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 후 제6주 말씀이 동기가 된 행동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구약 | 암 8:1-13
1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 주리이니라 2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 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를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3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며 곳곳에 시체가 많아서 사람이 잠잠히 그 시체들을 내어버리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7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 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8 이로 말미암아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주민이 애통하 지 않겠느냐 온 땅이 강의 넘침 같이 솟아오르며 애굽 강 같이 뛰 놀다가 낮아지리라 9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 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10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 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 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 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응송 | 시 5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
서신 | 골 1:15-29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 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 심이라 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 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 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 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 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 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 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 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복음 | 눅 10:38-42
38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 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 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 하고 근심하나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 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묵상 | meditatio
① 암 8:11절을 묵상하십시오. 양식이 없어 주림보다, 물이 없어 갈함 보다 더 고통스러운 심판은 무엇입니까?
② 눅 10:42절을 묵상하십시오.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했던 마르다 와 달리 마리아가 선택했던 '좋은 편'이란 무엇이었습니까?
③ 골 1:25절을 묵상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육체로 감 당하며 동시에 바울이 이루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말씀이 동기가 된 '행동'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판결에 대한 경제보복조처를 발표한 후에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핵심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에 들어가면서 두 나라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대결로 치닫고 있습니다. 일본은 "적절한 수출관리 제도의 운용을 위한 것"이라며 보복조처가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그러나 일본 언론들도 '징용문제에 대한 보복조처'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강제징용으로 우리 선조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인권유린과 불법을 자행해놓고, 사과는 못할망정 피해배상 요구를 경제보복으로 틀어막으려 하는 일본이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최소한의 외교적 양식과 예의마저 저버린 일본의 행태에 대응해서 우리나라 정부도 점차 강경해지고 있고,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온 오프라인 상에서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불매할 일본 상품과 그것을 대체할 제품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일본여행카페가 '휴업'을 선언하는가 하면, 자발적인 1인 시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는 지겨우리만큼 이런 대립과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해와 셈법이 난마처럼 얽혀 있겠지만, 사실 이 모든 현상들은 어둡고도 음산한 동일한 영적 뿌리에서 파생되고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첫 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인간과 세계의 창조와 타락 이야기는 한 마디로 인간의 통합과 분열의 신학적 실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통합되어 있었을 때, 그는 하와와 '살 중의 살이며, 뼈 중의 뼈'였고, 자연은 그와 이웃이자 동료였고 친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갈등 없이 두루 원만하게 통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는 순간 그는 어둠에 빠져 심각한 분열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하와와의 분열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자연과의 불화로 이어지고, 마침내는 자신과의 내부분열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아담은 하나님과의 영적 일치 속에서, 영이 혼을 지배하고, 혼은 육체를 지배하고, 육체는 물질을 지배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놓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물질이 몸을 지배하고, 몸은 혼을 지배하고, 혼이 영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영은 어두워져 일치와 균형과 조화를 상실한 채 분열과 갈등과 충돌로 치닫습니다. 현대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대결과 갈등의 이면에는 이토록 어둡고 음산한 영적 타락이 원인으로 존재합니다. 성 마카리우스(Pseudo-Macarius)는 그런 어둠속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이 가시적 세계와 거기서 발견되는 만족은 그저 육체를 달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영혼의 병은 깊어지고 고통은 더 심해진다."지난 주 구약의 말씀에서 우리는 아모스의 자기소개를 보았습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고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다. 나는 다만 목자이며 뽕나무를 기르는 사람이다. 내가 양 떼를 몰고 갈 때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다"(암 7:14-15) 선지자가 아닌 평범한 농부요 양치기에 불과한 아모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거리로 나섰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뭔가 시대가 잘못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시대적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아모스의 일갈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 암 8:4
