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성령강림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2:1-4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응송 | 시 104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서신 | 롬 8:14-17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복음 | 요 14:8-18, 25-27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 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 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25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 묵상 | meditatio
① 요 14:17, 18을 묵상하십시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어디에 계시겠다고 요한은 말씀합니까?
② 행 2:2-4을 묵상하십시오. 성령은 어떠한 모습으로 강림하셨으며,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③ 롬 8:16, 17을 묵상하십시오. 성령께서는 무엇을 증언해 주시며, 자녀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오늘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순절이란 '유월절 후 오십일 째 되는 날'이란 뜻인데, 그 날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율법으로 계약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바로 그 기념일에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강림하셨는데, 이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구원사 전체 드라마에서 결정적으로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매개로 해온 계약종교는 폐기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적 일치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 획기적 사건이 바로 성령강림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각 사람 안에' 계시게 됨으로써 사람은 이제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성 아타나시오스에 따르면, 하나님이 사람 안에 계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성 대 바실리오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되라고 초대받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창 1:26, 27) 이유인데, 이른바 그것을 '모상(模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모상이라 할 때는 신체적, 물질적, 외적인 측면을 뛰어넘는 그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영적 존재로, 인격적 존재로 드러내시는데, 사람에게 하나님의 그 영적이고, 인격적인 형상이 '투영(投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본질의 중요한 그 무엇이 투영(投影)되어 있는 존재', 그것이 다른 피조물들과 구별되는 인간의 내적이고 영적인 특성입니다.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 존재 안에 투영되어 있는 하나님의 모상' 즉 '하나님의 영과 인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것을 되찾아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감내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이고, 마침내 약속하신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되심으로서 우리가 영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상을 회복하고, 타락 이전의 역사로 되돌아 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의 정점은 바로 성령강림으로서 그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한 전제를 토대로 성령님을 성찰해 보면, 그 분은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모든 피조물 세계를 타락 이전의 원형으로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가를 통해 "베니 크레아토르 스피리투스(Veni Creator Spiritus!)" 즉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안에 성령을 모셔 들임으로서, 성령과 함께,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몸과 인격과 영이 하나님의 '모상'을 회복하는 여정인 것입니다. 오늘 성서일과의 말씀들이 일제히 그 사실을 증언합니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바로 그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요 14:16) 있게 하겠다고 하시고,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고 약속하십니다. 즉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시면,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셔서 하나님 모상대로 살도록 돕겠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의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사도들이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행 2:4) 말하기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고 선언합니다. 결국 오늘 복음서의 말씀과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성령의 은총 안에서 하나님의 모상이 완전히 회복된 인간상입니다. 복음서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서는 매우 우울한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 요 14:8
빌립의 이 요구에서 불안함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립의 불안함의 크기만큼이나 예수님의 대답에서도 답답함이 묻어납니다.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주님의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요 4:24)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체를 가지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그 분은 영원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형체 혹은 형상으로 삼으시고 존재해 오셨습니다. 즉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의 존재하심을 나타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며(빌 2:6), 성부 하나님의 계시자이셨습니다. 이레네우스는 '이단 반박'에서 그 사실을 이렇게 보충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아들은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서 아버지에 관한 지식을 드러내줍니다.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에 관한 지식입니다.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지는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요 14:10
그런데 왜 빌립은 예수님에게서 성부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걸까요? 빌립의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는 것입니다. 노자의 교육론이 담겨있는 도덕경 10장을 읽어보면 "재영백포일(載營魄抱一)하여 능무리호(能無離乎)아"라고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통일' 여부를 묻는 것인데, '육체를 다스리는 넋'과 '정신을 다스리는 넋'을 몸 안에서 하나로 하되 헤어지지 않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빌립은 지금껏 제자로서 주님을 따랐지만, 주님 안에 있는 하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육으로는 주님을 따랐지만 영으로는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사실 이건 빌립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모두가 처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빌립의 요구는 자신만이 아닌 제자들 전체를 대표한 요구입니다. 그런 추론이 가능한 것은 빌립이 '우리'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 표적이 있기 전에도 빌립은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예수님과 대화했었습니다. 예수께서 큰 무리가 당신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요 6:6)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 그때 빌립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 그는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대답했을 것입니다. 육의 지식으로는 정확했겠지만 그러나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영적 무지를 드러내고 맙니다. 이때 빌립의 모습은 육과 영이 분리된 채, 영적으로 매우 어두워져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긴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 안에 계신 성부 하나님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영적 어두움 속에서 빌립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목격해야 했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해야 했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로는 그나마 예수님과 연결된 모든 것이 끊겨진 상황에서 공동체를 유지해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겠다던 주님은 오시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했던 증인들은 하나씩 둘씩 순교하거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때 그들은 정말 고아와 같았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 요한복음 기자가 기억해낸 것이 체포당하시기 직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 요 14:16
