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8주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호 11:1-11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 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 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 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 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 니라
응송 | 시 107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 로 채워주심이로다
서신 | 골 3:1-11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 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 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 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 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 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 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복음 | 눅 12:13-21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 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 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 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 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12:19을 묵상하십시오. '어리석은 부자'의 자기 영혼을 향한 독백 을 들으며 그에게 갖는 느낌은 어떠합니까?
② 호 11:1, 2을 묵상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 냈거늘, 이스라엘의 태도는 정작 어떠했습니까?
③ 골 3:1, 2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존 재로서 위의 것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라
아주 옛날, 줄무늬를 한 작은 호랑 애벌레 한 마리가 오랫동안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던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습니다. "세상아, 안녕. 햇빛 속으로 나오니까 정말 환하구나" 하면서 세상에 나와, 자기가 태어난 곳인 초록 나뭇잎을 갉아 먹으면서 의미 없이 몸을 불려가던 호랑 애벌레는 어느 날 먹는 일을 멈추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런 삶과는 다른 그 이상의 것이 있을게 분명해. 그저 먹고 자라기만 하는 건 따분해."
그래서 호랑 애벌레는 오랫동안 그늘과 먹이를 제공해준 정든 나무에서 기어 내려와 '그 이상의 것'을 찾아 떠납니다. 풀과 흙과 작은 곤충들, 애벌레들이 마음을 설레게 했지만, 그 모든 것들이 호랑 애벌레를 만족시켜 주지는 못했습니다. 하루는 무척 바삐 기어가고 있는 애벌레 떼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둘러보니 하늘로 점점 치솟고 있는 기둥이 보였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들 틈에 끼어들었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기둥은 꿈틀거리며 서로 밀고 올라가는 애벌레 더미, 말하자면 애벌레 기둥이었습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찾으려는 것이 저곳에 있을 지도 몰라." 호랑 애벌레는 들뜬 마음으로 기둥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처음 뛰어든 얼마 동안은 충격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호랑 애벌레는 사방에서 떠밀리고 차이고 밟혔습니다.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 그런 상황에서 애벌레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서로 밟고 기어오르고 서로를 누르는 경쟁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올라온 호랑 애벌레는 자기 밑에 눌려 숨을 헐떡이는 한 노랑 애벌레와 만나게 됩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 노랑 애벌레를 밟고 올라서다 죄책감을 느껴 노랑 애벌레와 함께 꼭대기로 오르는 것을 포기합니다.
땅으로 내려온 노랑 애벌레와 호랑 애벌레는 풀밭에서 장난치며 풀을 먹고 점점 살이 쪄 갔습니다. 다른 애벌레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 그들은 그토록 즐겁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호랑 애벌레는 꼭대기에 대한 열망 때문에 노랑 애벌레와의 행복한 삶을 포기하고 또다시 애벌레 기둥을 오르기로 합니다. 노랑 애벌레는 그런 호랑 애벌레를 기다려줍니다.
기다리던 노랑 애벌레는 한 늙은 애벌레와 만나는데 그에게서 나비가 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하고 묻자 늙은 애벌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노랑 애벌레는 정말 간절함으로 고치를 통과해 나비가 됩니다.
한편 호랑 애벌레는 다시 애벌레 기둥을 오릅니다. 하지만 기둥의 정상에 거의 다다랐을 때, 위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리를 듣습니다. "뭐야, 기껏 올라왔는데 아무 것도 없잖아!!" 조금 후에 또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기 좀 봐. 기둥이 또 있어. 그리고 저기도 사방이 온통 기둥이야!" 호랑 애벌레는 실망만이 아니라 분노마저 느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올라온 기둥이 수천 개의 기둥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니!"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때, 날개 달린 생명체 하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 눈빛은 호랑 애벌레의 두 눈을 슬픈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길을 보고 호랑 애벌레는 오래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 나비들만이 ..." 호랑 애벌레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되어 날아올라야 하는 것임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호랑 애벌레는 그 날개 달린 생명체가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임을 알게 되고, 온몸으로 날갯짓하며 자신을 믿어주고 한 단계 한 단계 끌어주는 노랑나비 덕에 비로소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오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트리나 폴러스(Trina Paulus)'의 베스트셀러 '꽃들에게 희망을'의 줄거리입니다. '머리를 건드리는 책이 아니라, 마음을 건드리는 책'이라고 누군가 소감을 남겨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애벌레와 나비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애벌레처럼 밀리고 채이고 밟고 밟히며 경쟁적으로 자기가 만난 기둥을 기어오르며 살아갑니다. 무턱대고 본능적으로 기둥을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냥 먹고 자라는 것, 그 이상의 의미'을 찾아, 사유하고 성찰하며 기둥을 오르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좋은 스승을 만나 일찍부터 고치를 틀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에서 우리는 흡사 애벌레를 빼어 닮은 사람들을 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몫의 유산을 받을 수 있도록 형을 설득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 눅 12:13
예수시대의 사람들은 예수가 랍비의 훈련을 받지는 않았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내재된 권위를 보고(4:31, 32) 그가 랍비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본 것 같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재산을 상속받을 때, 형제간의 분배에 대해서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고, 법규에 따라 분배가 정당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은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이 사람의 요구를 거절하십니다.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눅 12:14-15a
