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PDF
부활절 제7주 땅의 존재가 아닌 하늘의 존재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6-02 10:48
조회
1030
■ 내적침묵기도 | Centering Prayer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6:25-34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응송 | 시97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서신 | 계 22:1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복음 | 요 17:20-24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 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묵상 | meditatio
① 요 17:24절을 묵상하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누구이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은 어떻게 얻은 영광입니까?
② 행 16:30, 33-34절을 묵상하십시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취한 행동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광으로 다가왔습니까?
③ 계 22:12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상은 각 사람에게 무엇에 따라 갚아집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엄습한 죽음 앞에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2b-15) 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 같이 우리도 행하기를 원하신 걸까요?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받으신 영광이 우리에게도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형제의 발을 닦아줄 때, 주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계속되는 말씀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 머무르며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가는 자녀에게 주님은 속히 오셔서 상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영광이 진정한 영광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할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삶을 아름답게 해야 합니까? 이러한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이 영광을 손꼽아 기다려온 시인은 오늘 응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세속의 영광을 구하며 세속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주께서 주시는 영광을 구하며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 읽기 | Lectio | 읽기는 듣기입니다.
신약 | 행 16:25-34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응송 | 시97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서신 | 계 22:12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복음 | 요 17:20-24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 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묵상 | meditatio
① 요 17:24절을 묵상하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는 누구이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은 어떻게 얻은 영광입니까?
② 행 16:30, 33-34절을 묵상하십시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취한 행동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광으로 다가왔습니까?
③ 계 22:12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실 상은 각 사람에게 무엇에 따라 갚아집니까?
■ 기 도 | Oratio | 5-10분
■ 묵상 나눔
땅의 존재가 아닌 하늘의 존재
오늘은 부활절 일곱 번째 주일이자 '예수 승천 주일'입니다. 이마에 재를 칠하고 창 3:19절 말씀에 근거해 '사람은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며시선을 땅에 두고서 사순절을 시작하던 날을 되돌아보면, 어느덧 그 시선이 부활을 통과해 하늘로 향하게 된 오늘 이 승천주일은 분명 존재의 새로운 차원이 우리를 위해 열렸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줍니다. 사실 '죽은 자의 부활' 만큼이나 인간의 이성으로는 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이 '승천(昇天)'입니다. 그럼에도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라고 주일마다 새벽마다 사도신경으로서 주님의 승천을 신앙고백해왔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심장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활이 '생명이 죽음을 이긴' 복음 중의 복음인 사건이라면, 승천은 부활의 결말이요 성령강림의 단초가 된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셨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하늘의 존재이고, 인간은 땅의 존재'라는 운명적 체념이, 죽음에서 부활로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땅의 존재들'처럼 죽어서 땅에 장사됐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신 까닭은, 그 모습이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해야 할 '새로운 인류'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다시금 이루시는 일이었습니다. 본시 땅은 하나님의 낙원이었고, 사람은 그 낙원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살도록 초대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낙원도 하나님의 형상도 다 상실해버리고 말았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아담을 대신하여 사탄의 유혹을 다시 이겨내시고, 죽음마저 이겨내고 부활하시고, 마침내 하늘로 승천하심으로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낙원을 우리에게 되찾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부활절일곱째주일'과 '승천주일'을 맞아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하늘로 가슴 벅차게 이끌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하늘'이란 창조된 우주의 물리적 공간이지만, 창조되지 아니한 하나님 당신의 세계를 가리키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이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가 바로 그 신비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 요 17:20, 21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오늘 복음서 역시 13장에서 17장까지 이어지는 '고별설교' 안에 포함되어 있는데, 오늘 말씀은 그 고별설교를 마무리하며 성부께 드리는 기도로 보면 되겠습니다. 주님의 이 기도는 중보기도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1절-5절까지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완성함으로서, 땅에서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려드렸듯이(요 17:4), 창조 이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을 아버지 앞에서 얻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요 17:5) 6절-19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셨음을 회상하며,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기를,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보전되기를, 제자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기를 간구하신 기도입니다. 그리고 20절-26절까지는 그 제자들로 인해 복음을 전해들은 성도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인데, 제자들로 인해 복음을 전해들은 1세기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기도가 되겠습니다. 주님은 두 가지를 기도합니다. 하나는 '성도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고, 하나는 그럼으로써 '성부와 성자 안에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지금 예수님께서 승천하심으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시듯 우리들도 '땅의 존재'라는 운명적 체념을 뛰어넘어 마침내 '성부와 성자 안에'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이 기도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 '어떻게'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기도를 이어가십니다.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 요 17:22
