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7주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Lectio Divina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호 1:2-10
2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 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3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 여 아들을 낳으매 4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 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 니라 6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 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 라 하시니라 8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응송 | 시 85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 에게 주소서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서신 | 골 2:6-15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 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 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 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 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 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복음 | 눅 11:1-13
1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 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 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 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6 내 벗이 여행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 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 노라 하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 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눅 11:2-4을 묵상하십시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기도의 내용' 는 무엇입니까?
② 골 2:6-7을 묵상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은 어디에 뿌리를 박은 믿음이어야 합니까?
③ 호 1:2-3을 묵상하십시오.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이는 하나님의 요구 에 대한 호세아의 반응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기도는 신앙의 성장을 위한 내면의 여행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기도의 씨는 뿌려지고, 농사짓는 수고와 바람과 햇살의 애씀으로 마침내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튼실한 신앙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내적 일치에 이르게 되면 우리 안에 신비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만성적인 불평과 원망이 감사로 바뀌고, 자신을 위한 기도가 이웃을 위한 기도로 바뀌고, '자기애(自己愛)'가 '하나님과 이웃사랑'으로 바뀌게 됩니다.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를 '하나님의 임재연습'이라고 표현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내 현실 안으로 모시기 위한 연습이 기도인데, 그러나 우리 삶은 너무 번잡하고, 우리를 둘러싼 소유의 소리는 너무 커서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기 어려운 까닭에 하나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한 연습이 우리에게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배워야' 진정한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몇 가지 가르침을 한데 모아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를 하고 계셨습니다. 기도를 마치시고 막 일어나시려는데, 그 때 한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익명의 제자가 물어온 질문을 통해 오늘 복음서에서 세 가지로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째로, 2-4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기도의 내용'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둘째로, 5-8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기도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9-13절의 말씀을 통해서는 '기도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 눅 11:2-4
이 말씀은 '기도의 내용'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이 일곱 개의 기도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비해, 누가가 전해주는 주기도문은 다섯 개의 기도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기도의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청원,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모든 죄에서 자유를 얻은 우리의 순전한 생명을 위한 청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기도를 그저 무의식적으로 '외우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주기도문을 예배를 마치는 관문 정도로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누가가 정리해서 전승시켜준 이 기도는 우리가 외우기만 하면 되는 그런 기도문이 절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층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선 이 기도가 당시 사람들에게 주었던 신선한 충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초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아버지를 '아브(ab)'라고 불렀던 것보다 한결 더 친근한 표현으로 하나님을 '아빠(abba)'라고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에 원초적인 친근함을 더해 '아빠(abba)'라고 부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자녀로서의 마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린아이로서의 마음을 갖게 하신 겁니다. 왜냐하면 이 어린아이다운 태도야 말로 기도할 때 가장 바람직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복음서에서 주님 발아래 앉아있던 마리아에게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경직된 표정으로 종의 자세로 앉아있는 긴장된 마리아입니까? 사랑스럽고 정겨운 표정으로 딸처럼 앉아있는 마리아입니까? 저는 두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는 매우 정겨운 자리였고 대화가 무르익는 자리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친근하게 부르고 가슴으로 하나님을 아빠로 인식할 때, 우리 대화는 정이 흐르는 대화가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에게는 나머지 기도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 하나를 바꿔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벽을 허물어버리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아빠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눅 11:2
예수님의 이 기도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안타까움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여겨지지 않는 곳은 어디일까요? 우리 시대를 한 마디로 진단한다면 '실천적 행동주의' 혹은 '실천적 물질주의'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이 '행동주의'는 거의 병리적 현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행동'을 요청받고 있고, 그 마음의 분주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고자 결심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교육합니다.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는 그러한 생각을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라고 불렀습니다. '영혼이 구원받는 데 있어 인간의 노력이 우선한다'는 이 '펠라지우스주의'를 아우구스티누스는 경계했습니다. 나의 거짓 자아가 거부될 때, 비로소 기도하게 되는 것인데, 실천적 행동주의 혹은 실천적 물질주의가 영적생활을 가로막다보니 사람들은 갈수록 마음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밀어내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자기(ego)'를 만들어내고, '기도하지 않는 자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자가 자기숭배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 자기', '기도하지 않는 자기'로부터 단호히 돌아서겠다는 의지를 담아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내 존재 안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비로소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이게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주님의 기도를 보십시오.나라가 임하시오며 | 눅 11:2b