사실 예수님께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권위나 능력이 없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청원을 거절하신 이유는 그 청원의 배후에 깃든 본질적인 문제 즉 탐심을 보셨던 것 같습니다. 희랍어로 탐심을 '플레오넼시아(πλεονεξία)'라고 하는데,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킵니다. 더욱이 이 '플레오넼시아(πλεονεξία)'는 단지 재물에 대한 탐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모든 모든 종류의 악한 성향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탐심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를 예수님은 바로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 눅 12:15b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께서 인생의 방점을 '소유'가 아닌 '생명'에 찍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인데, 그 생명을 영위하거나 유지시켜주는 것, 그나마 그 역할에서조차 '소유'는 배제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소유의 넉넉함을 추구하는 탐심은 가장 소중한 '생명'으로부터 사람을 점점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바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 눅 12:16-18
흥미로운 건 소유의 넉넉함에 자기 '생명'을 기대고 있는 이 부자를 향해서는 우리가 '어리석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서도 정작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우리 자신을 향해서는 '어리석은'이라는 형용사를 잘 붙이지 않는 겁니다. 그 어리석음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의 독백에서 어리석음이 배어나옵니다.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 눅 12:19
지난 주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시며 가르쳐주신 기도 중 하나가 이겁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눅 11:3)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내일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주시리라는 믿음, 그래서 나의 내일을 주께 맡기는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비로소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 등장하는 부자가 어리석다는 것은 '여러 해 쓸 곡식' 그것이 자기 영혼을 편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독백을 읽으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독백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의 독백에는 이웃도 없습니다. 그의 독백에는 종말도 없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로지 자기, 그리고 자기 곡간에 넘쳐나는 곡식뿐입니다. 한해의 풍년과 넘쳐나는 곡식에 취한 그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어서 자기 안에 갇혀버린 인격을 보여줍니다. 그는 스스로 자폐적인 마음이 되어서 대화의 상대로도 자기 영혼을 불러냅니다. 그는 어리석었을 뿐 아니라,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 눅 12:20
이제부터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는 그에게 주님은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오로지 자기와 재물에만 정신이 팔려서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무분별함이 가져다 준 종말은 허무하고도 허무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초록 나뭇잎을 갉아 먹으면서 의미 없이 몸을 불려가던 줄무늬 애벌레가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것 외에 그 이상의 것이 틀림없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한, 딱 그만큼의 분별력만 가지고 있었어도 그렇게 허무한 종말을 선고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속상한 말씀을 하십니다.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 호 11:1-3
이스라엘이 어리고 약했을 때, 그들이 어리석고 패역했을 때, 그들이 추방당한 아이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마치 유모가 젖먹이를 양육하듯 하나님은 그들을 양육하셔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어리고 철이 없던 이스라엘은 그 자유를 악용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져갔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을 부르셨지만 그 누구도 그 음성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바알은 이스라엘을 높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바알을 부른 이유는, 바알이 농작물을 풍요롭게 해서 여러 해 쓸 물건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리고 유치한 사람의 어리석음은 시대마다 형태만 달랐지 어쩌면 그렇게 그 속성은 동일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호 11:5-6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앗수르 사람들이 그들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자기들의 계책대로 살면 자유로울 줄 알았는데, 칼이 그들의 성읍을 치고 말았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결국 주님의 이 말씀은 시대와 상황만 달리할 뿐, 하나님 없이 어리석은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여지없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서신서에서 바울은 당부합니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 골 3:1-3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을 향해 바울은 '찾으라'고 말하고,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찾으라는 말씀입니까?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겁니다. 무엇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까?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겁니다. '위엣 것'을 뜻하는 헬라어 '아노(ἄνω)'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럴 경우에 이 말씀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위엣 것'을 뜻하는 '아노(ἄνω)'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어떤 '덕목'들로 해석될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그리스도의 평강, 감사, 시와 찬송과 노래 등등입니다. 그런데 사실 '위엣 것'의 이 두 가지 의미는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인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용서 등등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중에 '그러므로' 라는 시가 있습니다.너는 비둘기를 사랑하고
초롱꽃을 사랑하고
너는 애기를 사랑하고
또 시냇물 소리와 산들바람과
흰 구름까지를 사랑한다.
그러한 너를 내가 사랑하므로
나는 저절로
비둘기를 사랑하고
초롱꽃, 애기, 시냇물 소리,
산들바람, 흰 구름까지를 또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생각함으로서 우리도 저절로 그 분이 사랑하신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용서, 그리스도의 평강, 감사, 시와 찬송과 노래까지를 사랑하는 진정한 '새사람'(골 3:10)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결코 서로 꼬물대며 밟고 기어오르고 서로를 누르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창조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당신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 십자가에서 대신 희생당해주신 이유는 우리가 신앙의 날개로 날갯짓하며 날아올라 하늘의 사람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골 3:5
땅의 사람이 아닌 하늘의 사람,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이 뜨거움 여름을 힘차게 날갯짓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땅에 속한 자로 땅의 것에 관심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② 내 시선과 존재의 중심을 '위엣 것'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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