여기 "가난한 자를 삼키며" 라는 표현에서 '삼키며'의 히브리어 단어는 '샤아프(ףאשׁ)' 즉 '짓밟으며'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상류계급을 이루고 권력을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짓밟아 망하게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소중한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존중받으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사랑과 의의 실천이라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여부를 판별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하나님과의 아름다운 통합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고, 혼은 육체를 지배하고, 육체는 물질을 지배하는 삶이 아닌, 물질이 몸을 지배하고, 몸은 혼을 지배하고, 혼이 영을 지배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과도 이웃과도 심지어 자신과도 심각한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그들이 신앙인이었음을 암시해 줍니다.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 암 8:5a
여기 월삭은 히브리어로 '하호데슈(שׁדה)'라고 해서 음력으로 달이 시작되는 첫 날(the New Moon)을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날은 언약법으로 규정된 축제일이었습니다.(민 10:10, 28:11) 구약성경에 가끔 안식일과 쌍을 이루며 나타나기도 했는데, 오늘 말씀에서도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라고 그들이 조급해 했던 것을 보면, 당시 월삭과 안식일은 곡식을 매매할 수 없도록 율법이나 관습으로 규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월삭과 안식일의 통제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월삭과 안식일이 지나면 곡식을 어떻게 매매하겠다는 것입니까?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 암 8:5b-6
'에바'는 양(量)을 재는 단위로서 약 18리터에 해당하고, '세겔'은 무게를 재는 단위로서 약 12그램에 해당합니다. '에바를 작게 한다'는 것은 곡물의 양을 속이는 것을 말하고, '세겔을 크게' 한다는 것은 물건의 무게를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거짓 저울'로 사람을 속이기도 했고, 심지어 사람을 매매하는 것도 불사했습니다.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샀다'는 것은, 거짓저울로 사람을 속여서 쌓은 재산을 가지고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사들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힘없고 가난한 자를 매매한 가격은 '신 한 켤레' 값이었습니다. 과연 그들은 그렇게 돈을 벌어서 행복했을까요? 돈이 진정으로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을까요? 마카리우스의 경고에 따르면, 그렇게 하면 할수록 영혼의 병은 깊어지고, 고통은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란 그렇게 분열되고 해체된 인간실존을 다시 통합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가는 영적 활동입니다. 성경에 가득한 영적 가르침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하나님께로부터 이탈되어 불행의 짙은 그림자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하나님 안으로 되돌릴 수 있는 평형추라 하겠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고 신앙인이었음에도 어쩌다가 이런 사람들이 되고 말았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과 급속도로 분열되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양을 치고 뽕나무를 배양하는 농부인 아모스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아모스가 말씀을 듣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 시대로 봐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역사가 어려움에 직면할 때, 당신 뜻에 마음과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시대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들어야 하고, 말씀의 다림줄로 자신과 나라의 상태를 달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에 의거해 자기실존과 역사를 부여잡고 통절하게 고뇌할 때, 그 말씀은 나를 살리고, 우리 민족을 살게 하는 생명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러한 노력에 게을렀을 때,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이렇게 경고하십니다.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 | 암 8:7
'하나님의 맹세'를 히브리어로 '니슈바 야웨(הוהי עבשׁנ)'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선포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이탈해 육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위를 절대로 잊지 아니하리라"고 맹세까지 하시면서 징벌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야곱의 영광'이 그들을 징벌하기 위한 맹세의 도구가 된 것에 대해 그들은 신앙적으로 애통했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내릴 징벌을 아모스는 이렇게 소개합니다.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게 하며 모든 사람에게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가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애통하듯 하게하며 결국은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 | 암 8:9-10
여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으로 주신 '야곱의 영광'이 이제는 그들을 징벌하기 위한 '맹세의 도구'가 되었듯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영광스러운 선물들이 이제는 그들을 심판하시는 척도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해는 캄캄함으로 대체됩니다. 절기는 애통으로 대체됩니다. 노래는 애곡으로 대체됩니다. 독자는 죽음으로 대체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큰 징벌은 다름 아닌 더 이상 말씀이 들려오지 않는 기갈이었습니다.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 8:11
이스라엘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 그 자체이고, 힘의 원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북에서 동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그리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말씀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굶주림'이 올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임을 아모스는 분명히 합니다. 복음서에 의미 있는 장면이 하나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찾아가신 이야기입니다.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 눅 10:38
