이 깨지게 된 근본 원인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출 19:5, 6에 보면 하나님께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들을 탈출시키시면서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을 하시는데, 구약성경의 출발은 바로 이 약속을 기초로 합니다. 그런데 이 히브리들이 이스라엘을 건설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 살면서 마음이 변합니다. 그들은 말씀과 언약을 지키며 하나님의 소유로서 제사장 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려하기 보다는, 가나안의 토착 종교인 바알이 약속한 풍요와 안정에 더 마음 솔깃해 합니다. 주님은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을 거절하지 않으시는데(시 84:12), 그들은 탐심에 마음을 내어주고 우상을 섬김으로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체결한 약속의 파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를 지켜주실 수 없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패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예레미야의 영적 통찰 즉 예레미야가 바라본 역사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과의 약속을 파기한 대가로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을 위해 새 약속을 마련하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의 역할이란 그런 것입니다.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몰려갈 때, 그 길이 아니라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선지자라면, 끝내 돌아서지 않고 멸망의 길에 들어서 버렸을 때, 그 절망스러운 자리에서 함께 절망해 버리지 않고 다시 새롭게 희망을 말하는 사람, 선지자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 언약을 맺어주신 사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 렘 31:33
우리가 이 말씀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 즉 '토라(הרות)'를 그들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첫 언약인 시내산 언약에서는 언약의 말씀이 어디에 기록되어 전해졌습니까? 돌판에 새겨져서 전해졌습니다.(출 31:18;신 4:13;5:22;10:1-4) 그리고 훗날 모세는 죽음을 앞두고 율법을 율법책(신 31:26)에 써서 언약궤 곁에 둘 것을 지시합니다. 그런데 돌 판은 깨뜨려질 수 있고(출 32:19), 율법책은 분실되거나(왕하 22:8), 소각될 수 있습니다.(황하 36:23) 그러나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되면 그 말씀은 깨뜨려지거나, 분실되거나 소각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신 것에는 그보다 훨씬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심층적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전통에 있어서 '마음'이란 말은 모든 신체적, 정서적, 지성적, 의지적 그리고 도덕적 에너지의 원천을 의미합니다. 마음에서 의식적인 감정이나 기분을 느끼기도 하고, 마음이 이성과 지각과 이해의 중심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은 우리의 인격을 결정하며, 하나님께서 거처하시는 성전일 뿐 아니라, 사탄이 둥지를 튼 거점이 되기도 합니다. 사막의 교부 중 한 분인 마카리우스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영적훈련을 하는 사람의 주요 과제는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사막의 교부들의 가장 깊은 통찰은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마음을 통해 열려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돌판이나 책이 아닌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속에 간직된 여호와의 말씀이 죄를 막아주고 순종의 길로 이끈다는 확신은 구약성경 여러 곳(신 11:18;시 40:8;시 119:11)에서 발견되는데, 한 예로 시 119:11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렇게 주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기에 바로 오늘 응송에서 동일한 시인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겁니다.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 | 시 119:97
주의 말씀을 '마음의 서고(書庫)'에 간직하시고, 종일 작은 소리로 그 말씀을 읊조리며, 주님을 사랑하며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 눅 18:1-5
주님은 불의한 재판장에게 집요하게 매달려 간청함으로 뜻을 이루는 과부의 비유를 통해 마음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부여잡은 사람만이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이 비유를 표면적으로 보면 끈질긴 기도에 대해 말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깊은 교훈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에 있는 17장에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20절) 라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의 심판과 구원에 대해 길게 설명하셨습니다.(눅 17:10-31) 그런 다음 하신 마지막 말씀이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눅 17:31)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음에 그 어떤 말씀도 간직하지 않은 채, 그래서 말씀의 읊조림도 묵상도 전혀 없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사람들 위로 독수리가 모여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은 오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이 비유의 결론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눅 18:7, 8a
자세히 읽어보면 이 비유는 17장에 이어 '인자가 올 때'를 염두에 두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자'는 마지막 때 심판자로 오실 주님을 가리키는 묵시문학적 표현입니다. 인자는 마지막 때 세상에서 참된 정의를 세우고 새로운 세상을 일으킵니다. 그 세상은 이 세상과 완전히 다릅니다. 더 이상 불의한 판사에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인자가 세울 그 나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나라의 주인일까요?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며 믿음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눅 18:8b
바로 여기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안고 있는 영적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그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던 과부의 심정이 되어 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비유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말씀이라고 전제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배인 표현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영적 긴장감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이 영적 긴장감이 우리에게 없다면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구약의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레미야의 약속에 따르면 새 언약의 담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 렘 31:34b
그러나 이 새 언약은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의 현실은 새로운 언약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들은 그만 믿음을 상실했습니다. 믿음의 상실은 희망의 상실로 이어졌고, 희망의 상실은 기도의 상실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예수님 시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8a) 어떤 사람에게 이 새 언약이 이루어질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말씀을 부여잡고 깨어있는 사람,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새 언약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말씀을 부여잡고 깨어있는 사람, 말씀을 부여잡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이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당부합니다.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딤후 3:14
'배우고'는 헬라어로 '에마데스(ἔμαθες)'인데, 뜻을 이해하며 깨닫는 것을 의미하고, '확신하고'는 헬라어 원문에 '에피스토데스(ἐπιστώθης)'로 되어있어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거하라'의 헬라어 원문은 '메네(μένη)'인데,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며 머무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에 기록된 말씀의 바른 뜻을 이해하고 깨달아, 믿음을 갖게 된 상태를 끝까지 유지하고, 끝까지 믿음 안에 머물러 있는 성도에게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약속합니다.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딤후 3:15
참된 지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그 지혜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내 마음에 간직한 성경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힘주어 말씀합니다.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딤후 3:16, 17
아직도 한 줌도 안 되는 사람의 지혜로 세상을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웨슬리가 '오직 한 책의 사람'이 되어 말씀을 통해 '하늘로 가는 길'을 찾고, '그 길'로서 '하나님을 닮는 성화'에 이르렀듯이, 우리 역시 말씀의 사람이 되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대로 행하며, 예수님 마음의 일부가 아닌 예수님 전체를 닮아가며, 내적·외적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인자가 오실 때 믿음을 칭찬받는 바로 그 믿음의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 안에서 구원의 지혜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지 않는가?
② 말씀을 내 마음에 간직하고 종일 읊조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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