본래 원문대로 옮기면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입니다. 교회가 거짓자아의 우상숭배로부터 돌아섬으로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게 될 때, 비로소 거기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기도에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자주 간청했습니다. 회당예배의 설교 마지막에 하는 카디쉬 기도의 두 번째 구절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사는 동안, 너희의 날에, 이스라엘의 모든 집이 살아있는 가까운 시간에, 그가 그의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물론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카디쉬 기도와는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국가적, 정치적 의미를 벗어나 모든 민족을 향한 보편성을 띠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거룩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우리가 기도할 내용'입니다. 그러면 이 기도는 어떠한 태도로 해야 할까요? 주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 눅 11:5-8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기도하는 태도'는 열정과 끈기와 집중력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는 끊임없는 집중과 마음 모으기입니다. 주님은 기도에는 때가 따로 없다는 것을 '간청하는 친구의 비유'를 통해 말씀해주십니다. 때가 따로 없다는 뜻은 아무 때나 생각나면 기도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때가 기도의 때'라는 뜻입니다. 참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기도의 시간이 아닌 시간이란 없는 것입니다. '행주좌와 언묵동정(行住座臥 言黙動淨)' 즉 다닐 때나 머물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웠을 때나, 말할 때나 침묵할 때나, 활동할 때나 고요할 때나 모기가 쇠뿔을 뚫듯이, 낙숫물이 암반을 뚫듯이,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얻고, 아버지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 있기를 '념(念)'하고 '원(願)'하는 것. 이것이 '기도의 태도'입니다. 이제 주님은 마지막 9-13절의 말씀을 통해서 '기도의 가치' 즉 '기도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기도의 본질적 가치'는 성령을 받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 눅 11:11-13
성령은 사람들이 흔히 구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내용'으로 또 '올바른 태도'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시는데, 그 '좋은 것'이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이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이유는 우리는 우리의 실존을 부분적으로 이해할 뿐이지만, 성령은 우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선은 언제나 '입장'이라는 주관성에 제한되지만,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체적인 안목으로 우리가 직면한 모든 '상황(context)'을 판단하시고, '말씀(Text)'에 합당하게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따라서 가장 완벽한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현대 기독교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현대의 교회들은 외면하고 있거나 멀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라'시는 기도는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기도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열망하며 기도하지 않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기보다는 평생을 먹고도 남을 양식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입만 열면 성령 충만하기를 기도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성령 충만과 주님께서 주시려는 성령 충만에는 거리가 있는 듯합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골 2:6-7
우리 기도는 성서적이어야 합니다. 성서적 기도는 내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을 내 속에 지니고, 예수님의 바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음도 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믿음을 간직하고 그 믿음을 기도로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행함도 우리의 기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에 뿌리를 박고 거기에서부터 다시 세워져야 합니다. 심지어 내 바람과 전혀 반대되는 사안일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바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조지 A. 말로니가 '현대인의 영성'에서 한 말이 기도에 대한 우리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마음이란 신체의 일부분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 대전에서, 하나님을 응시하며 '예' 라고 대답하는 인간의 전 존재이다. 이 전 존재에 대한 기도가 오늘날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전 존재인 '마음'이, 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응시하며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도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끝에 조지 말로니는 호수를 예로 듭니다. 호수는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부분, 암석부분, 식물이 군생하는 부분, 진흙부분 등이 호수의 각 부분을 구성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이 호수가 호수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을 넘치게 해서 호수 속으로 보내는 '샘'이 그 호수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듯이 인간에게도 감각, 감정, 심정 등 여러 가지 층이 있고, 그 층들은 유전이나 교육, 사회 환경에 의해 정해지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부분이지 진정한 인간이 아니라는 겁니다. 생명을 인간에게로 흘려보내는 샘, 그 생명의 샘이 인간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께 '예!!' 해야만 하는 것이고, 그 '예!!'가 바로 기도이고, 그 '예!!' 하는 기도를 통해 우리는 내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왕래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호세아를 보십시오.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 호 1:2
여호와를 떠나 음란하게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돌이키기 위해, 창녀를 아내로 맞아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에 부딪칩니다. 이게 과연 따를 수 있는 말일까요?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 호 1:3
놀랍게도 호세아 선지자는 '왜'냐고 묻지 않습니다. 자기 존재의 근원이신 여호와께 '예'로서 순종합니다. 그리고 이 순종 하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그 땅에 이루어집니다. 오늘우리가 호세아처럼 할 수 있을까요? 기도는 영적투쟁에서 으뜸으로 중요한 것이고, 기도는 행동이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 요한 클리마코스는 '수덕교본'에서 '이 세계의 바탕은 기도'라 했습니다.(티토 콜리안더 '참 자유에 이르는 길 수덕교본' 박효섭 역 '카리스마타수도회 p.74) 그러한 까닭에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앞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할 기도의 원형으로 여겨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이 드러나야 하고, 우리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나라가 임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를 복음서의 '간청하는 친구'처럼 모기가 쇠뿔을 뚫듯이, 낙숫물이 암반을 뚫듯이, 일심일념으로 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실 것입니다. 그 성령의 임재하심 속에서 우리의 모든 기도가 응답을 받아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거룩이 이루어지고, 우리의 내면에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를, 그리고 우리 내면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열방을 향해 확장되어 가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주님의 뜻과 무관한 나의 바람을 기도로 하고 있지 않은가?
② 성서적인 기도의 '내용과 태도와 가치'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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