앞의 몇몇 구절을 근거로 보면 이곳은 베다니로 보이는데, '마르다'라 불리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누가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 눅 10:39
우리는 이 두 말씀을 통해 두 자매에게 보이는 '예수님을 대하는 다른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이 두 모습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닙니다. 지금 두 자매는 성경이후로 가장 오래되고 권위를 인정받는 미쉬나 전통에서 명령하는 '손님 접대법'에 각자의 방법으로 충실히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먼저 마리아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그녀가 주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들었다는 것인데, 케네스 베일리는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에서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가말리엘 발아래에서 자랐다"(행 22:3)고 묘사한 것을 예로 들면서 "랍비의 발아래 앉는다는 것은 그 랍비의 제자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마리아는 랍비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러면 마르다는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 누가는 그녀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합니다.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 눅 10:40
언니 마르다는 굶주리고 목마른 이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대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깊은 애정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하는 그녀의 손길이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아름다움은 동생을 힐난하는 말에서도 드러납니다.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 눅 10:40b
대개 이 장면은 일에 분주한 마르다가 예수님께 짜증을 부리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님이 칼럼에서 이 부분을 새롭게 해석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마르다의 이 행동은 미쉬나에서 명령하는 '손님 접대법'에 충실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마르다는 '주인'이라는 뜻인데, 그녀는 예수님께 "마리아에게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라고 말함으로서, 미쉬나에서 명령하는 손님 접대법대로 자신의 주인의 권리를 예수님께 넘겨드렸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자매의 다른 모습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 눅 10:41, 42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마르다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더 '좋은 편'을 선택한 마리아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마르다가 굶주리고 목마른 예수님 일행에게 먹고 마실 것을 대접한 일은 '좋은 것'이나 그러나 '더 좋은 편'이 있다는 것입니다. 굶주린 이를 대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러나 시간과 함께 지나가고 마는 일입니다. 어쩌면 마르다가 마리아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이 도착하시기 전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자신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도 주님께 드린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마르다의 헌신은 예수님의 뜻과 상관없는 그저 일상적인 분주함의 연장인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지금 진리를 먹고 있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설교집에서 "시중드는 일로 바빠서 거룩한 말씀에 관한 지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라고 당부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에 골몰하기.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야하고, 흔들림 없이 마음으로 쫓는 길이어야 합니다. 다른 곁길은 아무리 중요해보이더라도 부차적인 것으로, 더 낮은 길로, 그리고 당연히 위험한 길로 여겨야 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는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성경의 가장 아름다운 예입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하신 주님께서는 비록 마르다를 비판하는 기색을 비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마리아를 칭찬하심으로서 마르다를 그보다 낮은 단계에 두셨습니다. 또 마리아가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심으로서, 마르다의 몫은 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말씀합니다.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 골 1:24, 25
아모스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마리아의 말씀에 대한 열망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육체로 감당하며 동시에 말씀을 이루려 애를 썼던 바울의 삶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지금 우리는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분노와 애국심으로 뭉쳐가고 있습니다. 일본이 저렇게 외교적 양식과 예의마저 저버린 채 지난날 우리에게 자행한 인권유린과 불법에 대해 사과 한 마디 없이 벌이는 결례들에 분노를 느낍니다. 그런데 마카리우스의 경고에 따르면, 저럴수록 자기들 영혼의 병은 깊어지고, 고통은 더 심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시국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것이겠습니다. 무엇보다 주님 무릎 아래 앉아, 어두운 시대의 아모스처럼, 예수님 발치의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노력한 바울처럼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두 나라 사이에 엄중히 실현되도록 엎드려 기도하고, 저들의 분열되고 해체된 인간실존을 불쌍히 여기고 저들이 저 짙은 어두움 속에 아주 갇혀버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애국심을 가지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운동에도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도우실 것입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말씀이 동기가 되지 않은 부산스러운 행동이지 않은가?
② 말씀의 든든한 근본 위에서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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