마침내 제자들이 기억해 낸 주님의 약속은 '보혜사'를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혜사는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곁에'라는 뜻의 '파라(παρά)'와 '부름 받은'이라는 뜻의 '클레토스(κλητος)'가 합해진 단어인데, 해석하면 '곁에서 돕기 위해 부름 받은 자'입니다. NIV와 RSV 성경에서는 'Counselor' 즉 '상담자'라고 번역했고, KJV와 Living Bible은 각각 '위로자'와 '조력자'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보혜사란 '우리 곁'으로 '부름 받은' 분이고, 우리를 '돕고', '위로하시고', '가르치는' 영(靈)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은 성령을 이렇게 소개합니다.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요 14:17, 18
여기서 예수님은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면서 그 분 역할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너희와 '파라(παρά)' 즉 '함께' 거하심이요, '엔(έν)' 즉 '속에' 계시겠음이라" 앞에서 빌립의 불안함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까?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육으로는 주님을 따랐지만 영으로는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면, 그 분이 그와 '함께' 그리고 '속에'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통합을 이룬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존재의 완성'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창조하셨던, 그러나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잃어버린 그 '모상(模相)'이 비로소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모상을 회복하고, 타락 이전의 상태로 마침내 되돌아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구원사의 정점은 바로 성령강림으로서 그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보혜사는 어떤 분이십니까? 인류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모든 피조물 세계를 타락 이전의 원형으로 재창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보혜사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를 재창조하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이렇게 찬미해야 합니다. "Veni Creator Spiritus!",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일찍이 이 진리를 깨달은 시인은 오늘 응송에서 이렇게 찬미했습니다.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 시 104:30, 31
시인의 이 고백과 찬미가 성령께서 함께 계시는 우리 내면으로부터 하늘로 향하기를 축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치 이 시인처럼 하나님을 찬미하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당부합니다. 제자들은 이때부터 어떤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행 1:14에 의하면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해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은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행 2:1)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 행 2:2-4
여기에 성령강림이 세 가지 징표로 나타납니다. '바람'과 '불'과 '방언'입니다. 이 세 가지 현상은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시로 여겨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바람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삼하 22:16이나, 욥 37:10이나, 겔 37:9-14에서는 죽은 육체를 회복시키는 생기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불은 죄악 되고 더러운 것을 없애버리는 '정결의 도구'로서 역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바람은 그곳에 모인 제자들 사이를 관통해 저희 앉은 온 집을 가득이 채우고 있었고, 불은 혀같이 갈라지며 나타나서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성령은 그렇게 각 사람에게 강림하셨고 제자들의 내면은 성령으로 채워졌습니다. 그 때 그들에게 하나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오순절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순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 행 2:11
참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를 그토록 답답하게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답답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답답함은 바벨탑 사건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바에 의하면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은 소통을 상실했습니다. 바벨탑을 쌓던 그들의 교만함은 그만 소통의 장벽을 자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창 11:9)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외국어를 말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 어떤 장애가 발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성령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대화가 회복하게 하셨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대화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여기 진정한 회복과 소통이 열린 것입니다. 성령강림절은 그래서 감격스러운 날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을 따라 비로소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생각을 알게 되었고 이웃의 깊은 신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예수님이 떠나신 자리에 성령께서 오시자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그토록 소망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 감격을 매일 누린 사람입니다. 그는 그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롬 8:14-17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지금까지 율법을 매개로 해온 계약종교는 폐기되고, 하나님과 사람의 신비적 일치시대가 열린 날입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각 사람 안에' 계심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 안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에덴동산에서 상실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영적이며 인격적인 형상이 '투영(投影)'된 자녀로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투영된 존재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상속자로서 살아간다는 의미이겠습니다. 성령과 함께,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몸과 인격과 영이 하나님을 빼어 닮은 존재로서 하늘에 이상을 두고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하나님의 형상을 잃은 채 그대로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통합된 존재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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