우리가 여기서 눈 여겨 보게 되는 것이 '내게 주신 영광'이라는 표현입니다. 요 13:31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이 '영광'이라는 헬라어 단어 '독사(δοξα)'는 복음서 중에서 특히 요한에 의해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 요한이 이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영광'은 비단 요한에게만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 아닙니다. 로마시대에도 이 '영광'은 최고의 덕목을 나타내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면 로마시대에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영광'이 주어졌을까요? '강한 자, 승리자, 성공한 자'들이었습니다. 당연히 로마 세계의 가장 높은 영광은 황제 가이사의 것이었습니다. 황제는 인간으로서의 영광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이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내게 주신 영광' 즉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에게 주신 영광'이란 어떤 것일까요? 그리고 그 '영광'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준다는 것일까요? 오히려 사람이 영광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그 욕망으로 인해 분열이 일어나기가 더 쉽지 어떻게 그 영광 때문에 하나가 된다는 걸까요? 예수님께서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신 13:31절 앞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봐야 합니다. 13장이 열리기가 무섭게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라며, 이후로 당신에게 벌어질 일들 즉 수난과 죽음을 예수께서 감지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죽음이 엄습한 그 상황에서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고(요 13:1),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셨습니다.(요 13:4, 5) 반면에 마귀는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불어넣었는데(요 13:2), 그래서 주님은 21절에서 유다가 당신을 팔 것을 예고하시고, 심지어 베드로마저 당신을 부인할 것을 예고하십니다.(요 13:31) 그러니까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지금 주님은 배반과 배신의 한 가운데에 끼여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영광일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예수님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영광이 아닌 치욕의 현실에 처해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당신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어리석은 길, 미련한 길, 치욕의 길입니다.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으며, 유대인에게도 무능한 길입니다. 세상 영광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길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길이기에 알면서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발을 씻으시며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광'은 '세상 영광'과 달랐습니다. 요한은 처음부터 세상 영광을 뒤엎는 이 하나님의 영광을 요 1:14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던 헬라 세계에서 '말씀(로고스)'은 거룩하고, 존귀한 것이었고 '육체(사르크스)는 속되고 무가치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이란, 거룩한 것이 속된 것이 되고, 귀한 것이 천한 것이 된 것입니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추락한 사건, 거룩이 세속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건, 그것이 바로 성육신입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우리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영광은 낮아지는 영광, 비우고 섬기고 고난당하는 영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을 이루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아버지의 일을 완성하시고 "내가 다 이루었다"며 숨을 거두셨습니다.(요 19:30)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주님과 같은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엄습한 죽음 앞에서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2b-15) 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것 같이 우리도 행하기를 원하신 걸까요? 그래야만 예수님께서 받으신 영광이 우리에게도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형제의 발을 닦아줄 때, 주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계속되는 말씀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요 17:24
여기에 주님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종이 되어 형제를 섬김으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에게 주신 그 영광을 우리들도 볼 수 있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에서 주님의 이 기도가 사도들에게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빌립보에서 기도하는 곳을 찾던 바울과 실라는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주자 돈벌이가 끊어진 주인들이 화가 나 바울과 실라를 고발해 깊은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행 16:22, 23) 그런데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의 모습을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렇게 소개합니다.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 행 16:25
그런데 이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묶어 둔 쇠사슬이 풀어집니다. 간수들이 자다가 깨서 죄수들이 도망갔다고 생각하고 칼을 꺼내 자살을 하려는데, 바울이 소리를 지릅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행 16:28) 간수들이 그만 감동하고 맙니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가 밖으로 데리고 나가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 이때 그들이 전한 메시지를 보십시오.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행 16:31
그날 밤 간수는 그들을 데려다 맞은 상처를 씻어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습니다. (행 16:33) 우리는 여기에서 바울과 실라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참된 영광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해야 할 '새로운 인류'의 모습인 것이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본래의 목적을 다시금 이룬 모습입니다. 이런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모습이 마침내 내가 도달할 영광스러운 미래임을 알고, '땅의 존재'라는 운명적 체념을 뛰어넘어 '하늘의 존재'로 살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모습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드리운 모습입니다. 오늘 서신서의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그런 신자를 향해 이렇게 선포합니다.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 계 22:12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 안에 머무르며 세상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겨가는 자녀에게 주님은 속히 오셔서 상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런 영광이 진정한 영광이고, 그리스도인들이 소망할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왜 삶을 아름답게 해야 합니까? 이러한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이 영광을 손꼽아 기다려온 시인은 오늘 응송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리시는도다 | 시 97:10, 11
왜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미워해야 할까요?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영혼이 보전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빛을 뿌려주시고, 기쁨을 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이 기쁨을 소망하며 온통 하늘에 시선을 둔 성도라면 어떻게 달리 살 수 있겠습니까? 이 기쁨을 소망한 자는 날마다 부활하여 하늘로, 하늘로 승천 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미 땅의 존재가 아닌 하늘의 존재이며, 무덤이 아닌 승천을 향해 가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존재'로서 날마다의 삶이 이미 낙원이며, 하늘이며 하나님 안에 사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관상 | Contemplatio
관상은 '하나님을 보는 기도'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 실천 | Praxio
① 세속의 영광을 구하며 세속인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② 주께서 주시는 영광을 구하며 겸손과 섬김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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